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많이 걷는 사람 아니던가?

나, 경이에 젖어 걸음 멈추고
푸른 여명 속
지붕들과 나무 꼭대기들 위
완벽한 샛별 바라보지 않았던가?

나무들 위를 지나는 건 그저 바람,
누구에게나 주어진 흔한 것일 뿐인데
바람이 아니라 물살인 듯 흔들리는 나무들,
나, 그 나무들의 떨림 보고 있지 않은가? - P33

소박한 집 위에도 궁전 위에도 같은 어둠이 있어.
악한 사람 위에도 
정의로운 사람 위에도 같은 별들이 있어.
회복될 아이 위에도 회복되지 못할 아이 위에도,
같은 에너지가 흘러,
비극에서 비극으로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으로 - P35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ㅡ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피리소리 내는 이 금빛 새를 설령 내가 진화, 파충류, 캄브리아기 바다, 몸의 변화 욕구, 몸의 경이로운 기술들과 노력들, 무수한 생물들, 승자들과 패자들이라는맥락에서 생각한다 하여도 그 본연의 의미,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은 조금도 놓치지 않으리란 것. 내가 가진 재주는ㅡ 세밀한 지식과 완전히 봉인된 불가해한신비를 동시에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니까. - P63

다시 말해,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만일 언어가 필수적이었다면 단순함을 유지했을 것이며, 늘 존재하는 사랑스러움과 최고조에 달하는 모호함으로 우리를 동요시키지 않았을것이다. 그 길고 흰 뼈 위에서 노래로 변신할 꿈을꾸지 않았을 것이다. - P65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부러진 나뭇가지 에디 휘트먼,
전기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크리스토퍼 스마트자살한 나의 삼촌,
강으로 가는 버지니아 울프,
구슬픈 노래 짓는 후고 볼프,
더블린의 짙은 어둠 조너선 스위프트,
다리 위로 올라가, 라인강에 뛰어드는 로베르트 슈만,
존 러스킨, 윌리엄 쿠퍼,
볼티모어와 리치먼드의 음울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에드거 앨런 포—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 P83

넌 젊어. 그래서 모르는 게 없지. 넌 배로 뛰어들어노를 젓기 시작하지. 하지만 내 말을 들어봐.
팡파르도, 곤혹스러움도, 그 어떤 의심도 없이너의 영혼에 직접 말할 테니, 내 말을 들어봐.
물에서 노를 거두어 너의 두 팔을, 마음을, 너의미약한 지성을 쉬게 하고, 내 말을 들어봐. 사랑없는 삶도 있어. 그런 삶은 찌그러진 동전, 닳아빠진 신발만큼의 가치도 없지. 아흐레나 땅에 묻지 않은 개 사체만큼의 가치도 없지. 1마일쯤 떨어진,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날카로운 바위를 둘러싸고 안달하며 소용돌이치고요동치기 시작하는 소리 들리면—그 분명한 포효가 들리면 입술에 물안개가 느껴지고 높은절벽을 수증기 내뿜으며 떨어지는 긴 폭포를 예감할 수 있다면 그럼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노를 저어, 저어. - P155

나의 살과 뼈로 지어진 오두막에 사는 마음 한조각 노래하기 시작했지, 만일 태양이 노래할 수있었다면 그렇게 노래했겠지, 빛이 입과 혀를 가졌다면, 하늘이 목구멍을 가졌다면, 신이 그저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어깨와 등뼈라면, 모든 곳에서 모여든, 심지어 불타오르는 머나먼 행성들에서도, 나는 어디 있는가? 지금 거친 말들이 엉겅퀴처럼 빠르게 내게로 와 누가 너의 폭군의몸, 갈망, 탐구, 즐거움을 만들었을까? 오, 호랑이여, 오, 힘든 일이여, 오, 불타는 나무여! 나에게서 떨어져 가까이 와. - P157

친구를 만나러 피사에 갔지. 친구를 만나 화창한 오후를 함께 보냈지. 나는 이 시인을 사랑하고, 그건 여기서든 저기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내 마음속 정원과도 같지. 그러니 내 사랑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그래서 난 그 7월 오후 피사에서의 그를 생각해. 그의 친구 헌트가 영국 친구들에 대해 뼈 있는 농담을 하자 그는 웃기 시작했지. 도저히 웃음을 주체할수 없었지. 호리호리한 몸이 흔들리고 긴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건물에 기대야만 했지. 그래서 그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석조 건물에 기대어 있었지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돌벽을 붙잡고 요란하게 포복절도하며 자신의 몸을움켜쥐었지. 그 농담, 다정함, 지성, 작디작은 금빛꽃처럼 햇살 그 자체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부신 행복에 온몸이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지. 헌트의 경쾌한 목소리, 피사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는 단순한 오후. - P167

걸쇠에 손대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주목하며 한 걸음 한 걸음내딛지 않고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외벽의 돌에 감탄하거나 반하지 않고 안쪽 방을 볼 사람이어디 있을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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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2-24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라색 바탕 위에 흰 글자. 예쁩니다...
뽑아 주신 문장들, 좋네요.

청아 2023-02-24 14:50   좋아요 1 | URL
흰 바탕에 구성이 뭔가 딱딱해 보여서
분위기를 바꿔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