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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영상으로 보고 뼈아픈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 드러났을 때 우리 국민들의 광화문 촛불시위는 전 세계에 울림을 주었다. 평화적이었지만 그만큼 더 강력했던 시민들의 민주적인 행동. 기존에 잘 알려져 있었던 기적과 같은 한국의 경제성장뿐 아니라 민주주의도 세계적인 수준임이 확인된 것이다.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이자 독문학과 교수인 김 씨에게 독일의 유력 언론사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기쁘게 응했다.  4.19와 5.18등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싸웠던 우리 국민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그러나 인터뷰하는 동안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다는 점이 사실상 모순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제대로 성취되었다면 반복해 싸울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기적을 만들었지만 각자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 민주의식은 힘을 잃었을 거라고.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권위적인 선생님으로, 고압적인 상사로 말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처럼 그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을 애초부터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유할 필요 없는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의대 쏠림 현상이다.-근본적으로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미쳐있는]을 읽으며 페미니즘의 거듭된 물결도 비슷한 이유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는 투표권도 생기고 정치계에도 발을 들이는 등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성들의 현실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끊임없는 백래시의 공격과 내부의 분열로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지치고 거듭 불의한 현실, 한계를 체감했다.



서른다섯의 오클라호마대학교 법학 교수 애니타 힐은 백인으로만 구성된 상원 법사위원회 앞에서, 그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서 그녀의 상사인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토머스가 그녀를 성희롱했다고 증언했다. 힐은 그의 제안을 거부했는데도 그가 집요하게 수간, 그룹 섹스, 강간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토머스가 일어나서 " 잘나가는 흑인에 대한 최첨단 린치 행위" 라고 하면서 이 증언을 비난하자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사법위원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기이하게도 힐에게 반대하며 영화 [엑소시스트]를 상기시켰고, 그녀가 증언한 그의 빈정거리는 발언이 그녀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틀림없다고 넌지시 주장하려고 그녀의 "성욕이상증"을 언급하기도 했다. 372




이 사건은 1991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33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일들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발은 미디어와 정치계의 비난으로 역공을 맞이해야 했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음에도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함부로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니타 힐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성희롱에 맞서지 못하고 참아야만 했던 여성들에게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은 분명 힘을 불어넣었다.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나도 감동을 느꼈다. 이후 많은 여성들이 더는 참지 않기를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안희정을 고발한 김지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2차 가해와 무고라는 비난, 갖은 인신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김지은 씨는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글로 당시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 선택했던 첫 번째 말하기가 극심한 고통을 주었기에 한참을 주저했다. 그러나 거짓이 횡행하는 상황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김지은입니다.



이 모든 주장은 상식적으로 진위 여부의 확인이 가능한 허위 증언들이었지만, 재판의 증언들은 언론에 그대로 중계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사실 확인은 전혀 없었고, 일방 적인 주장이 사실처럼 전달되었다. -김지은입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들은 이런 일들을 보며 기본적으로 두 가지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하나는 '저 봐. 저렇게 말해봤자. 소용없잖아? 오히려 마녀사냥이나 당하고. 나는 그때 참기를 잘했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당당히 맞서다니 용기 있는 행동이었어.' '나도 저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생각이 모두 들 수도 있다. 적어도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중요하다.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침묵"과 대면했던 이 3주 동안 로드가 가장 후회했던 것은 그동안 침묵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자각은 ("내 침묵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변형되었다. "눈에 띄는 일에 대한 두려움, 가혹한 시선과 어쩌면 비판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지만, 말의 자유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 되어준다. 그것은 말이 "우리 사이의 차이들을 잇는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이다. 그리고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다. " 316 ,여전히 미쳐있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교육이 근본부터 바뀌지 않는 한 늘 위태로울 것이다. 능력주의와 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때로 변화는 외부로부터 온다. 늦었지만 미국도 대학 입시제도를 바꾸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많은 대학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환경 역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의 세대는 기존 세대에 비해 환경의 역습을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스스로를 계속해서 확장해왔다. 역사상 이런 운동이 있었던가? 인종차별, 반전시위, 강압적 이성애, 발전주의와 지구 온난화의 위협, 동물권에도 공감하고 페미니즘과의 교차점을 찾았다. 많은 문제가 실은 서로 얽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거듭된 투쟁과 학습의 결과다. 물론 불가능했을 테지만 만일 문제가 예전에 해결되었다면 여성운동가들이 이런 확장, 연대, 교차점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페미니즘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차고 넘치는 남성의 역사와 말하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여성의 시간들. 지워졌으나 결코 비워져 있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일부 살려낸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은 많은 여성들에게 대안의 지도가 되어주었다.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그 두 번째 책 [여전히 미쳐있는]을 통해 전작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와 이후의 시기 여성작가들의 삶과 투쟁, 연대기의 명과 암을 써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기만적인 '자기초월'보다는 '연대의 확장'을 거듭 시도한 이들의 역사는 무엇보다 희망적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흐리는 신자유주의의 파괴력 앞에서 자기 착취에 빠져 전쟁과 불평등을 키우는 현실정치의 대안은 페미니즘이다.




 

사진작가 신디 셔먼의 작품











    


   


 

  



 

   


 

   





*[여미쳐]에 언급된 작가들의 책인데 대부분 친숙한 목록들이고 (이게 다 '여성주의 책 함께읽기'의 리더이신 다락방님 덕분!) 누스바움은 이번에 신간이 나왔길래 넣었다. 내년에는 이 책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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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29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좋아요를 누르고 마저 읽었습니다. 좀전에 뒤늦게 <서울의 봄>을 보고 와서 한국의 민주주의, 침묵, 나는 나설 수 있겠는가… 다 너무 와닿아요.

이렇게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 계속 보여주세요! 🥰

청아 2023-12-29 13:19   좋아요 0 | URL
읽어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수하님^^*

<서울의 봄>보고 오셨군요! 저도 꼭 볼거예요. 김누리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불평등을 말할때 여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기 때문에 신뢰가 갑니다.

수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함께 읽고 쓰기로해요! 🥰

다락방 2023-12-29 14: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역시 미미 님, 글도 정말 깔끔하고 정리정돈 잘하며 쓰시네요. 같이 읽으면서 한 책에 대해 저마다 다른 글이 나온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미미 님, 같이 읽어주시고 또 이렇게 감상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내녀에도 함께 읽고 쓰도록 해요!!

청아 2023-12-29 14:4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다락방님!!^^* 글이라도 깔끔하게 쓰려는 본능이 있는걸까요?ㅋㅋ (책상은 엉망..장난아님요)

올해도 다락방님 덕분에 보람있게 보냅니다. 쌓여가는 여성주의 책들 보면 신기해요. 저에게 끈기를 심어주셔서 늘 감사해요. >.<

페넬로페 2023-12-29 2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지껏 읽은 책과 미미님의 인식이 어우러져 너무 좋은 글이 나온 것 같아요.
관심있는 분야가 약간 달라도
내년에도 열심히 같이 책 읽어요^^

청아 2023-12-29 21:51   좋아요 1 | URL
페페님!! 다정한 말씀 고맙습니다. >_<
글로 생각을 표현하고 정리한다는게 점점 어렵네요. 갈수록 제 부족함, 한계만 크게 느껴집니다. 읽는건 아무 부담이 없는데 말이죠ㅋㅋㅋ내년에도 페넬로페님과 함께 즐겁게 읽겠습니당!

새파랑 2023-12-30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독서기계이신 미미님~!! 오늘은 눈비가 오네요 ㅜㅜ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는 더 즐거운 책 많이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청아 2023-12-30 13:35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연말이라 많이 바쁘신것 같습니다! 아침에 집앞 눈을 쓸었는데 원상복구가 되었네요ㅜㅜ
설국의 날입니다ㅋㅋㅋ 새파랑님도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도 함께 즐거운 독서해요!! ^0^

얄라알라 2023-12-30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어제 문상철의 [몰락의 시간]을 읽었어요. 해시태그 올리신 김지은님의 책도... 미미님의 명쾌하고 뜨거운 목소리 감사히 듣고 갑니다. ˝설국의 날˝이라는 댓글, 낭만적이네요. 온 세상이 하얗고, 미세먼지는 촘촘하고, 목구멍은 따갑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청아 2023-12-30 18:11   좋아요 0 | URL
얄라님! <몰락의 시간>읽으셨군요. 문상철, 김지은씨 등 용기 있는 목소리는 소수지만
그래서 더 전염성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요 며칠 공기질이 나쁘더군요.

건강 유의하시고 얄라님도 새해 복 듬뿍 받으시길요^-^

독서괭 2023-12-31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오드리 로드의 말 저도 인상 깊었어요!! 침묵하지 않는 법에 대한 제시와 희망,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미님도 계속 읽고 써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청아 2024-01-01 08:54   좋아요 1 | URL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입니다. 이런 멋진 언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뿌듯했어요!! 함께 사유하며 24년도 채워나갔으면 합니다. 괭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4-01-01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인상적이네요.
메시지가 명확한, 전복적인...!
미미님 글처럼~♡
새해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

청아 2024-01-01 13:35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부족한 글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는 평화로운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름모모 2024-01-19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강의 지서전 책 정보 읽다가 미미님 글까지 정독! 사진도 강열하고 글내용도 강합니다. 힘있는 글 감사합니다^^

청아 2024-01-19 10:49   좋아요 0 | URL
읽어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모님! 워낙 다 강열한 책들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모님 힘 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이 책이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게 1983년이라고 한다. 나에게 닿기까지 40년이 걸린 셈 이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다 쳐도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 때까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란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친구가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을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 모른다. 왜 신사임당, 유관순, 박경리,박완서, 나이팅게일은 교과서에 실리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나혜석, 시몬드 보부아르, 토니 모리슨,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수전 손택, 필리스 체슬러는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전달되지 않았을까? 이 논쟁적이고 통쾌한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그에 비해 남성 문학은 얼마나 과잉 대표되고 있는가. 억울할 지경이다. 과해도 너무 과해서 그들의 자의식은 하늘을 찔러 미투가 한국에서 한창일 때 그 피바람은 놀랍게도 문학계, 예술계에서 불어왔다. 당시에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저런 현상들이 거의 다 납득이 된다. 한쪽은 스스로 감당도 안 될 만큼 비대해지고 다른 한쪽은 존재마저 부정하려는 듯 희미해지고 굶주리고 있는 이유를. 이 굶주림은 단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44사이즈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이상적인 몸매가 되어 정신적인 삶은 추구할 시간조차 없다. 시간도 없고 필요도 없는데(그렇게 믿는 게 바람직해지고 편해지는) 이 굴욕과 억압을 언제,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지식인 남성이 아내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상태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정의하는 근거가 된다. 나아가 그는 피억압자로서 탈출을 꿈꾼다. 착취자가 피해자고 그래서 해방을 꿈꾼다? 성별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남편이 여자 손님을 상대로 집에서 성을 파는 '호스트'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돈과 식사를 요구한다. 그런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심리적 적개심을 가지고 자신이 피해자라 운운한다면, 스릴러가 될 것이다. 성매매처럼 성별화된 문명은 없다. 우리는 아무도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이 남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별을 바꾼 '날개'의 서사는 상상할 수 없다. p.204 정희진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사방에서 다이어트나 미용 강좌, 옷과 화장, 그리고 엉터리 왕자가 꿈꾸는 소녀가 되기 위해서라면 억지로 훼손시켜서라도 몸을 유리구두에 꽉꽉 눌러 넣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받게 되는 벌은 엄청나다. 그들의 사회적 정당성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점점 더 닮아 보이게 된다. 동시에 육체적 외형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기대된다. (...)이러한 갈등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하고 있다. 여성이 점점 더 닮아 보이기 시작하고 가공의 이상과 다른 정도에 의해서만 구별될 때, 더 쉽게 계급으로서 정형화될 수 있다. p.221 성의 변증법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도 하고. 과연 그럴까? 이제 미의 기준은 너무나 절대적이고 공고하여 백인 바비와 유사한 점이 없어도 너무 없는 흑인 인어공주가 등장하자 소셜에서 꽤나 비난받았다. 차별은 더 교묘해지고 치밀해졌을 뿐이다. 투표권이 생기고 법적 권리가 과거에 비해 늘어났지만 과거에 비해 늘어났을 뿐이지 절반인 남성에 비해 여전히 부정의에 시달린다. 오히려 유혹은 더 많아졌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다양한 소비문화의 집중포화를 감당해 내야 한다. 제대로 인식하고 사유하려면 이겨내야 할 것들이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많다. 남자는 알을 깨고 나오면 되지만 여성은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대한민국 어디엔가  제2의 파이어스톤이, 보부아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있을 가능성보다 스스로의 잠재된 재능을 깨닫지 못한 채 화장이나 성형에 관심을 두고 취집을 꿈꿀 가능성이 아직은 조금 더 높아 보인다. 비혼주의 여성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여성들이 알을 깨는데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 공부가 더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 여성들은 더 읽어야 한다. 




가장 창조적인 시기의 주요 에너지가 '괜찮은 남자를 낚기 위해'쓰여지고 일생의 대부분은 낚은 것을 '유지하기'위해 쓰여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남성에게 직업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는 전일근무 직업이 될 수 있다). 이 경주에서 낙오를 선택하는 여성은 사랑 없는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것은 우리가 보아온 대로 대부분의 남성이 그렇게 할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 여성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여자 이상이어야 하며, 자신이 열등하다는 정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남성만이 그녀에게 은총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성은 더 큰(남성)사회에서의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거의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ㅡ그리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ㅡ많은 남성보다는 한 남성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다. 사실상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여성이 하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는 좋은 사랑의 현상이 계급적 맥락 때문에 왜곡된다. 여성은 건전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p.201. 성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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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7-20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잉대표˝
그런 경향성에 문제의식 전혀 없던 사람까지 뜨끔하게 만드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어슐러 르 귄의 인터뷰집을 읽기 전까지는, 예를 들어 SF 문학계에서 남성의 과잉대표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 하지도 생각해본적도 없었거든요.
미미님 말씀처럼 교과서 수록 선별 인물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겠네요.....관성적인 위인이 아니라.
생각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미님.

청아 2023-07-20 09:34   좋아요 1 | URL
<성의 변증법>과<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함께 읽었는데
문학계의 문제를 실감했습니다. SF 문학계도 마찬가지군요? 어슐러 르 귄 읽다만 저.. ㅠ.ㅠ
자연과학 쪽에 대부분 남성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학교 교육이 성차별을 내면화 시키는 요충지인 만큼
이런 식으로 치우친 교육은 계속해서 더 많은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23-07-20 0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너무 좋네요.
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면서, 다른 분들이 여성주의 책들을 읽고 이렇듯 본인의 생각과 감상을 적어주시는 일이 너무 좋고 뿌듯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도, 다른 부분에서 인상을 남겨도 너무 짜릿해요! 그래서 오래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출근길에 사랑에 대한 부분 읽었는데, 와 파이어스톤 님 너무나 대천재 이십니다. 저 스물다섯에 뭘했을까요 ㅠㅠ

잠자냥 2023-07-20 08:38   좋아요 3 | URL
스물다섯에 다락방은



많이 먹었다.

다락방 2023-07-20 09:31   좋아요 3 | URL
마시기도 오지게 마셨고요, 나쁜 연애도 시작했습니다. 하- 치욕스러운 과거를 만들었어요. ㅠㅠ

청아 2023-07-20 09:45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만- 20대에 여성학을 지금만큼 공부했더라면 연애에 시간 낭비를 안 했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파이어스톤은 보부아르 보다 급진적으로 한 발 더 내디뎠다는 느낌이었고요.

아.. 사랑 포함한 4,5,6,7,8 장이 너무 좋았습니다. 재독 삼독해야만 하는 책ㅜ.ㅜ

건수하 2023-07-20 10:56   좋아요 1 | URL
미미님/ 극공감이요! 그때 연애 (연애, 소개팅, 다른 이들의 연애 상담 등등) 에 시간 안 쓰고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책읽는나무 2023-07-20 11:33   좋아요 1 | URL
나도 20대 때 모했나?
더듬어 봅니다.ㅋㅋㅋ
연애만 했네요. 아..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아! 넘 바빴네요.ㅜㅜ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그래서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몰랐...ㅜㅜ

여자는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저였군요!! 저!!! ㅋㅋㅋ

청아 2023-07-20 11:40   좋아요 2 | URL
나무님/ 여성들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책무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ㅜ.ㅜ
자각할 때 즈음에는 이미 나이 들고 지쳐버리는...
그래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저는 앞으로도 아는 것을 선택하겠어요. 쭈욱ㅋㅋㅋㅋ

건수하 2023-07-2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알을 깨고 나오면 되지만 여성은 알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낄 새도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전일근무 직업이 될 수 있다.. 정말 뼈때리는 말이었어요.
결혼하니까 더 이상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연애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편했어요.
기혼 여성이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일지도..

청아 2023-07-20 11:30   좋아요 2 | URL
저도 20대에 넘치는 에너지를,시간을 연애에 거의 다 쏟아부었어요.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을 알게 해주는 이런 책들을 교과서 대신 읽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적어도 젊은 여성들에게 선택의 길이 더 열리겠죠. 알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 책 뼈 때리는 말들 가득하죠!ㅎㅎㅎ

함께 읽으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늘 너무 좋네요^^
 



'하나이지 않은 성'으로 처음 접했던 이리가레의 글은 어렵긴 했지만 굵직한 여성주의 관점들, 시적인 표현들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컴북스 이론총서도 찾아 읽고 '나,너,우리'도 진작에 사두었다가 '해러웨이 선언문'에서 이리가레가 언급된 것을 읽고 이 책을 이번에 읽었다. 역자가 언급하듯 내용은 비교적 최근의 글이고 이리가레의 철학을 이해하기 수월하게 서술되어있다. 여러 주제별로 짧은 글들을 모았으며. 이리가레가 인터뷰한 내용도 담겨있다. 특히 프랑스어에서 문법상 성의 지위가 달라지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고 태반의 상호작용에 관한 글, '처녀성'을 소녀들의 재산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었다. 


컴퓨터(l‘ordinateur)는 물론 남성 명사이고, 타자기(la machine à écrire)는 여성 명사이다.  가치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가치를 가진 것은 분명히 남성형이다. 다시 한번 예를 들면, (남성형인) 비행기 (un avion)는 여성형인 자동차(une voiture) 보다 우월하며, (남성형의) 콩코드(le Concorde)는 말할 것도 없고, (남성형의)보잉기(le Boeing)는 (여성형의) 카라벨(la Caravelle)보다 우수하다 - P72


언어가 성별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담화가 그렇지 않을 수 있는가? 언어는 가장 근본적인 규칙들 속에 성적인 특성과 함축된 의미들과 무관하지 않은 단어의 성구분 속에 이미 성별화되어 있으며, 어휘들 속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의 담화에 나타난 차이들은 따라서 언어와 사회, 사회와 언어의 영향이다.  - P34


태반은 태아에 의해 형성된 조직이다. 그러나 태아와 독립적으로 기능하며 모체와 태아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한다. 태반은 모체와 태아의 조직이 서로 융합(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공존하게끔 기능한다. 양쪽 모두를 위해 교환을 조정하고 모체의 물질을 변형, 저장, 재분배한다. 호르몬 분비에 있어서도 태반은 통제 기능을 함으로써 태아와 모체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돕는다. 나는 여기서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으로 융합을 이루려는 기존의 이데올로기에서 태반의 이러한 기능처럼 다른 성을 존중하고 서로 공존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인류에게 오래도록 섬김받고 찬양되었지만 여성은 그 창조적 능력으로 말미암에 오히려 남성적 질서에 부차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성의 이 경이로운 작품은 어린아이, 그것도 먼저 남자아이를 낳는 의무로 바뀌고 말았다. 따라서 우주의 가장 위대한 창조자인 여성은 남자의 사회 질서 재생에 봉사하는 하녀가 되었다. 자신들의 걸작에 주어지는 명예 가운데 여성에게는 대개 출산이라는 <일>의고통과 어머니 노릇을 하는 피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거기다 부권제 문화의 질서는 모든 창조를 여성에게 금지하고,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출산이라고 부르는 것에만 가두어 놓았다.  - P111



그렇다고 해서 이리가레는 이러한 여성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성 구분을 없애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살아가야할 미래를 위해서 고유의 특성과 정체성을 확립할것을 요구한다. 이리가레는 남성과 똑같아지는 평등이 아닌(융합)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확립으로 긍정적인 공존을 추구하자고 말한다. 남성만이 유일한 가치이고 질서라는 기존의 담화에서 벗어나되 여성들의 책임과 기회를 세계의 발전단계와 연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녀들에게 처녀성을 재산으로 인정하게 하자는 이리가레의 제안도 그런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가족 · 국가 · 종교 어느 것에 의해서도 현금으로 환산될 수 없고,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 정체성의 한 구성요소로 처녀성(혹은 육체적·도덕적 순결)을 법에 기재할 것. 여성 정체성의 이요소는 소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주고, 자신이 원하는 한 처녀성(신과의 관계를 포함해서)을 지킬 권리를 줄 뿐 아니라, 집 안팎에서 이 권리를 해치려는 사람에 대해 법의 도움으로 불평을표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소녀가 남성들간에 교환되는 경우가 적은 것이 사실일지라도 처녀성이 상품화되는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며, 남성들간에 돈으로 환산될수 있는 육체로서 소녀의 정체성이 갖는 지위는 재고려되지도재형성되지도 않았습니다. 소녀들은 개인적·사회적 시민으로 의거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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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30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표현은 잘 모르겠는데 외국은 저렇게 성별 명사가 구분되어 있더라구요. 저런것의 배경도 어쩌면 차별이 깔려있나 봅니다 ㅜㅜ

청아 2022-05-30 21:44   좋아요 4 | URL
프랑스어만 그런게 아니군요?!! 왜 굳이 저런 차별을 뒀어야했나 싶어요.ㅠ 이리가레는 언어학자,정신분석학자이기도해서 치매연구하다 조사하게됐대요^^

mini74 2022-05-31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반이야기 신기하네요. 달은 여자이고 모양의 변화는 변덕스러움을 보여주고 남성은 태양이라는것도ㅠㅠ타자기가 여성형인거 은근히 기분나쁘네요 ㅎㅎ

청아 2022-05-31 12:02   좋아요 2 | URL
이런것만 쭉 나열한 책도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요!
역사적인 유례도 되도록 찾아서요. 이리가레가 조사는 했다는데 국내 번역된건 확실히 아직 없더라구요. 아! 저 예전에 인형때문에 구입한 원서가 비슷한 책인데 아직은 어려워서 못...ㅠㅠ;;

그레이스 2022-05-31 1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명사 남성명사 그앞에 오는 관사, 뒤에 오는 동사까지...
더구나 불규칙은 외워야하고,,,, ^^
제2외국어로 불어 할 때 정말 짜증났던 기억이 나요^^
묘하게 전통적 정서에 맞는듯한 느낌이 그런 이유였겠죠?! 차별!

청아 2022-05-31 19:54   좋아요 2 | URL
저는 독어반이었는데(독어쌤은 무섭고 히틀러같았어요ㅠ) 가끔 수업때 화장실가며 불어반 지나가면 늘 웃음소리가 나서 부러웠어요*^^* 역시 불어수업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군요!!

scott 2022-06-01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문서등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소설작품등에서 그/그녀 IIs로 쓰고있습니다 영어권에서
미스/미세스 구분 안하고 독일어에서 fräulein21세기 이후 남부지방에서나 쓰고있습니다 🤗

청아 2022-06-01 14:45   좋아요 2 | URL
프랑스어는 좀더 변화가 필요하군요!! 이런 차이들을 다 알고계신 스콧님 쵝오👍👍 언어는 일상으로 쓰이므로 무의식적인 고착화에 큰 영향을 주는것 같아요😊
 


학교폭력, 총기난사와 같은 극단적 폭력성에 대해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그런 행위의 당사자들이 

우리와 별개의 존재임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들어 뉴스에서 다루어지거나 고발프로에서 그런 사건을 재조명하는 걸 유심히 보면 철저하게 일반인들과 분리하려는 도덕적 경계설정과 비판적 관점의 반복을 알수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과정들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무의미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매번 한계를 느끼는게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회적 장치들로 여겨진다. 만일 그렇다고 가정할때 사회가 느끼는 죄책감의 출처는 무엇일까? 무엇을 회피하고자 이런 의도적인(때로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격식을 이어가는걸까. 근본적인 해결책이 부재한 반복적인 집단적 회피는 사실상 용인과 동일한게 아닐까?






해러웨이는 "죽이지 않게 하는것이 아니라
죽여도 되게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해러웨이의 책을 읽을때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것같다. 예전에 '육식의 성정치'를 읽으며 여성과 육식과의 관계에 대해 공부해볼 수 있었다.


캐럴 J.아담스에 따르면 육식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점은 상당히 유사하다. 남성주의 시각에서 자연, 여성, 동물, 장애인은 이 세계를 점유,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착취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점차 다양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직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도는 워낙 오랫동안 강력하게 형성되어있고 부분적인 노력으로는 변화하기 힘든 역학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쓴 리뷰에서 밝힌 바와같이 사람들은 동물을 친구로 여겨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각종 캐릭터를 만들어 상품화 한다. 반려 동물을 기르는 인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은 언론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어지며 비난받는다. 하지만 정작 TV를 켜면 많은 예능, 기타방송에서 고기는 주된 요리로 등장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고기는 먹기좋게 형태가 바뀐 동물이다. 매력적으로 자신을 치장한 인플루언서가 앉은 자리에서 수십개의 닭다리를 먹으며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즐겨먹는 사람조차 그 고기의 실체를 어느정도까지는 인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번 먹을때마다 도축되는 짐승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우리는 '먹는'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무해할까? 식품위생적,영양학적 피해가 아닌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적하는 거다. 물론 방송에 등장하는 인플루언서가 먹는 닭다리는 그녀가 직접 도축한 닭이 아니다. 그 잔인한 과정은 육식하는 소비자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에 의해 '대리'된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의 동물 '학대'는 범죄가되고 누군가의 '학대'는 범죄가 아니게 된다. 하지만 소고기와 닭다리를 먹을때 그녀 또는 그는 정확하게 도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시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각종 폭력,범죄를 떠올려보자 그것의 원인을 추적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그것을 막기위한 근본적 해결에 비용을 투자하고 모두가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관심을 두지 못할까? 왜 다소 피상적으로 여겨지는 또한 피해자에 대한  그 '폭력'만큼이나 잔인한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일까? 근본 원인은 사회,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느순간부터 구조적 문제라는 말은 유용한 회피 수단이 된 것만같다.) 대중은 자극적인 것에 관심이 있으므로 광고주를 잡기 위해서? 어떤 이유든 이런 식의 사회적'회피'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적 선택'이다. 나는 이것이 폭력의 내면화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미디어에서 어떤 폭력행위를 접할 때 그것이 이 세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소식'을 '신뢰'하고 거기에 대해 여러형태로 반응한다. 영상과 사진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직접 그 상황을 목격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가 그런 사건이 '가능'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아동에 대한 방임도 학대로 규정한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조작'이 아니고 '현실'이라고 인지하는 것일까? 평생, 단한번도 누군가 죽는것을 목격해보지 않은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건에 대해 어른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실이라고'신뢰'한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런 신뢰가 가능할까?




해러웨이의 주장을 떠올릴때 이것은 사회가'폭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폭력을 금지하는 겉모습과 달리 '폭력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도축과정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한다면 각종 미디어에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식을 행복한 삶의 즐거움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도축과정을 직접적으로 모두 공개하진 않더라도 어느정도는 대중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거대한 집단적 기만행위에서 조금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실이 고통스럽더라도 대중은 그것을 알아야할 권리가 있다고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은 주장했다. 이 기만행위(도축을 '대리'시키고 공개하지 않는)에는 적극적 가담과 소극적 가담만이 있을 뿐이다. 누구도 이 기만과 거기에 따른 폭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철저하게 도축과정을 비공개로 한다고 해서 그것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거짓,기만,위선이 육식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에 대한 수용을 죄의식없이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를 속이도록 조장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완전범죄란 없다. 적어도 본인이 어떤 식으로든 범죄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개인에게 이렇게 내면화된 폭력은 여러 방식으로 발현될 것이다. 그 범위를 다양한 개성들만큼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다. 국가,종교,문화 공통적으로 크고 작게 벌어지는 각종 차별,괴롭힘,혐오,조롱등 불법과 또는 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범죄로 규정되지 못한 타인에 대한 멸시를 포함해야한다. 이런 끊임없는 폭력성의 바탕에는 개인의 특성을 넘어선 강력한 조건과 이유가 깔려있다. 


침묵 자체가 말로 표현되는 담화와 비슷하다.-뤼스 이리가레


모두가 하루 세끼 육식을 하지 않더라도 육식은 너무나 손쉬운 접근성을 지니고 있다. 육식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육식에 접근하기는 숨쉬는 것만큼이나 쉬울정도로 육식은 자본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해는 강력한 기만행위의 당위성 아래 동물에 대한 폭력과 함께 묵인된다. 이 무한반복이 영속되고 권력과 물질적 욕망이 이상적 가치로 유지되는 한 여성의 종속적 삶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비가시성, 각종 폭력과 혐오, 전쟁도 계속되지 않을까? 


엄청나게 많은 수를 죽이려고 살게 만드는 거죠. 끔찍한 조건에서 죽이기 위해 끔찍한 조건에서 살게 만드는 것은...이윤을 위해서죠. 자본주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ㅡP.285 '반려자들의 대화' 중 도나 해러웨이



인간은 어쩌면 폭력의 내면화를 매 끼니마다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 스스로를 위해,함께 살아가는 동물들과ㅡ종종 아닌것처럼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잊혀지지만 우리도 역시 동물이다.ㅡ 이 세계의 생명들을 위해 이 문제를 더이상 외면해선 안돼며 모두 재창조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기존에 반복한 '폭력의 내면화'의 강력한 힘을 상쇄시키려면 세밀하고 촘촘한 창조가 요구될 것이다. 폭력을 막는 것을 넘어 폭력이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 사실은 모순이 된다. - P33 육식의 성정치






함께 읽어볼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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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27 1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죽이지 않게 하는것이 아니라 죽여도 되게 하지 말라˝

저도 이 말이 무척 어렵더라고요. 제대로 잡히지 않는 말이었어요. 이걸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 도나 해러웨이를 계속 읽어보고 또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페이퍼 너무 좋네요, 미미님.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읽는 것이 바로 우리가 되는 것을 미미님의 페이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청아 2022-05-27 11:46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덕분에, 해러웨이와 이리가레 덕분에 자꾸
파고파고 생각해보게 되네요.
역시 계속 읽고 공부해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리가레의 <나,너,우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저번에 말씀하신대로 도나 해러웨이와 연결되어
두 학자에 대해 공부가 되고 있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2-05-27 11:51   좋아요 4 | URL
˝죽이지 않게 하는것이 아니라 죽여도 되게 하지 말라˝ 이게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잇는지 너무 궁금해지네요. 어쩐지 영어로 보면 더 즉각적으로 뜻이 닿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원서 검색해봐야 겠어요.

청아 2022-05-27 11:55   좋아요 3 | URL
이렇게 원서 찾는 다락방님 늘 너무 멋져요!! 저도 찾아볼께요👍👍

새파랑 2022-05-27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미미님의 대화는 천재간의 대화 같아요 ^^ 육식이 폭력의 내면화로 이어지는 논리에 공감이 갑니다. 잘못을 인식하고 하는것과 인식하지 못하고 하는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청아 2022-05-27 13:00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은 그렇다고 저도 생각하는데 저는 아직 배도 고프고 알아야할게
너무 많은걸요ㅋㅋ 폭력의 내면화로 각종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일‘이
되는 듯 해요. 새파랑님 처럼 다정하고 선한 분들은 타인에게 분출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환경적 요소와 결합해 폭력을 행사한다고요.
사람들이 어느정도 갖고 있는 공포와도 무관하지 않을거라고도 봐요.
누가 연구좀 해주면 좋겠어요^^* 감사해요 새파랑님~♡

건수하 2022-05-27 15: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기와 동물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세뇌인 것 같아요.
왜 먹방에서는 항상 고기를 먹을까?
<짐을 끄는 짐승들> 함께 읽는 분이 이 얘기를 하셨는데 그러고보니 미디어의 역할도 큰 것 같더라고요.
채식 먹방이라니, 저부터도 생각만 해도 어색하고 상상이 안되어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동물을 귀여운 존재로 생각하고 (동물의 의인화 문제도 <짐을 끄는~ >에 나오지요)
한 번 저 닭이 내가 먹는 그 닭? 하면서 거부하려고 하는 시기가 있어요.
저도 그걸 성장에는 단백질이 필요하고, 필요한 만큼 먹는 건 괜찮아- 이렇게 얘기하고 아이는 그 시기를 넘겼는데.
그 시기에 이미 세뇌가 이뤄졌고 저는 그걸 도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답니다..

식물성 단백질로도 충분하다는데,
좀 덜 큰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내 아이가 덜 성장하게 된다면 하는 두려움도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해서 더 씁쓸해요.

청아 2022-05-27 15:44   좋아요 4 | URL
그러네요!! 이렇게나 전 세계 공통적인 아이러니한 세뇌,반복이 또 있을까요?
육식은 먹방의 주요 메뉴이고 특히나 과식을 대단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그러면서도 여성 중심적 다이어트 시장!) 고기소비를 촉진시킨다는
느낌도 들어요. 동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선 다 친구들인데 먹으라고 하니
아이들은 혼란의 시기를 넘겨야 건강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고요.
수하님이나 누구 개인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전지구적 묵인된 약속이고
자본이 결합되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성장도 외모중심주의와 자본화된 의학의 결실일 수 있구요.
공부할것들이 많네요. 수하님 덕분에 <짐을 끄는 짐승들>읽게 되면서
연관된 책들에 계속 관심이 가요~♡ 우리가 함께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대하다보면 작은 불꽃이라도 피울 수 있게되겠죠?*^^*

레삭매냐 2022-05-27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왠지 정갈한 논문
삘의 리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보다 더 육식을 많이 하
게 되었고, 그 결과 필연적으
로 더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
고 있네요.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끊을
수도 없고 딜레마네요.

청아 2022-05-27 22:31   좋아요 3 | URL
논문삘이라니 제가
들어본 칭찬중 최고네요!
더구나 늘 맛깔나는
글을 올려주시는
레삭매냐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열심히 쓴 보람이
있습니다 헤헷🥲

저도 고기 안먹는 날을
늘리려고 신경쓰는데
불구하고 여러모로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레이스 2022-05-27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든 자본주의 그늘 아래!
환원되는 힘이 대단한 것 같아요.

청아 2022-05-27 22:37   좋아요 2 | URL
네 그레이스님! 자본주의가 환경과
생명의 존엄성마저 위협하는것 같아요.
어떤 문제든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니 말이죠.^^*

햇살과함께 2022-05-27 2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쑥쑥 성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페이퍼에요!! 멋지심~!!

청아 2022-05-28 08:17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햇살님~♡
쑥쑥 더 크고싶어요*^^*

singri 2022-05-28 0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아무생각없다가 한대 맞고 가네요.
너무 좋습니다. 미니님.

책들도 찜요.

청아 2022-05-28 08:26   좋아요 2 | URL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싱그리님 표현에 기분이
묘하네요^^*감사해요~♡

공쟝쟝 2022-05-28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조심스러운 지적을 해보고 싶은데요~....

고기를 안먹는 방향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매번 흘러가면서 자책하는 게 ㅜㅜ (물론 지구를 위해서는 고기를 안먹는 게 맞고, 저 역시 고기를 매우 좋아함에도 지구를 위해서 주1~2회 정도로만 먹으려고 제한하는 데요 ㅋㅋㅋ 지구 생각한 거는 코로나 때문이구 ㅋㅋㅋ 저를 생각하면 고기를 먹어야겠고...여성=고기 는 좀 현실 미디어에서 그렇게 재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라고 해버리는 거 너무 자존심 상하고... 안 그런 방향으로 분명히 가야할 것 같고... 하지만 탈코는 못하고.. ㅜㅜ)

제가 육식의 성정치를 읽으면서도 그렇고 요즘의 채식-비건논의-여성주의 논의가 갖는 친연성(?)도 있다는 건 알겠는 데.. 아...너무 착한 사람들만 계속 착해지는 게 계속 불편해지고 자신을 축소시키는 느낌(?)이 드는 것.. 게다가 일상에서 육식 안하려면 진짜 사는 거 조심하고 살아야하는 데 ㅜㅜ 그거 못하는 사람들은 불편해지니까 더 귀기울이기 싫긴 하거든요. 특히 시간이나 금전 여유없는 사람들.. 인생의 낙이 먹는 거 밖에 없는 사람들.... 한번 쯤 생각해봐주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이렇게 쓰니까 합리화네 ㅋㅋㅋㅋ)

전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강박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 황정은 한테 도덕주의 강박 심하다는 댓글 보고 진짜 너무 화났거든요.) 전 강박 아니고 윤리고 삶의 태도이고 실천하시는 분들 정말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저 같은 사람도 있거든요. (아..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동일시를 하는 지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정치적 설득(?)의 관건 일 것 같기도 하고,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래요.(아.. 이 말 하기 싫지만 저는 정말인지 신자유주의페미입니다...ㅋㅋㅋㅋ ) 좀 뜬금 없지만 박지현이 왜 정의당 냅두고 민주당으로 갔는가!!!!!!!!! (라는 결단과 비슷한 뭐 ... 아 제 말알죠? 제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죠? 미미님은 알거얔ㅋㅋㅋㅋ)와 같은..

위에 쓰신 총기난사범이나 성매수구매자들이나 입으로 똥싸는 정치선수 스피커들은 절대 반성안하고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데, 여자들만 계속 도덕 관념을 섬세하게 벼려서 전략(?)적으로 어디까지 갈수 있는지.. 혹은 어디까지 온 것인지... 뭐 그런 것..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더 알아갈 수 있게되겠죠? 너무 많은 것들을 단정짓지는 말고 계속해서 여러가지 렌즈를끼는 독서를 우리가 합니다. 우리들은 멋집니다. 알라딘내 여성주의자 독서가들 흥해라~ 그리고 거긔 최고 모범생 미미님 짱!!! 최고!!! 와락!!

청아 2022-05-28 10:34   좋아요 3 | URL
좋은 지적 해주셨어요 역시 쟝쟝님👍👍
확실히 채식이란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비용도 어떤 면에서(아직까지)더 들고
여건상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저도 생각해요.

다만(쟝쟝님도 댓글에 써주셨지만) 저와 같이 이런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파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현재 제가 읽는 주제들이고 관심갖는 분야이기도하고요.

말씀하신 부분을 저도 요즘 읽은 에세이에서 접했고 이해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 때문에 그런 내용들은 되도록 제외시켰어요.

제 글의 취지가 당장 모두가 육식을 끊어야한다는것도 물론 아니고(저도 채식주의자가 아님요)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우리가 뭘 먹는지, 그 영향은 좀더 분명히 알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읽은 책들을 통해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걸 글로 옮겼고 나누고 싶었던거예요. 이런 측면을 보면 좀 이상하지 않냐고요 사람들이 습관화된 육식에 각자 의문을 가져볼 수 있을것 같아서요. 코로나 탓인지 미디어에서 요리와 육식을 예능화 하는 모습은 갈수록 늘어가는 느낌이니까요.

단정짓기보단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자는 취지였는데 제 글의 어조가 강한 편이라 쟝쟝님처럼 느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꺼예요. 뒤에 말씀하신 부분들
제가 좀더 생각해볼께요.
종종 느끼는데 제 글을
객관적으로 읽을수가 없어서 중심추를 잡기가
어렵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해주시는거
너무 감사해요쟝쟝님~♡^^♡

공쟝쟝 2022-05-28 10:54   좋아요 3 | URL
단정컨대 미미님 글에는 단정짓는 어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미님 같으신 분들의 생각이 더 많이 말해지고 이야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요 아래에 있는 글도 읽었거든요. 미미님의 육식과 폭력에 대한 비판들이 쭉 전개되는 부분이 이해가 되고 설득이 되었고, 읽으면서 놀라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딱 한가지ㅋㅋㅋ 모두가 자기를 반성하고 좀 더 고치겠다고 댓글을 달면 ㅜㅜ 정말 우리끼리만 착해지고 ㅋㅋㅋ 우린 이렇게나 착해지는 데... 글 앞에 달아주신 ㅋㅋ 총기난사범을 비롯한 눈치 없는 꼰대들은 어떻게 패지? (언제나 패는 것에 관심이 있다...) ㅋㅋㅋㅋㅋ

내 맘 알죠? 내 맘 알꼬야 ㅋㅋ 미미님~

청아 2022-05-28 11:1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아 저 지금
다른것때문에 감동받아서
마침 눈물이 조금났는데
쟝쟝님 댓글을 보고ㅋㅋㅋ
ㅋㅋ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음.... 이런 세력을 키우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쟝쟝님 마음은 알죠~♡ 위 댓글에서도 알았어요. 근데 자꾸 읽고 싶은게 약자들의 글이라..참 어렵네요😅

공쟝쟝 2022-05-28 11:21   좋아요 3 | URL
은 내가 (급발진하면) 팰테니까 (사실 안패려고 참는 데 나도 모르게 패고 있음... 성질머리..) 미미님은 읽어요!!! 그게 진짜 강한거예요. 약한거 아님!! 약자들 소중해!! 어려운 거 읽는 거 그게 강한겁니다!! 약자들의 소중한 목소리에 연대합니다!!!

2022-05-2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8 1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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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8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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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8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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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8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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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8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읽었던 이리가레의 주장(아래)과 오늘 ㄷㄹㅂ님의 글https://blog.aladin.co.kr/fallen77/13626156 ,읽고 있는 '짐을 끄는 짐승들'의 일부 내용들을 떠올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행동양식에 종속되어 있는 듯하다. 다윈식의 모델과 파블로프식의 모델.


1.생명과 관계되는 한 우리는 한편으로는 외부 환경과,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생물체들과 항상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적보다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2.문화의 차원에서 우리는 반복학습으로 훈련받고, 사회 체제에 적응하도록 우리 자신의 결정적인 혁신이나 발견 없이 '이와 같이'되도록 (의식적이든 아니든) 길러진다.


과연 우리는 이 두 거대한 구조와 변수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 존재의 차원에서 볼 때 경쟁적인 이 투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화적 차원에서는 거의 치명적인 반복으로부터? p.39


육식은 위에 나온 두 행동양식을 모두 따르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육식을 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 두 양식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적으로 육식을 이어간다. 외부 환경과 싸워야 한다는 관념, 짐승들을 대량으로 도축하고 무수히 소비하면서 도축 과정으로부터 일반 대중을 멀리 떨어뜨려 도덕적 책임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이런 집단적 기만의 반복은 과연 어떤 결과를 우리에게 주었고 계속해서 주고 있을까? 폭력은 행하는 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는 폭력의 겉모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피해자의 피해를 위주로 다룬다. 하지만 사실상 가해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으며 변화된다. 육식이라고 부르는, 동물에 대한 죄의식없는 착취를 우리는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까? 이 기만의 파장은 연구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다양한 폭력과 공격적 성향의 원인이 여기서 기인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물론 모든 폭력의 원인을 육식의 탓으로 돌릴 수 없겠지만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집단적 기만행위가 상징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윤리 없이 정신적이고 천상적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p.27



동물에 대한 착취를 배제하고 윤리와 정의를 논한다는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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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26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짐승에게 인간이 살기 위한 노동을 대신 시키는 것과 육식은 좀 다른 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정확히 언어화할 순 없는데, 그 언어를 찾는 일은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미미님은 벌써 읽기 시작하셨군요. 저는 구매했으니 이번주 내로 받게될 겁니다. 이건 읽으면서 저도 차차 생각을 더 해볼게요.

청아 2022-05-26 12:20   좋아요 3 | URL
네! 생각의 결이 다른것도 전 참 좋더라구요. 서로 그런 부분 이야기나누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고요. 다락방님의 글은 그런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포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같고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강점을 동시에 가진것 같아요.*^^*

새파랑 2022-05-26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물에 대한 착취를 배제하고 윤리와 정의를 논한다는건 너무 인간중심이란 생각이 드네요 ㅜㅜ 그런데 전 왜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

청아 2022-05-26 12:25   좋아요 3 | URL
앗! 저도 그저 줄이려고 신경쓰고있는 수준이예요. 육식을 당장 다같이 끊어야된다는 주장도 아니고 그럴수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우선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독서괭 2022-05-26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단적 기만의 방법이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저도 육식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ㅠㅠ 항상 도축문제는 마음의 불편한 짐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는 거라고는 동물복지 달걀을 사고 개식용은 안 하는 정도밖에.. <고기로 태어나서>도 좋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읽기 힘들 것 같아요. 미미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청아 2022-05-26 14:44   좋아요 4 | URL
얼마전에 코로나 이전 즐겨가던 소바집에 오랜만에 갔는데요. 요즘 고기안먹는 날을 늘리던차에 간건데 주문한 음식을 받고서야 양념소스에 갈아넣은 고기가 있다는걸 인지했어요ㅠㅠ 제가 이런수준이라 채식하자고 주변에 잘 권하지를 못해요. 책읽고 글읽다가 스스로 질문을 던질수 있었고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여기 나누고 싶었어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괭님^^*

단발머리 2022-05-26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환경 오염을 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빠른 방법이 육식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축산업이 얼마나 큰 산업인지 우리가 짐작하기는 쉽지 않겠죠. 저희집은 소고기, 돼지고기는 거의 안 먹는다 싶을 정도인데(육식인 1인), 저도 아직 치킨과 순대와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육식 문제는 항상 미뤄놓은 숙제같아요. 육식이 아니라 동물 살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떠오르구요.
육식의 문제와 이리가레의 지적이 닿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미미님 글에서 또 한 가지 배워갑니다. 감사해요, 미미님!

청아 2022-05-26 14:49   좋아요 3 | URL
저도 그런 글을 이곳저곳에서 읽었어요. 식량문제와도 얽혀있다고도 하고요. 축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가 상대적으로 너무 크구나 또 그걸 일반인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도 순대 넘 좋아하고 즐겨먹진 않지만 돼지껍데기도 좋아해요ㅠㅠ 육식이 대세인 상황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는걸 자주 느낍니다. 단발머리님 그런 면에서 그런 노력들 대단하신거예요. 제가 더 감사드려요!^^*

페넬로페 2022-05-27 0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윈식의 모델과 파블로프식의 모델에 저 자신마저도 완전히 점령당한 듯 한데요.
머리로는 아니라고 자꾸 부인하고 싶은데 이미 몸으로는, 또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상태거든요.
미미님께서 써주시는 글로 항상 각성합니다. 감사해요.
저도 웬만큼은 주기적으로 육식을 먹는데 조금씩은 줄여봐야겠어요^^

청아 2022-05-27 08:51   좋아요 2 | URL
네 페넬로페님~♡ 저도 오래된 습관이라 완전한 채식은 참 어렵겠구나 느껴요^^;;
그래도 도축에 관한 내막을 찾아 조금씩 정보를 쌓다보니 예전보다 덜찾게되더라구요.
이리가레의 두 모델이론 참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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