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비용> 얇아서 2 주면 읽을 줄 알았는데 6장, 7장이 지루했다. 조금씩 읽어서인가? 원서랑 읽으려니 그런 건가? 필사까지 욕심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원서 읽기도 번역서 읽기도 자꾸만 미루고 미뤘다. 책이 두껍지 않으니 언제라도 몰아서 2월 내엔 클리어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도 이제 며칠 안 남았네. 요 며칠 공기질도 머리가 띵할 만큼 나쁜 데다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거 검색 하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책 사는 거 빼곤 뭐든 이렇게 잘도 미룬다. 그래도 미루는 게 너무 많아지면 곤란한데...때문에 요즘 집에서도 나쁜 공기와 씨름 중이다.
거기다 사랑이(츄츄 본명)가 어제오늘 아파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선생님은 또 이번이 고비라고. 그래서 새벽에 그렇게 끙끙대고 뒤척였던 거였어. 위액으로 짐작되는 점액이 응아랑 같이 나왔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것저것 검사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여기 선생님은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보호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 번씩 대기가 길어져도 뭐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테니까. 사랑이가 아프니 기분이 꿀꿀해서 서브웨이에 다녀왔다. 에그마요로 한 끼를 해결하려고. 이제는 제법 여러번 사먹어서 주문에 익숙해졌는데도 '소스를 어떻게 하실꺼냐?'는 질문을 들으면 매번 '추천'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그냥 "골라주세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럼 저쪽에선 마치 내 잘못을 꼬집어 주듯 "네~ 추천 소스로 해 달란 말씀이시죠?"라고 재확인한다. 그냥 확인하는 거겠지만 그럴 땐 조금 부끄럽고 아마추어가 된 기분이다. 프로페셔널하게 살고 싶은데 내 인생은 늘 아마추어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부는 걸 보니 공기가 좀 나아질 것 같다. 바람의 마법인지 에그마요의 힘인지 <살림비용>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사랑 없이 사는 건 시간낭비다. 나는 글쓰기 공화국이자 어린이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시몬드 보부아르가 아니니까. 그래, 난 그와는 다른 정거장(결혼)에서 하차해 역시나 다른 승강장(자녀)으로 이동했다고 봐야했다. 그는 내 뮤지였지만 나는 명백히 그의 뮤즈가 아니었다. -84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올그런이 사정했을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순 없어." -87
남들 한창 결혼할 때 이런 확신을 가졌던 보부아르. 사랑, 안정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확고했다. 또 다른 남자 올그런이 저렇게 사정했는데도 보부아르는 알았다. 자신이 잃을게 더 많다는 사실을. 한 친구는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반해 꽃다발을 안겨주던 남자와 덜컥 결혼했다. 그 애는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반한 누군가를 선택한 거였다. 뒤늦게 그 차이를 알았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이해했다. 어떤 선택들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 개인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삶도 있다.
김옥빈과 유태오란 배우가 티키타카 로맨스를 선보이는 <연애대전>이란 드라마를 봤다. 다락방님이 페미니즘 한 스푼이라고 하셔서 골랐는데 내가 보기엔 한 국자 이상 들어가 있다. 클리셰를 깨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비혼 주의자인 변호사 김옥빈은 태권도에 합기도 쿵푸등이 조금씩 다 가능한 싸움의 고수인데다 원나잇도 하는 등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 면허는 1종이고 주차된 차량으로 더 좁아진 골목길도 잘만 통과한다. 인기 있는 배우로 등장한 유태오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 탓인지 어딘지 발연기 같아서 처음에는 살짝 거슬렸는데 볼수록 개성있고 매력있는 타입이다. 실제로 서울대 중퇴인가? 독일어도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배우들 극혐하는 캐릭터다. 무명시절 같은 업계 종사하는 첫사랑에게 매몰차게 차인 후유증 비슷한 이유였다. 그는 스캔들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 여배우와 불화 스캔들이 늘 골칫거리일 정도다. 이런 두 사람이 싸우다가 정이 든다. 이건 로코의 뻔한 지점이지만 전체 분량 중에서 절반이상이 갈등이라 좋았다. 물론 여성의 자유가 남성과 똑같아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남성적인게 유일한 '다른 여성'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클리셰를 깨려고 애썼지만 이 드라마는 1차원적이다. 기본적인 인식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다른 가능성을 향한 도약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고 봤다. 여배우에 심쿵 한 적 별로 없는데 김옥빈에게 흔들렸다. 이런 드라마가 많이 나오길 그래야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테니!!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집안의 천사 역할을 전면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와 경제적 자립을 요구한 신여성. 그러나 신여성은 가정을 벗어나자마자 대중매체의 자극적인 이미지화를 거치면서 재빨리 버릇없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며, 그러면서도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플래퍼가 되고 만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영화 '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