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야기는 투명하고 그녀의 글은 때때로 핏빛이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P.31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들은 무엇인가. 채운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손에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흘러내리는 건 아닐까. 어떤 때에는 이런 형태로 균형을 이루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그저 일렁이는 바람 한 점 처럼 흩어져버려서 뭐라고 규정짓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모든 순간은 조각조각 나서 연금술사를 기다리듯 멍하니 늘어지지만 또다시 조화를 거부하고 미끄러져 의미를 잃어간다. 그렇게 여러 형태의 반복이다. 사방에서 의미들이 요동친다. 주아나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균열을 낸다. 초연하게. 그런 그녀의 파열음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불면증과 난독증 비슷한 상태를 겪고 있다. 비웃을지도 모르지만...한 달에 15권도 읽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 나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다독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도 안다. 그런데 읽는 재미를 늦게 알면 ㅡ늦다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ㅡ 그걸 모르고 보낸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되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더하기 더하기가 되면서 조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일단 많이 읽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는 거. 독서는 어쩜 사람을 만나는 것과도 비슷해서 진득하니 한 사람씩 만나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텐데 영 한 곳에 마음이 집중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해결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방치해둔 골칫거리들 때문인가. 정리되지 않은 책상, 정리되지 않은 노트, 정리되지 않은 관계, 정리되지 않은 생활 방식, 정리되지 않은 계획들 거기에 또 더하기 곱하기가 되어 잡념을 낳는다.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잡생각들. 많은 친구들, 많은 음식들로 공허를 채우는 엄마는 음식을 먹어 치워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나는 나대로 치워야 할 것을 채워 놓는거겠지. 벌써 지난달에 읽어치운 리스펙토르를 다시 집었다. 줄거리로 가두 듯 설명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 어지러운 책도 잡념의 결과인가. 어쩌면.
칼날은 그 선면한 생각을 타고 그녀의 웃고 있는 허파 속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파고들었다. 왜 이미 일어난 일을 거부해야 할까? 동시에 많은 것을 소유하고, 여러 방식으로 느끼고, 다양한 근원들을 통해 삶을 인식하고....그렇게 충만한 삶을 살려는 사람을 누가 막아설 수 있겠어? P.219
주아나 혹은 리스펙토르의 삶의 조각들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다. 치워질 수도 있었다. 잊힌 기억으로 낡고 색이 바래 구석에 처박힌 필름처럼. 움직임을 잊은 서랍 속 시계처럼. 작가는 구겨진 종이를 펴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매듭을 짓는다. 인연이 얽힌 사람과 그녀를 다녀간 사랑과 그 사랑의 사랑까지 한자리에 모이도록. 그렇게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이야기는 심장을 타고 흐르고 고통의 기억들은 운율을 이뤄 마침표에 가닿는다.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 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 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 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 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ㅡ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