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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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작가라는 위치는 각별한 느낌을 주는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좋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읽는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며 세월을 보내다 보면 쓰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면서 자꾸 미련이 남고 심지어는 괴로운 마음까지 느껴 보지 않았는지. 그렇게 누가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쓰는 일에 목말라 하고 이런저런 글쓰기 책을 기웃거리며 특별한 비법이 있나 궁금해 한다. 그런 비법이 있을 리 없다. 일단 쓰는 것 말고는. 불후의 명작을 쓴 대문호도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글을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다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되어 웅크리고 있던 열정을 일으켜 세우고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을 생각해 볼 때 쓰기의 감각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전에 읽었던 책이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이나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작가로 서의 삶과 글쓰기 노하우, 나아가 인생 이야기까지 들어있다. 출간한지 25년이나 되었음에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랑받는 글쓰기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시나 글쓰기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처럼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웃기고 짠하면서 괴팍한 듯 유쾌한 저자의 솔직한 성품도 느껴져,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글쓰기 수업의 내용은 1.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는 방법 2.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3. 계속 써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 4.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5. 마지막 수업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진행된다.


 글을 잘 쓰려면 매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처음에는 잘 쓰다가 나중에는 쓸 게 없는 것 같고 이런저런 핑계로 오래가지 못한다. 앤 라모트의 작가 아버지는 그에 대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해라. 너 스스로 사전 조율을 하고 나서 말이다. 글쓰기를 체면상 갚아야 할 빚(노름빚)처럼 다루어라. 그리고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해라.”(P25)

 

 과연, 현명한 조언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의무감을 부여하여 글쓰기를 습관화시킨 부모의 열정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사명감을 심어준 것이 작가로서의 삶을 선물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 작가를 지향한 저자의 노력과 열정도 물론이고.


 쓰고는 싶은데 도대체 무엇을 쓴 단 말인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질문이기도 하단다. 이에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늦게 되어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되살려 살아온 과정을 차근차근 작품으로 형상화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유년 시절을 견뎌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글감을 풍부히 지니고 있다(P42)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덧붙이면서, 고통의 기억이라도 잘 표현하기만 한다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을 설파한다.


 그 중 짧은 글 한 편쓰는 법을 알려준다. 거창한 것 보다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2.5cm의 사진틀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글로 옮기는 것, 내가 성장한 마을에서 우리가 처음 마주쳤던 순간 그 여자의 모습을 묘사할 수 있는 단 한편의 짧은 글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일단 쓰기의 실행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베스트셀러 작가 몇 명과 알고 지내는데, 그중에 글쓰기가 수월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계가 작동하듯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발동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우아한 초고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다. 솔직히 말해 그들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말하긴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풍부한 내적 경험이 있다거나 하느님이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를 견뎌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P66)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명한 작가들은 작품을 쉽게 쓰리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은근히 희망이 생기지 않은가.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산고(産苦)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일 게다. 또한 글쓰기에 있어 완벽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실수와 시행착오를 무릅쓰더라도 계속 써야함을 조언한다. 오히려 뒤죽박죽 무질서 속에서도 연습, 오직 연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종이를 써버리라고 하며, 더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는 필수라는 것을.


 열심히 캐릭터들과 호흡하며 시간을 보내고 작품으로 출간하기로 정해졌을 때 기분은 어떨까. 얼마나 기대에 차 있을까.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눈부신 환상이 아니라 커다란 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토로한다. 바로 세간의 악평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다음 작품을 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일단 출판을 했다는 자체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사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이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희귀한 신분에 소속되는, 잔잔한 기쁨(P322)에 대해서도 얘기해 준다.


 그러나 결국 여타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책상 앞에 앉아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바로 예술가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주고, 주어도 또 주어야 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글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도 꺼내 주어야 하고, 그렇게 주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며, 주는 행위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P306)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하며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말하면서도 주고 주어야 한다는 말이 의외이지 싶은데 깊은 공감에 이른다. 내면에 들끓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독자는 공감과 감화를, 글쓴이 자신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반복하는, 주고 또 주는 글쓰기의 행위를 사랑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니 작가의 통찰력이 참으로 놀랍다.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되풀이하고 견뎌내는 작가들이란 경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원제는 버드 바이 버드(Bird by bird)’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라고 한다. 앤 라모트의 오빠가 새에 대한 리포트를 마감이 다 되도록 쓰지 못해 끙끙 앓고 있을 때 아버지의 조언.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P63)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엄청나게 큰일을 마주했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지 않을까. 막연한 글쓰기에 관해 이 말만큼 용기를 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짧은 글 한 편, 조잡한 초고라도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써 나가다보면 누구라도 글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글쓰기와 더불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까지 배울 수 있는 쓰기의 감각은 이제부터 든든한 글쓰기 친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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