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말 -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목수정 지음 / 책밥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의 밥상은 유혹하길 거부하는 밥상이었다. 넘치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며, 흔들림 없이 단정한, 통깨를 뿌리거나 실고추를 얹는 것 같은 사소한 장식도 엄마는 질색하셨다. 그것은 장식도 속임수도 타협도 없이 언제나 본질로만 존재하고자 하셨던 엄마가 지은 세상이었다.

…… 엄마는 실험실의 과학자 같은 진지함으로 요리를 하셨다. …… 엄마는 그 고집스런 정직함을 차곡차곡 음식에 담아 3남매를 키우셨다. 그 어떤 타박도, 별스런 칭찬도 안하시고, 하셔야 할 모든 말씀을 음식에 새겨 우리에게 건네셨다. 그 신념과 정성으로 빚어진 음식들로 나는 자랐다.


외할머니의 밥상은 풍요의 식탁이었다. 단칸방에 사셨던 할머니의 부엌에선 언제나 들판에서 온 상냥한 풍요가 상을 채웠다. 들에서 캐 와 말린 나물들 4~5가지가 들기름 향을 풍기며 옹기종기 놓였고, 도토리를 따서 집에서 쑨 묵, 소쿠리 하나 가득 만들어서 손으로 집어먹던 쑥버무리, 깨강정, 식혜……. 할머니는 음식으로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연이 주는 것들로 손끝에서 풍요를 지으며 살아가는 할머니는 삶의 기쁨을 만들어주는 선물 같은 존재였고, 할머니를 통해 매일 선물 받는 복된 시간을 누렸다.’(서문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인권, 올바른 정치, 교육 등에 관한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워낙 유명한 저자임에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만큼 냉철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그녀가 밥상 이야기를 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파리지앵으로서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와인이라든가 서양요리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여서 금세 따뜻하게 젖어들었다. 음식으로 축제를 만들었다는 외할머니의 전설 같은 과거사는 안타깝고 잠시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토록 굴곡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홀로 6남매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을까. 자식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안달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포기했던 것일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씩씩하고 유쾌하게, 자식들을 걷어 먹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할머니를 추억하는 부분은 짠한 감동이었다. 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의 친구 분이 끓여 온 육개장을 처음 먹었던 기억은 훗날 인생의 중요한 아이템이 되는 이야기 등... 먹는 행위란 함께 했던 이들의 사랑을 온 몸과 마음에 아로새기는 일이구나 싶었다.

 

  밥 짓는 냄새가 제일 좋을 때는 몹시 배고플 때 일 것이다. 그때만큼 환상적인 냄새도 없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배고플 때 먹는 밥이고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때가 아닐까. 한 끼 한 끼의 밥이 생명을 지키는 원천임에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밥을 짓고, 식탁보를 깔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가끔 바느질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고, 김치를 담그는 그 모든 반복적 일들을 일컬어 우린 살림이라고 부른다. 그 살림과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도약하기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하다. 세상 대부분의 거부도 그들이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도 그들인 이유다.‘(P86)


‘1차적인 인간의 노동 없이 세상은 결코 형성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1차 노동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질 때 우린 괴물이 되어갈 거란 걸 직감한다.’(P87)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지 하다가도 너저분한 것이 눈에 보이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달려들다 보면 끝이 없는 게 집안일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 말끔하게 유지되고 평온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림이라는 행위로 반복되는 노동이 우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노동은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그래서 여성은 그것과 멀어진 남성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살림에서 멀어진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쉬워서 도약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한, 거부(巨富)도 노숙자도 남자가 많은 이유라고 했다. 이런 거라면 앞으로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살림을 할 것이며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 참여하게 하는 현명한 살림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유쾌한 모색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밥을 먹고 사는 남녀노소라면 모두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65일 집에서 먹는 레알’ ‘삼식이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화롭게 분담을 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누리는 분위기가 참 멋져보였다. ‘삼식이라는 이 단어가 나온 배경도 알고 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희생이 담긴 말이라는 것이다. 365일을 삼식이와 산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고. 요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주말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먹고 치우고 나면 또 끼니가 돌아온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가족은 병들고 말 것이며, 가사노동이야말로 인류가 가장 치열하게 싸워왔던 계급투쟁이라고 했다. ‘서로를 베지 않게 두텁고도 보드라운 헝겊으로 둘둘 만 협박의 언어와 함께 적절한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 걸 조율하는 것이 왠지 유치한 것 같아서 내가 하고 말지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경단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는 이 단어가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서 계속 사용되는 있는 저의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들을 차별하는 이 단어야말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말이라고. 이 경우도 출산과 육아를 위해 홀로 독박을 쓰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경단녀는 있는데 왜 경단남은 없는 것인지, 부모가 평등하게 육아의 의무를 나눠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100조나 퍼부었다는 저출산 대책이 육아를 어떻게 도왔는지 물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밥상 이야기는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밥상 이야기를 넘어 지인들과 함께 토론했던 밥상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식 레시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시절 대표적인 채식주의자였으며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던 그를 총애하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가 만들어 대접하던 스파게티를 즐겨했다고 한다. 미지의 대상을 향한 호기심이 대상을 세심하게 살피게 되고, 이해하기 위해 그림으로 옮기고 건강한 식단을 위한 레시피로 발전하고 그것은 걸작<최후의 만찬>에도 리얼하게 묘사되었단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역시 다재다능한 천재 예술가는 그냥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호기심은 주변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파리를 넘나들며 과거의 밥상 이야기, 현재 우리 식탁은 안전한지 미래의 밥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 따뜻한 시선을 담아 풀어나간다. 간편식의 으뜸인 시리얼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위험성을 경고하는 부분은 놀라웠다. 시리얼에 들어있는 곡물들이 글리포세이트라는 제초제에 적셔져 키워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2016년 마리-모니크 로뱅이 자폐 진단을 받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원인을 추적하다가 알아냈다고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이 를 이룬다는 말이다. 먹거리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인간은 온갖 병으로 죽어가는 세상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갔는지 역사 속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글로벌 세상은 초유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로지 고속 성장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P246. 조르주 페렉(프랑스 작가, 1936~1982)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 이라는 말에 왠지 아슬아슬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따금 밥 짓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는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일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노동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밥을 짓는 일은 끝이 없다고.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거라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웃음으로 공감했다.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이 있는 거라고 하듯이 밥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세상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따뜻한 밥상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제는 하나뿐인 지구에 남긴 멍들을 보듬을 때라는 묵직한 과제를 제시하며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