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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평점 :
‘…… 제가 소세키에 대해 뭔가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식은땀이 날 일입니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한 제 각별한 마음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며 저는 그것을 인생의 큰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멋대로 소세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P8)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작가이기 때문에 소세키(漱石) 연구자들이 무척 많으며 작품을 다룬 책과 논문이 수없이 많은데 강상중 저자는 자신이 소세키(漱石)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식은땀이 날 일이라며 겸손해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주요 작품에 대한 매력을 알려주는 책이다.
강상중 저자가 소세키(漱石)에 깊이 빠져든 계기는 중학교 시절 친구 두 명과 가출하여 도쿄를 돌아보고 돌아온 후 『산시로』를 읽고 깜짝 놀라는데서 시작된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떠나 산시로가 느낀 경험을 중학생 강상중이 느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것이다. 원래 그 작가가 좋아지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이 느낀 감정이나 경험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저자는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는데 소세키(漱石)도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에 강사의 삶을 살며 4년 3개월 동안이나 체재했다고 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 『풀베개』, 『이백십일』이다. 그럼에도 10년 후, 1년 정도 머물었던 마쓰야마를 배경으로 쓴 『도련님』이 유명한 작품이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더 오래 머물었던 구마모토는 많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어쨌든 대문호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한 동안 살았다는 흔적만으로도 가슴 설렐 일이 아닐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기 3부작인 『산시로』, 『문』, 『그 후』와 『마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품읽기가 시작된다. 내가 맨 처음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이 작품으로 박람강기(博覽强記)한 모습 즉, 번뜩이는 재담이나 독자적인 조어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패러디, 해학, 소탈함 등 뭐든지 감당할 수 있는 작가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갱부』에서도 그런 유머가 느껴졌었다. 반면, 어둡고 날카로운 일면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유머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뱉어낼 줄 아는 다면성이 있다고 했다.
영국 유학시절을 경험으로 쓴 단편도 몇 가지가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다. 소세키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보낸 사진도 소개되고 있다. 나체화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영국 유학시절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자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고 한다. 칼라일의 서적도 가까이 했고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칼라일 박물관』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칼라일의 『의상철학』을 훌륭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았다. 조금 어려운 책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3부작에 나오는 주인공 산시로, 다이스케, 소스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실존적 불안, 문명비판과 시사문제, 메이지의 부패를 다루고 있다. 특히 소세키의 작품에서는 연애가 간통이라는 테마로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남녀의 에로틱한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별로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강상중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여기에는 매우 계산된 에로스의 장치가 삽입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산시로』,『그 후』,『문』으로 이어지면서 주인공들의 사랑도 점차 깊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이 순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강상중 저자는 『마음』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 그때는 작품 속의 ‘선생님의 유서’에 토로한 외로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학년 때 다시 읽었을 때는 무척 마음이 흔들렸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두 번 읽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작품 해석은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선생님의 친구 K가 죽은 것은 실연의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K와 선생님 사이에 하숙집 딸이었던 선생님의 아내가 둘 사이에 들어와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깨져버렸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K가 자살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에는 도플갱어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는데, 도플갱어란 한쪽 편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한쪽이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라고 한다. K가 죽자 선생님도 그 뒤를 따른 것을 보면 섬뜩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했다는 소세키(漱石)의 생각을 이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과거의 하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제 생명이 진정한 것이라면 제가 드리는 말씀도 진심입니다.”(P113)『마음』中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피붙이가 아닌 남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제자 같은 ‘나’와 교류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정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을 언급하며 부모와 조상에 한정시키지 않고 ‘인간’이라는 ‘유(類)’로서 계속 이어져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할까.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마음이 ‘나’ 안에서 계속 살아가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남겼다고 본다. 결국,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소세키가 말하는 ‘영혼의 상속’에 대한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른다. ‘영혼의 상속’이란 말에 왠지 따뜻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번 읽은 『마음』이지만, 이전과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읽고 또 읽어야 하리라.
마사오카 시키가 소세키(漱石)에게 보냈다는 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