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햇살이 쏟아지는 10월 오후, 어젯밤에 늦게까지일을 해, 오후 1시가 지나도록 잠자던 나는 초인종 소리에확인도 하지 않고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신문 구독권유나 택배. 요 몇 해 동안 찾아오는 사람은 그런 이들뿐이라 청년 아니, 아들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 뭐냐."
"그 뭐냐?"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바람에 무심코 시선을 피하자 ‘아니, 이런 아들이 찾아왔는데 왜 그렇게 허둥대?‘ 하며 청년이 웃었다. - P8

"프리터라고도 하지. 8월부터 이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얼마 뒤면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새 점포가 생길 텐데 그렇게 되면 그리 옮길 거야.
그때까지만 여기서 다니겠다는 거지."
청년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이후쿠 마르기 전에 어서 드셔‘라며 웃었다.
양쪽 입가가 살짝 올라갔고 눈에서도 웃음이 넘쳤다. 아무런 꿍꿍이도 없는 듯한 맑은 웃음. 그 여자와 똑 닮았다. - P14

"아저씨, 아니야. 난 원래 붙임성 좋고 요령 있게 태어난성격이야 엄마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고 아저씨가 보내준 양육비도 있어서 꽤 넉넉하게 지냈어."
너무 정확한 표현이라 내 마음의 목소리라고 착각할 뻔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 알았어. 그렇지만 네 멋대로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말하지 말아줘."
- P23

"그래, 역시 이상하겠지. 남자가 쉰 살이나 나이를 먹고도 혼자 살고 평일 대낮에도 집에 있으니. 무얼 하는 사람인지 수상하게 여길게 틀림없어. 남들 시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나다. 생각은 이렇게 해. 그렇지만 이웃의호기심 어린 시선을 생각하면 숨죽이고 사는 편이………."
"아니, 너. 마치 내가 하는 이야기처럼 멋대로 혼잣말하지마."
- P37

어쨌든 나는 25년이나 아버지였다. 내가 참 무심하다는생각이 들어 놀랍기는 하지만, 아무리 같은 핏줄이어도 만나지 않고 살면 자기가 부모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지난주 수요일에 처음 실제로 아들을 만났다. 그렇지만 모르는 고양이가 집을 잘못 찾아 들어온 느낌이라 아들에 대한정 같은 게 솟아나지는 않았다. - P41

"그럼. 아저씨, 방에만 틀어박혀 길거리를 헤매는 젊은이 이야기만 쓰는 사이에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게 되었구나 큰일이네."
청년은 키득키득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의 말처럼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 청년의 저런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고생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걸까?
이 청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비로소 아들에게 조금 흥미가 생겼다. - P57

66
"그런가………? 그런데 너 생각보다 내 소설 많이 읽었구나."
"그야 당연하지. 난 매달 사진을 보냈는데 아저씨는 돈만 보냈잖아? 그러니 책을 읽는 수밖에 없지."
- P88

도모는 계속해서 단호하게 어린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 녀석일 처리를 잘하는구나. 정말 나하고는 정반대다. 유전자만으로는 공통점이 이어지지 않는 걸까? - P105

"아, 그래. 그렇겠구나………. 어라? 그런데 넌 어떻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한 듯한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도모는 키득키득 웃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정도는 대부분 알아차려."
"그래?" - P130

사람을 대하는 내 안테나가 둔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둔감한 내가 소설을 쓴다니, 우습다. 잘난 척하며 인생이 어떻다느니 하는 소리를 잘도 썼다. 나는・・・・・・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 도모가 아프다.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빠질 만큼 아프다니 상태가 꽤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 P151

나는 어쩜 이리 한심할까. 눈앞에 나타난 도모는, 나를한 번도 본 적 없이 자란 도모는 엄청나게 건강하다. 그게답이다.
기가 센 미쓰키의 딱 부러지는 성격은 도모를, 그리고틀림없이 나까지도 지켜 주었으리라.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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