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오래전에 한 번 갔던 유럽여행이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강원도이건 강진이건 벚꽃이건 단풍이건 굳이 찾아다니고 싶지 않은 걸 보면 여행이나 구경이 전부 다 시들해 버렸다.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은 있다. 이스탄불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거기에 놓여 있다는 다리를 화면에서 본 순간부터 이스탄불이 머리에 새겨졌다. 다리를 건너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신비함은, 물론 관념이다. 육지와 육지를 잇는 바다 위의 다리는 많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바다 위를 달릴 수 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라는 구분은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이스탄불의 다리 위에 선다 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다리를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다리 위를 달려보고 싶다. 관념은 인간만의 욕망을 부르니까.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술탄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그림을 그리던 화원들 중 한 명이 살해된다. 오스만제국이라니, 너무 낯설지만, 몇 년 전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외국인이 본다고 생각하면 대충 감이 잡힐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은 생소해도 1952년생 오르한 파묵이 쓴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인문주의가 가져온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욕망이다.

 

원근법을 개발한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은 세계를 인간의 눈이 보는 대로 그린다. 게다가 초상화는 개별적 인간, 인간 주체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오스만제국은 전통에 따라 신의 말씀에 따라, 세계를 신이 보는 대로 그려야 한다. 초상화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의 율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악한 그림이다. 그러나 술탄도 신을 두려워하는 화원도 자신의 초상화를 열렬히 욕망한다. 주체는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 (․․․․) 마치 인간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우월한 피조물이라도 되는 듯, 인간을 그림의 정중앙에 그려 넣고 그것을 우상처럼 벽에 걸어 놓습니다. 인간이 그 그림자까지 낱낱이 그려져야 할 정도로 중요한 피조물입니까? 어느 골목길에 있는 집들이 인간의 눈이 가진 미천한 지각 능력 탓에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세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 아닙니까? p2권 155”

 

“ (․․․․) 죽은 엘레강스가 입힌 금박과 테두리는 우리가 책의 한 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창문을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세상의 중심에, 술탄의 초상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그 순간 자랑스럽게 보았던 나의 초상화가 있었다. 며칠 동안 다시 수정하고, 거울을 보고 또 보고, 속수무책으로 안간힘을 썼지만 아주 조금만 나 자신과 닮게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림은 모든 세상의 중심에 나를 그려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사악한 이유, 즉 나 자신을 실제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하고, 신비롭게 나타냈기 때문에 나에게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흥분을 느끼게 했다. 나의 세밀화가 형제들이 나의 이 흥분을 보고, 이해하고 나와 공유해 주길 원했다. 나는 술탄이나 왕처럼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내게 자랑스러움과 수치심을 동시에 주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나를 편하게 했다. 나는 이 그림에 있는 나의 새로운 위치로 인해 현기증 나는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쾌감이 완벽하게 되기 위해서는 유럽 화가들의 기예로 나의 얼굴, 옷의 주름들, 그림자, 뾰루지, 그리고 반점, 턱수염에서 옷감의의 짜임새까지 모든 부분, 모든 색들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림을 보는 옛 친구들의 얼굴에서 일종의 두려움과 경이, 그리고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그 어찌할 수 없는 질투를 보았다. 그들은 머리끝까지 죄를 뒤집어 쓴 사람에게 느끼는 분노에 가득 찬 역겨움과 함께,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p2권 328~9“

 

원근법에 대해 화원들은 이런 논쟁을 벌인다. (2권 p284)

 

“세밀화가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신이 본 것을 그리네.”

“그렇지. 하지만 숭고한 신께서도 우리가 보는 것을 보네.”

“신은 물론 우리가 보는 것을 보지. 하지만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지각하지 않는다네.”

 

그런데 신이 본 세계를, 신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세계는 신에게 어떻게 표상할까?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내린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만든 세계, 물자체를 결코 알 수 없다. 그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독단에 빠진다. 종교가 독단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신을 보았다고 하는 자들도, 신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 자들도 인간이다. 인간의 지각에 경험된 신은 인간의 방식으로 지각한 신이다. 우리는 인간이 지각한 신이 신 자체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서구 근대의 시작은 신에 대한 믿음에서 신에 대한 앎으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바라보는 것, 신을 요청하는 것, 혹은 신에게 이르는 것, 그 가능성과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근대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존재해도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차지한다. 르네상스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로 불리는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에 원근법과 초상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근대 문명과 충돌하는 것은 세계를 다시 신의 눈으로, 아니 신의 눈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서구가 거쳐 온 암흑기가 그들에게 눈부신 빛의 이미지로 부활한 것은 물론 서구 제국주의의 책임이 크지만, 신을 다시 중심에 세우는 것은 인간의 독단을 불러오는 퇴행이 되기 십상이다.

 

 

 

이스탄불은 그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도시다. 벤치에 앉아 비잔티움제국 시대의 성소피아 성당과 오스만제국의 블루 모스크를 번갈아 바라볼 수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유럽과 아시아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유럽의 역사와 아시아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이스탄불에 르네상스 예술이 일찍이 도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대는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행하고 있었고, 터키의 세밀화는 그 전조를 재빨리 포착하며 고뇌하고 있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에 의하면.)  물론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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