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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과 언어와 철학
러셀 그릭 지음, 김종주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3월
평점 :
러셀 그릭의 『라깡과 언어와 철학』은 지난해 11월 도서 정가제가 종료되기 직전, 『세계 철학사』와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함께 구입한 책이다. 취향대로라면 맨 먼저 읽었어야 할 책이지만, 이제야 읽었다. ..아니 읽다가 또 다시 던졌다. 처음 책이 도착했을 때도 손에 잡았다가, 던졌다. 순전히 번역 때문이다. 저자 러셀 그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지젝의 책이나 다른 정신분석학 책들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브루스 핑크나 자크 알랭 밀르 같은 급의 정신분석학자는 아닌듯 싶다. 물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용이 읽을만 하면 그걸로 좋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번역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출판사 <인간사랑>과 번역자 김종주의 조합을 보았을 때 (김이영이라는 공동 번역자도 있다), 훌륭한 문장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었다. 내가 처음 이 환상적인 조합에 깜짝 놀랐던 것은 지젝의 『환상의 돌림병』 을 읽었을 때였다. 10여년 전이었을 듯 한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비문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나는 지젝의 책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 이 책만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 물론 지금은 품절이기도 하다. 제대로 읽을 수만 있다면, 중고라도 사겠지만 어차피 읽을 수 없을테니 가지나 안가지나 다를 바 없다.
번역의 1차적 책임은 번역자에게 있겠지만, 나는 번역에 관한한 출판사 <인간사랑>도 신뢰하기 무척 어렵다. 불행히도 적지 않은 지젝의 책들이 <인간사랑>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번역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제목 자체가 오역인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이 책은 재작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향락의 전이』 등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도 『환상의 돌림병』 못지 않은 압권이다. 이 책도 지금은 절판 상태다. 물론 이 책들은 그 자체로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책을 출판하겠다는 의지라면, 맨 먼저 신경써야 할 것이 번역 아닐까? 원서의 어려움에 번역의 혼란을 더해 놓고서 어떻게 독자를 이해시키고, 어떻게 책을 판매하려 하는 것일까?
번역의 문제는 어떤 특정 출판사나 특정 번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번역서를 읽다보면 좋은 번역이라는 생각보다는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번역이 많은지 한숨이 나올 때가 더 많다. 그만큼 번역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언어를 하나로 연관짓는 일이 녹록할 리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확한 번역에 대한 필요는 더욱 절실하다.
오래전에 트윗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로렌초 키에자의 『주체성과 타자성』을 번역한 분에게 '전 번역서에서 평등의 실현을 봅니다' 라고 했었다. 그분도 동의하셨다. 요즘은 공부하고 싶으면 원서를 읽어라 따위의 조언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영어로 전 과목 수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고의 흐름을 막고, 문자 해독에 매달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깊은 사유를 가로막는다. 전문가에게는 원서 독해능력이 필수적이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전문가란 사람들은 단순히 언어 해독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고전 소설들도 대부분 해당 작가의 전공자들이 맡는다. 그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고, 그 이해력이 번역에 고스란히 배어나기 때문이다. 전문성은 인문학 특히 철학 번역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그건 단순한 언어능력만으로는 번역할 수 없는 철학 고유의 맥락과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의해 적확하게 번역된 책들이야말로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바탕이다. 그 바탕 위에 비로소 누구나 평등한 배움의 권리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제발 번역 좀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