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발님의 <단서의 괴로움>에 댓글을 달다가 문득 든 생각. 아니 예전부터 가끔 그런 생각했다. 도서관에는 너무 쓸데없는 책들이 많다. 대충 골라온 책의 절반은 대개 실패다.  한줄한줄 꼼꼼이 읽기에는 차마 봐주기 힘든 문장,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저자의 관점, 너무 난해해 독해불능인 내용, 국어 자체가 장애물인 번역문, 말은 많은데 내용은 없는 빈문장 등등. 이럴때 나는 진짜 읽을만한 책들로 꽉 찬 도서관을 꿈꾼다.

 

가령 이런 것.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8월 들어 읽기 시작한 보르헤스가 의외로 재미있다. 처음에는 눈붙이기도 힘들었는데, 조금 익숙해지니 조금씩 맛이 느껴진다. 도서관을 뒤지다 오늘 찾은 『바벨의 도서관작품 해제집』.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라고 되어 있는데, 사기다. 보르헤스가 29명의 저자를 선정해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이란 시리즈를 편집한 것 같은데, 각 작품의 서문같은 것을 모아서 만든 책처럼 보인다. 유령 책인지 자세한 내용은 없고 , 29명의 작품에 대해서, 작가소개 - 누가 썼는지 알수 없는 요약문 - 보르헤스가 직접 쓴 소개글의 순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요약문은 보르헤스가 직접 쓴 소개글을 반정도로 줄여 놓은 것이다. 이런 것도 책이라고 팔까 싶었는데, 알라딘에 검색해 보니 29권의 책에 걍 구색으로 한권을 끼어넣어 30권짜리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을 완성한 것 같다. 뭐 부록정도. 여하튼 목차를 보니 29명 중 내가 읽은 작가는 6명이다. 주로 19세기 작가들인데, 20% 정도밖에 모른다니, 내 독서편력도 참 일천하다 싶다. 틈틈이 한권씩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 보르헤스가 고르고 고른 책일테니, 나의 이해력이 딸려 못읽을 수는 있겠지만, 책이 엉망이라 내팽겨칠 위험은 없을 것 같다. 뭐 명성의 권위에 대한 이 무조건적 복종이 살짝 부끄럽지만, 기꺼이 감수한다.

 

보르헤스의 이른바 '바벨의 도서관' 처럼, 이런 신뢰도 빵빵한 도서관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여기 소도시에도 작은 도서관이 생각보다 참 많다. 그런데 책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숫자만 늘리는 도서관도 주민접근성을 위해 물론 필요하겠지만, 믿을만한 사람들이 직접 '컬렉션'한 작은 도서관들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가령 김현 도서관. 평론가 김현이 추천한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이 있으면 나는 아마 묻지마 대출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명에 도서관 하나씩의 책을 채우기에는 아마도 벅찰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도서관에, 예를 들어 <소설가들의 도서관> 하나에 박경리 도서관, 이청준 도서관, 한강 도서관...식으로 각 작가들이 가려뽑은 책들로만 가득찬 미니 도서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면 진짜 멋지지 않을까. <철학자들의 도서관>, <예술가들의 도서관>, <정치가들의 도서관>, <과학자들의 도서관>....

 

물론 요즘에 이런식의 도서 소개들은 많다. 여기 알라딘에서도 자주 본다. 대표적 알라디너는 아마 로자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로자의 글이 아쉽다. 글솜씨가 별로여서가 아니라, 너무 기계적인 글들을, 너무 의무적으로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방문자수도 공감수도 엄청나지만, 그 기대에 값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소개하며 그가 직접 완독하고 정성스럽게 쓴 글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책 제목과 책 소개글을  훑어보고, 앞으로 읽으려고 혹은 모아놓으려고 쓴 글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엔 올라올 때마다 보았는데, 요즘은 거의 읽지 않는다. 얻을 정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글이 업인 분이라, 시간들여 잘 쓴 글을 블로그에 노출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쉽기는 아쉽다.  <이동진의 빨간책방>도 그런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책에 대한 본격 토론에 앞서, 이동진의 내가 고른책인지 뭔가 하는 코너가 있다.  책 소개 코너인데, 이것도 읽은 책보다는 읽지 않은 신간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출판사 책 소개글 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는 내용이다. 결국 광고 아닌 광고다. 어떤 행위도 상업성이 배제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내가 '고른' 책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만 소개해 주면 안되는 걸까? 물리적으로 매주 그럴 수 없다면, 독자들의 글을 받아 누구누구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장서가 '藏'書 라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숨길 장, 藏을 쓰는 장서는 '책을 간직해 둠 또는 그 책' 이란 뜻이다. 숨길 장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간직한다는 것이 사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꽂이가 휘어져 내릴 정도로 간직하는 책들은 아마도 그만큼 귀중하고 가치있는 책들일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의 깊이와 사유의 지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알라딘 서재란 그 장서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며, 한 사람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리뷰란 자신만의 소중한 장서를 글쓰기를 통해 공공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의 물리적 도서관을 가질수는 없다해도, 나의 도서관을 보여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의 도서관이 부디 찾으시는 분들의 걸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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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1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야 책이 흔한 물건이 되었지 옛날만 해도 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에 가까웠잖습니까. 또한 책은 기득권 세력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고요. 위험한 게 책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귀중하게 보관하다, 라는 뜻이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차별화된 도서관.. 정말 매력있겠습니다.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그냥 동네마다 도서관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도서관 보급이 아마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습니다. 동사무소가 동네마다 있듯이 도서관도 동사무소처럼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양질의 도서는 도서관이 구매함으로써 국가 지원 형태가 되어야 하고요... 이명박과 박근혜 보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그나마 책은 읽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퍼득 듭니다.

말리 2014-08-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이 사대강에 퍼부은 돈을 도서관 짓는데 사용했으면 우리나라는 도서 천국이 되었겠죠 ㅎ. 유치원 짓는데 썻으면 온나라 아이들이 공립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고. 이명박은 토목을 해도 하필 강을 팠는지, 땅파고 지을 것이 엄청 있었는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