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권력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3~74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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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왠지 무서웠다. 『감시와 처벌』『광기의 역사』『성의 역사』『지식의 고고학』『말과 사물』. 어느것 하나 만만해 뵈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안전, 영토, 인구』라는 책이 번역되었는데, 덜컥 세미나 책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제목만 봐도 한숨이 탁 나오는데, 그것도 푸코의 책이라니. 나의 첫 푸코가 하필 ... 
 
 
푸코는 1971년부터 1984년까지 한해만 빼고, 13년 동안 해마다 12주씩, 1주에 한 번,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강의를 했다. '사유체계의 역사' 라는 명칭 아래 진행된 이 강의에는 500명이 넘는 청중이 몰려 들었는데, 학생, 교사, 연구자 뿐만 아니라 호기심에 찬 일반인들, 외국인들이 원형강의실 두 개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말하자면 대중강의 혹은 공개강좌였다. 이 강의들은 많은 청강생들에 의해 녹음되었고, 푸코 사후에 유가족의 동의 아래 강의록의 형태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강의록은 총 13권이다. 출판사 '난장'에서는 2011년 『안전, 영토, 인구』를 처음으로, 2012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그리고 올해 『정신의학의 권력』을 번역 출간하였다. 물론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번역한 것들도 있다. 
 
『안전, 영토, 인구』는 재미있었다. 강의여서 그런지 어렵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강의의 치밀함이 놀라웠다. 사실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들은 강의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 강의들은 한 해동안의 연구업적을 공개강좌를 통해 설명하는 자리이다. 그러니 이름값으로 설렁설렁하는 그런 강의와는 다르다. 강좌의 문이 열리자, 천정까지 쌓여 있던 기록들, 자료들, 문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저것들을 다 모으고 읽고 분석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궁금했다. 푸코의 탐구 방법을 흔히 고고학과 계보학이라고 한다. 무슨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푸코의 강의들을 읽다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어떻게 '구성' 되는가 이다. 진리는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이 푸코의 고고학이다. 그렇게도 시시콜콜 세부적인 기록들과 그렇게도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들이 푸코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안전, 영토, 인구』는 '통치' 개념의 변화에 대한 고고학적 작업이며, 『정신의학의 권력』은 '정신의학'적 권력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의학의 권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19세기 정신의학의 규율권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재미로는 『안전, 영토, 인구』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라, 기대값이 높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푸코는 정신분석학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은듯한 느낌이다. 
 
난장 출판사의 또 다른 강의록인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안전, 영토, 인구』에 연결되는 강의이다. 푸코를 '감시와 처벌' 즉 규율사회를 강조한 학자로만 알고 있다면, 통상 푸코가 인용되는 방식이 그러니,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무척 새로울 것이다. 나도 깜짝 놀랐다. 푸코는, 벤덤의 판옵티콘으로 상징되는 규율체제가  '생명관리정치' 로 대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처음으로 푸코는 생명관리권력, 혹은 생명관리정치라는 개념을 제창하고, 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전면화된 규율사회'라는 자신의 가설에 수정을 가했다." " '폐쇄된 규율들로부터 무한히 일반화가 가능한 판옵티콘 체제의 메커니즘에 이르게 되는 규율사회'라는 『감시와 처벌』의 가설을 수정함으로써 푸코는 『앎의 의지』의 두 번째 축인 생명의 축, '생명에 대한 권력의 조직'이라는 축, 다시 말해서 인구에 대한 생명관리정치의 축을 추가하기에 이른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20세기와 21세기를 각각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로 구분한 후, 논지를 펼쳐나간다. 이 규율사회는 말하지 않아도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벤덤의 '판옵티콘'에 닿아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그 때가 막 『안전, 영토, 인구』를 읽고 난 후였다. 푸코에 대한 (당연히 얻어들은 것 뿐인) 선입관과는 판이하게, 생명관리정치라는 개념에 신기해하고 있던 차에, 20세기를 규율사회로 규정한 한병철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푸코는 이미 규율사회의 개념을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읽었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는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있었다. 그때도 참 놀라웠다. 70년대 말에 벌써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거론하다니, 우리나라에는 신자유주의라는 말 자체도 아마 없었을 텐데. 개발독재 아래 웅크리고 있던 그 때, 신자유주의를 알고 있던 학자는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여하튼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안전, 영토, 인구』에 이어서 읽으면 꽤 재미있다.  『정신의학의 권력』은 기대만큼의 재미는 없었는데, 나는 『주체성과 진실』이나 『주체의 해석학』등 80년대 초반의 강의들이 번역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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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전 지식의 고고학 읽다가 정말 난해해서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쉽게 접할 양반이 아니구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푸코가 좋습니다.감시와처벌,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는정말 탁월했으니 말이죠. 안전, 영토, 인구.. 이거 세일하길래 사둘려고 장바구니 담았다가 포기하고는 했는데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워야겠군요..

말리 2014-08-06 09:38   좋아요 0 | URL
유명한건 다 읽으셨네요 ㅎㅎ. 전 지젝을 통해 철학에 가까워진 터라 좀 편향되어 있어요. 지젝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철학은 잘 안 읽는 ㅋ;; 그런데 푸코 강의는 정말 좋았어요. 이런 공개강좌가 우리에게도 열리면 어디든 쫓아가고 싶어요. 12시간에서 13시간 정도 강의분량이라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아요. 추천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