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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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동안의 배경 공부를 마치고 『신곡』 본문 읽기를 시작한다. 서사시의 계보를 이었으므로, 읽기보다 낭송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 독서 모임에서도 매주 『신곡』의 기본 과제는 직접 낭송한 파일을 올리는 것이다. 

 

사전 두 주 간의 과제로는 박상진 교수의 강의를 요약하는 것과 『신곡』이 미친 다양한 영향들 중 하나를 선정하여 정리하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와 <피에타의 상>,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 로뎅의 <지옥문>,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등 예술 작품뿐 아니라 조용필의 <슬픈 베아트리체>, 영화 <신과 함께> 등의 대중 문화까지 다양한 과제들이 올라와서 『신곡』 을 친근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도 워낙 명성이 자자한 『신곡』이라 걱정이 앞선다. 마르크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욕심내지 않고 한 주에 다섯 곡 정도씩 읽으며, 수없이 많은 등장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려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노동자들이 읽기를 바라며, 이 어려운 책을 포기하지 않도록  불어판 서문에 이 유명해질 경구를 부적처럼 써넣었다고 한다. 고병권의 강의에서>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는 단테의 순례 여정에 따라 「Inferno」 「Purgatorio」「Paradiso」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마다 33곡으로 되어 있어 총 99곡인데, 서문에 해당하는 노래를 지옥편 1곡에 삽입함에 따라 지옥편은 34곡이 되어 총 100곡으로 완성되었다. 

 

 

 

 

 

 

민음사판 번역본은 3권으로 분책되어 있다. 당연히 지옥편부터 읽는다.  줄거리 보다는 읽으면서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이나, 조금 상세히 알아두고 싶은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독서 스타디의 기본 과제 중 하나이다.

 

 

 

 

 

 

 

 

 

 

 <귀스타브 도레. 신곡>

1곡

 

 

 

 

1곡은 『신곡』의 서문에 해당한다.  단테가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서 두려움에 떠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1곡은 너무도 유명하다.  인생의 한가운데, 즉 절정에서 자기를 돌아본 그 순간, 그곳이 천국이 아니라 어두운 숲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놀라움이다. 

 

자부심과 권력(금력)과 사랑이 있는 곳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믿는다. 단테는 이 낙원을 '잠에 취해' 잘못 들어선 길이라 한탄한다. 잠은 이성의 잠이다. 깨어나 이성의 눈으로 바라본 낙원은 오만(사자)과 탐욕(표범)과 음욕(암늑대)이 우글거리는 어두운 숲이다.  단테를 둘러싼 이 짐승들은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로 오르는 길을 막고 있다. 별은 태양이며, 하느님의 은총이자, 하느님이다.

 

이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단테를 저 하늘의 별로 이끌어 가는 길잡이이자, 스승이다. 하지만 곧바로 오르는 길은 없다. "다른 길로 가야한다."  영혼들을 지나 가야 하는데, 그 영혼들은 각각 고통받는, 희망을 안고 참고 견디는, 축복받은 영혼들이다.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영혼들이다.

 

  

 

 

 

 

 

 

 

 

 

2곡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의 여정에 나서기로 했으나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변명을 하는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너의 영혼은 겁을 먹었구나.

 

인간은 언제나 그 겁 때문에 머뭇거리고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짐승처럼

명예로운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44~48)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베아트리체가 자신을 찾아와 부탁한 말을 들려 준다.

 

 

하늘에 계신 친절하신 여인께서

 

당신이 만날 자에게 닥친 난관을 슬퍼하셔서

엄격한 하늘의 법을 어기셨답니다.

 

그분은 루치아를 불러 말씀하셨지요.

-너를 믿고 따르는 자가 너를 찾으니

이제 너에게 그를 맡긴다.-

 

잔인함의 적이신 루치아는

내가 옛날의 라헬과 함께 있는

곳으로 찾아와 말했어요.

 

-베아트리체여! 하느님의 진실한 찬미여!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저 천박한 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세요.

 

그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바다조차 감당하지 못할 죄악의 강물에서

죽음이 그를 집어삼키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세상에는 스스로를 도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준비된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복된 자리를 떠나 이곳으로 내려왔어요.  (94~112)

 

 

단테의 구원은  '하늘에 계신  친절하신 여인' 즉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루치아를 매개로 베아트리체에게 내려와 베르길리우스에게 이어진 결과이다. 단테에게는 세 명의 구원의 여인이 있는 셈이다.

 

 

 

 

<성녀 루치아. 크리벨리. 1476>

 

 

 

루치아는 4세기 초 로마제국 말기에 순교한 시칠리아 귀족 가문의 여성이다.  동정녀로 살기로 서언했는데,  정혼자가 고발하여 온갖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고문 중 눈알을 뽑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림에는 주로 뽑힌 눈알을 성물로 들고 있다. 시력장애인들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눈알은 루치아란 이름과 밀접하다. Lucia는 라틴어 Lux(빛)에서 유래했다.  눈알을 든 루치아는 교회와 세상의 빛을 보호한다.

 

 

루치아는 나폴리의 수호 성인이다. 이탈리아 민요 <산타 루치아>의 루치아가 바로성녀 루치아다. 산타는 영어의 saint, 루치아는 lucy다.  나폴리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떠날 때 산타 루치아에게 부드러운 바람과 잔잔한 바다를 기원한 노래이다. 우리나라 가사도 있지만, 이탈리아 가사를 번역한 것을 보면 기원의 의미가 더 명확히 보인다.  https://youtu.be/8CiXj-Q4eVw

 

 

 

 

 

 

 

 

 

 

 

 

 

 

 3곡

 

 

 

 

 

로댕의 <지옥의 문>이 하도 유명해서 『신곡』에 '지옥의 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어느 문'이라고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3곡은 이 '어느 문' 꼭대기에 쓰인 '어두운 글자들'로 시작한다.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의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1~9)

 

지옥의 문은 앞에 선 영혼들에게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무시무시하게 명령하는데, 정작 지옥의 문은 창조주의 정의에 따라 전능과 전지와 사랑으로 만들어 졌다. 정의와 사랑이 만든 지옥에도 희망은 불가능한가?

 

 

 

 <최후의 심판 중 '죄인을 나르는 카론' 미켈란젤로. 1537. 시스티나 성당>

[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지옥의 문법은 ‘인과응보’ 당신은 추종자? - 매경이코노미 (mk.co.kr)

 

 

 

'어느 문'을 지나면 '아케론의 슬픈 강'이 나온다. 아케론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강 중 하나이다.  대동강이 님과 나를 가르듯, 이승과 저승은 강이 가른다. 하데스로 내려가는 영혼은 다섯 개의 강을 거친다.  희랍 신화가 다양하게 변형되어 전승되므로 저승의 강도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다섯 개인 것 같다.

 

다섯 개의 강을 통과하며 영혼은 이승의 삶을 말끔히 씻어내고 저승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다. 첫 번째가 아케론 강이다. 슬픔의 강이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건너는 강일까?  두 번째 강은 코키토스이다. 탄식의 강이다.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과거를 한탄하며 건너는 강이라고 한다. 세 번째 강은 (피리)플레게톤이다. 불의 강으로 불린다.  슬픔과 회한을 불로 태우고 깨끗이 정화된 영혼을 갖는다. 네 번째가 망각의 강인 레테이다. 이승의 모든 기억을 씻어 버린다. 마지막이 스틱스, 증오의 강이다. 스틱스는 희랍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신들이 맹세를 할 때는 늘 스틱스 강에 두고 한다. 이 맹세는 신들도 풀지 못한다. 아킬레우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 테티스 여신이 발목을 잡고 거꾸로 담근 강이기도 하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98> 레테와 로테 : 괴테 그리고 롯데 : 국제신문 (kookje.co.kr)

 

 

 

'우리가 아케론의 슬픈 강가에서(78)' 에서, 왜 아케론을 '슬픈 강' 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그런데 '하느님의 분노 아래 죽는 자들은(122)'  '온 세상에서 모두 이곳으로 모여든단다.(123)'는 희랍 신화와 다르다. 희랍 신화에서는 죽은 사람은 모두 다섯 개의 저승의 강을 거쳐 하데스로 내려간다. 단테는 지옥에 떨어질 영혼들만 아케론의 강으로 불러 모은다.  불행한 영혼들은 지옥의 문을 지나 아케론의 강을 건넌 다음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 앞에서 자신의 지옥을 배정 받는다.

 

 

 

 

아케론은 실제로 그리스에 있는 강이다. 어두운 협곡을 따라 흐르며 곳곳에서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데스로 이어지는 강으로 여겨졌다. 강 기슭에는 고인들을 위한 신탁소가 있다.

 

아케론의 강은 반드시 뱃사공 아론의 작은 배로만 건널 수 있다. 희랍인들이 죽은 사람의 입에 금화 한 닢을 넣어 주는 까닭은 카론에게 주어야 할 뱃삯 때문이다.

 

 

 

 

 

 

 

 

 

 

 

 <파르나수스. 일부. 라파엘로. 로마 바티칸 박물관>

4곡

 

 

 

지옥은 아홉 개의 고리로 되어 있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더 사악한 영혼들이 더 크게 고통받고 있다. 첫 번째 고리는 죄도 구원도 없는 림보, Limbo이다.  고대 희랍과 로마의 위대한 인물들이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떨어진 곳이다.

 

 

 

 

최연욱 작가님 미친스터디 후기- 104. 상징..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Limbo는 '경계' '접촉부'를 뜻하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 중세에 발생한 개념으로 조상들의 림보와 어린이들의 림보가 있다. 조상들의 림보에는 예수 이전의 구약의 성자들이 있고, 어린이들의 림보에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있다. 원죄를 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테는 구약의 성자들을 천국으로 보내 준다. 예수님이 내려와서 축복해 주었다는 것이다. 단테는 또 림보에 희랍과 로마의 위대한 인물들을 배치한다. 특히 시인들을 칭송하며 단테 자신을 위대한 시인의 계보에 끼워 넣는다.  

 

 

 <단테와 그리스 로마 시인들. 귀스타브 도레. 1857>

 

 

희랍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세 명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그리고 네로 황제 시대의 루카누스에 이어 스스로를 여섯 번째 시인으로 만든다.  그의 야심은 성공하여 현대인은 호메로스 - 베르길리우스 - 단테로 이어지는 계보를 만들어 3대 시인으로 부른다.

 

 

 

 

놀라운 점은 Limbo에 이교도인 살라딘과 아베로에스가 있다는 것이다. 살라딘은 3차 십자군 전쟁의 이슬람 영웅이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종교 전쟁이다.  기독교 스콜라 철학을 완벽하게 문학화했다는 『신곡』에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살라딘이 Limbo에서 사랑받고 있는 것은 놀랍다.  아베로에스(이븐 루슈드)는 이슬람의 종교 철학자이다. 희랍의 플라톤과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정통했다.

 

Limbo에는 '어두운 반구를 환히 비추는 빛' 이 있다. 지옥은 캄캄한 어둠이다. 그런데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 있으니 지성(이성)의 빛이다. 단테는 이성의 빛을 뿜어내는 '위대한 영혼'들을 회고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그때 본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120)" 우리가 만나고 싶은 위대한 영혼들이 Limbo에 있다면 지옥의 첫 번째 고리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단테의 Limbo는 지옥이라기보다는 이성의 빛이 환히 밝히는 지옥의 입구에 마련된 별도의 정원이다.

 

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영웅·현자들은 지옥 가면 별도 ‘정원’서 거주 - 매경이코노미 (mk.co.kr)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앵그르. 1819>

 

5곡

 

 

 

두 번째 고리부터 본격 지옥이 시작된다. 들어서는 입구에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가 무서운 모습으로 서서 사람들의 죄를 조사하고 판단하여, 죄에 따라 각자의 지옥으로 내려 보낸다.  

 

두 번째 고리부터 아홉 번째 고리까지 점점 극악해지는 죄의 고리가 있고, 지옥은 깔대기처럼 좁아진다. 그 두 번째 고리가 '이성을 욕망의 멍에로 씌어 속박시킨 자들(38~39)'이 떨어진, 애욕의 고리다.

 

지옥에 떨어질만큼 용서받지 못한 죄이지만 단테는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바라본다. 유부녀 베아트리체를 여전히 사랑한 단테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까.

 

클레오파트라와 헬레네도 애욕의 죄로 고통받고 있다. 헬레네는 희랍 작품에서는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의 남편과 아버지를 전쟁터로 앗아간 나쁜년으로도, 여전히 존경받는 희랍 최고의 미녀 스파르테의 왕비로도 묘사된다. 헬레네가 있으니 파리스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킬레우스가 있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의 최고 영웅이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아킬레스 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는데, 단테는 그의 죽음이 적국 트로이의 공주를 사랑한 댓가였다고 보고 이 지옥에 보냈나 보다.  4권 림보에 있는 트로이 영웅 헥토르와 아이네아스와 비교하면 아킬레우스의 지옥은 다분히 로마적인 편견 때문인가라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 의해 죽었고, 트로이가 함락당한 후 아이네아스는 탈출하여 긴 유랑 끝에 로마에 정착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의하면 아이네아스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형제의 선조가 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워터하우스. 1913>

 

 

트리스탄도 애욕의 죄로 지옥의 두 번째 고리에 있다. (67행)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잘 알려진 그 트리스탄이다. 트리스탄은 중세 기사 문학의 비극적 주인공이다.  아일랜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으로 노래되어 왔는데 13세기에 가장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졌다.

 

트리스탄은 삼촌인 마크왕의 궁정에서 훌륭한 기사로 성장한다. 마크왕이 자신의 정혼자인 이졸데를 데려오기 위해 트리스탄을 아일랜드로 보낸다. 이졸데와 함께 마크왕의 궁정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실수로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졸데는 마크왕과 결혼했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밀회를 이어나가고, 결국 발각되고 만다. 그후 ...  단테가 애욕의 고리로 데려올 만한 애절한 사연이 이어진다.

 

1865년 바그너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연했다. 당시 바그너의 상황은 트리스탄과 비슷했고, 그 때문에 바그너는 곤경에 처해있으면서도 이 작품을 완성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에 나타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영혼. 아리 쉐퍼. 1855>

 

 

 

단테가 직접 만난 연인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116)이다.  13세기 로마에 있었던 비극적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프란체스카는 라벤나 영주의 딸로 남편과 정략 결혼을 했는데, 시동생인 파올로와 사랑에 빠졌다. 간통의 현장을 남편에게 들킨 두 연인은 그 자리에서 함께 죽임을 당했다. 지옥에 떨어져서도 함께 붙어서 고통받는 연인에게 단테는 묻는다.

 

"말해 보시오. 한숨짓는 달콤한 욕망으로 살던

그 시절에 어떻게 사랑이

당신의 숨은 열정을 알려 주었단 말이오?(118~120)"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로세티. 1855>

 

 

 

프란체스카는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추고 오로지 두 연인의 사랑만이 마법처럼 다가오던 그 순간을 한 장의 그림처럼 묘사한다.

 

어느날 우리는 한가롭게

랜슬롯의 사랑 얘기를 읽었어요.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읽어 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여러 번 눈을 마주쳤어요.

얼굴도 여러 번 붉혔지요.

그러다 단 한순간이 우리를 엄습했어요.

 

사랑에 빠진 그 연인이 오랫동안 기다린 입술에

입 맞추는 대목을 읽었을 때.

그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입을 맞추었지요. 그리고 나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지요.

그 책을 쓴 자는 갈레오토였어요.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읽지 못했어요. (127~138)

 

책이 손에서 떨어지고 연인은 운명이 시작되었음을 안다.  보르헤스는 『칠일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이렇게 말한다.

 

"현대 소설은 우리에게 누군가를 알리기 위해서 오백이나 육백 페이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단테에게는 한순간으로 족합니다. 바로 그 순간 작중 인물은 영원히 규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중심 순간을 찾습니다. 나는 여러 단편 소설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하고자 했고, 중세 때 단테가 발견한 방법 때문에 만인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단지 짧은 3행 연구로 구성되어 있지만, 영원합니다. 그들은 한 단어나 하나의 행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노래의 일부이지만, 그 일부는 영원합니다. 그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고, 기억과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다시 새로워집니다. p29"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랜슬롯이 입맞추는 대목을 읽던 그 순간 온몸을 떨며 입을 맞추었을 때, 그 순간이 그들 삶의 전부이고, 그들 이야기의 전부이다. 『신곡』에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은 단테가 그 한순간으로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내게는 '장가 가던 첫날 밤에 달 보고 울던 갑돌이'가 그렇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은 그 한순간에 응축되어 있다.  목에 칼을 차고도 수청을 들지 못하겠다고 날카롭게 응수할 때, 그 순간이 춘향의 전부를 말해 준다. 삶에는 그런 한순간이 필요하다고 보르헤스는 말한다. 그 순간이 없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는 중세 기사 문학의 전설적 영웅 <아서왕 이야기>의 일부이다.  아서왕의 가장 충직한 기사인 랜슬롯이 아서왕의 왕비인 기네비어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비극이다.

 

랜슬롯과 프란체스카, 트리스탄 모두 중세에 유행했던 사랑 이야기로 단테는 "그들이 불쌍해, 죽어 가는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시체가 쓰러지듯 지옥의 바닥에 무너져 버렸다. (141~2)" 라고 할만큼 깊이 공감했다.  '불쌍해'라고 번역한 단어가 '피에타'라고 한다. 피에타는 동정, 연민, 자비이자 성모의 예수에 대한 사랑이다.

 

 

 

 

 

 

 

이후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을 울리고 영감을 자극했던 이 이야기들은 오페라, 연극, 영화, 회화, 소설 등으로 끊이없이 되살아 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지옥인가?

 

 

차이코프스키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https://youtu.be/CIW4myGhE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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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북플 이웃님의 글에서 단테의 신곡을 몇번 만나네요!ㅎ 올해 저도 신곡에 한번 도전할까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일어납니다! 좋은글로 잘 배웠습니다!ㅎ

말리 2021-01-04 13:13   좋아요 1 | URL
신곡은 많은 다른 작품들로 이어주는 다리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그림도 많이 보고 클래식도 많이 듣습니다. 독서 멤버가 올려주신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입니다.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https://youtu.be/CIW4myGhE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