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소설을 몇 권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빠져들기 좋은 오스틴의 소설들 중 『노생거 사원』입니다. 디킨스는 역시 디킨스이고 오스틴은 언제나 오스틴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숨에 읽어야 할 소설을 방해하는 요소가 생겼습니다. 중간

 중간에 문법들이 자꾸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는 비음화, 저기는 구개음화, 이게 조사였나? 접미사였나? ...

 

이렇게 눈에 띄는 단어들 때문에 <국어 어문 규범>을 헤매다 다시 소설의 주인공에게 돌아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국어 문법은 정말 우리 일상 속에 있습니다.

 

 

 

 

 

1. 음운 동화

 

"소리와 소리가 이어서 날 때에, 한 소리가 다른 소리의 영향을 받아서 그와 같거나 비슷하게 소리가 나는 음운 현상" 을 말한다.

 

동화에는 성격에 따라 자음 동화, 구개음화, 모음동화, 모음조화가 있다.

 

동화의 정도에 따라 완전 동화와 부분 동화, 동화의 방향에 따라 순행 동화, 역행 동화, 상호 동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수능의 빅3는 비음화, 유음화, 구개음화라고 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빈번히 적용되는 동화 작용들이다.

 

 

 

 

 

 

2. 비음화

 

비음화는 유음화와 더불어 자음동화이다. 자음과 자음이 연이어 소리를 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다. 자음이 연이어 오려면 앞 음절의 종성과 뒤 음절의 초성이 모두 있어야 한다.

 

뒤 음절이 자음으로 시작하므로, 앞 음절의 종성은 음절 끝소리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따라서 앞 음절의 종성은 7가지 중 하나의 소릿값을 갖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문법4. 음절 끝소리 규칙 및 ..> 에 정리해 놓았다.

 

 

 

종성의 7개 대표음은 3개의 비음 (ㅁ ㄴ ㅇ)과 1개의 유음 (ㄹ) 그리고 3개의 평파열음(ㅂ ㄷ ㄱ) 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성의 평파열음, 비음, 유음과 초성의 비음, 유음이 서로 영향을 미쳐 비음화 혹은 유음화가 일어난다.

 

 

비음화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앞 음절 종성의 평파열음이 비음화 되는 현상이고, 두 번째는 뒤 음절 초성의 유음 'ㄹ'이 비음 'ㄴ'으로 동화되는 현상이다.

 

 

 

 

3. 평파열음의 비음화

 

 

 

 

비음화는 "평파열음 ‘ㅂ, ㄷ, ㄱ’ 뒤에 비음인 ‘ㅁ, ㄴ’이 올 때 앞선 자음인 ‘ㅂ, ㄷ, ㄱ’이 뒤에 오는 비음의 조음 방식에 동화되어 동일한 조음 위치의 ‘ㅁ, ㄴ, ㅇ’으로 바뀌는 음운 변동" 이다.  "이 변동은 예외 없이 적용되며 서로 다른 단어 사이에서도 적용될 만큼 강력하다."

 

‘ㅂ, ㄷ, ㄱ’ 이니 ‘ㅁ, ㄴ’이니를 시시콜콜 외울 필요는 없다. 종성의 평파열음이 뒤에 오는 초성의 비음에 의하여 비음으로 바뀌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 종성에 평파열음은 ‘ㅂ ㄷ ㄱ' 밖에 없다. 초성의 비음이 'ㅁ ㄴ' 인 이유는 비음 3개 중 나머지 하나인 'ㅇ'은 초성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초성의 'ㅇ'은 자음 'ㅇ'이 아니라 그냥 빈 자리를 메꾸는 동그라미에 불과하다.

 

 

 

 

울림소리는 장애음인 평파열음보다 강한 소리인가 보다. 평파열음과 비음이 만나면 속된 말로 비음의 승리다. 비음화는 있지만 역은 발생하지 않는다. 여하튼 입으로 소리를 내다가 곧바로 코로 바꾸어 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한군데로 소리를 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긴 하다.

 

비음화될 때 평파열음은 원래 자신의 조음 위치를 지키면서 소리를 내는 방식만 코로 바꾼다. 비음의 사전적 정의는 "입 안의 통로를 막고 코로 공기를 내보내면서 내는 소리" 이다.

 

 

종성에 바로 평파열음이 오는 경우 비음화는 1회의 음운 변동으로 끝난다. 그런데 종성이 마찰음, 파찰음 혹은 경음, 격음일 경우 그리고 자음군이 올 경우에는 먼저 대표음으로 바뀌는 음운의 변동을 겪어야 한다, 비음화는 그 이후에 일어나므로 총 2회의 음운 변동으로 완료된다.

 

 

 

'밥물, 닫는, 국민' 은 각각 종성이 'ㅂ,ㄷ,ㄱ' 이므로 바로 비음화가 일어난다.

 

이에 반해 '쫓는' 은 종성 'ㅊ'이 음절 끝소리 규칙의 적용을 받아 'ㄷ'으로 교체 된 이후에 비음화 된다. '깎는'의 쌍받침 'ㄲ'도 'ㄱ'으로 교체된 후 비음화 된다. 비음화도 교체이므로 이 경우 교체가 2회 발생한다.

 

'없는'의 자음군 'ㅄ'은 'ㅂ'으로 단순화 된 이후 비음화 된다. 탈락이 먼저 일어나고 비음화 즉 교체 현상이 있다.

 

 

 

 

4. 유음의 비음화 : 'ㄹ'의 'ㄴ'되기

 

유음과 비음은 둘 다 울림소리이다. 유음과 비음이 만나면 누가 더 강할까? 동화는 어느 방향으로 일어날까?  결과는 재미있는데, 비음화도 있고 유음화도 있다.

 

 

 

유음 'ㄹ'과 동일한 조음 위치의 비음은 'ㄴ' 이므로, 결국 'ㄹ'이 'ㄴ'이 되거나  'ㄴ'이 'ㄹ'이 되어야 한다. 비음화와 유음화를 결정짓는 음운 환경은 무엇일까? 먼저 비음화부터 보자.

 

 

'ㄹ'과 'ㄴ'이 바로 붙으면 비음화 보다는 유음화가 일어난다. 1:1일 경우 'ㄹ'의 승리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그런데 ,초성 'ㄹ' 앞에 종성의 자리에 'ㄴ'과 그 자신인 'ㄹ'을 제외한 나머지 대표음 'ㅁ ㅇ / ㅂ ㄷ ㄱ'가 오면 재미있게도 초성의 'ㄹ'이 'ㄴ'으로 비음화 된다. 이 특별한 비음화를 'ㄹ의 ㄴ되기' 라고도 부른다.

 

또 한번 그런데,  'ㄹ'에 의한 비음화는 경우에 따라 2차 비음화를 촉발한다. 뒤 음절 초성인 'ㄹ'이 'ㄴ'이 되고 나면, 앞 음절 종성이 'ㄴ'에 의해 다시 비음화될 음운환경에 놓이게 된다. 물론 앞 음절 종성이 비음 'ㅁ ㅇ' 인 경우는 2차 비음화 없이 'ㄹ의 ㄴ되기' 로 비음화는 종료된다.  앞 음절 종성이 평파열음 'ㅂ ㄷ ㄱ' 인 경우는 'ㄴ'에 의해 'ㅁ ㄴ ㅇ'로 2차 비음화가 일어난다.

 

 

 

앞 음절 종성이 대표음이 아닐 경우는 음절 끝소리 규칙이든 자음군 단순화든 먼저 대표음으로 바뀐 이후에 비음화를 거친다. 

 

사례의 '몇리'의 경우 1.  'ㅊ'은 대표음 'ㄷ'으로 음절 끝소리 규칙의 적용을 받은 후  2. 'ㄹ'이 'ㄴ'으로 비음화 되고, 다시 3. 'ㄴ'에 의해 바뀐 'ㄷ'이 비음화 되어 'ㄴ'이 된다.

 

'ㄹ의 ㄴ되기'라는 특별한 비음화의 경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종성이 'ㄹ'과 'ㄴ'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7개의 대표음 중 'ㄹ'과 'ㄴ'을 제외한 5개가 올 경우에만 뒤 음절의 초성 'ㄹ'이 'ㄴ'으로 바뀔 수 있다.

 

 

 

 

5. 유음화

 

이번에는 'ㄹ'과 'ㄴ'이 1:1로 만나는 상황이다. 순서는 상관이 없다. 'ㄹ'이 종성이고 'ㄴ'이 초성이든 그 역이든 동화의 승률은 'ㄹ'이 우세하다.  확률로 말하는 이유는 경우에 따라 'ㄴ'으로 비음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는 유음화가 발생한다.

 

 

 

다양한 사례들 중 '물난리'가 유음화의 두 가지 경우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물난' 에서는 'ㄹ' 종성과 'ㄴ'초성 조합이고, '난리'에서는 'ㄴ'종성과 'ㄹ'초성 조합이다. '물난'도 유음화로 '물란' 이 되고 '난리'도 유음화로 '날리'가 되어 '물란+날리' 즉 '물랄리'로 최종 유음화가 완료된다.  

 

 

 

 

표준 발음법 20항 유음화 규정 중 예외 사례 즉 'ㄹ'이 'ㄴ'으로 비음화 되는 경우에 대한 설명이다. 'ㄹ'과 'ㄴ'이 1:1로 붙었는데 유음화가 아니라 오히려 비음화가 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자어로 된 경우에 ' ㄴ으로 끝난 2음절 한자어 + ㄹ로 시작하는 한자어' 의 사례에서 'ㄹ'이 'ㄴ'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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