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엘릭시르를 애정할 수밖에. . .

황제의 코담뱃갑을 읽다가 발견!
해설 읽을 때부터 세 개의 관 칭찬이 어째 길어진다
싶었는데 과연 이렇게 출간 예정작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세 개의 관은 좋은 번역으로 꼭 만나고 싶은 작품이었다. 동서판으로 읽었지만 딕슨 카의 가장 매혹적인 미스터리 사건 정황을 제대로(아니 전혀! 난 머리를 쥐어 뜯으며 거의 4번을 읽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시작될 때부터 세 개의 관도 내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는 것일까 나오는구나.

빨리 읽게 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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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2-1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작가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요?! 흠...서점으로 달려갈 채비를..^^;;

오드득 2015-02-23 00:39   좋아요 0 | URL
클래식 미스터리에 있어서는 대가라고 할 수 있죠. 황제의 코담배갑은 그런 그의 대표작입니다. 번역이 좋아서인지 이번에 읽을 때는 트릭도 트릭이지만 드라마 구성이 참 좋다는 걸 느꼈습니다.^ ^
 

헐~ 결국 3년을 구형했군.
집유로 풀어주겠네.
유전무죄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 박사무장이 증언석에서
봉건 노예나 다를 바없는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비단 박사무장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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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2-02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ㅠㅠ
거기다 오늘 jtbc에서 새정치의 당대표 토론 보다가 다시 속 뒤집어지구 끙

오드득 2015-02-02 22:57   좋아요 0 | URL
저두요. 토론회 보는데 참담하더군요ㅠㅠ

yamoo 2015-02-0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를 안봐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잘 보니....땅콩 회항 사건의 주범 재판인가욤??

오드득 2015-02-03 16:01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어제 검찰이 구형했고 아직 판결은 안나왔습니다.
 


앱스토어에 들어갔다가

유료 인기 차트에 올라온 것을 발견.


설마 했더니

정말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3 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히어로즈 시리즈의 최고 걸작.


한 번 빠지게 되면 신선들 바둑 두는 거 구경한 나뭇꾼 같이 된다는

엄청난 시간 잡아 먹기 게임.


몇 시간은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솔로라면 발렌타인데이 때 하면 딱 좋을...

(아, 그거 노리고 이 시점에 나온 것인가?)


아무튼 15주년 기념으로 나온 HD 판이란다.

가격은 9.99달러.


레티나로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서 한 번 돌려 보고 싶은데

그랬다가 어느 시간대에 내가 있을지 몰라서 두려워진다.

게다가 로컬 멀티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패드로 하면 더 간편할테니

충전기 연결시켜 놓고 스팀나는 거 보면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한창 바쁜 때에 이런 거 했다간 인생 쫑 날지도 ㅠ ㅠ)


구입하려는 손가락을 애써 잡고 있다.

(이러다 자르게 되는 건 아니겠지 ㅠ ㅠ)


그런데 벌써 15년이나 흘렀구나...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네... 쳇!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검색에 걸렸다.

 초보자 시절 보았던 책.

 당연히 지금은 절판.

 이 책도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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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더니스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지나친 부드러움은 오히려 고통이 된다."


 소설은 그렇게 칼란 지브란의 말로 시작한다. 십대가 처한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로버트 코마이어의 '텐더니스'는 제목처럼 강박적으로 '부드러움'을 찾는 십대의 그 여자, 그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로리 크랜스텐.

 십대의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안정된 삶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떠돌이 인생. 엄마와 나의 삶은 그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일거리를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어차피 깨지고 말 남자들의 약속을 쫓아다니는 것이다.'(p. 19)


 진짜 아버지가 일찍 죽어버린 뒤로 엄마가 둥지를 틀었던 남자들은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가정 폭력을 휘두르거나 로리에게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거나. 그랬기에 로리의 삶은 늘 위태로웠고 때문에 로리의 '부드러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한 마디로 안정에 대한 희구에 다름 아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 부드러움을 가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롭이란 락커의 입술에 키스하기 위하여. 결국 그녀는 목적한 바를 이룬다. 그토록 집착했던 것을 이루었으나 커다란 공허함만 남는다.


 왜냐하면 로리에게 있어서 집착은 그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착이라는 상태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상은 그저 집착을 더 가열차게 움직이게 할 증기기관차의 화로에 넣는 석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부드러움의 집착을 가져온 원초적인 만남이. 로리의 집착은 그 첫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집착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첫 부드러움을 주었던 대상을 향한. 살면서 느꼈던 유일한 부드러움과 타인의 자애에서 비롯된 안정감을 준 소년을 향한.


 집착은 그녀에게 러브 레터였다.


로리는 우연히 TV에서 남자를 본다. 로리는 놀란다. 바로 그 남자였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의 집착을 낳게 한 장본인. 이제 로리는 그 남자에게 키스해야 한다고 집착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릭.

 평범한 남자는 아니다. 그는 십대 나이에 부모를 살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실체 전부는 아니다. 사실 그는 연쇄 살인범이다. 지금까지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했다. 그가 부모를 살해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연쇄 살인을 덮기 위해서. 그는 학대 받은 끝에 어쩔 수 없이 살해했다는 정황을 남겨 짧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다. 그가 노렸던 그대로 된 것이다. 그가 저질렀던 연쇄 살인에 그는 전혀 연루되지 않았고 세상은 동정의 시선마저 보냈다. 그는 키득거렸다. 그의 연기에 다들 속은 것이다. 아니, 한 사람은 속지 않았다. 프록터 경위. 그는 에릭이 감옥에 있는 3년 동안, 1년에 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서 에릭에게 말한다. '너는 괴물이야.'라고.


 에릭도 로리만큼이나 강박적으로 부드러움에 집착한다. 에릭의 살인은 그 집착의 결과다. 그는 어릴 때 고양이 목을 꺾을 때 부드러움을 느낀 뒤로 내내 그것을 얻으려 찾아 다닌다. 즉 그에게 부드러움이란 다름아닌 죽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생명있는 모든 것을 금이라는 무생물로 만들어버리는 마이더스의 손과도 같이 그는 부드러움을 찾아낼 때마다 족족 죽여버린다. 소멸. 대상인 존재가 제거되지 않고서는 에릭은 부드러움을 얻을 수 없다. 반면 로리는 대상인 존재는 온전히 보존된다. 그렇게 같은 집착이지만 결과는 다르다. 실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 여자와 그 남자.


 하지만 잔혹한 운명은 그들을 만나게 한다. 결국 로리가 에릭을 찾아온 것이다. 처음 에릭은 로리를 몰라보았다. 그러다 기억해 내었다. 가장 처음으로 소녀를 살해했던 날 철로에서 만났던 어린 계집아이였다는 것을. 로리는 프록터 경위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첫 살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것이다. 프록터 경위의 수사와 감시가 아직도 시퍼런 칼날처럼 자신을 향해 있는 상황에서 로리의 존재는 자신에게 지극히 위험하다. 결국 에릭은 그녀를 제거하기로 한다.


 그런데 '텐더니스'는 로맨스다. 로리가 에릭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로리는 그 사랑이 목숨을 건 사랑인지도 모르고 그저 한껏 드러내기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드러움의 집착을 낳게 한 그 남자는 궁극의 부드러움을 가져다 줄 남자였던 것이다. 로리는 그것을 느낀다. 그가 그토록 찾던 절대적 안정을 줄 것이라고. 그 확신 때문이었을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에릭도 스스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취향도 아니고 찾고 있는 부드러움도 아닌데 에릭은 그녀를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에릭은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알 수 있다. 에릭이 로리를 쉽게 제거하지 못하는 까닭은 늘 괴물이었던 에릭은 로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그 잠깐 동안 유일하게 인간으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다. 로리는 그가 오래도록 방치하고 있었던 '인간다움'의 환기였던 것이다. 그는 비록 무의식적이었지만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던 부드러움의 정체가 진짜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 아니라 '인간다움'임을.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 눈물과 자애로움인 것을.


 '텐더니스'는 그러한 이야기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 이야기. 더구나 남자는 연쇄 살인범. 결말이 좋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과연 비관적인지는 모르겠다. 로버트 코마이어는 냉정한 현실론자다. 그는 로리의 바람인 절대적 안정이 결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며 오직 죽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삶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수면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수면은 잠시도 제자리에 있을 수 없다. 어제의 안정이 오늘의 불안이 될 수도 있다. 시간따라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며 예측과 안정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 수면은 오직 시간이 정지했을 때라야 절대적 평온을 얻을 수 있다. 프로이트도 그걸 잘 알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본질적으로 죽음 충동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 영겁에 걸친 정지의 시간으로 들어갈 때 마음에 과연 무엇을 담고 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타인의 따스한 자애로움을, 또 어떤 누군가는 비정한 지옥만을 담고 갈 수도 있다. 삶의 진짜 의미는 바로 거기서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로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로리는 그 순간 오직 자애로움의 기억만 안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코마이어가 그 때의 공간적 배경을 물 속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물의 생명이 물에서 비롯되듯이 물은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생명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에릭은? 에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위해 단 한 번도 울 수 없던 그가 마지막엔 울게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 결국 그 여자와 그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부드러움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어째서 로리는 에릭에게서, 에릭은 로리에게서야 가능했을까? 이유는 딱 한 가지인 것 같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지속이라는 시간의 차원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서로를 만나기 전에 로리와 에릭이 집착한 대상을 가졌을 때는 모두 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로리는 키스라는 짧은 입맞춤, 에릭은 즉각적인 살해. 집착하는 대상을 이루기 전까지 로리는 대상을 직접 만나볼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만 골몰할 수밖에 없었고 에릭은 대상을 죽이기 위하여 어떻게 유혹할까 하는 생각만 했다. 단 한 번도 서로의 내면을 교류할 깊고도 진득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다. 로리와 에릭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한다면 그건 사랑의 위대한 힘 때문이고 그 위대한 힘은 다름아닌 사랑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러한 관계 맺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의 질문이기도 한 '부드러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도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것은 서로를 만나기 전의 로리와 에릭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나의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그를 깊이 이해하려 나를 온전히 내어줄 때, 부드러움은 비로소 태어난다.


 부드러움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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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1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텐더니스... 깊이 이해하다...
부드러움은 획득되는 아니라 발현되는 것이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아이리스 M. 영 지음, 허라금 외 옮김 / 이후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수사는 빈곤에 관한 동어반복을 낳는다.
빈곤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며 그들이 공공부조에 의존하는 것은 개인적 책임 부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이다. (...)
개인적 책임 담론은 일탈된 빈곤층을 고립시키고 그들이 처한 조건을 비난하며 그들에 대한 온정주의 정책이나 징벌적 정책 적용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만약 빈곤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흔하고, 다양한 기질의 많은 사람들조차 최소한 특정 시기에는 가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크 랭크는 미국의 빈곤을 주로 개인의 삶 경로를 따라 분석한 결과, 연방정부가 규정한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토록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해온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빈곤이라는 주문은 너무나 흔해 걸려들기 쉬웠다. 랭크는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미국인 대다수가 최소 한 번은 빈곤이라는 주문에 걸려들고 호시절과는 별개로 주문에 여러 번 걸려든 사람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랭크의 주장은 이렇다. 만약 대다수 미국인들이 삶의 특정 시기에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는 성격적 특성, 기질, 실패 요인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는 어떤 선택과 행동으로 이런 끔직한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는다.(...)
삶의 특정 시기에 가난에 처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만 무책임하게 행동하거나 무책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그들에게만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어떤 사회 계층에 속하든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개인적 책임에 대한 수사학이 복지에 관한 공적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임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타인에게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고립된 가족이 실현되지 않은 모든 비용조차 내면화하는 이미지를 가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서로를 돌보지 않는 추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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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5-01-2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북플에서 제가 뭔가 잘못 건드렸나 보네요. 그냥 인용한 것인데 리뷰로 올라가다니...
아직 북플 사용이 익숙하지 않나 봅니다. 긁적긁적 ^ ^;....

드림모노로그 2015-01-2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런 경험을 ㅎㅎㅎㅎ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ㅎㅎㅎ~익숙해지겠지요 ㅎㅎ

오드득 2015-01-30 14:05   좋아요 0 | URL
앗! 드림모노로그님도 그러셨군요.^ ^ 저도 얼른 익숙해져야 할텐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