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왔군요. 도대체 몇 년이나 기다렸는지...

 리뷰도 쏙쏙 올라오는데 꽤나 괜찮게 나온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역자가 마음에 들더군요.

 영화 잡지 키노 때부터 익숙하게 보아왔던 이름인 김용언. 그 뒤 월간 판타스틱에서도 하드보일드물에 관한 글을 비롯하여 미스터리 장르에 관한 꽤 좋은 글을 쓰셨던 것 같은데요. 그 진가를 확인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책에서였습니다.


 이 책, 굉장하더군요.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미스터리물에 대하여 이런 정도의 책을 쓸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초창기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에 대한 전문적인 글을 원하신다면 첫 손가락에 꼽아두고 싶습니다. 그런 역자의 번역이니 믿고 보지 않을 수가 없죠.


 아무튼 과연 어떤 작품들이 실려 있을까 목차를 살펴보다가, 잘 안 알려진 작품도 제법 있는 것 같아서, 혹시나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 하실 분도 있을지 몰라 소개의 의미로다가, 물론 그렇다고 제가 많이 아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 이 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유명한 작품들은 생략하고 '정말 이건 모르겠다' 싶을 작품만 썼습니다. 물론 이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은 이것, 저것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뭐, 결국 중구난방, 내키는 대로 썼다는 거죠. 하하...


 그러면, 어쨌든 한 번 읽어보실까요? 뭐, 별 거 없을 지도 모릅니다만... 후후...    


1840’
에드거 앨런 포, 뒤팽 시리즈 _J. 월리스 마틴(1841~44)

1850’
찰스 디킨스, 《황폐한 집》_새러 패러츠키(1853)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_리타 매 브라운(1859)

1860’
메타 풀러 빅터, 《죽음의 편지》_카린 슬로터(1867)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메타 풀러 빅터는 여성 작가로 19세기의 미국에서 탐정 소설을 썼던 초창기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여성인데 이름이 빅터가 된 것은(원래 이름은 빅토리아.) 당시 여성이 쓴 책은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군요. 사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이 자주 남성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으니까요. 게다가 이 소설을 출판한 이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었는데 최초로 'DIME NOVEL(단돈 십센트로 살 수 있는 싸구려 소설, 초창기 추리 소설은 영국, 미국 할 것 없이 모두 저렴한 가격으로 유포되었죠)'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상품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니 출판의 생리를 잘 알고 있어서 아내에게 권유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메리 셀리도 그렇고 여성 작가는 최초부터 미스터리 장르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는데 여기에 어떤 상관 관계가 과연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카린 슬로터가 추천한 DEAD LETTER, 즉 죽음의 편지(사실 보다 정확한 의미는 죽음의 편지가 아니라 배달되지 못한 편지가 맞을 겁니다. 실제로 미국 우체국에는 배달되지 못한 편지를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그 곳을 'Dead Letter Office'라고 부르지요.)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 Dead Letter Office에서 일하는 남자입니다. 그는 우연히 미배달된 편지를 관리하다 동료들과 은밀히 범죄를 공모하는 편지를 발견합니다. 그게 미스터리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결국 감춰줬던 살인 사건의 비밀을 밝히게 되지요. DEAD LETTER는 미국에서 나온 최초의 장편 추리 소설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엔 1867년이라 되어 있지만 그 정확한 발행 일자는 사실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1866년 설과 1876년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최초이니 아무래도 그 정확한 'PIN-POINT'에 민감할 수밖에 없겠죠. 연도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외부 상황 탓이 아닐까 합니다. 그 때가 남북전쟁 중이었으니까요. (네, 전쟁 중에도 문학은 계속됩니다. 그게 또 문학의 위대한 점은 아닐지...)


윌키 콜린스, 《월장석》_앤드루 테일러(1868)

1890’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스의 모험》_린다 반스(1892)

1900’
아서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문의 개》_캐럴 오코넬(1902)

1920’
리엄 오플래허티, 《암살자》_디클런 버크(1928)



 아이리쉬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리엄 오플래허티. 네, 그는 아일랜드 작가입니다. 더구나 아일랜드 독립운동에도 상당히 깊게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때문에 그의 작품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더욱 의미가 풍성해집니다. 존 포드가 영화로도 만든 바 있는 전작 '밀고자(THE INFORMER)'와 이 작품, '암살자'가 특히 그러하지요. '암살자'는 제목 대로 킬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직 IRA 대원으로 한 때 추방되었다가 닉네임만 아는 'The tyrant'를 암살하기 위해 다시 돌아옵니다. '암살자'는 사실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1927년에 암살당한 Kevin O'Higgins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Kevin O'Higgins는 마이클 콜린스와 더불어 아일랜드 자유 국가(FREE STATE)를 세운 인물로 IRA가 소속된 공화국파와는 반대 입장에 있었습니다. 1921년 영국과 맺은 조약에 반발해 IRA는 급기야 더블린 시에 있는 아일랜드 대법원 포 코트를 점령했고 결국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내전 중 Kevin O'Higgins는 IRA의 포로 77명의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 보복으로 27년 더블린에서 IRA에게 암살당한 것입니다. 오플래허티의 '암살자'는 바로 그 사건을 통해 살인자의 내면을 매개로 삼아 아일랜드 내전이 남긴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어스킨 콜드웰, 《개자식》_앨런 거스리(1929)


1930’
대실 해밋, 《몰타의 매》_마크 빌링엄(1930)
대실 해밋, 《유리 열쇠》_데이비드 피스(1931)


도로시 L. 세이어즈, 《그의 시체를 차지하다》_레베카 챈스(1932)

 세이어즈의 대표작인 우아한 독신 귀족 피어 윔지 경 시리즈의 일곱번째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발간된 '맹독'에서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맹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소설에서 전 남자 친구를 비소로 독살했다는 누명을 쓴 미스터리 작가인 해리엇 베인을 기억하시겠죠. 왜 피터 윔지 경이 재판장에서 보고 한 눈에 반한 여인 말입니다. 'HAVE HIS CARCASE'는 피터 윔지 경의 도움으로 독살 혐의에서 풀려난 해리엇 베인에게 그 다음으로 일어났던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맹독'에서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배런 해변을 찾아 하이킹을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바다 가까이에 있는 해변의 한 바위에서 목이 잘려 죽어 있는 남자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미스터리 작가답게, 물론 시체를 만지는 것은 싫었지만, 이것저것 시체와 주변을 살피고 그것을 사진까지 찍은 다음 시체 발견을 알리려 전화를 찾아 나섭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위에 해리엇 베인의 발자국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는 쉽게 발견되지 않고 그동안 시체는 밀물에 휩쓸려 가 버립니다. 해리엇 베인은 시체의 발견을 피어 윔지에게 알리게 되고 연락을 받은 윔지는 순식간에 그녀에게로 달려옵니다. 경찰은 시체 없이 해리엇 베인이 찍은 사진만으로 신원을 파악하고 결국 자살로 결론짓는데 베인은 의혹을 품습니다. 그렇게 윔지와 베인은 의혹을 쫓아 단 둘이 시체에 얽힌 진실을 추적합니다. 그렇습니다. 'HAVE HIS CARCASE'는 맹독에서 발아하기 시작한 윔지와 베인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알콩달콩 자라나는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크루볼 코메디 영화 '어느날 밤에 생긴 일'에서의 클라크 게이블과 클로데트 클로벨 커플처럼 말이죠. 물론 그 영화처럼 코메디인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해리엇 베인이 실은 도로시 세이어즈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유명한 피터 윔지에 비해 무명인 미스터리 작가로 겪는 무시와 설움도 은근히 배여 있는 이 작품이 당시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여성 작가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참입니다. 아직 번역은 안되었는데 나온다면 꼭 '맹독'을 먼저 읽고 읽을 것을 권해드립니다.


레슬리 채터리스, 《신성한 테러》(a.k.a. 《세인트 대 런던 경시청》)_데이비드 다우닝(1932)

 혹시 예전에 해문출판사에서 아동용으로 나온 팬더추리걸작 시리즈를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이 서명이 낯익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나온 적이 있으니까요. 네, 바로 그 의적 사이먼 템플러가 범죄 현장에 남기는 자신의 서명(표식)입니다. '세인트(saint)'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영국에서는 사이먼 템플러', 미국에서는 '세인트'라고 부릅니다. 지금 읽으면 구식이겠지만 그래도 당대엔 제법 인기가 많아서 드라마와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007의 로저 무어도 영국 드라마에서 사이먼 템플러 역을 맡아서 유명해져서 007 배역까지 따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7년에도 필립 노이스 감독에 발 킬머와 엘리자베스 슈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었죠. 그 영화가 실패하는 바람에 더 이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폴 케인, 《패스트 원》_척 호건(1933)

 'FAST ONE'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비슷한 시기의 하드보일드 작가 폴 케인의 유일한 장편입니다. 그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똑같이 '블랙 마스크' 잡지를 통해 17개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 단편과 패스트 원을 모두 수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패스트 원'은 듣기에 미국의 대공황이 한창일 때 나온 작품이라 대공황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과연 척 호건 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벤 애플렉이 영화로도 만든 바 있는 소설 '타운'에서 보스턴에 있는 찰스 타운을 참 리얼하게 잘 묘사했죠. 작품이 차지한 공간의 생생한 리얼리티가 개인적으로는 척 호건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델 토로와 공저한 '스트레인'에서도 어둠과 공포가 물컹물컹 씹히는 뉴욕의 분위기를 잘 그리고 있더군요. 그래도 저는 소설 보다 드라마가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만^ ^;













제임스 M. 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조셉 핀더(1934)


현재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민음사 판본인데 번역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 매끄럽지 않아요.

 

 밥 라펠슨이 감독하고 제시카 랭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1981년작 영화, 추천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a.k.a. 《칼레행 객차의 살인》)_켈리 스탠리(1934)
대프니 듀 모리에, 《레베카》_미네트 월터스(1938)
그레이엄 그린, 《브라이턴 록》_피터 제임스(1938)
렉스 스타우트, 《요리사가 너무 많다》_알린 헌트(1938)
제프리 하우스홀드, 《고독한 사냥꾼》_샬레인 해리스(1939)

 역시 샬레인 해리스는 강하지만 고독하고 어디에도 깃들 수 없는 방랑자에게 끌리는 것일까요? 'ROGUE MOLE'의 주인공 로버트 헌터 역시 딱 그런 캐릭터입니다. 그는 2차 대전 발발 직전, 장차 히틀러가 커다란 비극을 가져올 것을 감지하고는 암살하기 위해 단신으로 독일로 건너 갑니다. 하지만 암살은 실패하고 결국 그는 SS 친위대에 잡히고 말죠. 게쉬타포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을 위기까지 처하지만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데 놀랍게도 게쉬타포의 추적이 거기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을 추적을 뿌리치다 끝내 살인 혐의까지 쓰게 되는데 이제 그는 어디로 갈까요? 과연 그에게 안식을 허락할 땅은 있을까요? 2차 대전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시대 정신이 잘 투영된 작품입니다.


 '고독한 사냥꾼'은 독일출신 감독인 프리츠 랑에 의해 1941년 느와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MAN HUNT'가 바로 그 작품이죠. 나찌의 위협을 무섭게 그려 당시 미 상원의원으로부터 대표적인 전쟁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더 영화라 비난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까지 미국은 중립법으로 인해 대전 불개입이 원칙이었죠. 물론 3개월 뒤인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다 무의미해집니다만...


1940’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_조 R. 랜스데일(1940)


 개인적으로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국 드라마 미스 마플에서도 마플이 탐독하는 소설로 나왔고, 1971년작인 마이크 호지스의 '겟 카터'에서도 주인공인 마이클 케인이 고향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열심히 이 소설을 읽더군요. 옥의 티는 내릴 때까지 페이지가 전혀 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최근에 봐서 기억하는 것이고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안녕 내 사랑'이 여기저기 꽤 나왔던 것 같아요. 작품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냥 생각나서 적어 봤어요. 작품이야 두 말할 것도 없는 훌륭한 작품이니, 뭐. 레이먼드 챈들러를 아직 만나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작품을 통해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패트릭 해밀턴, 《행오버 스퀘어》_로라 윌슨(1941)


 '행오버 스퀘어'는 런던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거리라죠. 그렇게 알콜 중독자에다 잘 안 팔리는 작곡가가 주인공입니다. 술 때문인지 그는 때때로 이명이 심해지면서 정신을 종종 잃곤 하는데 그 때문에 현실의 혼란스러움을 겪습니다. 그에겐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사실 그 여인은 그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용할 뿐입니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인 것이죠. 사랑에 상처 입은 주인공은 결국 그 여인을 살해할 결심을 합니다. '행오버 스퀘어'는 패트릭 해밀턴의 최고작으로 파시즘이 한창 창궐하던 시기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정신 상황을 잘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마르크시스트로서의 그의 면모가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해요.


제임스 M. 케인, 《사랑의 멋진 위조》_로라 립먼(1942)
레오 말레, 《가르 가 120번지》_캐러 블랙(1943)


 아, 레오 말레. 또 한 명의 안타깝기 그지 없는 작가의 이름이 나왔군요.

레오 말레는 매그레와 더불어 프랑스가 내놓은 가장 유명한 탐정인 네스토르 다이너마이트 부르마 시리즈로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미스터리 소설가이지만 정작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 작품 '가르가 120번지'는 레오 말레의 데뷔작으로 네스토르 부르마 탐정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레오 말레는 원래 급진적인 개혁주의에다가 좌파 그리고 아나키스트였죠. 부르마 형사 시리즈엔 그런 그의 성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부르마 탐정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에 대한 프랑스의 응답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무려 50년이나 이어질 정도로 명성이 있는 시리즈인데 우리나라에선 한 권도 볼 수가 없군요.


아벨 블랑섹 교수 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만화가 Jacques Tardi가 코믹판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에드먼드 크리스핀,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_루스 더들리 에드워즈 (1946)

 아아, 저도 이 작품, 우리 말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특징이라면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나 A. A 밀른의 '빨강 집의 수수께끼'처럼 미스터리에 코믹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것이겠죠.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는 크리스핀의 Gervase Fen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입니다. Gervase Fen은 참 이력이 특이한데 원래는 옥스포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서 취미로 탐정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는 시리즈의 최고작으로써 P.D 제임스도 가장 훌륭한 미스터리 다섯 작품 중의 하나로 꼽기도 했었죠. 어느 날, 밤늦게 옥스포드에 도착해 잘 곳을 찾던 시인 리처드는 우연히 장난감 가게에서 한 늙은 여인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깜짝 놀라서 달아난 그는 다음 날 아침 경찰을 대동하고 그 장난감 가게로 왔는데 왠걸 시체가 있는 장난감 가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글쎄 깜쪽같이 식료품 가게로 바뀌어져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제목이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 인 것입니다. 하여간에 경찰에게 무안만 잔뜩 당한 리처드는 그 길로 당장 펜에게 달려가 그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마지막의 회전 목마 장면일텐데 바로 그 장면의 영감을 히치콕은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미스터리 풀이의 순수한 재미를 주는 이 작품, 언젠가는 우리 말로 꼭 읽게 되길 기원합니다.


도로시 B. 휴스, 《고독한 곳에》_메건 애버트(1947)

정말 강추합니다.


조르주 심농,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_존 반빌(1947)

 매그레 시리즈를 제외하고 심농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죠.

 주인공은 찰스 알비온. 어여쁜 아내에다 귀여운 두 딸 그리고 헌신적인 엄마, 성공한 의사. 그의 삶은 어디로보나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알비온 자신은 그동안 자신이 삶이 마치 몽유병자로 살아온 것처럼 공허하다고 여깁니다. 뭐랄까요, 문득 회의감에 빠져버린 파우스트라고 할까요. 책의 표지는 그러한 알비온의 허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그러다 알비온은 여행 도중 우연히 첫 눈에 그만 사랑에 빠지고만 여인을 만나는데... 이쯤되면 왜 제목이 'act of passion'이 아실 듯 합니다. 과연 그녀는 그레첸인 것일까요? 아니면 메피스토텔레스인 것일까요? 


미키 스필레인, 《내가 심판한다》_맥스 앨런 콜린스(1947)
캐럴린 킨, 《블랙우드 홀의 유령》_리자 마르클룬드(1948)
조세핀 테이,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_루이즈 페니(1948)


 테이는 그저 'SIMPLY BEST' 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 《리틀 시스터》_마이클 코넬리(1949)
조세핀 테이, 《브랫 패러의 비밀》_마거릿 마론(1949)



1950’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낯선 승객》_에이드리언 매킨티(1950)

하이스미스의 문장은 제게 늘 면도날 같은 느낌을 줍니다. 플롯에 대한 느낌도 비슷해요.

그런 하이스미스의 최고작은 개인적으로 리플리가 아니라 낯선 승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1951년에 만든 영화, 추천합니다.

진정한 악역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대담에서 트뤼포도 칭찬했었죠.)

각본도 무려 레이먼드 챈들러 입니다.(이래도 안 볼 거예요?)


마저리 앨링엄, 《연기 속의 호랑이》_필 릭먼(1952)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마저리 앨링엄만큼 비운의 여성 작가도 없을 겁니다. 대표작인 알버트 캠피온 시리즈로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끌어갔던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나이오 마시와 더불어 사두마차 중 한 사람인데 정작 우리나라엔 하나도 소개된 것이 없으니까요. 과연 언젠가 그녀의 작품을 우리 말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올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연기 속의 호랑이'도 알버트 캠피온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14번째 작품이죠. 동시에 앨링엄의 대표작이자 영국이 산출한 스릴러 문학의 최고작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쓰쓰이 야스타카의 '부호형사'의 아이디어는 분명 이 알버트 캠피온에게서 가져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연기 속의 호랑이'는 런던으로 탈옥한 한 킬러를 쫓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의 호랑이가 바로 그 킬러를 뜻하죠.('스모크'는 런던을 뜻하는 은어.) 이름은 잭 하복. 캠피온이 맞이하는 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한 악당입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악당이죠. 흔히 죠세핀 테이의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과 마저리 앨링엄의 '연기 속의 호랑이' 그리고 P.D 제임스의 '그녀의 얼굴을 가려라(Cover Her Face)'를 미스터리 황금기의 가장 색다른 작품 셋으로 꼽곤 하는데 '연기 속의 호랑이'는 가장 강렬한 악당 캐릭터가 등장하듯 범죄보다 인물의 행동과 심리 묘사와 분석에 더욱 치중하는 작품입니다. '연기'가 상징하듯이 세계 제2차 대전이 가져다 준 선악의 모호함과 같은 전통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자장 안에서 배태될 수밖에 없는 불안과 광기를 투명하게 드러내려는 작품이죠. 그런 면에서 꼭 한 번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현이 요원하긴 하지만. 참고로 해리포터의 J.K 롤링도 이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는군요. 최근 진행 중인 코모란 시리즈에서 강조되는 불안도 어쩌면 여기서 영향 받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엘리엇 체이즈, 《나의 천사는 검은 날개를 가졌다》(a.k.a. 《원 포 더 머니》)_빌 프론지니(1953)


윌리엄 P. 맥기번, 《빅 히트》_에디 멀러(1953)


같은 해에 나온 '메트로폴리스'의 프리츠 랑이 감독한 '빅 히트'입니다.

영화사적으로는 자동차 폭발로 사람이 살해당하는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죠.

'빅 히트'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고

맥기번의 소설은 1956년작인 '파일 7'이 유일합니다.

제목은 FBI가 유괴 사건을 분류할 때 붙이는 번호라고 하는군요.

동서미스터리치고는 번역도 준수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존 D. 맥도널드, 《사형 집행인들》(a.k.a. 《케이프 피어》)_제프리 디버(1958)


무려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이전 영화에서 로버트 미첨 역을 맡은

 '케이프 피어'가 두 번째로 영화화한 작품.

존 D 맥도널드도 우리나라에선 참 비운의 작가죠.

명실상부한 그의 대표작인 트레미스 맥기 시리즈조차 한 권 나오고 끝나버린 ㅠ 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약속》_엘리사베타 부치아렐리(1958)


드디어 뒤렌마트의 '약속'이 재간되었습니다!

이거 재간되길 기다리셨던 분들 많지 않나요?


1960’


클래런스 쿠퍼 주니어, 《더 신》_개리 필립스(1960)
마거릿 밀러, 《내 무덤의 이방인》_디클런 휴스(1960)


 영미의 평가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선 상당히 열악한 인지도 때문에 마거릿 밀러의 소설이 잘 소개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네요. '내 무덤의 이방인'은 마거릿 밀러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 받는데 반복적으로 꿈에서 자신의 무덤을 보게 되는 데이지라는 이름의 젊은 여인이 주인공입니다.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마치 수호자처럼 지키고 있는 무덤의 꿈을 계속 꾸는데 자신의 무덤이니만큼 역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비석에 새겨진 날짜가 될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꿈은 그 날짜를 보여주지 않는데  꿈이 너무 생생하여 데이지는 무신경할 수 없어 무덤의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보석 보증인이자 때때로 사립탐정 일도 하는 스티브를 고용합니다.

그러다 놀랍게도 데이지가 꿈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무덤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가 살펴보니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

과연 여기엔 어떤 미스터리가 있는 것일까요?

피를 베였을 때, 선혈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듯이 일상 속에서 공포가 스멀스멀 닥쳐오는 것과  그로 인한 심리적 긴장감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마거릿 밀러의 재능이 한껏 드러난 작품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말로 볼 수 있을지 ㅠ ㅠ...


해리 휘팅턴, 《한밤의 비명》_빌 크라이더(1960)
찰스 윌리퍼드, 《여자 사냥꾼》_스콧 필립스(1960)
에릭 앰블러, 《한낮의 빛》(a.k.a. 《톱카피》) _M. C. 비턴(1962)

 우리에겐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이나 '디미트리오스의 관' 으로 유명한 에릭 앰블러의 소설.

 그런데 저는 영화가 더 좋더군요.

 

 에릭 앰블러 자신이 각본가로 참여해서 그런지 쥴스 다신이 영화로 꽤나 잘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RIFIFI와 더불어 대표작이죠. 줄스 다신의 아내이자 그 삶을 안다면 더욱 반할 수밖에 없는 메리나 메르쿠리가 여주인공을 맡아 실존하는 이스탄불의 TOKPAI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보석 단검을 훔치는 절도단의 일원으로 열연합니다. 감히 케이퍼 무비의 최고작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괜히 오마쥬를 바친 게 아니죠.


P. D. 제임스, 《그녀의 얼굴을 가려라》_데보라 크롬비(1962)

 무조건 읽어야 할 P.D 제임스 최고의 작품입니다.


케네스 오비스, 《저주받은 자와 파괴된 자》_리 차일드(1962)
리처드 스타크, 《사냥꾼》(a.k.a. 《포인트 블랭크》/《페이백》)_F. 폴 윌슨(1962 )


니컬러스 프릴링, 《버터보다 총》(a.k.a. 《충성의 질문》)_제이슨 굿윈(1963)

 아, 이 작가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워요. 장편만 무려 11권이 나온 그의 유명한 Van der Valk 형사 시리즈가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으니까요.ㅠ ㅠ 'GUN BEFORE BUTTER'는 63년에 나온 시리즈 중 세번째 작품으로 그해 골든 대거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엘머 멘도사(1963)
에드 맥베인, 《10 플러스 1》_디언 마이어(1963)
로스 맥도널드, 《소름》_존 코널리(1963)


짐 톰슨, 《인구 1280명》_요 네스뵈(1964)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요 네스뵈가 자신의 베스트 소설 중 하나로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를 꼽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이번에도 짐 톰슨의 소설을 선택했네요. 짐 톰슨의 소설은 데뷔작 '내 안의 살인마'를 비롯하여 '겟어웨이' '그리프터즈' '파이어웍'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 그리고 '인구 1280'까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참 많은데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일직선으로 명확하게 진행되고 묘사가 선명해서 영상화가 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영화광이기도 한 요 네스뵈에게 영향을 미쳤겠죠. 신기하게도 짐 톰슨의 소설은 프랑스에서 자주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인구 1280'도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가 감독했습니다. 꽤나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인데 의외로 이 감독, 장르물과 친숙한가 봅니다. 데뷔작도 '생 폴의 시계상'이라고 조르주 심농의 소설이거든요. 아무튼 '인구 1280명'은 아주 무능하고 게으르며 하루에 다섯 끼나 먹는 보안관이 주인공입니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보안관 생활을 계속하던 그는 점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곤경에 처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 안의 살인마'처럼 보안관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캐릭터와 심리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짐 톰슨이니만큼 이 작품도 20세기 중반의 아주 중요한 범죄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이 셰발 & 페르 발뢰, 《로제안나》_추 샤오롱(1965)
트루먼 커포티, 《인 콜드 블러드》_조셉 웜보(1966)
애거서 크리스티, 《끝없는 밤》_로렌 헨더슨(1967)
피터 디킨슨, 《스킨 딥》(a.k.a. 《유리벽 개미 둥지》)_로리 R. 킹(1968)
로스 맥도널드, 《작별의 표정》_린우드 바클레이(1969)

 이렇게 1960년대까지 써 봅니다. 원래는 하나의 페이퍼로 다 쓰려했는데 너무 길더군요. 여기서 잘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소개하고 싶은 건 모두 이 시기의 작품들이라서 그 후는 안 쓸 지도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시간이 난다는 전제 하에서 다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여기까지 읽은 수고를 위해서라도 뭔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그럼, '죽이는 책'도 나왔으니 앞으로 미스터리의 영토가 더욱 확장되고 풍성해지길 빌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오나 2015-02-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포스트 대단합니다!! 안그래도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고민중이었는데...가격도,두께도 만만치않아서요ㅋㅋ 근데 이 포스트를 읽고나니 안 살 수가 없겠는데요 ㅎㅎ

오드득 2015-03-10 23:45   좋아요 0 | URL
피오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 그동안 바빠서 서재에 못 들어와서 이제야 이렇게 댓글을 다는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 저는 평론가들의 미스터리 해설 보다는 `라인업`처럼 현역 작가들이 미스터리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 더 좋더군요. 그래서 이 책은 필견 목록에 올라와 있었고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다린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피오나님의 감상은 어떠할 지 정말 궁금하네요. 언젠가 꼭 고견을 들려주시기를^ ^

붉은돼지 2015-02-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이는 책에 대한 죽이는 페이퍼!! 입니다~

오드득 2015-03-10 23:47   좋아요 0 | URL
앗! 붉은돼지님 감사합니다.
붉은 돼지님의 댓글도 완전 쿨한, 죽이는 댓글입니다~ ^ ^
거기다 붉은돼지는 진심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랍니다.
그런 붉은돼지 님의 칭찬이라 더욱 기분이 좋네요^ ^

마녀고양이 2015-02-2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매번 헤르메스님의 글에 감탄하게 되는군요.
이름만 들어본 작가가 참으로 많네요, 갑자기 청소년 때 추리 소설 뒤편에 있던 번역 후기나 참고 글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추리물이나 SF 물을 보면서 너무 안타깝고, 읽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생각납니다. ^^

오드득 2015-03-10 23:51   좋아요 0 | URL
아이, 마녀고양이님도. 제가 마녀고양이님의 글에서 감탄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걸요^ ^
우리나라 출판 규모가 세계 3위라고 하지만 이렇게 소개되지 않은 작가, 작품만 봐도 그것은 양에 대한 것일뿐, 질에 대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녀고양이님과 똑같이 발을 동동 굴렸죠.
혹시, `세계의 명탐정 44인`이라는 해문에서 나온 책 아시나요? 저는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그 책을 읽을 때가 그랬습니다. 44인의 명작과 트릭이 소개되어 있는데 정작 읽을 수 있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니....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이 페이퍼를 쓰면서 히딩크처럼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네요.
이웃 일본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역시 인구 규모에 달린 일일까요~ ㅠ ㅠ

yamoo 2015-03-0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찾고 있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된 끝내주는 포스팅이네요!!! 감사합니다~ 헤르메스님~!!!
근데, 번역이 안 된 작품이 상당 수 포함된 거 같고....현재 구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합니다..

저는 이 중에서 3권 정도 추려서 볼 요량입니다.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3개만 꼽아 주신다면 영광이겠어요~ 헤르메스님^^

오드득 2015-03-11 00:03   좋아요 0 | URL
yamoo님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 또한 늘 늦게 댓글을 달아서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어요. 죽이는 책에 실린 작품들을 쭉 일변해 봤는데 현재 구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ㅠ ㅠ
솔직히 저는 책 추천을 가장 어려워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들어가서 객관적인 선택이 어렵거든요. ㅠ ㅠ
그런 것을 감안하고 꼽아본다면 번역된 것 중에서 역시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 사랑아` (이미 읽으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명작을 빼놓기가 어려워서요. 요즘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읽으면 더욱 울컥할 장면이 있습니다. `도덕적 재무장`을 외치는 장면 말이죠.)
`죠세핀 테이 `브랫 패러의 비밀`
그냥 제 생각에 로맨스 물은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 이 작품을 택했습니다. 테이의 매력을 가장 쉽게 알려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낯선 승객`
`교환살인`이라는 당시로서는 대담한 수법을 가지고 온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의 원초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서 선택했습니다. 물론 영화로 너무 멋지게 만든 히치콕의 영향도 있습니다 ^ ^
이렇게 저 개인적으로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한 가운데 선택해 봤습니다. 제가 쓴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드시기를 바란다는 말이 왜 이리 굴뚝처럼 솟아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

2015-03-12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뉴욕의 마천루 아래를 걷다가 스트로베리 필즈를 지나 센트럴 파크 깊숙이 들어가다보면 갈수록 점점 더 별천지에 온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내내 오감을 괴롭히던 회색빛 도시의 소음과 번잡함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 여유와 평온을 머금은 것 같은 초록빛 자연을 흠뻑 느끼는 까닭이다. 그 때의 기분은 뭐랄까,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뉴욕 뉴욕'에서 다음과 같은 가사랑 비슷하다.


These little town blues are melting away.

I'm gonna make a brand new start of it,

in old New York, and...

센트럴 파크의 모습


 너무나 다른 분위기라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지도 모른다. 요술문을 통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니까. 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삶이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자주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말로 묘사하기도 한다. 상상할 수 없었던 아주 뜻밗의 것을 만나는 것은 문을 열자 완전히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 것과도 같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처음 오즈의 나라에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콘크리트 밀림에 대조적인 초록빛 가득한 센트럴 파크의 생경한 풍경은 실로 현실로 도래한 '오즈의 나라' 같다. 어쩌면 뉴욕 태생인 프랭크 바움은 정말로 센트럴 파크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오즈의 마법사'를 썼는 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는 바움이 태어난 바로 다음 해(1857)에 개장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마치 도로시의 후예이기라도 하듯, '센트럴 파크'에서 진실로 살면서 가장 낯선 경험을 하게 된 이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기욤 뮈소의 소설 '센트럴 파크'의 주인공 알리스이다. 그녀는 아침 햇살이 처음으로 뉴욕을 비칠 무렵 센트럴 파크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 기억하는 것은 어젯밤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는 것 뿐. 집으로 돌아간 기억은 없다. 깨어나 보니 여기인 것이다. 그런데 위화감은 그것만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일어난 것도 모자라서 한 팔엔 수갑까지 차고 있다. 더구나 그 수갑의 다른 한 쪽을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차고 있다. 이 수갑은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사실 프랑스 경찰이고 강력반 형사다. 당황하며 일어나 살펴보니 놀랍게도 자신의 옷에 누군가 다른 사람의 혈흔이 잔뜩 묻어있다. 수갑 열쇠를 찾으려 호주머니를 뒤졌으나 그것도 없다. 설상가상.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러나 더욱 경악할만한 사실이 하나 더 남았으니, 자신의 권총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남의 권총이 자기의 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더구나 그 권총엔 총알 하나가 사용된 흔적이 분명했는데...


 남자도 난다. 남자의 이름은 가브리엘. 그도 어쩌다 지금과 같은 꼴이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더구나 그는 이 곳이 아일랜드라 여긴다. 그녀는 가브리엘에게 멍청하다면서 여기는 프랑스라고 말한다. 남자는 알리스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절대 프랑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옥신각신. 하지만 수갑을 풀기 위해 도움 줄 사람을 찾아 나섰을 때 그들이 보게 된 것은 보우 브릿지. 센트럴 파크의 명물이라는 바로 그 다리.


보우 브릿지


 "그.. 그렇다면 여기는 뉴욕? 도대체 어떻게?"

 대뇌의 전두엽까지 미치는 충격의 전율 속에서 그들은 아연실색할 뿐. 그도 그럴 것이 하룻밤 사이에 하나는 프랑스에서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에서 뉴욕까지 와서는 그것도 센트럴 파크에서 수갑을 각각 한 쪽씩 차고 깨어난 것도 모자라 지갑도 없고 신분증도 없으며 옷에는 다른 사람의 혈흔이 묻어 있고 한 발을 쏜 남의 권총까지 소지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조차 겨우 예고편에 불과하다. 더욱 놀랄만한 일들이 그들의 뒤통수를 정조준하며 언제 한 방을 먹일지 잔뜩 벼르고 있으니까.


 기욤 뮈소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스릴러 '센트럴 파크'는 양파 껍질을 까듯 거듭된 반전을 좋아하는 이라면 환영할만한 작품이다.



 전혀 낯선 곳에서 기억을 부분 상실한 채 깨어난다는 설정 자체야 영화만 해도 '큐브'와 '쏘우'가 있고 같은 스릴러 소설에서도 '본 아이덴티티'가 있을만큼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흥미롭게 끌어나가고 독자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곳에서 뜻밗의 반전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좋기에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독자에 따라서는 마지막 반전을 심드렁하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마도 그동안 기욤 뮈소의 소설을 즐겨 읽은 이라면 그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 소설은 데니스 루헤인이 쓴 어떤 작품의 반전과 꽤나 유사하다.(제목을 밝히지 않겠다. 밝히는 것 자체가 이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므로) 데니스 루헤인의 비난(어쩌면 소송까지)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그건 그렇고 '알리스'라는 여주인공 이름 말인데 아무래도 배경이 '센트럴 파크'이다 보니 이 이름에서 바로 연상되는 것이 있다. 바로 센트럴 파크 동쪽 끝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동상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대략 이 동상의 크기를 짐작하실듯...

 꽤나 유명한 동상으로 아이들이 센트럴 파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상이기도 하다고 한다. 아마도 여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이 동상의 주인공 엘리스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서 그녀가 처한 상황은 상상도 못했던 낯선 상황에 빠져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그대로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소설에서 알리스는 센트럴 파크의 서쪽에 있는'램블'에서 깨어나는데 그것은 그대로 엘리스 동상이 있는 장소인 동쪽의 프랑스 여자가 서쪽의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깨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설을 읽어보면 기욤 뮈소가 센트럴 파크를 꽤나 열심히 답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쩌면 그러다 이 동상이 마음에 든 그가 그대로 소설의 인물로 형상화 하자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이름이 가브리엘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성경에서 마리아에게 예수의 수태 고지를 한 천사로 유명한 가브리엘은 흔히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욤 뮈소가 바로 그 천사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연상시키고자 그 이름을 남자에게 부여한 것임을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욤 뮈소는 하필이면 왜 가브리엘 천사를 가져와야 했을까? 여기서 눈치 빠른 당신은 어쩌면 이 소설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릴 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 소설은 스릴러이지만 실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소설의 여정은 지금 그들에게 닥친 낯선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그럴수록 밝혀지는 것은 지금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그녀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연쇄 살인을 단독으로 수사한 적이 있다. 임신으로 휴직한 상태였지만 언제나 아버지처럼 영웅적인 경찰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임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적을 감행하여 결국 범인을 밝혀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오히려 범인에게 공격당해 태중의 아이가 죽고 그것에 충격받은 사랑하는 남편마저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녀는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가족도, 같은 경찰들의 인망도. 그것도 영웅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열망 때문에.


 나는 기억한다.

 2011년 11월 21일에 자만심과 허영심에 사로잡힌 나는 지나친 만용을 부리다가 내 아기와 남편을 죽게 한다. (p. 154)


  그녀의 고백 그대로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있는 가브리엘 역시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너무 자신에게만 골몰하느라 가족과 생이별한 처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둘은 닮았고, 닮은 그들이 지금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여정은 그리하여 두 개의 매듭을 푸는 것과 같다. 하나는 지금 처한 현실의 매듭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기심이 빚어낸, 그리고 이제는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과거의 매듭이다.


 푸는 과정은 속도감 빠른 전개와 거듭된 반전으로 재미나게 읽히지만 기욤 뮈소는 그러다가도 문득 주인공의 과거 기억과 심리를 투명하게 건져내어 적절하게 던져줌으로써 비트가 빠른 댄스 음악을 한창 듣다가 불현듯 차분한 명상 음악을 듣게 되는 것과 같은 순간을 마련한다. 마치 어쩌면 언젠가의 나였을 지도 모르는 그들의 실수와 상처의 결들을 읽으면서 문득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을 멈추고 나는 어땠는가 헤아려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빠지는 허영, 자만이란 어느 누구도 걸려들 수 있는 것이기에....


 소설은 정말로 이런 순간을 마련한다.


 우리의 생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지닌 모순, 두려움, 회한, 분노, 머릿속에 들어 있는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 안아주는 당신의 반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p. 87)


 기욤 뮈소는 분명 자신의 소설이 그런 반쪽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랬기에 '센트럴 파크'를 굳이 제목으로 썼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진실로 정신없는 뉴욕을 걷다가 센트럴 파크에 들어서면 그동안 겪은 모순, 두려움, 회한, 분노,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한 순간 씻겨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이다. 센트럴 파크는 그런 문의 공간이자 어찌 보면 뉴욕이 가진 구원의 땅이다. 뉴욕인들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150년 이상이나 열심히 보존했던 것이리라. 제목인 '센트럴 파크'도 이 소설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기욤 뮈소의 바람이 투영되어 있다. 알리스가 그랬듯이 아무리 어둡고 고통에 찬 인생이라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꼭 '센트럴 파크'와 같은 곳이 있다는 믿음을 이 소설을 통해 주고 싶은 것이다. 비록 잘 보이지도 않고 찾기도 어려워서 자주 우리는 낙담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소설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굳게 닫힌 절망의 문을 여는 희망의 바람이 되었으면 하는 뮈소의 소망이 담긴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의 주인공 독백은 차라리 기욤 뮈소의 간구 같기도 하다. 그 간구의 마음은 '아마도'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들에게 삶은 언제나  예측불가능으로 넘치는 '아마도'일 것이다. 너무나 세상의 고통과 불안에 지친 우리들은 그 예측불가능성을 오로지 절망의 무게로 여긴다. 하지만 기욤 뮈소는 너무 그렇게 보지 말고 오히려 잠재된 희망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소설 마지막에서 많이 반복되는 '아마도'는(그 뒤에 따르는 내용과 결부지어 보면) 분명 그런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사르트르는 '작품이란 작가의 기도다'라고 말했다. 그대로 이 소설도 언젠가는 꼭 삶의 '센트럴 파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기욤 뮈소의 기도라고 생각된다. 이런 진심을 재미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그려내고 있기에 소설이 더욱 마음에 든다. 문득 궁금하다. 당신은 이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게 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5-02-2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파 껍질을 까듯 거듭된 반전, 이런거 저는 완전 좋아합니다. ^^
기욤 뮈소는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작가였는데, 헤르메스님 소개의 마력에 다시 빠져드네요. 에궁, 책임지세요.

오드득 2015-03-11 00:06   좋아요 0 | URL
반전은 진짜 많이 나오는데 결말 때문에 점수를 다 까먹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마녀고양이님도 분명 데니스 루헤인의 그 소설을 읽었을 것 같아서 말이죠. 물론 책임은 지겠습니다.
언제든 말씀 하세요. AS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
 
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반전은 스릴러가 재미있으려면 필요한 동력과도 같다.

 강한 인상은 자주 강한 반전으로부터 왔다. 때문에 스릴러는 저절로 하나의 한계 지점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역순의 불가능성’이다. 반전이 가능한 것은 언제나 두터운 베일로 가려진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 덕분이었다. 하여 작품 시간의 순서는 미래에서 과거로 거꾸로 흘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가장 충격적인 반전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생각해 보라. 엘쿨 포와로가 이미 범인을 밝힌 상태에서 거꾸로 소설이 진행된다면 분명 그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의 충격을 절대 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도서추리라는 것도 있다. 예전에 유명했던 추리 드라마 ‘형사 콜롬보’처럼 처음부터 범인과 범행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순서가 뒤바꼈다는 의미에서 ‘도서추리’라 부른다.


 그러나 이 장르의 주안점은 반전이 아니다. 이미 범인과 범행이 다 밝혀졌으므로 반전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르가 더 주안점을 두는 것은 ‘서스펜스’다. 과연 범인이 잡힐까, 안 잡힐까? 독자는 범인에 감정 이입하여 그 과정을 긴장감 넘치게 경험할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도서추리는 단지 범인과 범행을 먼저 보여줄 뿐, 시간의 역순은 아니다. 소설 속 시간은 언제나 미래로 흐른다. 어쨌든 역순은 반전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미래로의 타임 슬립이 불가능하지만 스릴러에서는 반전 때문에 과거로의 타임 슬립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예외없는 법칙은 없었던 것일까? 그걸 가능하게 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링컨 라임 시리즈로도 유명한 제프리 디버의 ‘옥토버리스트’다.



 이 책 전체가 제프리 디버의 매지션즈 샐랙트와 같으므로, 독자는 디버가 확고하게 지배하는 게임의 룰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감옥 이미지를 배경으로 찍어보았다. 표지의 영어 문장은 첫 시작이 되는 챕터 36의 마지막 부분을 가져왔다. 즉, 실제론 이 소설의 결말이다. 당신은 표지에서부터 이것을 읽고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결말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렇게 역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사진은 소설 속 챕터의 모습을 인용한 것.


반전 때문에 역순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옥토버 리스트’는 오히려 반전을 위해 역순을 취한다. 정면승부! 이건 보란듯이 확고한 역순의 불문율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니  흡사 창을 휘두르며 단신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 속으로 뛰어드는 조자룡과도 같다.



데이빗 보위의 출세작인 '지기 스타더스트'는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사진은 그 ost의 안쪽 면을 찍은 것. 커버의 보위의 사진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을 거꾸로 배열했다. 뒤쪽 커버엔 완전히 다 타버린 사진이 찍혀있다. 형식이 정확히 '옥토버 리스트'와 똑같은 지라 생각나서 같이 찍어 본 것. (앗, 몰랐는데, 저 아래의 것은 냥이의 발...! 언제 들이밀었단 말이냐!^ ^;)


사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위에 인용한 챕터의 시작 페이지를 넘기면 이렇게 어김없이 사진 한 장이 등장한다. 챕터 내용 중의 한 장면을 찍은 것인데 제프리 디버가 직접 찍었다. 그냥 흥미를 돋구기 위해 넣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매지션즈 셀렉트!


 그럼, 결말은? 과연 소설은 결말에서 시작한다. ‘뭐야? 그럼, 시시하겠는 걸!’ 하지만 막상 읽으면 ‘정말 이게 결말이란 말이야?’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무언가 중간에서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에 나올 시작의 반전을 위해 뭔가를 감춘 것이 분명하다. 역시 반전의 백만 대군이 가진 힘은 강했던 것일까? 조자룡이 된 제프리 디버는 그래도 한쪽 팔은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역순 보다도, 마지막의 반전 보다도 더 놀라운 반전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우리가 보았던 그리고 흐지부지하다고 생각했던 시작이 확실한 결말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걸 아주 마지막에 가서야 한 문장으로 알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깜짝 영상이 나와서 진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와 같다. 그리고 깨닫는다. 두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도 몰랐다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소설의 진정한 체크메이트다!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가지고 뒷 페이지를 넘기게 하려면 종결을 감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야 완벽한 역순이라고도 할 수 없다. 체스의 체크에 불과하다. 진정한 역순, 외통수인 체크메이로 만들려면 시작은 어디까지나 진짜 결말이어야한다. 진짜 결말을 스포일러하면서도 뒷 페이지를 아니 넘길 수 없게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제프리 디버는 해 낸 것이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읽어라! 그래야 진짜 결말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제프리 디버는 책 자체를 하나의 퍼즐로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선 책 자체가 매지션즈 셀렉트다. 이 소설은 진짜 독자와의 게임인데 제프리 디버는 게임을 확고하게 지배하면서 거기로 뛰어든 독자를 가지고 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진짜 즐기는 방법은 되도록 아무 것도 모르고 게 좋다. 그래서 이야기의 소개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세세한 분석을 할 수 없는 것도 나로서는 실로 유감이다. 아무튼 읽는 동안은 꼼꼼히 읽어야 한다. 책의 모든 것이 단서다. 과정의 재미는 그 디테일의 역순에서 나온다. 


 단언컨대, ‘옥토버 리스트’는 가장 인상적인 스릴러 중 한 편이 될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5-02-2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이거 큰일이네요
제가 링컨 라임 시리즈를 하나씩 사모으다가 이제 슬슬 질려서 홀랑 팔아치우려고 새해 결심을 했는데.. 오늘 헤르메스님의 유혹을 마주치는군요

아아.... 가장 인상적인 스릴러라니, 과감하게 결말부터 시작이라니 ㅠ

헤르메스님 설 잘 지내셨죠? ^^

오드득 2015-02-23 01:02   좋아요 0 | URL
앗!! 마녀고냥이님, 어느 틈에 오셨다 가셨나요? 정말 반갑습니다^ ^ 마녀고양이님은 설날 잘 보내셨나요? 저는 연휴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은 기분이네요, 하하^ ^; 솔직히 디버의 경우, 저는 본류인 링컨 라임보다 이런 스탠드 얼론이 더 재밌더군요. 예전에 `엣지`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작가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옥토버 리스트`는 그런 성향이 한껏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5-02-27 17:43   좋아요 0 | URL
실은 최근에 `엣지`를 읽었는데
책장이 너무 안 넘어가서 고생을 좀 했어요. 아무래도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잠시 쉬었다 읽어야 할까봐요.
그러니 너무 유혹하지 마셔요.... 아하하.

yamoo 2015-02-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재밌을 거 같은 책이네요....요즘 스릴러나 추리소설 찾고 있었는데...제대로 걸린 느낌입니다..ㅎㅎ

내친김에 로버트 러들럼의 책처럼 재밌는 첩보소설 3권 정도 추천 부탁드립니당~

오드득 2015-02-27 00:01   좋아요 0 | URL
저는 꽤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인데 yamoo님 마음에도 드셨으면 좋겠네요^ ^
오,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면 전 언제나 존 르 카레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데뷔작인데 이언 플레밍이 구축한 스파이 소설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고 보아도 무방한 작가입니다. 물론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추천이구요. 여기에 하나 더 플러스 한다면 박찬욱 감독도 최고의 스파이 소설로 꼽은 바 있는 로버트 리델의 `르윈터의 망명`을 추가하겠습니다.(번역의 질은 어느 정도 감안하셔야 할 겁니다만 ㅠ ㅠ) 같은 작가의 `레전드`도 정말 강추합니다.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어벤저`도 마음에 들어하실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도 정말 끝내주더군요.
참고로 예전에 로버트 러들럼의 `마타레즈 서클`이 나왔을 때 쓴 리뷰 하나를 링크 해 둘게요.
http://blog.aladin.co.kr/748481184/5266565
개인적으로 이언 플레밍, 존 르 카레, 로버트 러들럼을 비교해 본 것입니다.(그런데 너무 기네요. ㅠ ㅠ. 이 때는 왜 이렇게 길게만 썼는지 ㅠ ㅠ)

yamoo 2015-03-01 15:28   좋아요 0 | URL
추춘나라에서온스파이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어벤저
마타레즈클럽

모두 본 것이에요...ㅜㅜ
로버트 리델의 <르윈터의 망명>과 <레전드>를 찾아 보겠어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와우! 소니가 스파이더맨 영화 판권을 마블에게 넘겼다고 한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서, 영화화를 마블에 허락한 것으로 다 넘기는 것은 아니다. 소니와 깉이 영화를 만들게 된다.) 마블 공식 홈페이지에서 메인으로
알리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아무래도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의 실패가 소니에게 꽤나 뼈 아팠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제 어벤져스 영화에서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 활약하는 스파이더맨을 보게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팬으로서는 굉장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벌거벗음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영훈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지금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철학자 중의 하나다. 아감벤의 저서를 읽어보았다면 '벌거벗음'이야말로 아감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유 대상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아감벤의 주저이자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호모 사케르'에서 그가'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다.'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도대체 '벌거벗음'이 무엇이기에 아감벤은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호모 사케르'에서 그는 먼저 고대 그리스의 생명관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명을 두 가지 용어로 구별하여 사용했는데 하나는 '조에'라고 해서 모든 생명체에 공통되는 그저 '살아있다'라는 의미로 썼고 다른 하나는 '비오스'라고 해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고유한 삶의 방식이나 형태를 가리키기 위해 썼다. 그러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면 서서히 가치 있는 삶만이 진정한 삶으로 존중받는데 아감벤은 바로 이러한 분리와 목적 중시 태도가 근본적으로 문제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삶은 하나의 지속이며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데 이러한 분리적 사고와 목적 중시 태도는 삶을 파편화시키고 그 파편화된 삶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벌거벗음'이 아감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분리된 삶을 결합하여 '삶-의-형태'로 삶을 바라보게 만들고 '벌거벗음'이라는 상태는 다른 것 하나 없이 오로지 현시된 육체 자체가 모든 의미이므로 삶을 목적 혹은 결과를 통해 바라보게 하지 않고 그 순수한 지속에서 혹은 순수한 경험에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즉 아감벤에게 '벌거벗음'은 사유 자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사유란 '우리가 가진 삶의 형태를 [삶을 그 형태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맥락으로, 즉 '삶-의 -형태'로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감벤에게 사유란 한 개인이 행사하는 정신적 능력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인간 지성의 잠재적 성격을 대상으로 하는 경험', 나아가서는 실험이다. 아감벤이 굳이 경험이나 실험이라는 말을 쓴 것은 사유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그 사유를 할 때의 개인이 무엇보다 '사유하기'를 스스로 체험하는 까닭이다.


 '단지 내가 항상 그저 현실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역량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단지 내가 겪고 이해한 것 속에서 매번의 삶과 이해 자체가 있을 수 있다면, 달리 말해 이런 의미에서 사유가 있을 수 있다면, 삶의 형태는 그 자신의 사실성과 사물성에 있어서 '삶-의-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삶-의-형태'에서는 벌거벗은 생명 같은 뭔가를 고립시키는 일이 전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여기서 아감벤의 사유란 들뢰즈의 탈주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아감벤이 사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푸코식으로 말하면 우리의 주체를 구성하고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취향 그리고 욕망마저 마치 우리가 스스로 가진 것인양 생산하고 있는 권력의 그물망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즉 아감벤의 사유는 우리를 '지금-여기'의 절대적 외부로 데려간다. 거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권력에 의해 단절되어 있었던 삶을 하나로 이어붙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어떤 정체성으로서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순수하게 지속하는 '벌거벗은' 나로 인지한다, 나를 구성하고 내게 여전히 대타자의 욕망을 주입하여 맹목과 불안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권력에 대한 저항은 바로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기에 '벌거벗음'은 아감벤의 '그라운드 제로'이며 타율화되고 궤적화되지 않은. 시민이 아니라 인민(여기서 인민이란 아감벤에 따르면 법에 의해 포획되지 않은, 즉 시민이 아닌 '비시민'을 의미한다. 벌거벗은 생명으로서의 인간 자체)으로 구축하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2009년에 나온 'NUDITA', 즉 '벌거벗음'은 이러한 성격을 모두 10장에 걸쳐서 다양한 맥락으로 풀어간 책이다. 앞서 '역사'를 언급했지만 '벌거벗음'으로 회귀하려는 아감벤은 우리의 굳어진 역사나 시간 개념도 거부한다. '모든 인민은 집시이며 모든 언어는 은어다(모두 정체성과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듯이 고유한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달리 이해해야 한다. 그 시간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1장과 2장이다. 1장은 지금은 사라진 종교 상의 예언을 통해 구원이 창조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2장은 동시대성에 대해 진정한 동시대인이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현존하는 시대의 모습이 아닌 그 뒤나 너머에 있는 어둠을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예언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때는 오로지 그 예언이 성취된 때이다. 아감벤은 예언이 점점 쇠망하고 그 자리를 철학이 대신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편린을 본다. 바로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쓴 11번째 테제 말이다. 즉 아감벤이 설명하는 창조와 구원의 관계란 바로 해석과 실천의 관계에 다름아니다. 그 11번째 테제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마르크스의 무덤 비석에도 새겨져 있다.


 바로 이것을 아감벤은 창조와 구원의 관계로 말한 것이다. 구원이 창조에 앞선다는 것은 예언의 참 가치가 오로지 예언이 실현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실제 행동으로 전화되어야 그 해석 역시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벌거벗음의 사유'를 두고 아감벤이 굳이 실험이라고 불렀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아감벤이 첫 머리부터 창조와 구원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사유가 행여나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이 오로지 해석으로만 그칠 수 있음을 염려한 까닭이 아닌가 싶다. 사유는 현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즉 아주 적극적인 작업이다. 실험이란 말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실험은 가장 적극적인 검증 행위이니까 말이다. 즉 아감벤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적극적이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돌파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적극성은 그 다음의 논의인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지금 눈 앞에 있는 시대의 모습이 아닌 그 어둠을 보려 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 어둠의 인식 또한 사유의 적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각신경생리학의 논의에 따르면 어둠을 인식하는 일은 타성이나 수동적인 양상을 띠지 않는다. 차라리 이것은 어떤 특별한 활동과 능력을 내포한다. (P. 27)

 

 

 여기서 내포가 뜻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의지의 개입 임을 부러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유의 강조는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 대한 논의에서도 계속된다. 아감벤은 주인공 K를 지금까지의 주류적인 해석 입장과는 달리 그를 무고한 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K를 고발한 사람은 K 그 자신'이라고 말한다. 아시다시피 아감벤에게 법은 부정적인 것이다. 법은 고유한 가치로 충만한 개인을 자신의 그물망으로 포획하여 단순한 사물로 만들어 버린다. '피고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맥락은 법이 정한 형벌의 세 가지 요건, 즉 구성요건과 위법성 그리고 책임에 의해 필요한 것만 걸려지고 모조리 싹뚝 잘려 나간다.



레미제라블의 자비에르 경감을 떠올려 보자. 그에게 있어 장발장은 그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한들 자신이 기필코 체포해야 하는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다. 장발장이 거쳐온 삶의 이야기는 자베르에게 있어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그는 오로지 법이 규정한 조문만으로 그를 판단한다. 법이 규정한 정체성이 장발장 고유의 정체성을 지배해 버린다. 법이 개인에게 하는 일이라는 게 이렇다. 푸코가 말했던 권력 효과. 그래서 K는 그 법을 거부하고 아니, 근본부터 뒤흔들어 전복시키려고 스스로를 무고했다는 것이다.(이 책에서는 거짓 고발자라고 하고 있으나 우리 형법에는 그것을 무고죄라 하고 있으므로 '무고'라 말하기로 한다.) K의 자신에 대한 무고가 그런 힘을 갖는 것은 법은 오로지 '고소'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사실 법이 전면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는 언제나 고소가 이뤄질 때다. 성문법이 없어 오로지 기존의 판례에 근거해 판결하는 미국에서는 법현실주의라는 독특한 법철학 사조가 생겨났는데 거기 대표적 인물인 홈즈 판사는 법은 판결을 통해 비로소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아감벤의 말은 그것과 비슷하다. 그 판결은 오로지 고소가 있고서야 태어나니 아감벤의 말 그대로 법의 존재란 고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고소가 되는 순간 법은 개인에 대해 막강한 힘을 얻는다. 피고가 된 개인을 소환해 그에게 진실을 추궁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법 앞에서 개인은 진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받는데 법은 바로 그 고백을 이끌어 내는 힘을 가지고 진실을 토하게 만들어 주체를 새롭게 구성한다. 물론 그 진실은 어디까지나 법만이 원하는 진실로, 그 힘에 의해 장발장은 동정의 여지가 많은 '호모 사케르'에서 '죄인'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K는 스스로를 무고함으로써 오히려 법을 혼란에 빠뜨려 버린다. 무고는 죄가 없는 자를 고소 했을 때 성립되는데 자기 무고가 죄로 인정되면 그것은 더이상 무고가 아니게 된다. 즉, 법이 K에게 자백을 받아 죄를 인정하는 순간 죄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K의 전략을 통해 아감벤은 우리를 생산하고 있는 권력이 아무리 강고해 보인다 하더라도 주체의 적극적인 움직임 앞에서 또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적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를 논의하는 5장에서는 아예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지 않을 가능성을 유지하는 능력(P. 75)'이라고까지 말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권력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주지시켜 우리를 무능력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사실 우리 삶의 왜소함과 불안은 대부분 자신이 무능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아감벤은 그것을 전혀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현대의 인간이 외면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그 '비능력'인데 이것은 무엇보다 현대가 그 옛날 누군가가 외쳤던 '하면 된다'라는 구호처럼 개인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한 마디로 과잉된 믿음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자기 배역의 불안정성이나 불확실성과 반비례해서 오만해지는 단역 배우는 우리 시대의 직업과 소명, 직업적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 사이의 결정적인 혼동을 잘 드러낸다. 바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 오늘 나를 검진하고 있는 의사가 내일 영상예술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를 죽이는 사형집행인이 카프카의 '소송'처럼 실제로는 가수일 수 있다는 의혹,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유연성에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 유연성이 바로 오늘날  시장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이다. (P. 76)


 즉 그러한 과잉된 믿음 또한 권력에 의해 생산된 것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산되어 이제는 오히려 우리의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식된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본 탓에 그것에 왜곡되어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그저 무능력과 왜소함만 각인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 왜곡의 장막을 찢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벌거벗음의 사유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감벤에게 사유란 손가락이며 갈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벌거벗음의 사유가 가진 정당성이 입증되고 난 뒤, 7장인 '벌거벗음'에서는 본격적으로 '벌거벗음의 사유'가 진행된다. 2005년에  베를린에서 열렸던 바네사 크로포트의 퍼포먼스에서 벌거벗음의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인지 본 다음 선악과를 통해 벌거벗음을 최초로 알았던 창세기의 신화를 경유해 그 의미를 탐색한다. 벌거벗음은 다름아닌 지속적인 무화(NULLIFY)라는 것을 말이다.


   바네사 크로포트의 퍼포먼스


 벌거벗음의 진정한 의미는 보이면서 감춘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 하나의 의미로 규정짓게 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 외부에 있는 어딘가로 달아나거나 무언가를 가져와 지금 떠오른 대상에 대한 나의 규정을 스스로 지우게 만든다. 그것은 머물지 못하게 한다. 반복적인 단절을 낳는다. 나 스스로를 결코 수동적인 감상자로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의미는 이제 대상이 아닌 나에게서 만들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맨 앞으로 돌아간다. 벌거벗음은 해석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오직 가능한 것은 스스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창조해 나가는 것 뿐이다. 어둠을 보려는 능력처럼 말이다.


 이 말이 오해를 낳을지 몰라서 부언하자면, 이 때의 창조는 규정이 되어서는 안된다. 타자를 내 자의대로 반죽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아감벤이 '벌거벗음'을 이렇게 강조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의 절대적인 비규정성에 있다. 우리의 창조는 그것에 한계지워진다. 우리가 아무리 그것에 이름을 짓더라도 이미 그것의 비규정성을 자각한 우리들은 지금의 내 규정이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것임을 충분히 인식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절대적 타자로서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의 내 규정은 결코 결정적이지 않으며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한시적인 것임을 충분히 납득한다. 그런 면에서의 창조다. 아감벤이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비인식 영역'의 인식.


 사실상 우리가 무지할 수 있는 방법이 정확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지위를 규정한다. 그렇기에 비인식 영역에 대한 분절은 우리가 가진 모든 인식 조건이며 시금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181)


 이상으로 할 수 있는 한 줄여가며 아감벤의 '벌거벗음'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소개해 보았다. 개인적인 느낌으론 아감벤 사유의 진전이라기 보다는 사유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에 실린 글을 통해 그동안 아감벤이 했던 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책을 리뷰할 땐 언제나 마지막 부분이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뭔가 멋있게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갈무리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투박하게나마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길.


 아감벤 사유의 중심에 놓여 있는 '벌거벗음'에 대해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5-02-1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이 책을 서점에서 확인해 봐야 겠습니다. 번역만 매끄럽게 됐다면 냉큼 집어 오겠습니다.ㅎ

오드득 2015-02-23 00:37   좋아요 0 | URL
앗! 저야말로 yamoo님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번역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다라고 할 수는 없어도 이해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은 무난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