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세트 - 전2권
말런 제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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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을 3불(不)의 시대라고 한다. 불확실, 불안정, 불안전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 실례 하나를 본 적도 있다. 바로 친구의 아버지에게서다. 정년 퇴직을 한 그는, 고정된 수입이 있으면 노후 생활이 한결 안정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알토란 같은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박했던 꿈은 오래 가지 않아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갑자기 들어서 버린 것이다. 이것은 친구의 아버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가게 매출을 마구 갉아먹더니 결국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여보려고 편의점 가맹점 계약까지 해지하려 했으나 그조차 힘들었다. 물어야 할 위약금이 엄청났던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한숨과 근심만 늘어났다. ‘그동안 자신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신 아버지가 이제는 좀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친구의 얼굴도 같이 웃음을 잃었고 어느새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피하게 되었다.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정한 현재를 낳았고 삶마저 불안전한 상태로 내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런 모습이었다. 지위 불문, 학력 불문, 성별을 불문하고 불행한 사연들이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어딘가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린 것만 같았다. 나보다 손에 가진 것도 많고, 등으로 기댈 곳 또한 훨씬 넓은 이들조차 넋두리와 함께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노라면, 절로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가 멀다 않고 들려오는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 소식에다 날마다 치솟는 전세, 달마다 압박이 들어오는 대출 이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해마다 줄어드는 정년의 기한도 모자라서 다가가면 갈수록 캄캄하기만 하는 노후까지도 내 불안과 걱정을 키우려 팔을 걷어 붙이며 거들고 나서는 판이다.


 이런 이유로 내게 말런 제임스의 소설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그냥 소설 속 이야기로 생각되지 않았다. 마냥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는 남의 이야기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비록 소설의 무대가 76년부터 91년까지의 자메이카이고 그 중심엔 76년 12월 3일에 일어났던 밥 말리의 암살 미수 사건이 있다고는 해도 그 근본에 짙게 서려 있는 공포와 절망은 지금 여기서 내가 보고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본질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자신의 육성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된 소설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단적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돌다가, 혹은 대낮의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다가도 문득 날아온 총알에 나 아니면 사랑하는 가족이 어이없이 죽어버릴 수 있는 무법 천지의 '킹스턴'이란 게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게토에서 목숨이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1권, p. 33)

 

 매일 자신을 거세게 억죄어 오는 파멸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앞으로 이런 상황이 변하리라는 희망이 전혀 없는 가운데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해 버린 자들의 고백록이었다.

 

 에이트레인즈와 코펜하겐시티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켜보는 것밖에 없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달콤한 목소리는 범죄와 폭력이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지는 일단 기다리고 봐야 한다고 속삭이지만, 여기 에이트레인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단 보고 기다리는 것뿐이야.(1권, p. 27)

 

 선택 그리고 그 여파. 바로 이것이 이야기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밥 말리는 중심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런 목소리들이 비로소 선명하게 표출되는 계기이자 드러난 목소리들이 하나의 이야기라는 형태로 정돈 되도록 만드는 매듭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소설 속에서 개최한 콘서트가 자메이카를 양분하여 대립하고 있었던 두 세력인 인민국가당과 노동당을 서로 손잡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는 두 번에 걸쳐 그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처음엔 미국의 CIA와 조시 웨일스가 공조한 암살 시도로 무산되었고 다음엔 겨우 이뤄지긴 했으나 끝내 무참한 살육전 속에 소거되고 말았다. 밥 말리는 자메이카 밖에서는 세계의 중심이었을지 몰라도, 자메이카 안에서는 그저 가난한 아이에게 온 부유하고 행복한 정경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에 지나지 않았다. 현실에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하는 피상적인 위안과 힘이었으며, 빠져들면 들수록 더욱 가혹한 배신이 뒤따르는 위험한 동경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밥 말리가 자메이카에서 한 것은 비록 그 동기에 일말의 진실은 있었다 해도 서투른 봉합에 불과했다. 자메이카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거나 바꾸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모든 일들이 단 일년 만에 희망찬 것에서 희망 없는 것으로 바뀌어버리는지는 누가 알겠나?(2권 P. 191)


 그의 삶이 진짜 자메이카 삶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지의 기자로 밥 말리의 콘서트 취재를 위해 들어왔다가 뜻하지 않게 암살 미수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버린 미국인 알렉스 피어스의 말마따나 자메이카 사람들에게 밥 말리의 삶은 그저 신화에 지나지 않았다.


  게토가 주는 교훈은 오히려 폴 매카트니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에 대해 했던 이야기와 가깝다. 어둠밖에는 없단 말이다. 서퍼라라는 서파라는 모조리 집 없는 카우보이고, 거리라는 거리는 모두 어딘가의 노래 속에 피로 쓰여 있을 총격전을 품고 있다. 킹스턴 서부에서 하루를 보내면 이 지역 최고의 권력자가 자기 자신을 조시 웨일스라고 부른다는 것이 완벽하게 이해된다.(...) 무법상태라는 사실만 가지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마치 레게 가수가 오래된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듯, 이들은 신화를 잡아채서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1권. p. 167)


 신화는 안전하다. 그것은 현실이 메울 수 없는 간격 저 너머에 절대적으로 격리되어 그 어떤 현실의 오물로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저 예쁘기만한 크리스마스 카드인 것이다. 그는 같은 시기 게토에서 늘 불안과 공포에 푹 절여져 절망 가운데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자메이카 사람들과 공동 운명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중심이 될 수 없었다. 변화가 저마다 같은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똑같은 처지의 이웃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것으로 비로소 일어나는 흐름이라면 그 흐름을 일으키고 더 크게 확장시키는 중심은 신화가 아닌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차지여야 하니까 말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소설은 밥 말리를 가장 중요한 소재로 다루면서도 그리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허락 하면서도 정작 밥 말리의 육성만은 일부러 배제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밥 말리는 오로지 이야기 속 인물로만 존재한다. 신화와 똑같이. 또한 그래서 작가는 자메이카의 가장 불길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오로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로만 채워야 한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 시기 자메이카는 오로지 밥 말리의 노래로만 세계에 알려졌고, 정말로 거기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 노래에 가려져 세계로 전혀 전해지지 못했던 것이다.(그 대표적인 예가 아마도 UB40가 커버하기도 했던 'Kingston Town' 이 아닐까 한다. 이 노래는 킹스턴에 대한 낭만적 향수로 한껏 덧칠 되어 있는데, 노래만 들으면 누구라도 킹스턴을 막연히 그런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소설이 펼쳐 보이는 킹스턴의 진실은 정반대였다. 이 노래가 비록 밥 말리의 노래는 아니나 자메이카의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라는 점에서 노래가 외부에 내부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의 증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그리스 신화가 그러하듯이, 신화 속 목소리들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밥 말리의 노래는 신화 속 목소리였다. 비록 그 노래가 자메이카의 어두운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해도 정치가 아니라 미학의 범주 내에 있었고 그랬기에 듣는 이들은 피상적인 공감만으로도 자메이카에 대한 자신의 윤리적 책임을 정당화하는 게 가능했다. 

 허나 가수가 하지 않은 말은, 나 역시 겁나서 못 하는 얘기라오. 이 모든 게 나한테 다시 돌아오리라는 얘기 말이오. 내게. 이 코펜하겐시티 최고의 배드맨에게. 허나 배드맨은 그저 배드맨일 뿐이니까. 악만 가지고 음모를 당해낼 수 없는 거지. 악만 가지고 사악함을 당해낼 수도 없고. 정치는 이제 새로운 게임이 되었고, 그 게임을 하려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할 테지.(1권, p. 246)


 노래는 노래였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것이 밥 말리의 노래가, 스티비 원더가 그의 죽음을 추모한 노래를 만들 정도로, 전 세계에 널리 퍼졌지만 정작 자메이카 내의 죽음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이유였다. 소설은 76년부터 91년까지 시기 별로 나누어 그 때의 목소리들을 담고 있고, 그 시기의 제목을 밥 말리의 노래 제목으로 하고 있는데 어쩌면 작가는 이러한 형식으로 노래와 목소리들이 처한 자메이카 현실 사이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내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진정한 목적은, 밥 말리의 커다란 목소리에 가려져 버린 밤-밤이나 니나 버지스 등 진짜 현실 속의 작은 목소리들을, 알렉스 피어스가 했던 것처럼(소설의 제목은 그가 신문에 연재하는 논픽션의 제목이기도 하다.) 온전히 복원(다중 화자를 가져오고, 그 화자가 가진 의식의 흐름을 가감없이 재현한다는 점에서)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자메이카 바깥 사람들은 전혀 알 수도, 느껴 볼 수도 없었던 당시 자메이카의 진짜 현실을 독자들로 하여금 생생히 체험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정말로 충격 속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밥 말리의 노래를 익히 들어보긴 했으나 설마 그 때의 자메이카가 이 정도로 살육과 공포로 넘쳐나는 곳이었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충격은 밤-밤의 부모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2권 후반에 이르러 조시 웨일스가 뉴욕 브롱크스의 한 크랙 하우스에서 임산부(그녀의 이름은 모니파다. 임산부의 이름과 그녀의 과거 삶은 알렉스 피어스의 논픽션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비로소 알려지게 되는데, 그 때 우리는 임산부라는 보통 명사와 모니파라는 고유 명사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임산부로 표기되었을 때의 그녀의 죽음은 당시 크랙 하우스에서 죽은 많은 불행한 죽음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지만, 이름과 과거를 얻고 난 뒤에 다가오는 죽음은 나처럼 세상에 존재했던 한 고유하고 독립적인 개인의 삶의 철저한 파괴로 보다 묵직한 무게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호에서 희생 당한 이들을 신문 지상으로 볼 때와 분향소에서 영정 사진으로 접할 때, 그 죽음의 무게를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육중함, 밥 말리의 노래가 휘발시켜 버렸던 자메이카의 현실과 그 속에서 살고 있던 한 개인이 가진 삶의 무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바라는 걸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육할 때까지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읽는 동안 충격과 전율이 소설이 주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투명하게 드러난 화자들의 내면을 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조시 웨일스처럼 아무리 괴물이라 하더라도 원래 괴물로 태어나는 이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나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삶이 가져다준 타격에 이리 휘말리고 저리 내몰리다 보니 가지게 된 상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1966년. 어떤 인간도 1966년에 들어갈 때 모습 그대로 나올 수는 없는 거요. 발라클라바의 몰락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심지어는 그 일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가져갔소. 나는 그 일을 지지했소이다. 조용히도 아니고 소리를 높여서 말이오.(…) 1966년. 모든 일은 안식일에 일어났소. 조시 웨일스는 그 때 기술을 배우던 밀러 씨네 자물쇠 공장에서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소. 예전에는 한 번도 무슨 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던 사람들의 골목을 지나 집으로 오고 있었지. 지난 금요일에 정치인이 거기 사람들한테 찾아와 입 닥치고 총을 쏘라고 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거요. 사람들이 조시 웨일스에게 총을 다섯 발 쐈소. 다섯번째 총알을 맞았을 때 조시 웨일스는 더러운 물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소.(…) 3주 후, 그 병원에서는 다른 사람이 걸어 나왔소.(1권, p. 176)


 그것은 파파-로도, 밤-밤도, 데무스도 그리고 위퍼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현재는 저마다 겪게 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안아버린 절망 가운데 그들이 스스로 한 선택이 낳은 산물이었다.

 선택, 읽으면서 나는 이 단어가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다. 비록 가혹한 현실이 그들을 선택의 순간까지 내몰기는 했어도 선택만은 그들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화자들을 일종의 범주로 묶어 구분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그 범주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도피, 복수 그리고 욕망이다. 다시 말해, 어둡고 힘든 현실 앞에서 어떤 이들은 달아나기에 바빴고(도피),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입은 불행의 대가로 남들도 똑같이 불행할 것을 요구했으며(복수) 또 다른 이들은 그 현실을 오히려 자기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만 삼았다(욕망). 여기에 따라 화자들을 나눠보자면, 니나 버지스알렉스 피어스가 '도피'에 속하고 밤-밤, 데무스, 파파-로조시 웨일스가 '복수'에 속하며 마지막으로 배리 디플로리오, 루이 존슨, 닥터 러버위버가 '욕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렇게 나누기는 했으나 사실 이들의 선택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이란 알고 보면 그저 불안하기만 하고 압도적인 무게로 자신을 내리누르고만 있는 현실 안에서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점점 작아져만 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그들 모두 자신의 삶에서 불현듯 괴물을 맞이했고 바로 그 괴물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그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소설 속 이야기들이 내게는 문학적 허구나 남의 이야기로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괴물이라면, 자메이카만큼은 아닐지라도 불확실하며 불안정하고 불안한 우리 현실 속에서도 늘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화자들의 고백은 내게 타산지석의 목록으로 다가왔다. 타산지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선택했으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 전체는 밥 말리의 콘서트가 그랬듯이 한 마디로 실패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니나 버지스가 그러하다. 그저 달아나기로 결정한 니나 버지스는 킴 클라크에서 도카스 파머로 거듭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마저 자메이카에서 그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미국의 마이애미와 뉴욕으로 계속 달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존재감은 갈수록 엷어질 뿐이다. 이것은 그녀가 홀로 자립하지 못하고 늘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로 한층 더 부각된다. 나는 특히 이 니나 버지스에 주목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선택이 바로 내 선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랬다. 정면으로 관통하기 보다는 그저 이 소나기가 빨리 그쳐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불안과 공포에 대처하는 오래된 내 방법이었다. 니나 버지스가 간절히 피난처를 찾았듯, 나도 우회로가 발견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니나 버지스가 잘 보여준 것처럼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더 왜소해지고 불안해지며 자꾸만 존재의 변방으로 한없이 밀려날 뿐이었다. 같은 범주에 있었던 알렉스 피어스 또한 결국엔 유비에게 붙잡혀 다리에 총을 맞았듯이.

 그렇다고 파파-로나 조시 웨일스의 선택 또한 나의 대안은 될 수 없었다. 비록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불안과 공포에 정면으로 맞섰으나 택한 방법이 잘못 되었다. 그들은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원래는 인간이 되고자 잠시 괴물이 될 생각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타자를 희생시킨 그들은 모조리 그 자신도 누군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시켜야만 하는 타자가 되는 운명에 처해 버렸다. 복수를 위한 모든 행동은 끝내는 자신의 파멸로 되돌아올 부메랑일 뿐이었다.

 일 년은 한 세기와도 같을 수 있는 시간 아니겠소. 괴물과 싸우는 남자는 누구나 괴물이 되니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만한 모든 걸 죽여버린 살인마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킹스턴에만 최소 한 사람 있으니 말이오. 사람들은 내가 미쳐버린 게, 학교 다니는 아이를 실수로 죽여버린 일에 자기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하오. 허나 내가 정말로 미쳐가는 까닭은, 그 일이 신경쓰여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더이다.(1권, p. 283)


 욕망 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결과는 피차일반이었다. 그들 역시 니나 버지스만큼이나 변방으로 내몰렸고, 조시 웨일스처럼 파멸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내가 왜 이 소설을 타산지석의 목록으로 불렀는지 알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수 많은 고백록들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단 하나. 아서 조지 제닝스 경의 것만 빼고.


 이 소설엔 소설 전체를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처럼 희망과 절망으로 양분하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소설에서 오직 유령으로 존재하는 아서 조지 제닝스 경과 역시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피터 나세르가 그것이다. 아서 조지 제닝스가 희망의 존재라면, 피터 나세르는 절망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서 조지 제닝스 경은 이미 시작에서부터 피터 나세르에게 죽임을 당한 상태다(이것은 소설에서 직접 언급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를 죽인 사람이 미스터 P로 불려지는 것을 봐서 어느 정도 추정되는 사실이다.). 그는 실존 인물로 실제 역사에서 자메이카를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었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피터 나세르에게 살해당해 버렸고 그 결과 소설처럼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자메이카가 도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는 반전을 마련한다. 아서 조지 제닝스가 그대로 사멸하지 않고 유령이 되어 시대를 거듭하여 부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비참한 자메이카의 현실에 대한 침묵의 관찰자가 된다. 비록 그의 목소리가 현실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지라도 정작 소설 속 역사는 그에게서 첫 시작이 열리고 각 시대 또한 그에 의하여 매듭을 짓게 된다. 그는 유령이지만, 소설 속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으며 모든 사태의 진실 또한 파악하고 있다.


 작가는 왜 이런 설정을 가져온 것일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소설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아무런 직접적인 충고나 권유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만일 이 소설에 그래도 대안 같은 것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두 가지 점이 눈에 띄었다. 소설에서 아서 조지 제닝스처럼 유령으로 부활하는 자들이 대부분 무고한 희생자들이며 그들은 오로지 타자를 위한 삶을 살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 특히 오렌지 스트리트 방화 때 불을 끄다가 조지 웨일스에게 살해 당한 뒤 유령으로 다시 부활한 소방관의 존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아서 조지 제닝스 경이나 소방관 모두 타자를 향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았다. 그것도 순전히 무고한 희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타자를 향한 삶이라는 측면이 강조 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부활하여 비록 유령의 몸이었지만 영속했다. 자메이카의 역사가 어떻게 흐르는지 모조리 들여다 보는 관찰자가 되었고, 소방관은 죄인의 바로 곁에서 그들의 죄를 소리쳐 고발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개인의 고백이라는 파편만이 존재하는 소설에 역사라는 일정한 틀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오직 유령뿐이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모으고 진실을 기록하여 역사를 만들었다. 자신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했던 개인들은 시간을 늘 현재 속에 고이게 만들었지만 유령은 말없이 역사를 빚어 다음의 문을 열고 밀어내 미래로 흐르도록 하였다. 문득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의 말이 생각났다. '타자가 바로 미래'라고, 그는 말했다. 유령이 현실 속 인간들에게 절대적 타자라는 것과 바로 그 유령들이 유일하게 역사를 만들어 미래로 내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내게 이 소설은 그야말로 레비나스의 말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바로 이 타자를 지향하는 삶이 대안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데,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그 자가 바로 아서 조지 제닝스 경과 정반대의 존재인 피터 나세르였다. 1985년 8월 14일. 아서 조지 제닝스 경의 눈에 들어온 피터 나세르의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니 도저히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러는 내내 나를 죽인 남자는 여전히 죽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는 썩는다. 나는 그자의 비서가 작은 파란 뱀 같은 정맥들이 우글거리는 그자의 허연 두피를 매만지며, 그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검은 염색약으로 씻어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자의 새 아내는 그걸 만지려 들지 않는다.(...) 인민국가당은 그자의 정당을 권력의 게임장 밖으로 밀어냈지만, 그는 매일 아침 꼭 출근이라도 하듯 옷을 입는다. 그토록 이상한 10년이다. 70년대와는 전혀 달라 보이고 그자는 더이상 자신의 언어를 쓰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로 길을 잃었다.(2권, p. 543) 


 피터 나세르는 소설에서 가장 괴물 같은 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조지 웨일스나 닥터 러브와 같은 괴물들을 양산할 수 있는 자다. 그야말로 극한의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겐 부활이 없다. 그의 육체는 오직 썩어들어갈 뿐이다. 미래도 없다. 그는 미래가 와 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물 웅덩이처럼 고인 시간과 고립된 육체 속에 유폐되어 아내조차 혐오하는 존재가 되어갈 뿐이다. 이는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모든 존재를 넘나드는 아서 조지 제닝스 경과 얼마나 다른가. 이 영속과 부패 그리고 확산과 유폐라는 뚜렷한 대조군 앞에서 내가 선택할 샬레(Schale)는 명확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목소리들이 재현한 소설 속 현실을 관통하면서 찾아낸 내 나름의 대안을 이렇게 밝혀보았다. 이 순간, 기억의 노트에 또렷한 필체로 적어두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피하려 들지 말고 정면으로 맞설 것. 또 다른 하나는, 대응에 있어 자기만의 입장과 판단을 넘어 타자의 상황과 생각을 지향할 것. 이것을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에 대한 내 글의 간략한 브리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상상해 본다. 내가 지금 소설을 통해 70년대의 자메이카를 들여다 본 것처럼, 먼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의 시대를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분명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그역시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세계란 IS의 민간인 무차별 테러가 대표하듯이 그 때의 자메이카만큼이나 폭력과 살육이 난무하고 자신과 같지 않은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이 팽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성 보다는 감정이, 타자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판단 보다는 무분별한 규정과 적대가 판을 친다. 이는 타인에 대한 조금의 이해와 배려가 없다는 점에서 킹스턴에서 에이트레인즈와 코펜하겐시티를 오갔던 총탄과 다를 바 없다. 아마도 이 역시 갈수록 깊어지는 시대적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일 것이나 소설이 잘 보여주었듯이 결국엔 자신의 불안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잔혹하고 비참한 현실이 시대를 거듭해 반복되는 것은 이제라도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달리해야 할 절실한 요청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정녕 60년대 히피들이 자신을 향한 총구에 꽃을 꽂았던 것처럼 저격이 아니라 포용의 손을 내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나를 격리로만 몰고가는 불안과 공포라는 괴물을 오히려 타자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겨내는 길은 없는 것일까? 이 고민이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면 그 숙고의 시작을 이 소설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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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6-12-2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두권짜리라서 좀 부담스러웠는데, 님의 이 리뷰보고 읽고 싶어졌어요, 불끈~!
밥 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 가져 볼만 하겠는데요~^^

오드득 2016-12-23 01:35   좋아요 0 | URL
앗, 양철나무꾼님 말씀 고맙습니다. 리뷰 보고 읽고 싶어졌다는 말씀만큼 절 기쁘게 하는 말은 또 없거든요.
밥 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것 같은데, 정작 그 밥 말리는 소설 속에 잘 나오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다만 밥 말리가 활동할 당시 자메이카의 상황은 어땠는지 너무나 잘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많이 잔인하고 또 험한 말이 많이 나와서 비위가 약하신 분들이나 여성 분들에겐 안 좋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오나 2016-12-2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두권짜리라 망설였는데...비위가 약하거나 여성들에겐 비추라고 하시니 그냥 패스해야겠어요ㅋㅋ

오드득 2016-12-23 16:04   좋아요 0 | URL
소설에 학살 장면이 있고 성적인 것에 대한 비속어와 욕설이 많이 나와서 한 말인데, 이것이 싫으시면 패스하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소설은 좋았는데, 욕설이 정말 많이 나와서, 물론 리얼한 재현을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좀 불편하더군요.^^;
 
바퀴, 세계를 굴리다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불리엣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비단 철만은 아니다. 철 보다는 좀 소음이 나겠지만, 바퀴 역시 철만큼 오늘 우리의 세상을 움직인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바퀴. 출퇴근 때도, 여행 갈 때도 그리고 마트에서도 우리의 바퀴의 힘을 빌린다. 그런 바퀴는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바퀴는 정말로 석기 시대부터 있었을까?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극 드라마가 생각난다. 사극 하면 흔히 보게 되는 가마. 고관대작들도, 양반집 규수들도 모두 네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다닌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그  때 분명 소가 끄는 우마차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바퀴의 효용성을 충분히 알려진 것 같은데, 어찌하여 바퀴의 힘을 이용한 교통 기관이 발달하지 않고 계속 사람의 힘에만 의지한 것일까? 혹시 드마라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가져 본 적 없었는지? 나는 가졌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그런데 유럽보다 문명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발달했을지도 모를(오로지 과학적 잣대로만 문명의 발달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조선에선 마차가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서양의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뒤라 할 수 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했던 것은 사람이 끄는 인력거였다. 인력거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한다면 동물을 사용한 교통 기관은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적이 별로 없다. 도대체 이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바로 그 궁금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조리 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처드 불리엣의 '바퀴, 세계를 굴리다'이다.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퀴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아주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바퀴의 탄생과 흐름에 대한 기존의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퀴의 탄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학설은 고고학자 스튜어트 피곳의 것이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바퀴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컬럼비아대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바퀴를 사용했던 가장 초기 흔적은 원래 동시대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는데, 피곳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퀴의 창세기로 삼은 것은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14 연대측정법'을 적용할 때, 비슷한 수명을 지닌 나무의 '탄소-14' 감소 수준을 측정해 비교하는, 흔히 말하는 '나이테 조정'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 일으키게 된 착오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나이테 조정까지 감안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아니라 유럽, 그것도 카르파티아 산맥의 구리 광산이 바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이라 주장한다. 그의 근거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그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고 여기서 비로소 그의 진짜 의문은 시작된다. 왜 하필이면 여기일까?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고정관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술과 환경.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이 환경을 이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이나 벨의 허다한 발명 스토리처럼, 한 천재의 영감과 노력 속에 기술이 태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기술이 자연을 리드하고 환경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퀴를 매개삼아 펼치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 생각과 반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던 토인비처럼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한계를 부여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구리 광산이 그렇다. 기원전 5,500년 전 당시 사람이 굳이 지하로 굴을 파고 구리를 캐냈던 이유는, 그런 구리라야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기술로는 아주 적은 구리밖에 못 캐냈고 많은 인부를 이용하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구리를 캐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이 등으로 져 날라야 하는 구리의 양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소와 같은 짐승을 이용하면 되지 않ㅇ아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 때의 기술로는 넓은 굴을 파는 게 어려웠기에 짐승은 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저기를 막으면 또 여기가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퀴를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토인비 말대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 이 때, 사용된 바퀴는 윤축이었다.


 바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윤축, 독립 차륜 그리고 캐스터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윤축은 바퀴와 양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일체라 바퀴와 축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바퀴의 가장 초창기 형태로, 구리 광산에서 쓰던 바퀴도 윤축이었다. 독립 차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축은 움직이지 않고 바퀴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윤축에서 독립 차륜으로 발달되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륜 마차는 이런 독립 차륜이다. 캐스터는 차축과 바퀴가 모두 다르게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마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카트의 바퀴가 이런 '캐스터'라 할 수 있다. 카트를 이용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독립 차륜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하다. 카트는 우리가 방향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독립 차륜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서부 영화를 보면 마부가 마차의 방향을 급히 바꾸면 마차가 쓰러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독립 차륜이라 그렇다. 바퀴는 이렇게 크게 세 단계로 발달되어 왔다. 우리는 바퀴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생각하는데, 리처드 불리엣은 실은 그게 근대에 들어와 새로 생겨난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퀴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을망정 근대가 될 때까지 문명의 무대 변방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널리 사용 되지 못했다. 지형 때문이었다. 길은 좁고 험했다. 방향도 바꾸기 어렵고 옮기는 데 인간의 근력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바퀴 보다는 그냥 사람과 짐승이 옮기는 게 더 편했다. 사용이 별로 없으니 바퀴의 발달은 느렸고 그래서 독립 차륜이 생겨난 것은 그로부터 5백년이 지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지방인 흑해 북부의 평야 지대였다.



 이 때엔 짐승이 끄는 우마차가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우마차에 싣고 다녔던 것이 바로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흑해 북구 평야 지대의 사람들은 마차 위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유목민이라서가 아니라 홍수의 공포 때문이었다. 기원전 5천년, 빙하기가 지나고 얼음들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해 해수면이 올라갔다. 그래서 흑해 해안의 광대한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겼다. 더구나 그것은 한 번도 아니었고 시시때때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주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독립차륜으로 된 우마차에서 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독립차륜 역시 환경의 역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바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우리 앞으로 도래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마차 역시 근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게 된 교통의 발달이 가져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과학 기술이 가져온 수혜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리처드 불리엣에 따르면 심리적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더구나 마차가 발달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마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놀랍도록 흡사한데,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 억압과 관계가 있다. 당시 남성 중심 문화는 여성을 가급적 이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성들은 그것으로 여성과 차이를 만들려 했고 또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남성은 말을 타고 멀리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여성은 가마나 마차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격리된 가운데 오직 짧은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차가 처음부터 먼 거리를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남성들은 마차 타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란슬롯이 선언했듯, 남자라면 마차를 똥을 피하듯 해야했다. 그것은 오로지 미천한 신분과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남성들도 마차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분명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타는 태양 전차라든가, 영화 '벤허'에서의 경주 전차처럼, 남자들이 말이 아니라 바퀴 위를 타는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랬다. 사실 바퀴는 실용적인 면보다 과시적인 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왕과 여왕이 백성 앞에서 행진할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 바퀴는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크기도 더 커지고, 외양도 화려해졌다. 요컨대 '바퀴살'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바퀴살이 하나의 나무에서 깍은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것은 여러 판자를 덧대어 만들어졌다. 꽤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기에 장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 바퀴는 누구나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가지고 있는 자의 권위를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바퀴엔 이런 점이 있었다. 우리는 실용성이 바퀴를 지금처럼 발달시켰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과시 효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 때문에 바퀴가 발달해 온 것이었다. 남자들이 16세기에 이르러 마차에 타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다. 당시 '후스파 전략'이란 게 있었다. 전차를 이용한 전략인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둬 남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원래 전차는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는 등 전쟁에서 별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후스파 전략은 전차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제 전차는 용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용맹이야 말로 여성과 구별되려는 남성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마차의 탑승이 자신의 남성성 과시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바퀴는 환경을 이끌기 보다 환경에 의해, 실용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잡스는 이런 기술의 모습을 보다 일찍 알아차린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애플의 매력을 구매자의 심미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에 보다 호소하도록 하고, 아예 구매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만든 것은 여러 면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이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인력거를 애용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술은 그 자체의 효용성 보다 환경이나 사용자의 욕구 혹은 욕망에 맞아 떨어졌을 때 더 많이 발달했다. 스티브 잡스도 강조했듯이, 우리가 과학만큼 인문학도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기술의 수명 또한 인간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를 더 많이 원할수록 우리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 책은 바퀴의 운명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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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승리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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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2-0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

오드득 2016-12-10 05:01   좋아요 0 | URL
오늘 여기저기 치킨 많이 시켜 드시더군요. 경축! 전 국민 닭 잡는 날입니다^^
 
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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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어떤 책은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이 있다. 이번에 나온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제 4부, '카이사르의 여자들'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4부와 5부는 로마 역사상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긴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에 적절한 타이밍 운운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때 로마의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참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카이사르가 황제에 오르기까지의 로마는 그야말로 보수와 반동의 흐름이 날로 격심해지던 때였다. 만민이 평등하고 고귀한 명예를 추구하던 공화국의 이념은 어느새 사라지고 '파트리키'로 불리는 귀족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서 오로지 자신만의 사익만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반동'이었고, 그러면서 밑으로 부터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묵살하기에 바빴으므로 '보수'였다. '원로원'은 원래 의회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독점한 그들의 위치를 정당화하고 확장시키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인, '그들만의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한 원로원의 변모는 누구도 '파트리키'를 견제할 수 없음을 뜻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거에서 표를 얻고, 자리를 얻는 게 가능했다. 재판도 돈만 있으면 배심원을 매수해 판결을 쉽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꿨다. 재판까지 갈 것도 없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인맥만 있다면 설령 폭력을 쓴다해도 괜찮았다. 고용 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던 탱크 로리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마구 구타한 뒤 맷값이라며 돈을 던져준 최철원 전 M&M 대표나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때린 점원들을 조폭을 동원 청계산으로 끌고가 쇠파이프로 때린 한화 김승연 회장이라면 환영할만한 세상이 이미 로마에선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파벌이 권력을 쪼개 나눠가졌고 파벌에 속하는 이의 그 어떤 비행과 불합리한 인사도 파벌의 비호 아래서 없는 일로 유야뮤야 되거나 합리적인 조치로 되어 버렸다. 단언컨대, 로마는 침몰 중인 배였다. 민주주의의 붕괴 속에 그 침몰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런 로마의 모습에서 어떻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막강한 비선 실세와 그에 의한 수렴 청정만 없었을 뿐, 그 때의 로마는 지금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밑으로 부터 계속 변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바로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도 등장하는, 나중엔 카이사르와 함께 행동하게 되는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였다. 그러나 이건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질 사실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카이사르가 로마 정치의 중앙 무대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로마는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의 우리가 그렇듯이 누구나 로마의 앞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모두에게 로마는 분명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미 공화국의 이념과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갈수록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로마를 이대로 내버려 두고 그것의 과실만 탐닉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로마를 전복하고 공화국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 것인가?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 지식인들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키케로, 소 카토, 클로디우스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갈림길 앞에 서 있었고, 결국 자신의 신념이든, 탐욕이든 길을 선택하고 걸어나갔다. '카이사르의 여자들'은 바로 그런 여정을 담는다. 그래서 비슷한 시대의 어둠과 시대적 고민을 가진 우리들에게 더욱 살갑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왜 제목은 '카이사르의 여자들'인 것일까?

 여기서 콜린 매컬로의 재치가 느껴진다. 이것은 분명 '간통의 황제', 부하들에게 '대머리 오입쟁이'로 불렸던 카이사르의 화려한 간통 전력을 살짝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로마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한다. 그는 이런 쪽에 전혀 개의치 않는 도덕관을 가지고 있어 미혼과 기혼을 불문하고 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왕성한 성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야심이 아주 커다란 자였으나, 그 야심을 이뤄줄만한 재력도, 인맥도, 힘도 없었다. 그랬기에 권력자의 아내와의 간통은 자신의 야심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발판이었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쉽게 카이사르에게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고 왠지 궁금하게 여기실 분들을 위해 밝혀두자면, 여성들은 주로 육체가 아니라(그가 비록 잘생기긴 했어도 계속 빠지는 머리가 그의 육체적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 때문에 반했다고 한다. 그 정부들중 카이사르를 가장 헌신적으로 사랑한 여인이 바로, 이 소설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기도 하는, 세르빌리아다.


 세르빌리아는, 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훗날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어머니다. 브루투스가 카이사를 암살할 당시, 브루투스는  로마 정치인들 중 가장 도덕적인 인물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또한 카이사르가 자신의 오른팔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장 신임하던 자였다. 그런 브루투스였기에, 그가 암살에 가담한 것은 희생당한 카이사르 뿐만 아니라 로마인 전체에게도 참으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암살하는 자들에게 완강히 저항하다가, 자신을 찌른 사람이 브루투스란 걸 알고 난 뒤엔 저항을 멈추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한다. "브루투스. 아들아, 너마저!'란 유명한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칼을 치켜 든 브루투스에게 카이사르가 그 말을 하고 있다.


 카이사르가 죽기 전에 남긴 이 최후의 말 때문에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카이사르와 브루투스가 사실은 부자 지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카이사르가 간통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살아 생전에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워낙 각별하게 아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소설 첫 부분이 꽤나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기서 콜린 매컬로의 독특한 접근이 부각된다.

 왜냐하면 콜린 매컬로가 가장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관계를 시작부터 부자 관계가 아니라고 딱 못을 박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브루투스는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세르빌리아는 자신의 아들을 카이사르의 딸과 약혼시키려 카이사르의 집으로 찾아가면서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의, 저 역사적으로 유명한 간통은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된다. 콜린 매컬로는 아마 이것으로 골육 상잔이라는 막장 요소를 피하고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을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신념 차이에 의한 것으로 정리해 두려는 것 같다.


 '같다'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것은 이것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콜린 매컬로의 독특한 접근이기도 한데, 그것이 바로 세르빌리아의 셋째 딸, '데르티아'다. 콜랜 매컬로는 '데르티아'를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 사이의 자식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 '데르티아'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를 알고나면 이런 설정이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의 운명적 대결, 흔히 말하는 내전에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여 자신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일부 귀족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세르빌리아에게 3분의 1 가격으로 낙찰해 주는데, 그 때 로마인 사이에 '카이사르가 그렇게 한 것은 세르빌리아가 자신의 딸 데르티아를 카이사르에게 정부로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란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기 때문이다. 만일 콜린 매컬로의 설정 대로라면 이 상황은 그야말로 막장이 될 수밖에 없는데, 콜린 매컬로가 '부녀지간'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득력있게 넘어갈 것인지 자못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카이사르의 여자들' 1부의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최고 신관이 되어 로마의 정치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에서 끝난다. 그러는 한 편, 앞으로 더욱 선명하게 될 갈등 관계들이 얽혀든다세르빌리아는 자신의 야망을 대신 채워 줄 아들 브루투스에게 늘 재산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동생 카이피오의 상속자가 브루투스인 것을 알고 동생을 살해하여 그것을 마련한다. 그러나 카이피오는 소 카토가 너무나 사랑하는 형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원수인 세르빌리아와 카토는, 아직 카토가 카이피오 죽음의 진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갈등 관계가 더욱 첨예화될 예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카토는 카이사르를 싫어한다. 원리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그것을 어기는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여 비난하며 처벌을 집행하는 카토의 눈에 원리 원칙에 충실하기 보다는 이길 수 있다면 선동이나 금력 등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카이사르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더구나 세르빌리아가 카이사르와 부정한 관계고, 카이사르가 자신의 아내도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실제 역사에서도 카토와 카이사르의 관계는 내내 적대적이었는데, 콜린 매컬로는 상상력을 통해 이 둘의 갈등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카토는 자신을 잘 따른다는 것을 미끼로 하여 브루투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세르빌리아가 브루투스를 통해 이루려는 야망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카토는 브루투스를 그것과 전혀 다른 인물로 만들어 어릴 때부터 지녔던 세르빌리아에 대한 원한을 풀려는 것이다. 한편 선동 정치의 달인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는 '누구든 거두는 자에게 재난을 가져오는 자'라는 세간의 명칭답게 자신의 복수 리스트를 하나 하나 결행해 나간다. 그러다 그는 같은 편인 것처럼 다가가 사람들을 동요시켜 내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즉 정치 선동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의 최대 원수인 키케로에게 일격을 가할 준비를 차근 차근 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1권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될 인물들 사이의 갈등 관계들을 세공해 나가기 시작하는, 일종의 밑밥이라 말 만하다. 이런 내용들이 여전히 매력적인 콜린 매컬로의 문장들로 펼쳐진다. 대사는 맛깔나고(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선정적인 묘사가 압권이었다.) 장면들이 좀 더 드라마틱해져서 이번 작품은 더욱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카이사르의 이야기엔 모든 정치 체제에 운명적으로 따르게 되는 보수와 혁신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변화시키려는 자, 그 변화를 없애려는 자 그리고 양쪽을 오가면서 타협하는 자들이 저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나 자신의 선택을 보여주고 옹호를 구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인물로 구현된 각 담론들을 두루 살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관심이 있었다면 그 관심을 이번 작품을 통해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카이사르와 당시 로마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분들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만큼 로마에 대해 생생한 묘사와 재미 그리고 독특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책은 달리 또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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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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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독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나라 꼴이 하도 비이성적인 것들이 만연하다 보니 좀 더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이 커진 탓이다. 메르켈 총리 집권 이후 독일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미담이 많이 전해진 탓에 오늘의 우리들에게 독일은 더없이 이성적으로 보인다. 이런 독일이 불과 70년 전에는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무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했다니(당시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모두 9백만명이었다고 한다. 즉 나치는 전체 유럽 거주 유대인의 3분의 2를 학살한 것이다.)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이런 충격은 과거의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는 죄르지 루카치가 있다. 만년에 그는 독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했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이성의 파괴'였다. 그것은 루카치가 2차 대전까지 이르는 독일 역사에 대해 내린 단적인 정의이기도 했다. 철학사를 살펴보면 대단한 철학자들은 모두 독일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은 체제를 만들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이념의 궤적을 마치 인간의 등뼈처럼 떠받치고 있는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그토록 비이성적이고 광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파시즘이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성의 파괴'였고 그 말말고는 달리 부를 만한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르지 루카치가 주로 철학적인 시각에서 독일 파시즘이 탄생하게 되는 궤적을 추적했다면, 바로 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통해 히틀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더욱 새롭고 넓게 만들어준 바 있는 독일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역사적인 시각으로 동일한 궤적을 훑는다. 지금까지 루카치나 빌헬름 라이히 그리고 에리히 프롬을 비롯하여 독일 파시즘의 출현에 대해 많은 이들의 분석이 있었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접근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한층 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들을 듣는 것 같았고 덕분에 더 깊이 알고 깨닫게 되는 바가 많았다. 비단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만이 아니었다. 사실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독일 파시즘까지 이어지는 시기는 현대 독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필수적인 부분이다. 헌법만 공부해도 숱하게 듣는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우리나라 헌법이 독일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주마간산으로 스치듯 만났던 게 내가 이 시기를 접했던 전부였다. 이 책을 읽고서야 이 시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고 보다 더 선명하게 헤아리게 되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비단 독일 파시즘뿐 아니라 현대 독일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면 꼭 이 책을 만나볼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일단 하프너가 이렇게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특이점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가 그토록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도 특정한 상황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이미 '도이치 제국'의 출현 시점이라 할 만한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있었던 것이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개화한 것으로, 그렇게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처럼 생각한다. 적어도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는 '도이치 제국의 역사'라는 바퀴가 잘못 들어선 경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이대로 구르게 된다면 가게 될 가능성이 많았던 곳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찬찬히 알려주는 책, 그것이 바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이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기념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베를린 장벽에서 개최한 '더 월' 공연 현장을 배경으로 책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원래 이 책은 독일 통일이 되기 전에 발간되어 통일 독일에 대한 것은 책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독일 통일 후에 나온 90년 판의 후기에서 하프너는 독일 통일을 통해 다시금 부활한 거대한 도이치 제국이 이제 정말 독일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진실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과거의 도이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지 아니면 새로운 도이치 문제를 야기할지 미지수라고 하면서. 과연 지금의 독일인들은, 현재의 독일을 바라보는 타자인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이 점에서 이미 하프너의 관점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분석했던 대부분의 책들은 필연 보다는 우연 쪽에 더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하프너가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흥미롭게 되는데 그러나 그만의 새로운 관점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다. 그는 도이치 제국의 탄생 시점부터 모두가 잘 아는 1870 ~71년 사이가 아니라 실은 184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도이치 제국'은 무엇보다 근대 들어와 거세게 성장하기 시작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 민족주의가 거세게 터져 나와 이전까지 연방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도이칠란드를 '도이치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1848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폴레옹 때문에 본격적으로 발흥하게 된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도이치 제국'은 시작부터 많은 불안 요소가 내재된 봉합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군주제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들과 민족주의로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려는 세력들 사이의 대립이 팽팽했고, 외적으로는 이제 하나의 국가가 되는 바람에 유럽 중부에 거대 국가가 출현하여 자신의 나라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주변국들의 견제가 팽배했다. 그런 안팎의 상황 속에서 비스마르크는 중재를 위한 통합과 당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제국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모처럼 태어난 도이치 제국을 이루고 유지시켜 나갔다. 


 비스마르크는 국내에서 보수주의 진영과 민족주의-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타협에 기반하여 제국을 건설했다.(p. 55)

 비스마르크는 도이칠란트를 유럽의 주도적이고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지 않았다.(p. 49)


우리는 비스마르크를 흔히 철혈 재상이란 별칭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아주 카리스마 넘치고 냉혹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만 하프너가 보여주는 비스마르크는 전혀 달랐다. 하프너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헤아리고 그 존속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취하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타자 존중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비스마르크의 새로운, 아니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커다란 보람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조심해도 남이 잘못하면 속절없이 일어나고마는 교통사고처럼 이런 비스마르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이치 제국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유럽 중부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멘트 벽'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무슨 이유든지 간에 도이치 제국이 위협이 된다싶은 행동을 조금만 해도 압박해 왔다. 이에 대해 비스마르크는 그들의 생각이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여 장차 있을 분쟁을 막았으나, 도이치 제국이 점점 형체를 갖추고 민족의식이 성장하여 독일인들 스스로 자긍심이 높아지자 이후의 체제는 이런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빌헬름 황제 시대에 와서 그것이 오만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빌헬름(2세) 황제 시대는 결코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오히려 비스마르크 시대보다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시대였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내적 안정과 풍요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원래 비스마르크 시대 전만 해도 독일인들은, 하프너의 말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소박하고 겸손한 민족이었다.(p. 89)'. 하지만 빌헬름 황제 시대에 들어와 나라가 더욱 성장하자 민족주의의 힘을 받아 독일인들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갑자기 원대한 민족적 전망, 민족적 목적을 눈앞에 그리게(p. 90)' 되었다. 동시에 그들의 애국심 또한 이전과 다른 성격의 것이 되어 이제 스스로 아주 특별한 존재, 미래의 강대국이라는 생각이 그저 느낌이 아니라 아예 확고한 의식(p. 90)으로 되어 버렸다. 이제 비스마르크가 추구했던 겸허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결론을 말하자면, 바로 이런 의식이 하프너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를 낳게 한 궁극적 원인이라고 본다. 하프너에 따르면, 이 의식은 결코 독일의 상황과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독일의 현실이 긍정적인 쪽으로 한껏 부풀려진 것이었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물든, 한 마디로 과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독일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었다. 끔찍한 자만심과 자기 숭배. 단언컨대, 오만이었다. 결국 그 오만이 1차 대전을 가져왔고, 그런 것을 겪었으면서도 반성되지 않아 끝내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까지 낳고 말았다고 하프너는 보고 있다.


 문득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가 생각난다. '절대 반지'는 궁극의 힘을 가져다 주지만, 누구든 그것을 손가락에 끼는 사람은 한없는 집착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가졌다. 힘을 얻는만큼 그는 오만했고 스스로 고립되었으며 타인과 자신마저 파괴했다. 힘에는 그림자처럼 그런 오만이, 숭배에 가까운 자기애가 따라 붙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일찌기 힘을 가질수록 경계하고 겸손하라고 말씀하셨고, '스파이더맨'은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하는 지도 모른다. 힘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욕망을 갖는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을 돕는데 써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독일은 분명 힘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 사실은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대외적 여건 속에서나 1차 대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의 틀을 유지하고 다시금 번영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은 '절대반지'였다. 힘이 가진 의미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힘이 있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다 보니 그만 오만에 물들고 그것에 취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올바른 것인가 사유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히틀러에게 1인 독재의 자리까지 허락하고 말았다.


 하프너는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독재를 허용한 것에 대해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


 1914년 8월의 분위기와 똑같이 1933년의 분위기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런 분위기 전환이야말로 앞으로 나타나는 총통 국가의 진짜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다.(p. 226)


나 자신 아직 분명히 기억하는데 (히틀러가 촉발한) '민족주의 봉기'는 두 가지 뿌리에서 자라 나왔다. 첫째는 1933년 이전 몇 해 봉안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자 했고, 확고한 손길과 확고한 의지를 지닌 한 남자가 정상에 있기를, 질서가 잡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도이칠란트가 1914년처럼(그러니까 빌헬름 황제 시대처럼) 다시 하나가 되고, 위대하고 강력해지기를 원했다.(p. 227)


 다시 말해, 이 시기 독일 민중들은 왜소한 자신을 잊을 수 있도록 강한 무언가에 속한 존재라는 것 느끼길 원했다. 내가 강하고 위대한 것에 종속되어 '호가호위'하듯 자신의 존재를 실상보다 격상시킬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시대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한 개인의 존재 가치가 한없이 줄어들수록 그 개인은 자신보다 보다 더 높은 권위, 커다란 존재에 종속되어 자신의 존재 가치가 과장 확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독일 민중들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 미천함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를 좀 더 강하고 위대한 나로 느끼게 해 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도 용납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마음이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었다. 히틀러는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신의 정당만 제외하고 모조리 없앴고,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이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독일인들은 눈을 감았다. 당시 독일의 목사 나틴 뇌묄러가 쓴 그대로였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의 총통 국가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그것은 바로 테러와 선전이라고 한다. 테러는 히틀러가 돌격대를 비스 호수 온천지에서 모조리 학살한 뒤에 만든 친위대가 자행했고, 선전은 괴벨이 맡았다. 이 두 가지가 히틀러에게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여기서 또 하나, 하프너의 이 책만이 알려줄 수 있는 독특한 분석이 드러나는데, 당시 독일 국가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대로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히틀러 때의 독일은, 도이치 제국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 속 국가들이 있었다고 말이다. 다른 한 쪽에 독일 시민들에 대하여 테러를 태연하게 자행하는 폭력 국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다른 한 쪽엔 친위대조차 법을 어기면 벌을 받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민사 재판에 따라 배상해야 하는 엄격한 법치 국가가 있었다. 그렇게 독일은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것들이 양립하는 아주 기묘한 체제였다. 하프만은 이것을 내면에 카오스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는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라면 어떻게 만인 지상의 1인 총통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 테러와 선전이었다. 히틀러는 이것을 통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일상을 통제했다. 친위대는 일상에서 독일 국민들이 사소한 잘못을 해도 영장없이, 재판없이 바로 태형을 가했다. 사람들은 예측 불허로 쏟아지는 폭력 앞에서 자신의 일상을 주관하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분명 이미 공화국 국민으로서 민주적 경험이 오래된 독일 국민에게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을 정상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것이 괴벨의 선전이 해낸 성과였다. 괴벨은 자신을 반대하던 자들까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연극에 끌어들였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되도록 검열 없이 대중들이 바라는 영화, 연극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덕분에 독일 국민들은 아직도 지금이 정상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괴벨이 독일 국민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당신의 일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환상이었고, 독일 국민은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그것에 별 비판 없이 탐닉했다. 히틀러는 그렇게 테러와 선전으로 국민과의 공조 체제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 확립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비스마르크의 유산이었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가 독일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고 말한다. 바로 '천재적 지도자를 향한 갈망'과 '정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p. 258)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마침내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히틀러를 선택하게 했고, 히틀러의 반민주적인 체제를 용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독일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은 던져진 주사위의 눈처럼 어쩌다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언제든 분명 오고 말 것이었다. 


 히틀러가 없었어도 1933년 이후에 아마도 일종의 총통 국가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가 없었어도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수백만 유대인 학살만은 없었을 것이다.(p. 262)


 아무리 히틀러 통총 체제가 도이치 제국의 유산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프너는 유대인 학살만큼은 본래부터 없었던 오로지 히틀러만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다시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바로 '수정의 밤'이다. 1938년 11월 7일과 13일 사이 나치 친위대는 400명에 가까운 유대인을 공공연하게 살해하거나 자살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3만 명의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었다. '수정의 밤'은 바로 이런 만행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틀러의 숨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프너는 사실 이 '수정의 밤'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며 그 목적이란,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유대인 박해에 스스로 참여하도록 선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국민이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던지(이 점에서 관동 대지진 때 유언비어에 홀려 서슴없이 조선인 학살에 나선 일본인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그런 그들의 저의와 달리 독일 국민들은 전혀 동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 박해가 독일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리라 예견하고 독일인들이 유대인 박해에 대한 정보를 쉽사리 얻지 못하도록 유대인 수용소를 독일에서 먼 지역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하프너는 당시 독일인들이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과연 당시에 유대인 학살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한 것은 아마도 오직 그 개인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 독일 국민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프너도 그렇게 말한다. 이미 히틀러의 독일이 비스마르크 시대의 유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서 그런 시대적 유산을 용인하고 제대로 된 성찰없이 승차해 온 독일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민 책임'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엔 사실 독일의 역사나 과오 보다 더욱 내게 살갑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다. 바로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이다. 비스마르크의 시대나, 빌헬름 황제의 시대나, 바이마르 시대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까지 포함하여 거기 살았던 독일인들은 한 가지 점에서 지금이 나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바로 '사회가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때의 독일인들은 시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냉정하게 파악하여 그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행동을 통해 실천하기 보다는 개인적 바람과 욕망에 더욱 치중하여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낙관 속에 그만 방관과 순응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가지게 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그들의 바람과 욕망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으니 결국엔 자유의 억압이자 박탈이었으며 전쟁이자 유대인 홀로코스트라는 자신들이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할 오욕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모습을 여실히 보다보니, 지금처럼 사회가 잘못 되어간다고 느낄수록 근거 없는 낙관이나 막연한 기대를 품지도 말고, '다음에'라는 말로 미루지도 말며, 남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라지도 말며,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실천할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하는 사회란 결코 절로 입 안으로 뚝 떨어지는 감 같은 것이 아니며, 부단한 관심과 성찰 그리고 실천으로 스스로 경작해야 하는 토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 히틀러 집권 초기만큼이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갈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타산지석'이란 말도 있듯이, 때로 그 고민을 이런 상황을 먼저 경험한 이들을 통해서 한 번 풀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생각된다. 분명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체제가 어떻게 나타났고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비스마르크 이후의 독일의 현대 역사에 관심 있다면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정녕 놓쳐서는 안되는 책이다. 오늘의 우리 나라 상황을 보면서 제대로 된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게 된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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