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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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에 활약한 영국의 추리 소설가 에드거 월리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킹콩의 원안이 되는 극본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트위스티드 캔들'은 1905년, '네 명의 의인'을 데뷔한 그가 13년 뒤인, 191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3. 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이다. '트위스티드 캔들'은 탐정 역할을 하는 티엑스도 등장하고 밀실 살인 사건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추리 소설 보다는 피카레스크에 속하는 작품이다. 누구보다 교활하고 무시무시한 악의를 내뿜는 '카라'라는 악당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소설의 대부분은 존 렉스맨이라는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카라의 흉계로 인해 겪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차지하고 있다. 알바니아 출신의 카라는 엄청나게 부유한데다 명망있는 귀족이라 누구도 그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를 통해 돈도, 명예도 더이상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그가 악당이라고 의심한다. 그가 바로 경시청 최고의 형사, 티엑스다. 소설은 마치 소나타 형식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첫 부분은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두 번째 부분은 카라의 가련한 희생자가 된 렉스맨을 구하기 위한 티엑스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카라와 대결하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으며 마지막은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지만 수수께끼의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해명되는 부분이 차지하고 있다. 전개가 고전 범죄 소설의 형식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아서 조금 옛스러움을 느낄 수 있으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는 데 있어 따라올 자가 없었다는 줄리언 시먼스의 작가에 대한 평가 그대로 여러가지 사건을 끊임없이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만든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을, 비행기를 이용한 탈출이라는 꽤나 대담한 연출까지 선보이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사건 전개와 탐정과 범인 사이의 선명한 선악 구도에 더하여 빠른 전개로 흡인력 있는 작품을 더 인상 깊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에 영국에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무구한 렉스맨을 그토록 잔인하게 괴롭힌 카라의 동기가 흥미로운데, 그건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 모든 것을 다 가진 그가 누구나 할 것없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렉스맨과 그 아내에게 있어서만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당시로서는 꽤 이례적인 것으로 이로써 에드거 월리스는 현대에 일어날 범죄는 과거와 꽤 다를 것이라는 걸 예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티엑스의 말을 통해서 말이다.


 "정말이지 불쌍한 눈 먼 맹수가 따로 없군." 티엑스는 답답하다는 듯 맨서스를 쳐다 보았다.

 "자넨 엄청난 범죄들이야말로 물질적인 욕망이나 구체적인 이익을 얻을 가능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자신의 아내를 때리는 저속한 인간들은 말이지, 맨서스. 아내가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주변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큰 관심거리이자 우리 영국인이 지니고 있는 민족성이네.(p. 100 ~ 101)


 제목의 '트위스티드 캔들'은 고문도구로 사용되는 양초를 뜻한다. 단순히 자기 존재의 과시를 위해 자행되는 고문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는 또한 세계 제1차 대전이 한창 벌어지는 와중으로 곳곳에서 이기주의로 인해 타인의 삶이 무참히 파괴되고 있었다. 약자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마음껏 유린하는 소위 제국이라 말하는 그 때의 강대국들은 거의 카라나 진배 없었다. 집요하고도 잔인학 악당 카라는 정말로 그런 나라를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로운 이 소설은 나처럼 고전 범죄 소설에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한 이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되어줄 것 같다. 여성에게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고 꼼짝 못하도록 협박하는 게 고작 키스라니, 사지 절단이 예사로 나오는 현대 범죄 소설을 즐겨 읽는 이들에겐 귀엽게 보이기까지 하는 연출인데, 당시만 해도 엄청난 공격이었고 범죄였던 키스를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과도 같이 그만큼 우리가 타인을 침해하는 정도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해진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도 든다.


  "두려움에 떨고 있군, 그래!" 카라가 홀랜드 양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선 소곤거리며 희롱했다. "이제야 두려워하고 있어. 그렇지? 만약 소리를 지르면 다시 키스할 거야, 알겠나?"(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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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
휘트니 크로더스 딜리 지음, 최지원 옮김 / 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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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광들의 시대가 지나갔음인지 영화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글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한 해에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있긴 하지만, 소비의 대상일 뿐 진지한 연구나 성찰의 대상은 아니다. 인상 비평과 별점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게 거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본북스에서 나온 두 권의 책이 특별히 반가웠다. 작가주의도 퇴조한 마당에 오직 한 감독에 대한 연구로 한 권의 책을 다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감독이란, '웨스 앤더슨'과 '미카엘 하네케'다. 모두 영화쯤 본다는 사람에게는 아주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깊이 영화를 본다고 자부하는 이에겐 필견의 리스트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작가주의에 어울리는 감독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의 고용 감독 길을 걸은 적도 없고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하며 그걸 자신의 작품 속에 내내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알기론, 적어도 우리나라에 출판된 책 중에 이 두 감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없었다. 웨스 앤더슨과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대해 전문적으로 쓴 책은 이 두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그 책이 어떤 책이냐고?



 그건 바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다. 이게 제목이다. 참 심플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번역서인데, 원래 제목도 그랬다. 작가주의 감독답게 감독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사여구 없이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당당히 이 제목을 내걸었고 두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제목은 자신감의 표현이란 걸 알았다.


 웨스 앤더슨도 미카엘 하네케도 개인적인 추억담이 있어서, 어느 걸 먼저 리뷰로 쓸까 약간 고민했다. 뭐, 순서 같은 건 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처음 만난 게 웨스 앤더슨이니, 그 감독의 책부터 리뷰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얘기는 다 사설이었다는 거다. 책은 참 좋은데 이걸 다 설명하자니 분량이 너무 넘쳐나고 그렇다고 상세한 얘긴 생략하고 총평만 하자니 또 너무 부족하여 꼼수를 부려 이렇게 분량을 어거지로 채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색인까지 다 합해 426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모두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첫 파트는 총론 같은 것으로 감독에 대한 일반론적 해설이 있다. 그의 이력이라든지, 미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든지, 그런 총체적인 것을 두 편의 글을 통해 설명한다. 본격적인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 뒤다. 두 번째 파트는 웨스 앤더슨이 지금까지 감독한 영화들을 모두 한 편씩 다루고 있다. 96년에 발표한 데뷔작 '바틀로켓'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단편 영화와 상업 광고까지 말이다. 한 마디로 그의 모든 영화에 대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상세한 분석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러니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만나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이쯤에서 개인적인 추억담 같은 걸 하나 덧붙인다면, 나는 그를 아직 유명해지기 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처음 만났다. 98년, 우리나라에 그의 데뷔작 '바틀로켓'이 비디오테이프로 나온 것이다. 96년에 나와 그렇게 커다란 흥행을 못했는데도 98년 나온 것을 보면, 우리나라 비디오 시장이 그래도 영화광들에겐 꽤 풍요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틀로켓'은  지금은 물론 DVD 시절에도 나오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 때 처음 보고 너무나 독특한 이 작품에 매료되어 웨스 앤더슨이란 이름을 뇌리에 박아두게 되었고 그 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를 이후로 그의 팬이 되었다. 앤더슨의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이 '바틀로켓'과 '다즐링 주식회사'를 좋아하는데, 그건 첫 만남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가장 자유분방한 분위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뭔가 좀 헐겁고, 뭔가 좀 방만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앤더슨의 세계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별 필요도 없는 얘길 해버렸는데, 오래전 그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가 갑자기 그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터라 또 한 번의 꼼수를 부려 분량을 늘인 것이기도 하다. 글이 가볍고 별 내용이 없어 책도 그러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모처럼 비평다운 비평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니. 책의 날개를 보니 영화 전문 서적을 꾸준히 발간할 모양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와 난니 모레티의 책이 무척 기대가 된다. 1인 출판사라고 하는데 부디 잘 되어서 계획한 책을 다 내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응원한다.(이런, 끝도 이상해져 버렸군.)


이 영화를 좋아해서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바틀로켓' 비디오 테이프 / 인증합니다.

오엔 윌슨과 루크 윌슨의 푸릇푸릇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비디오 표지에 '텍사스 소년들'이란 말이 세월의 간격을 느끼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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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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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시리즈를 전권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이유는 많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좋고(그 중에서 앤지 제나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다.) 이야기가 다들 흥미로우며(시리즈의 마지막 '문라이트 마일'은 어쩔 수 없이 우울했지만) 마음에 훅 들어오는 문장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건 이 두 주인공들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는 고민을 하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힘겹게 버텨가면서 그 고민에서 헤어날 길을 찾아 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고민이냐고?

 그건 당신이 최근 일어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나 곧 결혼을 앞둔 어린이집 교사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맘 카페 회원들에게 신상이 털리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끝내 자살해 버린 사건 아니면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를 보았을 때 드는 생각과 비슷하다. 이토록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생명을 잃을 정도로 세상이 온통 우리가 헤아리기 어려운 악의로 가득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켄지와 제나로는 늘 이 고민을 마주한다.


 대표적으로 '가라, 아이야 가라'가 그렇다. 한 아이가 실종된다. 무책임한 엄마에게서 자주 방치되고 학대 받는 아이였다. 아이가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아이의 외숙모만이 걱정하여 켄지와 제나로에게 찾아온다. 아이를 찾아달라고. 그런 부인에게 켄지는 말한다.


  "맥크레디 부인, 돈 낭비가 될 겁니다."


 그러자 외숙모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카를 낭비하는 것보단 낫겠죠."(1권, p. 21)


 미국에선 매일 2,300명의 아동이 실종된다(p. 15). 그 중에서 300명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p.16).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걸 2권에서 아주 아프게 확인한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처참하게 희생되어버린 몰골로. 켄지와 제나로는 아이가 관련된 사건을 가급적 맡지 않으려 한다. 그 사건을 통해 또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 세상의 악의를 보게 될 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의 때문에 절망하여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 아이야 가라'에선 너무나 많이 보아버린 세상의 어둠 때문에 인간과 괴물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켄지와 앤지가 큰 호감을 갖고 있는, 아동 유괴 범죄 담당의 브루사드 형사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다. 맡은 업무로 인해 자주 이성의 한계를 가볍게 초월하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브루사드는 어떻게든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만이 온통 까만 밤과도 같은 이 세상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스로 버텨 나가고 있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그런 의미에서  켄지와 제나로, 브루사드를 비롯하여 '가라, 아이야 가라'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우리의 도플갱어들이며 그들의 길은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를 대신하여 찾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내 손을 강하게 잡고 있는 어둠을 놓아버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대역이 된 그들은 고민하고 갈등하며 버티면서 저마다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켄지는 붕괴된 질서를 방치하고 있는 신을 원망하고 앤지는 조금이라도 구원이 될 수 있는 걸 선택한다. 부바는 일단 눈 앞의 악부터 제거하고 본다. 길이 이렇게 다른 건, 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하여, 누군가 대신 답을 해 줄 수 없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대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 또한 그러하듯이, 어둠을 몰아낼 여명이 쉬이 찾아오지 않는 까닭이다. 아니, 가면 갈수록 더 큰 어둠을 목도하며 그 앞에서 우리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걸 절감하는 탓이다.


 이 소설에서 켄지와 앤지의 길이 그러하다. 믿었던 인물은 자신을 배신하고, 아이를 위해 최선이라 여겼던 선택도 아이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구원을 찾으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더욱 흐려져 버린 흙탕물을 마주할 뿐이다.


 "올해 워싱턴에서 생면부지의 엄마에게 딸의 양육권을 넘긴 판결이 나왔죠. 단지 생모라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생모는 태어난 지 6주 된 또 다른 딸을 죽인 죄목으로 복역했어요. 딸 아이가 울어대자 화가 나서 아이의 목을 졸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바비큐파티에 갔다는 겁니다. 이 여자한테는 남은 아이가 둘 있었어요. 하나는 친조부모가 키우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수양 부모에게 있었죠. 그녀는 딸을 살해한 죄로 2년 밖에 복역하지 않았고 지금은 양부모에게서 뺏은 딸을 키우고 있어요. 양부모가 법원에 양육권을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이건 실화예요. 찾아보세요."

 "말도 안 돼요."

 앤지가 말했다.

 "아니, 말 돼요."

 "도대체 어떻게...."

 "그게 미국이니까요. 모든 성인은 자기 아이를 산 채로 씹어먹을 전적이고도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2권, p. 215)


 어둠은 갈수록 강하고 우리는 늘 차라리 거기에 먹히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괴물이 되는 길과 사람으로 남는 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그런 우리의 연약함, 그로 인한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데니스 루헤인은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받아들여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스스로 생각토록 한다. 진정한 강함은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한 자발적인 각성 속에서 비로소 도래하기 때문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독자에게 바로 그런 것을 주려고 한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마치 스릴러 판, 단테의 '신곡'과도 같이 희망 없는 지옥의 순례이며 그 지옥 속에서 인간의 위엄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베르길리우스라 할 수 있다. 물론 눈 앞에 펼쳐진 광막한 악의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남는 길을 선택할 때의 얘기지만.


 만일 당신도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면 당장 켄지와 앤지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그들의 신도가 되라고.

 걸으면 걸을수록 더 커다란 어둠을 마주하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인간다움을 굳건히 유지하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희망이 되어 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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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 인류 최초가 된 사람 : 닐 암스트롱의 위대한 여정
제임스 R. 핸슨 지음, 이선주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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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닐 암스트롱.

 그의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억되는 이름 중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에 인류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이니까. 1969년 7월 20일 일요일, 아폴로 11호는 달에 무사히 착륙했고 인종과 성별,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어 숨죽이며 지켜 보는 가운데 닐 암스트롱은 착륙선의 사다리를 천천히 타고 내려와 드디어 자신의 발자국으로 인류의 흔적을 남겼다. 그는 말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도약이다."


 달 착륙 5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된, 2005년에 발표된 우주 항공 역사를 주로 연구하는 제임스 R 핸슨의 '퍼스트 맨'은 저 말과 함께 우리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된 이름의 주인공이기도 한 닐 암스트롱의 일대기를 다룬다. 물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달에 착륙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사실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정작 그의 삶에 대해서도, 달 착륙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의혹 속에 빠지게 만드는 '달 착륙 음모설'에도 쉽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암스트롱의 삶과 달 착륙에 관련된 모든 과정을 다 알게 된 지금, 난 단언할 수 있다. 달 착륙 음모설은 헛소리라고. 이들이 인류의 커다란 도약을 위해 무려 천 시간이 넘는 모의 비행을 하고 몇 년에 걸쳐 목숨까지 걸면서 훈련한 것을 안다면 절대 음모라고 말할 수 없다. '퍼스트맨'은 그런 과정의 작은 나사 하나까지도 다 담고 있는, 그야말로 닐 암스트롱의 삶과 달 착륙 전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며 그것으로 달 착륙 음모설을 우주 저 멀리로 날려보내는 책이다.







 닐 암스트롱은 두 살  때 처음으로 비행기 장난감을 가진 뒤로 내내 삶의 중심에 비행기가 있었다. 그는 오직 모형 비행기를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으며 청소년기의 어느 때인가엔 이런 꿈을 계속 꾸기도 했다.


 "꿈 속에서 숨을 참으면 공중에 떠서 빙빙 돌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꿈에서 나는 하늘 위로 날아오르지도, 당으로 떨어지지도 않았어요. 그저 빙빙 돌기만 했어요. 어정쩡해서 좀 답답했죠. 꿈에는 어떤 결말도 없었어요.(p. 53 ~ 54)


누군가는 이 꿈이 예지몽은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이 꿈은 달 주위 궤도를 빙빙 도는 아폴로 우주선과 많이 닮았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정말로 그의 운명은 달 착륙으로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닐 암스트롱이 어릴 때 과학 선생님은 언젠가 그에게 장래 계획을 물었는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언젠가 저 달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시간당 9달러인 비행 훈련 비용을 모았고 주말마다 와파코네타에 있는 챔프 비행기 세 대 중 한 대를 타고 비행 훈련을 했다. 그는 수많은 비행을 통해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날을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관심은 그를 저절로 항공 공학 쪽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흐름은 단순한 항공에서 이제 항공우주공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변화를 실감하면서 닐 암스트롱은 자연스럽게 비행사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바꾸게 되었다. 항공 엔지니어의 정체성으로. 그것이 평생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 되었다. 그는 NASA에서 우주비행사로 활동할 때도 단 한번도 자신을 우주비행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로지 그는 항공 엔지니어일 뿐이었다. 이런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몰랐던 것은 또 있다. 아폴로 11호에 닐 암스트롱과 함께 탔던 버즈 올드린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과묵하고 오직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닐 암스트롱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올드린과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건 아니다. 사실 그는 사이가 나빠졌는지 아닌지조차 몰랐다. 그런 쪽에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즈 올드린은 달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아온 닐 암스트롱과는 다르게 아버지가 장성이고 대대로 높은 계급의 군인 집안 출신에다 현역 대령이었던 버즈 올드린은 명예욕이 강했다. 사실 뒤늦게 버즈 올드린을 닐 암스트롱 팀에 합류시키려 했을 때, 책임자가 닐에게 와서 다른 사람을 넣으라고 했다고 한다. 올드린 때문에 팀에 불화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했던 탓이다. 과연 올드린은 누가 달에 첫 발을 딛느냐를 두고 계속 신경쓰면서 그걸 자신이 하기를 바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문제에 대해 언급했고 누가 첫 발자국을 딛는지 빨리 결정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처음으로 달을 밟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인류가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그 날까지 기억하게 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닐은 그런 것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착륙선이 달에 무사히 착륙하는 것이 관건이지 누가 처음으로 달을 밟는가 하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결국 첫 발자국은 닐이 밟기로 결정났다. 이를 두고 공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건 공식적일 뿐, 사실 그걸 결정하는 책임자들이 올드린의 인성 때문에 날을 고른 것이었다. 이렇게 명예를 바라는 사람은 오히려 명예가 멀어지고, 전혀 바라지 않은 사람엔 그 쪽에서 찾아온다. 닐과 올드린의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닐이 무심했던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였다. 그는 자신이 달을 처음 받는 사람이 되어도 그건 자기 혼자 힘이 아니라 모두가 협력한 결과라는 걸 잘 알았다. 아폴로 11호 뿐만 아니라 그 전부터 11호의 달 착륙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수히 거듭해온 연구와 훈련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야할 영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기계 속 하나의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겸허가 인류의 커다란 도약을 이끌어 낸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퍼스트맨'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닐 암스트롱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달에 착륙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를 포함하여 삶의 어떤 혜안까지 넌지시 깨닫게 만드는 책이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좀 부담스런 분량이긴 하지만 제임스 R 랜슨이 잘 써서 그런 건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닐 암스트롱과 달 착륙에 대하여 평소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꼭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만족감을 그득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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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12-17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작가가 달 착륙 음모설을 아직까지도 의심하고 있다가 김상욱 박사가 동공 지진으로 유시민 작가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설명하던 장면이ㅜㅋㅜ...알쓸신잡 출현 안 했음 유시민 작가 언제까지 그랬을 건가 식은 땀이;;;

ICE-9 2018-12-18 10:43   좋아요 0 | URL
저도 알쓸신잡을 보진 못했지만, 그렇다면 유시민 작가야말로 이 ‘퍼스트맨‘을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을 읽으시면 더 식은 땀을 흘리실듯^^
 
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그래픽 노블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독특한 그래픽 노블 하나를 만났네요. 탈다 윈튼의 '아이 러브 디스 파트'란 작품입니다. 일단 작가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96년생이었거든요. 2015년에 첫 책을 냈으니, 와! 몇 살 때 데뷔한 건가요? 작가의 나이보다 더 이 작품을 이채롭게 기억하게 된 건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10대 레즈비언의 이야기였거든요. 나중에 알았는데, 작가 역시 레즈비언이라고 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풀어간 것이죠.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기 얘기를 할 때 가장 잘 말할 수 있다고. 아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일 겁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미국 사회가 아무리 성소주자의 사랑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해도 막상 밑바닥 현실로 들어가보면 아직 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죠. 처음 사랑을 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차 넘지 못할 현실의 벽 때문에 이런 사랑을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슬금슬금 고개를 듭니다. 성인이 아니라 십대라면 더 하겠죠. 그런 과정을 이 그래픽 노블은 담아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고 장면의 연출로 느끼도록 하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잔함과 더불어 나의 첫사랑은 어떠했던가 추억까지 하게 되니 작가의 실력이 꽤 좋다고 해야겠죠. 만화 부문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품에 주는 이그나츠 어워드 신인상을 탈만 합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처음에 전 옆의 흑인 아이를 남자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흑인과 백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구나 여겼죠. 하지만 이내 곧 흑인 아이도 여자 아이란 게 밝혀지더군요. 그러므로 이 둘은 두 가지나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셈입니다. 하나는 인종 간, 다른 하나는 동성 간. 부모와 또래 그룹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10대이니만큼 이들의 사랑 행로가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죠.


 미래야 어찌되었든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사랑을 쌓아가던 무렵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도 사랑을 하셨다면 이들의 마음을 잘 알겠지요. 우리도 그러지 않았나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마냥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가 된 기분을 느끼곤 했었죠. 다음과 같은 장면은 바로 그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큰 존재가 되어, 세상에 오직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때를.





 이건 마치 제목처럼 음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듣는 것과 같죠. 가장 환하게 사랑이 밝았던 시간.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음악의 가장 좋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언제 떠올려도 먼저 흐뭇함으로 다가오는 사랑의 기억이...





 하지만 음악은 가장 좋은 부분만 계속해서 들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사랑과 현실 또한 그러합니다. 사랑에 마냥 취했던 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가면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며 자신의 사랑을 위협하는 차디 찬 현실의 냉기를 느끼게 됩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겠죠. 작품은 그런 과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공간이나 풍경의 단편적인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 등 현실 앞에서 약해져만 가는 사랑을 고요하게 소묘합니다. 너무나 거대했던 그들의 존재가 서늘한 현실 속에서 자꾸만 작아져가는 과정을...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고 이렇게 거대한 현실 안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고 맙니다.





 여름의 햇살만큼 눈부셨지만 짧았던 사랑은 그렇게 끝나고 이젠 추억만 남았습니다. 마지막의 장면들은 그걸 묘사합니다. 음악이 끝나고 난 뒤 선율의 여운이 기억되듯이 사랑도 그렇게 남는다는 걸 말이죠. 이토록 잔잔하게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묻고 있죠. 이들의 사랑이 당신의 사랑과 얼마나 다른가 하고? 왜 이들은 당신과 닮은 사랑을 했는데, 당신은 할 필요가 없었던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야 했냐고. 사랑은 햇살입니다.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두루 환한 빛 속에 있게 만들죠.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랑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처럼 굴고 있는 걸까요? 사랑이 마치 입장권처럼 자격이 되는 이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 여기는 걸까요? 음악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처럼, 인종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삶의 가장 좋은 부분인 사랑을 영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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