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영화
휘트니 크로더스 딜리 지음, 최지원 옮김 / 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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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광들의 시대가 지나갔음인지 영화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글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한 해에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있긴 하지만, 소비의 대상일 뿐 진지한 연구나 성찰의 대상은 아니다. 인상 비평과 별점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게 거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본북스에서 나온 두 권의 책이 특별히 반가웠다. 작가주의도 퇴조한 마당에 오직 한 감독에 대한 연구로 한 권의 책을 다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감독이란, '웨스 앤더슨'과 '미카엘 하네케'다. 모두 영화쯤 본다는 사람에게는 아주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깊이 영화를 본다고 자부하는 이에겐 필견의 리스트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작가주의에 어울리는 감독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의 고용 감독 길을 걸은 적도 없고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하며 그걸 자신의 작품 속에 내내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알기론, 적어도 우리나라에 출판된 책 중에 이 두 감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없었다. 웨스 앤더슨과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대해 전문적으로 쓴 책은 이 두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그 책이 어떤 책이냐고?



 그건 바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다. 이게 제목이다. 참 심플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번역서인데, 원래 제목도 그랬다. 작가주의 감독답게 감독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사여구 없이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당당히 이 제목을 내걸었고 두 책을 다 읽은 지금, 그 제목은 자신감의 표현이란 걸 알았다.


 웨스 앤더슨도 미카엘 하네케도 개인적인 추억담이 있어서, 어느 걸 먼저 리뷰로 쓸까 약간 고민했다. 뭐, 순서 같은 건 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처음 만난 게 웨스 앤더슨이니, 그 감독의 책부터 리뷰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얘기는 다 사설이었다는 거다. 책은 참 좋은데 이걸 다 설명하자니 분량이 너무 넘쳐나고 그렇다고 상세한 얘긴 생략하고 총평만 하자니 또 너무 부족하여 꼼수를 부려 이렇게 분량을 어거지로 채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색인까지 다 합해 426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모두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첫 파트는 총론 같은 것으로 감독에 대한 일반론적 해설이 있다. 그의 이력이라든지, 미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든지, 그런 총체적인 것을 두 편의 글을 통해 설명한다. 본격적인 작품에 대한 연구는 그 뒤다. 두 번째 파트는 웨스 앤더슨이 지금까지 감독한 영화들을 모두 한 편씩 다루고 있다. 96년에 발표한 데뷔작 '바틀로켓'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단편 영화와 상업 광고까지 말이다. 한 마디로 그의 모든 영화에 대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상세한 분석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러니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만나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이쯤에서 개인적인 추억담 같은 걸 하나 덧붙인다면, 나는 그를 아직 유명해지기 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처음 만났다. 98년, 우리나라에 그의 데뷔작 '바틀로켓'이 비디오테이프로 나온 것이다. 96년에 나와 그렇게 커다란 흥행을 못했는데도 98년 나온 것을 보면, 우리나라 비디오 시장이 그래도 영화광들에겐 꽤 풍요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틀로켓'은  지금은 물론 DVD 시절에도 나오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 때 처음 보고 너무나 독특한 이 작품에 매료되어 웨스 앤더슨이란 이름을 뇌리에 박아두게 되었고 그 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를 이후로 그의 팬이 되었다. 앤더슨의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이 '바틀로켓'과 '다즐링 주식회사'를 좋아하는데, 그건 첫 만남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가장 자유분방한 분위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뭔가 좀 헐겁고, 뭔가 좀 방만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앤더슨의 세계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별 필요도 없는 얘길 해버렸는데, 오래전 그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가 갑자기 그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터라 또 한 번의 꼼수를 부려 분량을 늘인 것이기도 하다. 글이 가볍고 별 내용이 없어 책도 그러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모처럼 비평다운 비평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니. 책의 날개를 보니 영화 전문 서적을 꾸준히 발간할 모양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와 난니 모레티의 책이 무척 기대가 된다. 1인 출판사라고 하는데 부디 잘 되어서 계획한 책을 다 내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응원한다.(이런, 끝도 이상해져 버렸군.)


이 영화를 좋아해서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바틀로켓' 비디오 테이프 / 인증합니다.

오엔 윌슨과 루크 윌슨의 푸릇푸릇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비디오 표지에 '텍사스 소년들'이란 말이 세월의 간격을 느끼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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