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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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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건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전건우 작가는 이전에 단편으로 만나본 적이 있다. 단편의 전건우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약간 코믹해 보이는 설정을 현실적인 디테일들로 채워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라는 모습이었다. 기발해 보이는 설정은 아무런 위화감없이 일상의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뇌리에 새겨진 작가였기에 아무래도 그의 첫 장편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나본 '밤의 이야기꾼들'은 정확한 의미에서 장편은 아니었다. 여섯 개의 단편을 '밤의 이야기꾼' 모임이라는 새끼줄로 굴비 엮듯 한 쾌로 묶어낸 작품이었다. 혹시,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이란 소설을 만나본 적 있는지? 그 소설과 비슷한 형식이다. 그 '흑거미 클럽'에서 주인에게 초대된 손님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듯이 '밤의 이야기꾼들'도 '밤의 이야기꾼들'을 찾아온 손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은 아이작 아시모프만은 아니었고 그와 더불어 세계 3대 SF 마스터로 불리우는 '아서 G 클라크'도 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하얀 사슴' 연작인데 '하얀 사슴'이라는 선술집에서 누군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두루 엮은 작품이었다. 그만큼이나 이런 형식은 장르 소설 팬에게 친숙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전건우 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서 영감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하얀 사슴'은 안 알려졌지만 '흑거미 클럽'은 우리나라에도 꽤나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밤의 이야기꾼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 밤의 폭우로 60명이 죽고 32명이 실종되었다.'

 첫 문장부터 시선을 확 잡아챈다. 프롤로그처럼 제시되는 이 이야기는 예기치 못했던 폭우로 부모를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은 폭우 속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밤의 이야기꾼'들로 방향을 튼다. 소년이 만나게 된 그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쏭달쏭한 상태에서 그보다 더 기묘한 주인공이 일하는 괴담 전문 출판사 '풍림'과 서울 중심가에 존재하는 '목련 흉가'에서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괴담 모임인 '밤의 이야기꾼들' 모임이 소개된다. 어디까지고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차츰 모호해지면서 정말 이 작품이 들려주려고 하는 여섯 개의 괴담이 한 밤에 문득 들려오는 아련한 메아리처럼 도래하게 된다.

'과부촌','도플갱어','홈, 스위트 홈','웃는 여자','눈의 여왕','그 날 밤의 폭우'가 바로 그것이다.

'과부촌'은 현재 바람을 피고 있는 남편이 뜻하지 않게 아내를 통해 장인의 미스터리한 실종의 전모를 알게 되면서 불현듯 당사자라면 도저히 만나고 싶지 않았던 세상의 끔찍한 진실과 조우한다는 이야기다. '과부촌'은 그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 받는 여성성을 그리고 있는데 남성에 대한 통렬한 보복(남성에게 있어선 오싹할 보복이겠지만)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 자체는 다른 작품의 설정을 빌려온 듯 하다.


 예전에 KBS에서 방영한 '환상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가 있었다. 원래는 '나이트 메어'로 유명한 호러 영화 감독인 웨스 크레이븐이 80년대에 미국에서 제작한 'NEW TWILIGHT ZONE'이란 드라마 시리즈를 수입해 방영한 것으로 환상적이거나 괴담 같은 에피소드들을 한 회당 두 개나 세 개씩 묶어 방송했었다. 그 중 한 에피소드가 이 '과부촌'과 상당히 유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공포를 가져오는 존재에 관한 것인데 그 에피소드는 시즌 1의 38번째 에피소드인 'A Matter of Minutes'이다. 원작자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작가인 할란 엘리슨(그는 '뉴환상특급'의 첫 에피소드였던 'Shatterday'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다이하드'로 뜨기 전의 풋풋한 용모의 브루스 윌릿스가 주연을 맡아 1인 2역을 연기했다.)이라 더욱 기억에 남아있는 이 에피소드는 한 부부가 우연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게 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다.

 누구나 한 번쯤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히 여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할란 엘리슨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블루 칼라 노동자의 헌신으로 그 궁금히 여겼던 시간의 비밀을 재치있게 풀어간다. 그러니까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갈 때 우리는 모르지만 시간은 마치 열차와 같아서 지금 있는 칸으로 비어 있는 앞칸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그 앞칸은 백지처럼 비어있는데 우리가 그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걸 모르는 것은 블루 칼라의 노동자들이 현재의 공간 그대로 미래의 공간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말이다.


 이들은 정말 공간의 거주자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빈틈없이 완벽하게 과거의 공간을 재현한다. 시간은 이렇게 흐르는 것이며 우리가 사실은 공간의 이동인데도 전혀 모르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동 덕분인 것이다. 진실을 보았지만 그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부에게 현장 감독자는 이런 말을 한다. "왜 그런 경험 있지 않습니까? 잃어버렸던 물건이 어느 순간 찾아보니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경우 말이죠. 혹은 분명히 거기에 둔 것 같은데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는 경우도 말이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바로 우리 직원들의 실수 때문이죠." 처음엔 시청자들도 실소를 머금고 보지만 바로 이 말 때문에 '아, 정말 저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마르크스 테제를 SF적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다름아닌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노동자이다!'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인 것이다. 역사를 만들고 변혁을 뜻하는 미래의 창조자가 바로 노동자라는 것을 이 에피소드만큼 선명하게 보여준 에피소드도 또 없다. 그만큼 빼어난 에피소드인데 '과부촌'이 이 설정을 슬쩍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좀 전에 소개한 현장 감독관의 말까지 이 소설엔 나온다. 물론 사용처는 다르지만.

 아무튼 그랬기에 조금은 씁쓸함도 있었던 '과부촌'인데, 그래도 할란 엘리슨의 단편을 모처럼 상기시켜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다음의 '도플갱어'는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성형으로  비슷한 외모가 기성복처럼 양산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재치있게 풀어내고 있고 다음의 '홈, 스위트 홈'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집요한 욕망의 대상인 '집'을 오히려 공포의 원인으로 삼고 있다. 사실 지금도 증가하고 있는 '하우스 푸어'들에게 집은 '홈, 스위트 홈'이라기 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아닐까? 그런 사회적 현실을 공포로 은근히 풀어내는 작품이다.

 '웃는 여자'는 한 때 가장 무서운 괴담의 주인공이었던 '빨간 마스크'를 전건우 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고 '눈의 여왕'은  '설녀'(이 역시 '빨간 마스크'와 더불어 원래는 일본 괴담의 존재로 알고 있다. 다만 '빨간 마스크'가 현재라면 '설녀'는 고전적 괴담이다.) 소재로 호러에 집중한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날 밤의 폭우'에서 프롤로그에서 소년이 보았던 존재들의 정체가 비로소 밝혀진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이런 이야기였다. 설정을 다른 데서 가져온 것도 있고 원래 있던 것을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도 있었다. 이야기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일장 일단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을씨년스런 이야기였다. 다만 '눈의 여왕'은 좀 전개가 너무 전형적이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만족한다. 단편집의 리뷰는 힘들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개별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을 이야기할 수 없고 그 개별적인 매력을 이야기하자면 분량이 무한정 길어져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리뷰의 고수라면 이런 때 적당한 타협의 지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내공이 부족하여 갈무리가 잘 안된다. 미진한 점이 많더라도 이대로 끝낼 수밖에. 현재 전건우는 '소용돌이'라는 장편 소설을 연재 중이라고 한다. 그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올 때쯤이면 내 리뷰의 내공도 좀 높아져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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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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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이 출간되었다. 5집 이후 4년만의 출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더 오래 묵힌 세월 탓인지 더 몰입하게 만들었고 더 재밌어졌다. 모두 1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의 표지는 가장 처음 나오는 단편인 '돼지가면 놀이'를 테마로 만들어졌는데 돼지의 모습이 얼른 감독 장 피에르 주네의 데뷔작인 영화 '델리카트슨'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한 때, 대표적인 컬트 영화로 여기저기에서 추천되던,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영화였는데 아무리 유명했어도 세월의 무게는 이길 수 없었는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감독 장 피에르 주네의 이름조차 '델리카트슨'이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보다는 '아멜리에'로 더 기억되고 있는 형편이니. 아무리 그래도 '델리카트슨'이 보여주었던 영화적인 새로움의 충격엔 '아멜리에'는 발 끝도 못 미친다. 진정한 주네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은 바로 이 '델리카트슨'이 아닐까 한다라고 쓰고 있지만 지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글은 '델리카트슨'이 아니라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얼른 손가락으로 머리에 경고의 충격을 주고 항로를 수정한다.

 유재중의 '돼지가면 놀이'는 한국전쟁 직후, 강원도 해안면의 '펀치볼'이란 마을에서 괴기 사건을 경험한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싫어하는 손자에게 들려주는 독백으로 되어 있다. 사이 사이 손자가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인지 흥신소에 의뢰해 보고 받은 글이 나와 있지만 '돼지가면 놀이'는 전형적인 괴담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중에 가면 소설이 주고자 하는 공포 자체가 바로 이 '괴담'이 전해지는 형식 자체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읽을 분들을 위하여 그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으련다. 다만 스즈키 고지의 '링'과 비슷하다고만 말하고 싶다. 이렇게 '돼지 가면 놀이'는 형식과 주제가 일치하고 있으며 진짜 공포는 돼지 가면을 쓴 자들의 살육이 아니라 훗날 어떤 여름이나 겨울 밤, 친구들과 괴담을 주고 받을 때 홀연히 상기될 지도 모른다. 그걸 마지막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돼지 가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돼지 가면은 닐 조던의 영화 '푸줏간 소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한다. 패트릭 매케이브의 소설(제발 우리나라에 출간 좀 해 주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쳐버린 세상에서 진실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소년이 나름 세상을 바로잡고자 벌이는 살인을 그리고 있는데 누구나 한번쯤 겪는 시대에 대한 절망을 참 잘 그려낸 작품이다. 요즘 보면 더욱 소년의 절망에 공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라고 또 쓸데없이 영화 이야기를 해버렸군 ㅠ ㅠ).

 김재은의 '숫자꿈'은 환상을 혐오해 마지 않는 지극히 현실 중심적인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홀연히 떠오르는 숫자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숫자란 다름아닌 숫자의 주인공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려주는 기호였다. 현실주의자에게 느닷없이 환상의 세계가 도래해 버린 것이다. 죽음의 방식을 말하는 숫자라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인사 담당으로 타인을 만나는 주된 매개체가 입사지원서의 증명 사진이라는 점을 얼굴 위로 떠오르는 숫자로 연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에는 표현되지 않은 내용인데, 사실 숫자의 환상이 갑자기 그에게 도래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입사 지원서의 증명 사진 얼굴들을 보면서 내내 자신이 채점한 점수를 떠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 점수는 그대로 탈락으로 이어졌을테니 환상 세계에서 그가 보게 된 죽음 숫자와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자신의 주된 일상 행위가 그대로 공포의 매개체가 되어버렸다는 점이 이 소설의 탁월한 매력인데 멋진 설정만큼 그 연결을 잘 살리지는 못한 것 같고 전개가 이런 소재물에서 흔히 흐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좀 실망스러웠다.

 박해로의 '무당 아들'은 독자를 가지고 노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포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공포로 능수능란하게 변한다. 하지만 역시 매끄럽지 못한 결말이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

 김희선의 '여관바리'는 일상과 공포를 잘 조합했는데 나도 그런 곳에 자야 했을 때는 혹시 여기가 누군가 자살한 곳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느꼈다.

 정세호의 '낚시터'는 영화 '캐빈 인더 우즈'와 비슷한 설정으로 환상과 공포를 잘 조합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함부로 연락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적도 없지만.


 장은호의 '며느리의 관문'은 지금처럼 조건이 결혼의 결정적인 동인이 된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인데 전개가 다소 식상한 편이다.

 우영희의 '헤븐'은 강렬한 도입부로 시선을 확 사로 잡는다. 잘 달리다가 후반에서 좀 휘청거린다. 마지막을 왜 굳이 그렇게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너무 반전에 구애받지 않았나 싶다.

 황태환의 '고양이를 찾습니다'는 처음 읽을 땐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소재와 전개인지라 왜 여기에 실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무리없이 공포의 세계로 데려간다. 분위기를 돌변시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 썼던 방법을 여기서 쓰고 있다는 점이 좀 걸린다. 나만 괜히 그러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김유라의 '구토'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과음으로 도로에 구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환경 정화를 위해 권장 소설로 삼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후반에 짧게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있다. 짧지만 꽤나 강렬하다.

 엄길윤의 '파리지옥'은 지극히 일상 공간인 '편의점'을 공포의 무대로 삼았다. 편의점 알바로 일하고 있거나 일한 경험이 있다면 환영할만한 대목이 있다. 강자 앞에선 약하고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한 보편적 한국인의 비굴한 초상을 조롱하는 게 마음에 든다.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내 이해가 짧은 탓으로 설마 마감 시간에 쫓겨 서둘러 결말을 내린 것은 아니니라 믿는다.

 이렇게 10편의 이야기를 읽은 소감을 말해본다. 일장일단은 있었지만 모두 가득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들이었다. 확실히 한국 공포 문학이 발전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다음 작품집은 또 얼마만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얼른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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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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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문학 못지 않은 탄탄한 문장력, 현실감 넘치는 생생한 묘사 그리고 탄탄한 구성력으로 한국 장르 소설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B컷'의 작가 최혁곤의 두 번째 장편이 나왔다. 그게 바로 'B 파일' 이다. 'B컷'이 2006년에 나왔으니 햇수로만 따지자면 7년만에 나온 셈이다. 제목에 꾸준히 B'를 쓰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여기에 어떤 작가적 신념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작품을 읽어보니 역시나 그렇다. 'B 컷'이 남에게 대놓고 공개하기가 꺼려지는 사진을 뜻하는 제목 그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 'B급' 인생을 살게 된 은퇴한 남자 형사와 여성 킬러를 중심으로 평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살아가는 밑바닥의 삶을 조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B 파일' 역시도, 이번엔 모두 네 명으로, 더욱 사람 수를 불려 'A 급'들만을 위한 룰이 지배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생존과 진실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B 급'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최혁곤에게 'B'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린 혹은 내몰린 삶을 뜻하는 말이며 그래서 단적으로 말해 '피해자'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그 'B'가 내내 쓰인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가해자들에게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면서도 목소리마저 빼앗겨 변론과 호소의 말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돌려주어 자기 변론과 호소의 장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때문에 두 작품 모두 그러한 인생들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B 파일'은 여러모로 'B 컷'과 연속선상에 있다 그래서 사람 수가 늘어난 것처럼 일종의 확장판 느낌도 난다.(무엇보다 이전 작품에서 깜짝 조연이었던 성전환자가 이번엔 주요 인물 네 명중 하나로 전면으로 나섰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풀려진 것일까? 그건 관찰자 시점의 개입이다. 이전의 작품엔 오로지 참여자들만 있었다. 생존에 급급했던 그들은 도대체 자기들이 왜 이런 아귀다툼에 말려든 것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B 파일'엔 참여자들만 있지 않다. 그들 중 두 명은 냉정히 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인 것이다. 바로 이 시점의 필요 때문에 두 명이 네 명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보면 이 네 명, 그러니까 스포일러 상 밝히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B 파일'로 분류된 조선족 출신이지만 한국에와서 성공한 은행원 리영민, 고참 기자 윤, 성전환을 바라는 킬려 미호 그리고 윤과 같은 신문사 신참 기자인 에스더, 또한 그 관계에 있어 미묘하게 둘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영민 과 윤' 그리고 '미호 와 에스더' 이렇게 말이다. 이건 그들의 독백을 듣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공통점이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리영민과 윤은 성공한 은행원과 고참 기자라는 것에서 드러나듯 킬러와 신참 기자인 미호와 에스더 보다는 위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상위에 있는데도, 아니면 그 상위에 있기 때문인지, 보여주는 모습은 미호와 에스더보다 지극히 소극적이다. 자신들의 처지 역시 'B 파일' 즉 사회 약자임에도 불구하고(리영민은 차별받는 조선족이고 고참기자 윤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신문사의 핵심에서 밀려나 문화부에서 일한다.) 그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리영민은 같은 조선족 출신의 한국 사회 차별에 대한 불만을 귀찮게 여기고, 고참기자 윤은 여자 신참 기자가 상사에게 무참히 깨지는 광경을 보아도 시집이나 잘 갈 것이지 왜 사서 저런 꼴을 당하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이대로 내 것만 잘 챙기며 평온하게 끝까지 가고 싶다는 '무사안일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는 리영민과 고참기자 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선명하게 부각된다.

 

 먼저 리영민,

 

 누가 뭐래도 한국이 좋았다. 주위에서 악덕 고용주 욕을 해대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그건 시장의 수요, 공급과 관련된 문제다. 어느 체제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 않은가. 그건 민족과는 무관한, 전적으로 개인 능력과 결부시켜 봐야 한다. (P.22)

 

 그리고 고참기자 윤.

 

 내키지 않았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속내를 모르니 당연히 거부감이 앞섰다. 편집국장이 윤의 능력을 신뢰해서 이런 일을 맡길리는 없다. 그렇다면 한가해 보여서? 그 쪽이 맞을 것이다. 저 인간 잣대로 보면 공연 담당 기자는 인터넷에서 긁은 정보와 보도 자료로 짜집기 하고 월급 축내는 종자로 보일 테니(P. 26)

 

 이랬던 그들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픔 따위 '개인의 능력 차이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혹은' 어차피 밀려난 처지에 귀찮게 뭐하러'라는 말로 눈감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의 처지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위와 상황이 보호 장벽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든든해 보였던 안전망이 한 순간에 무너져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리영민과 윤은 한 쌍이다. 리영민은 실제 참여자로서 이 모든 걸 온전히 겪고 윤은 그 직업이 기자인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을 관찰한다.(어쩌면 윤 보다 훨씬 높고 안전해 보였던 편집국장이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것은 그가 사실은 리영민과 완전히 같은 존재라는 걸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반면, 그 반대편에 있는 미호와 에스더의 관계는 적극적이다.

 미호는 진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청부 살인을 하고 그러다 뜻하지 않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되자 오히려 그 대상을 찾아내 복수하려 한다. 아마도 최혁곤 작가는 이 미호라는 이름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신 시티'에 나오는 냉혹한 살인 기계 여자 킬러 '미호'의 이름을 따온 것 같다. 그 미호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집요하게 쫓아가는 인물이 바로 그(혹은 그녀)이다. 그건 신참기자 에스더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재수를 불사하고 기자가 된 것은 자신과 같이 기자였다가 억울하게 좌천당한 아버지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이들은 적극적이다. 그들은 부조리한 현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미호는 못 견뎌하는 남자의 신체를 진짜 여자의 신체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에스더 역시 자기 보다 미모도 수완도 '갑'인 CBS 여성 기자 양미라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양미라 기자가 너무도 얄밉게 나와서 끝까지 제대로 본 때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쉬웠다.) 더우기 이 에스더란 이름. 이 이름은 성경에서 집단 학살의 운명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한 여인의 이름으로 예로 부터 구원자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 아니던가! 그렇게 바꾸려한다. 모자라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말이다. 이렇게 네 명을 둘로 나눈 관계는 차이가 난다.

 

 이러면 그냥 'B 컷'의 구도를 써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네 명으로 늘린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명이 나왔다면 그 중 둘은 다른 역할을 맡았다고 보아야 한다. 즉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의 역할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직업 역시도 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왜 관찰자가 새삼 여기에 나와야 했던 것일까? 그건 'B 컷'과 대비해 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B 컷'은 참여자들만 있었다. 그래서 생존하기에 급급한 아귀다툼의 현장만 나왔다.(이건 앞에서도 말했다.) 다시 말해  'B 컷'은 현상 뿐이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진짜 원인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흔히 전작의 약점으로 지적된 과도한 세태 비판의 개입은 작품의 근본이 참여자들만이 존재하는 게임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성찰을 부여하려다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작가가 그 약점의 원인을 제대로 인지했고 그래서 성찰적 지점들을 무리없이 통합시키기 위해 따로 이 관찰자 역할들을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이다. 세상은 왜 7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같은 아픔이 반복되는가이다.  'B 컷'과 'B 파일'이 애초의 신념 그대로 피해자들의 진정한 변론과 호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반복되는 아픔을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하고 그 대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그 과정이 관찰이다. 돌아가는 판세를 보고 그것을 야기하는 회전의 중심축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여 반복되는 비극의 연쇄를 끊는 것. 그것이 관찰인 것이다. 그러므로  'B 컷'과 대비하면 'B 파일'이 어디에 자리잡는지 곧 드러난다. 말했던 대로 그것은 성찰의 지점이요,  'B 컷'에서 이어지는 아픔의 연원들을 여기에 이르러 선명히 드러내려 한다는 것을. 최혁곤의 'B 파일'은 그러한 작품이다.

 

 이미 3부로 구성된 순서에서 이 작품이 추구하는 것이 드러난다. 3부는 이런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홍콩모텔 -> 2부  민주 일보 -> 3부 원더 랜드  

 

 

 읽어보면 이 순서가 그냥 놓여진 게 아니라 보다 분명한 목적을 두고 배열된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여기에서도 이 소설이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는 것이 성찰을 향한 '관찰'임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 순서가 정확히 우리가 관찰하는 과정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관찰의 과정에 있어 언제나 첫 시작은 대상이다. 먼저 대상이 놓여져 있어야 관찰은 시작될 수 있다. 그렇게 살해된 한 여성의 시체로 시작을 여는 홍콩모텔은 죽음과 누명의 장소로 'B 컷'의 게임판이며 연이어 등장하는 'B급'으로 밀려난 네 명, 그 어느 누구도 살이의 피로와 아픔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진정 관찰을 위해 놓여진 대상인 것이다. 현상이 개화되면 관찰이 시작된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가늠해간다. 그게 바로 2부 민주일보의 과정이다. 아예 윤과 에스더가 일하는 신문사 이름을 제목으로 명기하여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관찰의 끝엔 결론이 있다. 파악한 원인을 통한 해명이 있다. 3부 원더랜드가 그렇다. 거기서 궁극적으로 이 모든 아픔들의 원인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이 소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이 밑바닥의 삶들이 이토록 힘든 이유는 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지 않고 위로 부터 부과되어 온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피해자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아무런 원인이 없기에 아주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피해자. 제목 'B 파일'은 그것의 상징과도 같다. 누군가가 분류한 파일엔 'A 파일'과 'B 파일'이 있다. 'A 파일'은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에 키워서 써 먹을 수 있는 존재들의 것이고  'B 파일'은 죽음조차 써먹을데가 없는 잉여인간들의 것이다. 하지만 최혁곤 작가가 내놓고자 하는 원인은 이 분류된 파일에 있지 않다. 그가 원인으로 제시하고 싶은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이 파일 자체에 담겨진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다.

 

 'A 파일'이든 'B 파일'이든, 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보는 시각은 똑같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이용 가능한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이 목록에 오른 사람들의 존재 가치는 분류한 자에게 있어 도구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 쓸모가 없으면 쉽게 버린다. 그 누군가 중의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 없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충견을 원했는데... (P. 394)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위에 있는 자들이 아래에 있는 자들을 오로지 이와 같은 시각으로만 보고 있기에 우리의 현실은 이리도 '홍콩모텔'과 같은 느닷없는 추락,고통 그리고 죽음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왜 네 명 중 두 명인 리영민과 윤을 하필이면 보다 상층의 존재로 설정했는지 드러난다. 편집국장이나 양미라의 삼촌이 되는, 현재 잘나가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지위나 직업이 자신을 보호해 줄 튼튼한 장벽이라 여겼지만 보다 더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한 번 움직이자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 한 번의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로써 최혁곤 작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탄탄한 안정은 부질없는 꿈이라고 말한다. 경찰 서장이 무심코 술김에 한 말 때문에 결국 옷을 벗게 되는 소설 속 장면처럼 말이다. 마치 천라지망처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항구적 불안. 바로 그것이 도래된 연유에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시각이 있다고 그는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사업가들이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공장주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국 노동자와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면 성적 소수자와 같이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는 나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시각이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러고 보면 다른 두 명, 즉 미호와 에스더는 리영민이나 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일단 미호는 존재 자체가 경계 위에 있다. 그는 남자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즉 태어난 것과 전혀 다른 타자적 신체를 받아들이려 하는 존재인 것이다.(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작품에 와서 전면에 등장한 것도 3부에서 제시한 저 시각에 어떤 대안 같은 것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비단 미호의 신체만이 아니다. 그/그녀가 걸어온 길 또한 그렇다. 그/그녀를 결국 킬러에 이르게 했던 살인들은 모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 결과였다. 그렇게 그/그녀는 타인을 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로 보는 자였다. 이는 에스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경찰서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며 결국 할머니와 시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미호와 에스더는 모두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아픔을 유발시키고 있는 현재의 근원적 시각으로 부터 모두를 치유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적인 시각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이 소설에서 유일한 구원자적 존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만큼이나 이야기했으니 이 소설이 내게 나무랄 데 없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3부다. 미호와 에스더를 이리도 정성껏 구원자적 존재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력이 없다는 게 참 아쉽다. 몰입도도 좋고 이야기를 차츰 절정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좋아서 풍선처럼 한 번 거세게 폭발할 순간만을 기다리며 잔뜩 부풀리고 있는데 톡 터뜨려 주기는 커녕 그냥 입구를 더욱 묶어 버리니 뒷 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미호의,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이 되는 '신 시티'의 미호만큼이나  무자비한 복수신을 기대했는데 나오지 않아서 더욱 아쉬웠다. 이렇게 끝내기엔 그동안 죽은 사람들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최혁곤 작가의 잠자리가 과연 편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혹시 꿈마다 소설에서 죽은 원혼들이 '내 생명 돌리도~'하고 나오는 것은 아닐지. 뭐, 그만큼 아쉽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적 결말을 추구한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현직 기자이다 보니(그는 현재 경향신문 기자다. 소설 속의 기자 묘사 장면들이 더없이 현실감 넘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통화중 녹음 기능이 안되어 기자들은 아이폰을 이용하지 않는다든지, 수습 기자 때 경찰서를 돌아다니는 것을 마와리(일본말이다.)라고 부른다든지, 경찰서 기자실이나 편집실의 모습 같은 이런 저런 기자 생활의 디테일한 면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자잘한 재미들이다.)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마무리지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만일 그랬다면 3부 부분을 더욱 늘려야했지 않았나 싶다. 인물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정리되는 느낌이 있다. 더구나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죽음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도 의아하다. 다들 너무도 쉽게 납득해 버리는데 그런 행동들이 거기까지 공들여 설정해 놓은 것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모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화끈하게 폭발시켜 버렸으면 하고 자꾸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같은 B 파일의 존재로서 동병상련을 느꼈던 우리의 답답한 마음도 그와함께 휘발되어 버렸을 테니까...

 

 이런 저런 약점은 있지만 그래도 결론지어 말하자면 앞에서 죽 이야기 한 대로 그 속만은 꽉 차 있는 좋은 작품이다. 깊이도 재미도(뒷 부분이 많이 아쉽긴 하지만) 한국 장르 소설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아갔구나 하고 새삼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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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왕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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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얘기할게요.

 재밌습니다. 몰입도도 상당하구요.

하지만 결말이 조금 맥빠집니다. 띠지에 나와있는 것 처럼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 얽힌 세 소년의 통쾌한 한판 승부!'가 되기엔 2% 정도 부족해 보여요.

문구는 뭔가 박력있는 활극이나 엄청난 반전 같은 것을 기대하게 하는데 그런 게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 태식이 좀 어정쩡하게 끝난다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데 아쉬움이 좀 많이 남네요.

 

 결말까지 치달아가는 동안 이야기가 정말 재밌었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하긴 '성적은 밑바닥이고 싸움은 못하고 얼굴도 그저 그런, 선생님에게 무시당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주눅 들고 껌좀 씹고 침 좀 뱉는 아이들이 부탁하면 빵과 우유를 사다 줘야 하는' 어쩌면 그저 이 땅의 90% 중의 하나인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한 주인공이 세상과 아무리 맞짱 뜬다고 해도 얼마나 바꿀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철저하게 현실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네, 그게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 세계를 잘 몰랐는데 이 소설을 통해 온라인 게임이 가진 적나라한 모습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요. 아, 참 이 소설은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을 주 소재로 하고 있어요. 간혹 언론을 통해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이 어떤 폐해를 가지고 있는지 보거나 듣긴 했지만 소설에서 묘사하는 대로 그만큼이나 집요한 인간의 욕망들로 범벅이 된 곳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니 거꾸로 왜 게임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생기는지 혹은 간혹 게임을 하느라 아기를 방치한 끝에 죽게 만드는 부부들도 생기는지 이해하게 되었달까요. 새삼 돈이란 게 정말 무섭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은이가 온라인 게임을 이렇게 소설의 주 무대로 가져온 이유는 분명했어요. 그 온라인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나타낸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이를테면 태식이 느꼈던 바로 이런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건 인생이구나.

 잘나야 대접받고, 위로 올라가려면 싸워야 하고, 다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하는 진짜 인생.

 학교에서는 성적과 주먹으로 서열이 결정된다면 게임에선 레벨과 아이템으로 결정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p.39)

 

 소설은 주인공인 고교생 '태식', 온라인 게임의 사장 '중경'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최고 강자지만 게임을 단지 게임이 아니라 알바나 길드원들을 부려 돈을 버는 사업으로 하고 있는 '인투더레인'  이렇게 세 명이 돌아가며 자기 이야기를 펼쳐놓는 가운데 진행이 되는데 아무리 온라인 게임속 최고강자라 해도 또한 아무리 그 온라인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창조주라 해도 그들이 느끼는 인생이란 게 태식이 느끼는 인생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지은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 결국 가지게 되는 삶의 모습은 똑같다고 말입니다. 지은이에게는 그렇게 생각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보이는 세계가 화려할 수록 기반은 허약하고 몰락은 거대하기 때문이죠(p.20)

 

 한 마디로 이 세상은 거센 파도를 바로 눈 앞에 둔 모래성과도 같으니 어디에 서 있든 다들 위태위태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 소설의 진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군요. 발 밑으로 소리없이 모래가 쓸려 나가는 그 위에 우리가 서 있음을 알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여행을 위한 소설입니다.

 결말이 말처럼 제대로 통쾌함을 주었다면 정말 만족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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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4-1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하, 헤르메스님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전에 한 번 봐두고는 재밌겠다, 입맛다시고는 '일단 꼭 읽고 싶은 책만 사자'하는 저의 가난한 마음으로 치워버린 작품이어요. 헤르메스님의 서재는 도서관 수준이겠습니다... 후후

ICE-9 2012-04-18 21:57   좋아요 0 | URL
하하! 늘 책에 치여살긴 합니다.^ ^
굳이 사지 않더라도 도서관 같은 곳에 신청해서 빌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이진님 또래의 얘기라서 읽으면 저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던데... 아무튼 이런 소설 읽을 때 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암울한 현실 밖에는 물려주지 못한 우리 기성세대가 참으로 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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