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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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으로 태어나 모든 시간을 남성으로 살았던 터라

여성에 관한 책은 언제나 내게 깨달음을 준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은 깨달음에 더해 재미까지 준 유쾌한 책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은 대부분의 폭력범죄를 남성이 저지르는데,

왜 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통계자료를 말하지 않느냐는 저자의 힐난이었다. 

남성이라는 성별은 출생 전 담배연기에 노출된 것, 반사회적 부모를 둔 것, 가난한 가정에 소속된 것과 더불어 폭력적 범죄행동을 유발하는 위험인자 중 하나인 것으로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42쪽)


게다가 사회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쁜 일을 당할 수 있으니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여기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다.

예방의 책임을 전적으로 잠재적 피해자에게만 지움으로써 폭력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점이다. 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격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집중할 뿐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 공격자가 되지 말라고 이르는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52쪽)

성폭력의 거의 100%가 여성을 대상으로,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남성은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라고 봐도 무리가 없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아.” (182쪽)


남성들은 성폭행을 저지르는 남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 책에서 예로 든 IMF 총재의 경우처럼 성폭행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보면 “점잖은” 사람들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씨를 보라.

그가 캐디의 가슴을 찌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여전히 남성들은 이들 남성들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많은 남성들이 그럴 만한 권력과 기회를 갖는다면 성폭행. 성추행을 한다는 것이

내가 만난 숱한 여성들의 증언이다. 

그렇게 해도 자신이 처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니까.

만의 하나 그 여성이 신고라도 하려 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자가 혼자 지어낸 거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여자는 전에 술집에 나간 적이 있다, 딸 같아서 그랬다 등등 여러 단계의 방어막이 존재하고,

심지어 “저 여자가 성추행 사실을 외부로 알림으로써 우리 조직이 위태로워졌다” 같은 조직논리도 등장하는데,

피해자가 이 모든 방어막을 뚫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설사 가해자가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성추행을 저질렀던 출판사 상무는 복직했지만 피해자는 결국 사직하고 만 걸 보면,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만은 가해자가 갑이고 피해자가 을인 듯싶다. 

이해 안 되는 일 하나. 

성추행을 당할 위험에서 벗어나 마음놓고 밤늦게 다닐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남성들은

“우리 사회는 여성들만 편하다”면서 울분에 차 있던데,

이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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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18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해자가 갑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갑이 가해자가 되는 것 아닌가요? 두 가지가 같은 것인데, 제가 구분하려 하는 것일까요? 제 의견으로는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데요. (정부나 삼성을 봐도 ... 친일파, 일본, 미국 ... )

마태우스 2015-06-18 08:27   좋아요 0 | URL
네 읽고보니 그게 좀 이상하네요. 갑이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받을 때도 갑이고. 뭐 그렇게 되는군요. 너무 급하게 쓰면 이렇다니깐요 암튼 마립간님 반갑습니다. 늘 한결같이 활동하시는 모습이 멋지세요.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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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은 남편이 술김에 쓴 편지를 아내가 읽고 난 뒤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다. 

편지를 쓴 다음날 남편은 그 편지를 찾았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아내가 그 편지를 찾아낸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보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아내는 그 편지를 읽고야 만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을 알고픈 호기심이 있다.

하지만 배우자가 그렇게 애원한다면 안봐 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그 비밀을 알고 난 다음의 삶은 알기 전과 완전히 다를 텐데,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면 굳이 알리기 싫은 비밀을 들쑤심으로써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휴대전화 메시지는 물론이고 이메일까지 아내가 다 검열하는데,

어제 오전 7시경 온 문자를 아내가 보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려면 내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하건만,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이 또 우리네 인생인지라,

난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아무튼 이 책은 꽤 쏠쏠한 재미를 제공해 줬고,

그래서 그런지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다 (부럽다, 한달 반만에 13쇄라니!)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얘기해 본다.

1) "시어머니 버지니아의 특기는 무슨 일을 해서든 상대방의 기분을 조금은 나쁘게 만드는 거였다. 그녀에겐 아들 다섯과 며느리 다섯이 있었는데, 버지니아 때문에 분노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은 며느리는 세실리아 뿐이었다...좋아요, 덤벼봐요! 시어머니를...볼 때마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290쪽)

시어머니가 기본적으로 며느리를 괴롭히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새삼 신기하다. 만국의 며느리들아, 단결하라, 같은 구호를 외치고 싶다.


2) 328쪽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자기가 평소 좋게 봤던 어떤 이의 특징들이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그게 다 단점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변할 때 변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 사람을 보는 시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3) 한 소녀가 두 남자, A와 B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한 사람을 선택한다.

이유는 이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A지만, A는 너무 완벽한 남자라서

A와 사귀면 “잘생겼고 영리하고 재밌고 친절한 사람에게 받는 중압감을 늘 느껴야 한다는 뜻이었다.” (333쪽)

내 아내가 날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 듯. 


4) “훨씬 전에도....따분한 젊은 회계사였을 때도 그는 침대에서 아주 잘했다. 그땐 그녀가 너무 어려서 그 진가를 몰랐을 뿐이다. 그저 섹스는 모두 그렇게 좋은 줄만 알았다.” (350쪽)

더 읽다보면 이런 구절도 나온다.

그의 특정 기술은 정말로 아주..걸출했다. 혹시 섹스를 잘하는 비법이 실린 책을 읽는 걸까?”

(408쪽)

잘 하는 게 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런 비법이 실린 책이 있다면, 

나는 이미 늦었지만, 젊은 분들은 구해보는 게 좋을 듯. 

좋은 섹스는 구운 전어보다 훨씬 더, 며느리로 하여금 집을 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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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06-13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비밀은 너무 궁금해서요

마태우스 2015-06-13 21:09   좋아요 2 | URL
비밀편지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안보는 건 쉽지 않죠. 하늘바람님 오랜만!!

감은빛 2015-06-13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부 사이라도 비밀은 있게 마련이죠.
문자와 이메일까지 검열한다니~ 어휴! 힘드시겠어요!

마태우스 2015-06-13 21:09   좋아요 1 | URL
네 좀 힘들어요 흑흑. 더 이를 악물고 바르게 살아야죠ㅠㅠ

다락방 2015-06-13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저도 전어 때문에 집 나가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섹스라면 좀 생각해볼 것 같아요. ㅎㅎ

마태우스 2015-06-13 21:10   좋아요 1 | URL
호호 그렇군요 일단 잘 하는 게 뭔지 정의를 알고 싶은데,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하늘바람 2015-06-13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님 소식 여기저기서 늘 들어요
님 글 제 페북에도 공유했는데 인기짱

재는재로 2015-06-14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밀이라는게 참 모른게 나을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부부관계라는게 한순간에 깨질수도 있네요
사소한 일이 쌓여 깨지는게 대부분이라 생각했는데
마태우스님 오랜만

후애(厚愛) 2015-06-15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꼭 봐야겠네요.^^
편안한 한 주 되세요~

transient-guest 2015-06-16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적정선에서 비밀은 유지되어야 건강한 부부생활이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문자/이메일 검열의 빈도와 수위만큼이나 사랑받고 계신듯...ㅎㅎ

[그장소] 2016-02-05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처음부터 검열대상였나..아니었나..잘 생각해보셔요.
^^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으셨던 분이라면 아마 그런 검열 하고 남죠.
그나마 그건 애정이 남아있다는 소리..
보는 아내분도 그걸 볼때마다 자신의 자아가 천갈래로
뚝뚝 떨어진다는 걸 잊지마시면 좋겠어요.
좋아서 즐거워 보는게 아니라는거.
비밀 만들어 놓고 보지 말라는건 ㅡ장난도 뭐도 아니라는거..아예 그럴일은 하지 않는게 좋죠.
그렇다기 보단 , 이미 엎어졌어도 사람일 ..신뢰회복이 우선이니 최선을 정말 최선을 다해 신뢰부터 복구하심이..
.......
하지만 ㅡ일생에 단 한번 , 을 걸고 진지하게 부탁을
해보는건 어떨지. 싶어요.
ㅡ결투 ㅡ아내 보시오 .
그 편지는 행운의 편지요. 바로 보자마자 발동하므로
보는 즉시 닥치는 온갖 일에 대해 자신 있다면 열어보시고
앞으로 닥칠일에 자신없다 .지금이 좋다 ㅡ면 절대 열지
마시오. 매일 매일 행운의 편지를 쓸자신이 있다면 말이오!ㅡ 라고...
저는....
고리대금업 행세를....ㅋㅋㅋ
 
지승호, 더 인터뷰 - 인터뷰의 재발견
지승호 지음 / 비아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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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빙벨>을 보지 않았다.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볼 마음이 없었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음모론을 잘 믿지 않는 내게 <다이빙벨>은 세월호에 관한 음모론을 주장함으로써 정부를 공격하는 영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난 오늘 그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내가 야구를 다 보고 나면 VOD로 보던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든지 해서 볼 것이다.

변심한 이유는 한 권의 책이었다.

한국 최고의 인터뷰어가 쓴 <지승호: 더 인터뷰>에서 <다이빙벨>을 찍은 이상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승호: 다이빙벨은 실패를 했고 이종인 대표(다이빙벨을 만든 회사)도 그것을 인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상호: 그 부분은 영화를 보면 클리어하게 해소되는데요, 안 보신 분들은 여전히 그 거짓말을 믿고 있죠. 

난 정권과 언론의 합작 거짓말에 속고 있었던가? 

이상호 기자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 영화를 안보면 오늘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그밖에도 이 책은 내게 읽지 않았으면 절대 모를 얘기들을 해준다. 

하나, 김난도 교수에게 좀 더 호의적이 됐다. 

그간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부정적이었다. 

청춘에게 아픔을 감내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세간의 비판에 동화된 탓인데,

정작 그 책을 읽은 청춘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저자에게 고마워한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욕한다는 김난도 교수의 지적에도 뜨끔한 것이,

난 그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었고, 그나마도 비판하고픈 대목만 찾아서 눈을 부라렸다.

생각해보면 그 책이 욕을 먹은 이유는 단지 그게 많이 팔렸다는 것일 뿐,

김교수의 말처럼 3만부가 팔렸다면 좋은 책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 책이 너무 많이 팔린 건, 저자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 강풀 작가님을 더 좋아하게 됐다.

예컨대 이런 말, “그 어떤 마감보다 애 키우는 일이 더 힘들어요...가끔 잘 모르는 아빠들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러는데, 그럴 때 나라에서 3일간 집에서 애 키우도록 지정해두면 다시는 그런 소리 안할 거예요.” (96-97쪽)


셋째, 강준만 교수의 책은 워낙 많이 읽었지만 들을수록 새롭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인데 한겨레 100만부 못만들어 줍니까?...진보라고 하면서 신문 끊고 안보는 사람 많아요...한겨레 안보고 팟캐스트만 찾아 듣는 사람들, 이게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가. 그 공격을 해야겠어요. 밤낮 조중동 밉다고 하면서 한겨레 안보는 인간들은 진보에 역행하는 반개혁주의자예요.” (38쪽, 40-41쪽)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됐다. 가수 한희정 씨와의 인터뷰.

지승호: 가사를 잘 쓰시는 이유는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어서인가요?

한희정: ...일단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문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많이 읽기 시작했죠. (334쪽)


인터뷰집은 이렇듯 유명인의 엑기스만을 섭취할 수 있는 경제적인 책이다.

그럼에도 인터뷰집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박하기만 하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는 그래도 잘 먹고 살아야 하건만

인터뷰어의 개척자 지승호는 서문에서 인터뷰어로 살아온 11년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것이 실패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라는 노동을 둘러싼 추레한 환경을 개선해서 새로운 인터뷰어들이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전혀 만들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6쪽)

멀고도 힘든 길을 묵묵히 걷는 인터뷰어의 개척자에게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승호: 더 인터뷰>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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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2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5-06-1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승호씨~ 오래전 알라딘에서 시비돌이님으로 함께 했는데...
저도 마태우스님께 땡스투하고 이 책 살게요!^^

2015-06-14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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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읽은 책 중 제일 무서운 책은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였다. 읽는 내내 손이 떨렸다고 감상문을 쓴 적이 있는데, 그가 이번엔 <진격의 대학>을 통해 기업에 포섭된 대학을 비판한다. 이 책을 펴든 곳은 집으로 가기 전 들른 술집에서였다. 갑자기 산낙지가 너무 먹고 싶었고, 마침 집 앞에 산낙지를 잘 하는 곳이 있었으니까. 


다행히 <진격의 대학>은 그의 전작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읽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대학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직 취업률에만 목을 매고, 기업이 원하는 순종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곳이 지금의 대학이었다. 자기 소개서를 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강사는 감명깊게 읽은 책을 적을 때 주의할 점을 얘기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좋고, 존 롤스의 <정의론>은 오해받을 수 있으니 되도록 빼세요...기업에 비판적인 사회비평서는 절대 적으면 안됩니다. 장하준 교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책은 적어도 별 문제 없겠다 싶겠지만, 괜히 면접관하고 논쟁하기 싫으면 알아서 빼세요.” (41쪽)


그 학교 학생이 다 대기업을 원하는 건 아닐 텐데, 대학에서는 토익 몇 점 이상을 졸업 기준으로 내걸고 있다. 전체 강의의 40%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그 일환인데, 정말 웃지못할 대목은 다음이다.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국어문법론’ ‘국어학강독’ ‘응용언어학’ 등 다섯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한다..스페인어나 프랑스어 같은 제2 외국어 과목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100쪽)

이 대목을 읽고 난 술 대신 시킨 사이다를 한 잔 들이켰다. 안주로 시킨 산낙지를 씹으며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니,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의 체험담이 나온다.

“현재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내가 전달하는 효율도 70% 이하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효율도 70%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0.7x0.7 = 0.49가 돼서 우리말 강의에 비해 반도 못 가르치는 셈.” (109쪽)


그러게 말이다.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말한다. 대학 말고 누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할 수 있느냐고.  

“대학은 ‘영어만 했더니 대학 가서 죽도 밥도 안되더라’ ‘영어가 다가 아니더라’는 미담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그럴 때 사회도 대학에 존경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136쪽) 

대학 본연의 기능을 포기한 채 기업의 하청업자를 자청하는 대학의 모습이 접시에 올려진 채 꿈틀거리는 산낙지와 비슷해 보였다. 산낙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산낙지가 대학이면, 그걸 잡아먹는 난 기업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먹어도 산낙지는 맛있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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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6-16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본 홍대로스쿨 교수의 시험문제가 생각납니다. 영어로 된 문제로써, 딱 보니까 미국의 로스쿨에서 통상 출제되는 법리분석문제를 흉내낸 건데요, 문제가 된 김대중/노무현/홍어 등등의 저급한 표현 이상 그 영어수준이 도대체 미국 로스쿨에서 법학석박사를 모두 끝낸 사람 같지 않더군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해요. 왜 한국의 학교에서 어학과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교육하지 못해서 안달인지..-_-: 대학이 기업에 접수된지도 꽤 지난 지금이 아닌가 싶네요. 20대의 우경화에도 큰 몫을 하는...

마태우스 2015-06-16 08: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시험문제의 저급함이 이슈로 떠올랐지만, 왜 그 과목이 영어로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지, 그게 더 어이없어요. 사실 저희 대학에서도 그 문제가 이슈인데요, 전달력이 훨씬 떨어지는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더라고요...대학이 원래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데 지금은 요원한 듯 해요ㅠㅠ

2015-09-30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9-30 23: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근데 이게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인지 그걸 잘 모르겠네요^^ 암튼 그래주심 저도 기쁘죠

2015-10-01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철대마왕 2015-10-0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서평을 읽었습니다. 말처럼 편안한 문장으로 진솔하게 글을 쓰도록 지도하고 있는데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글을 재미있어 했어요. 특히 마지막 문장을 좋아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책이 너무 좋아서 학생들을 위한 필독서로 추천할 참이랍니다. ^^

마태우스 2015-10-03 21:0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머나 선생님, 이런 멋진 피드백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글이 학생들에게 재미를 줬다니 무엇보다 기쁘네요. 선생님도 복 많이 받으시고 멋진 가을 보내세요
 
아무 날도 아닌 날 - 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최고운 지음 / 라의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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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을 직선적으로 하는 여성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에게 온화함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 탓에 그런 여성의 출현은 매우 드물었는데,

최근 몇 년간 주목한 분이 바로 ‘앨리스’라는 필명을 가진, 최고운이다. 

많은 팬을 거느린 파워블로거였던 그녀가 드.디.어.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

평소 친분 덕분에 추천사를 쓰는 영광을 안았던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나. 저자에게 첫 책은 자신의 분신이다.

개쓰레기란 말이 딱 어울리는 <마태우스>를 냈을 때도 무지하게 흥분하는 게 인간인데,

<아무 날도 아닌 날>같이 어디다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낸 저자라면

나보다 열배쯤 더 흥분한 나머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로서 한 마디 조언을 해본다. 

최고운님, 혹시 이 책이 기대만큼 안팔리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인생은 길고, 앞으로 최고운이란 이름을 걸고 나올 수많은 책들을 생각한다면

이번 책은 님의 존재를 알리는 출발신호에 불과하니까요.


둘째,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것은 독자에게 기쁜 일이다.

게다가 이 작가는 글을 참 시원하게 쓴다.

“본인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여자가 언짢아할 땐 무조건 미안해, 하도록 설계된 남자는 확률적으로 2퍼센트 정도 존재한다고 전해지나, 실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46쪽)

이게 뭐가 시원하냐고 하겠지만, 다음 구절을 보라.

“버스를 들고 뛸 수도 없는 이상 일단 오고 있는 남자에게 지랄은 하지 말자.” (47쪽)

이건 비교적 순화된 예일 뿐 읽다보면 상상 이상의 것을 보게 되는데,

간혹 이런 감탄도 절로 나온다.

“이 작가님, 참 거침없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런 작가와 친분이 있다는 게 행복했고,

이런 좋은 책에 추천사를 썼다는 사실도 뿌듯했다.


에세이란 쟝르는 유명한 사람만 써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유명인의 에세이에 없는 파격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싹수가 보이는 작가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다면,

한권쯤 사 주는 것도 좋겠다.

그런 격려가 있어야 작가가 지치지 않고 글쟁이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이분의 직설적인 멘트들이 우리 사회를 빛내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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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5-04-1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싹수가 보이는 작가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다면,
한권쯤 사 주는 것도 좋겠다.
그런 격려가 있어야 작가가 지치지 않고 글쟁이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명심하겠습니다.
직장생활을 처음하면서 이 생각으로 젊은 한국작가들의 책을 의도적으로 구매했는데,
요즘 과학,예술책을 중심으로 구매하다 보니 잠시,, 다시금 마음을 잡아보겠습니다.

마태우스 2015-04-14 13:12   좋아요 1 | URL
오옷..우향님,이렇게 고마운 말씀을 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님같은 분들이 계셔서 좋은 작가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개 2015-04-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제가 더 마음에 드는데요 ^^

마태우스 2015-04-14 13:1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부작용은 글 한편이 끝날 때마다 술과 거기 맞는 안주가 사진으로 올려져 있다는 거죠. 알콜 욕구를 엄청 자극하는 책이랍니다.

아무개 2015-04-14 13:27   좋아요 0 | URL
어이쿠 이런!
다욧 끝나면 보는걸로!! ^^:::::::

북프리쿠키 2016-05-2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서민적글쓰기를 읽고, 읽고싶은 책으로 등록했는데 .. 우와~설마 마태우스님이 교수님??이면 대박입니다ㅠㅠ 설마??친구추천드렸어요!!어쩌다어른보고 완전 팬이 됐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