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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평점 :
베트남에 2박3일 강의를 다녀왔어요.
여행갈 때면 늘 챙기는 게 바로 책인데요
가기 전에 검색을 해보니까 제가 미야베 미유키 팬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빼먹고 안읽은 것들이 다섯권쯤 있더라고요.
폼으로 지참하는 과학책 원서 한 권과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 집>을 들고 갔습니다.
상하 두권인데다 권당 400쪽을 넘었으니 2박3일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베트남까지 가는 동안 상권의 90%를 읽어버렸고,
있는 동안 짬짬이 책을 읽었더니 돌아오는 날 아침에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전 원래 현대물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외딴집은 정말 재미있더군요.
부잣집 도련님이 하녀를 건드려 아이를 낳았는데 그 하녀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으니,
그 아이는 이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 아이가 겪는 고초가 이야기의 도입부를 이루는데,
거기서부터 확 빨려들어가더니 마지막까지 숨가쁘게 저를 달리게 하네요.
그 아이의 삶을 보고 있자니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고 유사가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진짜 가족보다 더 잘 해줄 수 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건 진짜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진짜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큰 재미를 준 이외에 외딴집은 제게 큰 은혜를 베풀었지요.
외국에 나가면 일체 아무것도 못먹는 저를 위해 아내가 라면과 햇반 등을 몇 개 싸줬어요.
그런데 그만 젓가락, 숟가락을 싸주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먹지도 않을 호텔 조식뷔페에 가서 포크 하나를 훔쳐 왔는데,
그 포크를 이 책에다 숨겨가지고 왔거든요.
덕분에 햇반과 라면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랠 수 있었지요.
남들은 외국 가는 거 좋아하고, 제가 베트남 간다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하던데,
전 역시 국내에서 마음껏 먹으며 우리 강아지들 배나 쓰다듬는 게 좋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여권을 만들면서 10년짜리를 선택한 걸 보면
혹시나 세계적인 강사가 돼 다른 나라에서 또 부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딱 한가지, <외딴집>이 아쉬웠던 점은 책이 재미있다 보니 떠나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는 것이지요.
3일째 되는 날엔 읽을 게 없어서 폼으로 가져간 과학원서를 줄을 치며 읽는데,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어서 그다지 재미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영어를 못하는 탓이지요 하하)
그러니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두껍다고 해서 방심해지 말고,
좀 과하다 싶을만큼 챙겨서 가져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