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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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을 좋아한다.
발랄한 문체도 좋지만, 일상에서 소재를 발굴해 한 편의 서사시로 만드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락방님이 더 멋진 건 책을 내고 저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알라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을 쓰느라 창작의 고통이 어떤 건지 알고 나면
다른 책들에 대해 비판을 하기 어려워지는 게 많은 저자들로 하여금 블로그를 접게 만드는 이유일 것 같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예전만큼 알라딘에 글을 쓰지 못하는데,
다락방님은 그전과 똑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어쩌다 알라딘에 갔을 때 다락방님의 글이 메인에 있으면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나서 참 반갑다.


그 다락방님이 두 번째로 책을 냈다.
<잘 지내나요?>란 제목은, 물론 다른 이에게 하는 것이겠지만,
알라딘을 뜸하게 가는 나한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진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책을 빌미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인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능력이야 전편에서 이미 검증된 터였다.
이번 책이 이전보다 더 좋았던 건 삶에 대한 보다 진전된 통찰이 느껴졌기 때문인데,
특히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트라우마는 숨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말로, 그리고 글로 이야기할 때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134-135쪽에 걸쳐 자신의 어린 시절 비밀을 밝힌 다락방님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락방님은 고교 때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반장한테 핀잔을 들었단다.
한국 사회에서 여고생이 여성주의를 아는 게 힘들었던 시대였으니
좀 친절하게 가르쳐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저게 왜 심하다고 생각해?”라든지 “여자다운 게 뭔데?”같은 공격적인 언사로
다락방님을 비난한 반장의 태도는 오히려 여성주의의 확산을 방해하지 않았을까.
지금 그 반장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때 그 말을 한 반장이 아니라
<잘 지내나요?>를 통해 여성에 대해 말을 거는 다락방님이라는 점이다.
글을 잘 쓰고, 또 책을 낸다는 건 이런 점에서 매력적인 취미다.
나도 계속 이 매력에 흠뻑 빠져있고 싶어하는 1인이며,
그렇게 본다면 다락방님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지다.
머리말에서 아무 한 일이 없는 내게 고맙다고 해줬으니,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드린다.
“다락방동지, 잘 읽었소. 다음 책을 기대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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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4-22 0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안녕하세요^^
제게는 마태우스님과의 아름다운 투샷 사진이 있지만 마태우스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 하실터.... 저는 닉네임이 단발머리이나 엄격한 의미에서 단발머리는 아닌, 단발머리입니다^^
저는 이번에 다락방님 두번째 책이 나와서 기쁘고 반가울 뿐이였지 책을 내고 저자가 된 뒤에도 알라딘 활동을 하고 있는 다락방님의 깊은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역시 저자의 마음은 저자가 안다고...
마태우스님의 글을 읽어보니 다락방님께 더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락방님께 고맙다는 말을 여기 마태우스님 방에 남기고 스르륵 사라집니다.
다락방님 다음 책도,
마태우스님 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마태우스 2017-04-22 07:40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단발머리님, 제, 제가 기억을 못하는 걸 어케 아셨는지요 ㅠㅠ
언제 지방에 강의 갔을 때 사진 찍은 분이 단발머리님 아닌가요.
아니면 어쩌죠. 암튼 제 책을 기대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제 올해 목표는요, 다락방님이 책을 낸 다시봄에서 저도 책을 한권 내서
다락방님과 다시봄 패밀리가 되는 거랍니다.
단발머리님도 나중에 꼭 책 쓰시길 빕니다. 이왕이면 다시봄에서....!

단발머리 2017-04-22 07:54   좋아요 1 | URL
아하..... 괜찮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교보문고에서 주최한 작가 초청 강연회였던 같은데, 강의 끝나고 마태우스님께 <집 나간 책> 사인을 받았더랬죠. ˝단발머리님과 기생충과 알라딘이 두루 잘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써주셨죠. 물론 기생충 그림과 함께요.

올해 목표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에서는 별 생각이 없겠지만, 다시봄 패밀리는 욕심나네요^^

마태우스 2017-04-22 23:23   좋아요 1 | URL
아 맞다 그때그분이군요. 지방이 아니라 교보문고..!! 기억 못해서 죄송해용. 제가 너무 무심한 놈입니다 ㅠㅠ 암튼 다시봄 패밀리로 뭉쳐봐요.

2017-04-24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8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어주는홍퀸 2017-05-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우스님때문에 알라딘서재를 알게됐고 마태님서재 댓글에있는 분들 서재들여다보며 글을읽다가 다락방님을알게돼서 서재드가서 글을보며 정말 대단하고 머찐분이다싶었더랬죠~이번책도 함 읽어보고싶게만드는 리뷰! 감솨요~!!
 
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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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서현철을 <라디오스타>에서 보기 전까지, 난 그를 알지 못했다. 그래도 배우라면 웬만큼 아는 편인데, 얼굴을 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스타는 바로 서현철이었는데, 그 는 아내와의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그날의 토크왕이 된 건 아내의 에피소드가 워낙 재미있어서였다. 예컨대 비데란 말을 착각해서 “아버지 변기에 네비 놔드려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한 정치인이 “내가 이제”를 반복하는데, 잠에서 깨봤더니 아내가 숨을 들이마실 때 “내가”라는 소리를 내고, 내쉴 때 “이제”라고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재미진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는 서현철의 입담이었다. 재미있는 얘기도 곧잘 망쳐 버리는 나로서는, 서현철의 입담이 참 부러웠다.

 

<독서만담>을 읽다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이 표지에 적힌대로 ‘요절복통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건 저자 박균호가 겪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재미있어서였다. 자신이 토라졌다는 걸 아내에게 알리기 위해 밥을 굶는 코스프레를 하는 아저씨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는 저자의 필력이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겪는 순간순간들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게 되는데, 늘 재미있는 글을 쓰고픈 욕망에 휩싸여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필력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재미있는 글로 소문이 나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잡혀가지 않으려고 선택한 반어법 덕분이고, 그 반어법은 이제 시효가 지난 지 오래라 사람들이 지겨워한다. 그런 판국에 박균호의 책을 읽었으니, 부러워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반가운 점은 저자가 나와 비슷하게 공처가라는 점이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난 아내가 무서울 때가 많다.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면 “이번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고민하며 납작 엎드릴 정도인데, 나와 수준이 비슷한 분을 글로라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저자가 나보다 훨씬 더 공처가스러울 땐 내가 더 낫다며 통쾌하게 웃었고, 비슷한 경험을 할 땐 공감하며 웃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뻔뻔한 대통령으로 인해 우울한 요즘, 해맑게 웃어본 게 정말 오랜만이다 싶다. 좋은 책은 많이 있지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우울한 이들이여, <독서만담>을 선택하시라. 작은 일에 흥분하고 또 기뻐하는 저자의 모습이 당신을 웃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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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27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영광입니다.!!!!!!!!!!!!!!!!!!!!

마태우스 2017-04-21 23:26   좋아요 0 | URL
아이고 여기다도 답을 주셨네요. 죄송합니다 ㅠㅠ답이 늦었습니다

표맥(漂麥) 2017-02-27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얘기도 곧잘 망쳐 버리는 나로서는, 서현철의 입담이 참 부러웠다.˝... 제가 들은 서교수님의 TV강연도 정말 재미있었더랬습니다... 그 때보다 더 재미있으면 연예인이지요...^^

마태우스 2017-04-21 23:27   좋아요 0 | URL
그, 그게요 강연은 몇년 하니까 좀 되는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실력은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전 그게 안되는지라..ㅠㅠ 좀 부럽죠 뭐.....그래도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살아갈게요 꾸벅

꼬마요정 2017-02-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잘 지내셨어요? 여전히 마태님 글 읽으면 저도 모르게 웃습니다. 재밌어서요~ 여전하십니다~^^
배우 서현철은 뮤지컬 <그날들>에서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웃겼거든요~ ㅎㅎㅎ 원래 말을 참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었네요.

마태우스 2017-04-21 23:28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님 흑흑. 제가 답을 이제 드리네요. 사정이 많이 어려워서, 알라딘에 자주 못왔어요 ㅠㅠ 요정님은 여전히 요정이세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stella.K 2017-02-2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마태님 TV 나오신 거 보니까 여전하시던데요.

저도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입니다.^^

마태우스 2017-04-21 23:28   좋아요 1 | URL
앗 스텔라K님...안녕하세요. 님도 저자신데 언제 저자모임 한번 하죠!!

hellas 2017-03-01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자마자 주문했네요. >_<

마태우스 2017-04-21 23:28   좋아요 1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만족하셨길 빕니다 혹시 만족 못하셨으면 제가 AS해드릴게요

하하하 2017-03-1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필력은 반어법에 있기도 하지만 ‘물론 나도 재미있는 글로 소문이 나있기는 하지만‘ 과 같은 문장에 더 있는 듯, ㅋ

마태우스 2017-04-21 23:29   좋아요 0 | URL
앗 제가 그런 말을 썼나요. 보니까 진짜 그런 대목이 있네요. 하하. 이 뻔뻔함은 점점 심해지는 듯요 하하.

책읽어주는홍퀸 2017-05-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꼭 함 봐야긋네요~웃기는분이 웃기다는책은 필수지요~ㅋㅋ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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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심오하며, 그래서 내가 그의 세계를 다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원래 문학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지난번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을 때 내가 모르는 김연수의 책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로부터 보름 뒤부터 그 책을 읽기 시작해 일주일만에 다 읽었다.

책은 참 재미있었는데, 무엇보다 내가 알던 김연수 작가와 많이 달랐다.

작품이 어렵지 않고 이해가 잘 됐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의 평은 어떨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읽은 책 <캐비닛>은 김연수 작가가 아니라 김언수 작가의 작품이었다!

나같은 사람이 좀 있는지, 친절하게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김연수 작가와 헷갈리는 김언수 작가...."

놀라서 책 표지를 봤더니 작가 이름은 과연 김언수였는데,

내가 헷갈렸던 건 이전 책주인이 거기다 획 하나를 더 그어서 김연수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수'에다가도 획을 더 그어서 김연주가 돼있었다.)

그전 주인이 그은 획 덕분에 난 캐비닛이라는,

매우 기발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에 매료돼 <설계자들>과 <잽>도 구매했으니,

그 '획'은 그야말로 고마운 한수였다.


이 책이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품이라, 책 뒤에 심사평과 작가가 쓴 수상소감이 있었다.

심사평은 건성으로 읽고 수상소감을 좀 자세히 읽었는데

김언수 작가는 안해본 게 없을만큼 어려운 삶을 살았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IMF 때문에 집안이 쓰러졌어요. 집안 빚도 그때 생긴 거고.

생활비를 벌려고 단란주점 웨이터도 하고 공사판도 가고 공장도 다니고....." (376쪽)

훌륭한 소설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지라

앞으로 김언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읽을 생각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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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8-05 05:58   좋아요 0 | URL
왓 제 글이 님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니, 괜히 으쓱해지는데요. 멋진 댓글이 평범한 글을 멋지게 만들어주는구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stella.K 2016-08-0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연술줄 알았는데 언수더군요.
저도 캐비닛 오래 전에 읽었어요.
나름 재밌긴 했지만 약간의 낮선 느낌도 들었죠.

참, 오늘 아침에 TV에 나오셨던데
반갑더라구요.^^

마태우스 2016-08-05 05:57   좋아요 0 | URL
님의 방대한 독서량에 감탄합니다. TV는...부끄럽습니다.ㅜ

다락방 2016-08-04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처음 몇 문장 읽고 이 작가는 김언수 에요, 라고 댓글 달려 했어요 ㅋㅋㅋ

마태우스 2016-08-05 05:55   좋아요 0 | URL
님의 방대한 독서량에 그저 고개가 수그러집니다. 다락방님 짱.

cyrus 2016-08-05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에 교과서나 책 표지 이름에 낙서로 장난 치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친구 교과서에 적힌 친구 이름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ㅎㅎㅎ

마태우스 2016-08-05 05:5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랬었죠... ^^ 갑자기 학창시절 생각이 나네요.

Conan 2016-08-0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저는 설계자들을 먼저 읽고 캐비닛을 읽었습니다. 둘다 아주 특이하고 흥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다른분들처럼 저도 김연수와 김언수가 헷갈렸는데요 저는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김언수 작가의 소설이 더 좋습니다^^

마태우스 2016-08-10 02:32   좋아요 0 | URL
내친김에 설계자, 잽 모두 다 읽었습니다. 정말 특이하고 재밌더라고요. 좋은 작가를 알게돼 기쁩니다

2016-08-1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9-29 17:39   좋아요 0 | URL
우와 이게 누굽니까. 반갑습니다. 제가 그쪽 관련 글로 칭찬 비슷한 말을 듣다니, 호호호. 근데 넘 오랫만이군요. 옛친구라서 그런지 가슴 한쪽이 아련해집니다그려...! 답 늦어서 죄송해용.

2016-08-1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영종도에 있는 하늘도서관에서 강의가 있었다.


천안에서 인천공항까지 KTX를 타면 대충 1시간 반이 걸리니,

왕복 세시간 동안 마음껏 책을 읽자며 집어든 책이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슬럼버>,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라는 홍보카피만으로도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갔다.

누명을 쓰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쫓기는 주인공이란 설정은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된 소재였지만 책으로 읽는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아무튼 재미 면에서는 내 기대를 100% 충족시켜줬다.

 

 

강의는 두시부터였지만 도서관에 도착한 건 1시 경이었다.

40분 정도 책을 읽다가 들어가서 인사를 해야지, 라며 야외 벤치에 앉았다.

날은 더웠지만 책이 재미있다보니 그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할 수 없이 도서관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난다.

“혹시 교수님 아니세요?”

뒤를 돌아보니 강의 때문에 내게 연락해주신 담당자였다.

책 내용이 궁금해 “저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밥만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증상을 '위대장반사'라고 하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먹은 게 화장실에 가야 했던 원인,

 

좋은 반사도 많으련만 하필이면 그런 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게 무지 아쉬웠다.

 


 

집으로 가는 내내 책만 읽었고,

날 기다리던 개들과 놀아준 뒤 다시금 책을 읽었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연성이라고 생각한다.

안정효가 글쓰기만보에서 잘 설명했듯이

개연성이 있다는 건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다른 부분은 다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걸 뜻한다.

아무리 좋은 스웨터라도 한 군데 구멍이 나면 그것만 보게 되는 것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면 작품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책에서 안정효는 <하얀 전쟁>에 나오는 권총 얘기를 예로 든다.

우리나라는 권총이 합법화된 나라가 아니므로

권총을, 그리고 총알을 구하는 방법이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하며,

안정효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총을 하나 훔치는 설정을 한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좀비가 설치고 다닌다는 설정은 엄연한 허구지만,

그 좀비를 둘러싼 반응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내가 <부산행>을 보고 실망한 이유도 바로 개연성의 부족인데,

<골든 슬럼버>는 그 아쉬움을 달래줬을 뿐 아니라

멀다면 먼 영종도 여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해줬다.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

 

 

* 소설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내용 말고 구성이 그랬는데,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오가면서 그 상황이 연속되는 부분이 꽤 나온다.

예컨대 204쪽에서 주인공 아오야기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을 피해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간다.

‘대체 안전한 장소는 어디란 말인가, 하고 자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 배경이 과거로 바뀌면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안전한 장소란 게 법률에 정확하게 쓰여 있지가 않아, 이게.”


예의바른 초등학생처럼 무릎을 꿇고 앉은 아오야기 일당 앞에서 도도로키가 말했다.]

이런 식의 구성을 난 스티븐 킹의 <It>라는 소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소설에선 현재의 주인공이 정신을 잃으면, 그 다음 장면에선 과거의 주인공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다.

이걸 보면서 ‘와 신기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구성을 또 보다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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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7-2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행을 보고난 뒤 ˝몰입도는 작풍성하곤 전혀 별개˝란 걸 다시 일깨워줬어요~골든 슬럼버 영화를 언젠가는 봐야지 벼러왔는데
마태우스님의 좋은 평을 보니 조만간 들이대봐야겠네요

마태우스 2016-07-25 10: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골든슬럼버 영화와 책은 그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영화 쪽이 더 밝은 듯해요. 소설에서 무거운 부분은 다 덜어내고 핵심만 잘 추린 듯요. 게다가 하이라이트인 공원 장면에선 원작과 달라서 더 몰입감이 있었어요. 들이대보셔도 될 듯요

책한엄마 2016-07-25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영화란 허구는 참 머리를 많이 써야해요.
즐겁자고 읽지만 창작자는 참 고통스러운..그런 작업일 듯합니다.

마태우스 2016-07-25 10:36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기생충 관련 책은 있는 걸 그대로 쓰면 되니까 쉬운데, 소설은 새로운 세계를 창작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죠...! 전 그쪽 세계는 안가려고요 호호.
 

한달쯤 전, 강의 땜시 4호선 미아역에 내린 적이 있다.

 

시간이 40분 가량이 남아있는지라 커피나 한잔 할까 했는데

 

길 건너편에 '알라딘 중고서점'이란 글귀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이 상호를 전에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여유가 있을 때 본 건 처음이었다.

 

당장 길을 건너 2층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헌책방에 간 적은 있지만 중고서점은 처음이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았다.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책들의 상태가 믿기지 않을만큼 좋았다.

 

난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픈 대목이 있으면 책을 접거나 빨간색 줄을 치는데

 

거기 있는 책들은 혹시 사자마자 다시 내판 게 아닐까, 싶을만큼 깨끗했다.

 


 

원래는 두세권 정도만 살 생각이었지만

 

'중고'라는 단어가 내게 용기를 준 탓인지 마음에 드는 책이 우르르 눈에 띄었고

 

하나둘 고르다보니 어느새 두 손에 들 수 없을만큼 책이 많아졌다.

 

이걸 어떻게 들고가지, 라는 고민을 했지만

 

계산도중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5만원을 넘기면 무료로 보내준다"는 게 아닌가?

 

내가 산 책의 총 가격은 7만7천원이었고,

 

그 책들은 그로부터 이틀 후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은 1Q84였다.

 

이 책이 시중에 나와 한창 베스트셀러가 됐을 무렵,

 

난 이 책을 일부러 외면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반감보다는

 

베스트셀러를 쫓아읽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이 날 휘감았던 탓인데,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다들 하루키, 하루키 하는구나!"

 

날마다 읽을 책이 쏟아지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날 중고서점에 가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으니

 

이건 '괜한 반발심에 대한 중고서점의 승리'다.

 

 

또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내 입장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루키가 책을 내면 늘 베스트셀러에 들어갈 테니

 

베스트셀러라고 괜히 피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중고서점을 본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들어가리라.

 

'중고'라는 건 늘 자신감을 주고,

 

 

그 자신감은 가끔 월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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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7-19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 자신감이론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 베스트셀러도 항상 나쁜건 아니죠. 아침에 마태우스님 글보니 뭔가 상쾌한 기분이예요>_<

마태우스 2016-07-20 00:52   좋아요 1 | URL
하하, 그죠. 근데 생각만큼 싼 건 아니었어요. 절반 정도의 가격이었으니깐요. 물론 책의 상태로 봤을 땐 그 가격이면 만족입니다만, 중고에 대한 편견이 있다보니 3분의 1 정도를 생각했거든요. 밤늦게 hellas님 댓글에 상쾌해집니다^^

세실 2016-07-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원 무료배송도 해주는군요^^
1Q84 우리집엔 3권만 있는데 중고서점에서 1.2권 찾아봐야 겠습니다.
저도 얼마전에 총,균,쇠 저렴하게 구입했어요. 뿌듯뿌듯^^

마태우스 2016-07-20 00:53   좋아요 2 | URL
아 총균쇠 그책도 소장가치 만땅인 책이죠. 근데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중고서점이 뭐랄까 훨씬 더 흥분됩니다! 참, 어제 괴산 다녀왔어요!

Conan 2016-07-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상실의 시대를 읽고 하루키의 책을 너무 좋아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후 저도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유없는 반감으로 베스트 셀러는 잘 사지 않았었는데요. 많은 좋은책을 외면한 저만 손해였습니다^^. 지금은 베스트셀러도 잘 사보구요 1Q84도 며칠전에 샀습니다. 저는 온라인 중고서점을 애용합니다. 세실님 말씀하신 총.균.쇠도 몇년전 중고서점에서 사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마태우스 2016-07-20 00:54   좋아요 0 | URL
오옷 이유없는 반감이 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군요. 글구 1Q84를 며칠전에 사다니, 흠. 저랑 코스가 같군요! 이참에 저도 베스트셀러파로 전향하려고 합니다. ^^

2016-07-20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7-21 18:45   좋아요 0 | URL
오옷 님도 매니아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중고서점 위치 파악해서 근처 갈 일 있으면 꼭 들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거기서 뵈용

Volkswagen 2016-07-2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랜만입니다.
마태우스님~울산에도 알라딘 중고서점 있던데 한번 꼭 가봐야겠군요.
아 맛다! 올해초 울산에 교보문고 오픈했는데 5월 23일인가 그때 교보 다녀가신거 맞나요?
오신다는 현수막 보고 무지 반가웠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못뵈었는데 아쉽네요

마태우스 2016-07-21 1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때 5월달에 갔었어요. 교보에서 불러주다니 황송하더군요^^ 한편으론 알라딘에 대한 충성심이 흐트러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답니다. 다음번에 기회 있으면 뵈용.

alummii 2016-07-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구지 정기적으로 가는 이유가 바로 이 월척 때문입니다 ㅎㅎ 저도 괜시리 베스트셀러라고 멀리했다가 이번에 베베님 시리즈 득템 했네요

마태우스 2016-09-29 17:37   좋아요 0 | URL
앗 베베님 시리즈가 뭔가요. 저도 알아봐야겠습니다. 글구 답이 늦어 죄송해요.

강가 2016-09-0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기회만되면 부담없이 들르는 곳이 알라딘 중고서점인데, 아이들에게 ˝맘껏 3권씩 골라˝ 라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저도 얼마전에 들렀다 월척을 건졌답니다.ㅎㅎ^^

마태우스 2016-09-29 17:38   좋아요 0 | URL
오오...이곳이 월척을 낚는 곳이군요. 반갑습니다. 중고서점에서 낚시하다 만나는 인연이 있음 좋겠네요.

alummii 2016-09-2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죄송요 베르나르 베르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