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몰락 - 이재용(JY) 시대를 생각한다
심정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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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몰락>에 관심이 간 건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한다고 생각해 와서다.

도대체 삼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해 책을 샀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제목에 낚여 소중한 시간을 날렸다.

중간쯤 읽다 때려치웠어야 하지만 굳이 끝까지 읽었던 건,

이 리뷰를 쓰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삼성의 몰락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삼성에 몇 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저자가 자신이 삼성에 대해 아는 것을 얘기한 것뿐이다.

‘삼성의 몰락’이란 제목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삼성의 현주소가 어떻고 경쟁자는 어떻게 치고 올라오며, 앞으로 삼성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 책은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읽다가 멀미가 날 정도였다. 

다 읽고 나서도 “대체 삼성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의문이 풀리지가 않는다.

이것보다는 잘나가는 기업 몇 개를 선정해 그들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분석한 <사라진 실패>를 읽는 것이 삼성의 미래를 점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논문심사를 하다보면 “유감스럽지만 이 논문은 우리 학술지에 실리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라는 평가를 매길 때가 있다.

논문을 ‘억셉트’할 때는 그리 긴 설명이 필요없지만,

‘리젝트 (reject)’를 할 때는 왜 적합하지 않은지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이 책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 볼까 한다.

리뷰가 무지하게 길어질 거라는 얘기다.


1) 불필요한 대목

-“나는 의지만 있다면 여당의 힘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같은 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다...그럼에도 정치권으로 선뜻 옮기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에서는 일정 기간 경제적 궁핍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23쪽)

자신이 잘난 체를 하는 것 같은 이 대목을 굳이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이 페이지에서만 ‘나는’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온다. 


-“이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내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고 주창하며...이건희 회장의 그룹 임원들에 대한 질타는 욕설과 막말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성격 급한 오정환은 휴식시간에 회의장을 벗어나 사표를 썼다. 잘못한 게 없는데 단체로 이회장에게 야단을 맞는 상황에서 월급쟁이로서의 자존심이 한계에 달했다고 한다. 후배 임원들이 그를 말렸고 그는 사표를 거두었다.” (180쪽)

이런 얘기는 흡사 이 회장의 독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전혀 그게 아니다. 바로 다음에 천재 한명이 수십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 경영론이 나온다. 비판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천재경영론을 해설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휴대폰 책임자인 오정환 얘기는 왜 나왔을까? 자신만 아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서현의 남편인 김재열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으로 피선되는 데는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주니어급인 김사장이 빠른 시간 내 IOC 위원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5쪽)

이것 역시 삼성의 몰락과는 쥐꼬리만한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박동건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은...정통 삼성맨이다. 입사 후 10년만에....”(159-160쪽)

“홍종만 전 삼성자동차 사장....박 부회장과 정 부사장은 상고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61쪽)

난 삼성에 근무하는 개개인을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은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삼성 임원들에 대한 소개가 제법 나온다. 224-231쪽에는 대놓고 임원들을 소개하는데, 이들 때문에 삼성이 어둡다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없는 대목이다. 


2) 중복

-“삼성전자는 2013년 베트남 전체 수출의 18퍼센트를 차지하며 베트남 경제를 견인했다...2014년 삼성이 베트남에 집행했거나 계획 중인 전체 투자 규모는 110억달러에 달한다.” (26-27쪽)

“2009년 생산을 개시한 삼성전자 베트남 휴대전화 사업부는....베트남 전체 수출의 18퍼센트를 차지했다...삼성잔자의 베트남에서의 위상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274쪽)

물론 베트남에 투자하는 것이 삼성의 앞날에 영향이 있다면 사소한 중복도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그저 통계숫자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중국 휴대폰 업체인) 샤오미는..온라인 판매에 주력해 유통비용도 최소화했다...온라인 판로를 이용해 유통비용을 80-90퍼센트 줄였다.“ (54쪽)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의 샤오미는 애플, 삼성과는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온라인 중심의 판매 유통망이 가장 특징적이며...” (242쪽)



3) 자동차에 대한 집착

저자는 자동차만 보고 삼성에 입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차 얘기를 할 때는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

“1999년 말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 포기를 결정했을 때 xxx 기획팀장은 ‘그룹이 향후 20년은 후퇴할 것이다’고 지인들에게 단언한 바 있다.” (76쪽)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포기는 정권의 압력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잘못 기획된 사업 경쟁력 저하가 자동차 사업의 포기로 이어졌다.” (19쪽)

“야당의 삼성 때리기도 계속될 전망이다. 1997년 삼성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삼성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삼성의 자동차 사업도 김대중 정권이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다. 사업성이 저하된 상황 속에서 사업 추진파가 이학수 중심의 반대파와의 파워 게임에서 패배한 결과다.” (134쪽)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계속 유지해왔다면 오늘날 전자와 자동차가 결합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쪽)

얘기의 핵심이 뭘까? 삼성이 자동차를 포기한 게 몰락의 이유일까?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설사 그게 이유라면, 다시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일까. 그런 것 같다. 298쪽을 보자.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추진했으면 나는 삼성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은 전자 사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자동차 사업에 재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281쪽)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건 이해하겠지만, 개인적인 소회를 삼성의 몰락으로 포장해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 저자의 다음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다시 진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현대자동차 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입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278쪽)

그때 현대가 삼성자동차에 신경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독주하는 판에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는 것을 반기는 사업자는 세상에 없다. 저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4) 일관성 없음

“이건희 회장의 최고 치적으로 평가받았던 것은 반도체 사업이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은 이 회장의 단독 과업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 사업은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직접 지시로 시작되었다.....1988년 초부터 반도체 경기는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행운이었다.” (44-45쪽)

“이 회장 재임 기간 중 삼성이 발전했다는 것은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경영자로서 이만하면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182쪽)


5) 억측

48쪽부터 세 페이지는 도대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권 부회장은 해외 대형 투자를 못하는 이유는 기술을 빼앗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당시 (2013년) 중국 시안에 70억 달러를 쏟아부어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었다.” (48쪽)

이 대목을 읽으면 겉과 속이 다른 삼성을 비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쪽엔 놀라운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생산라인과 연구개발 투자를 해외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핵심 기술과 인력유출 우려가 뒤따른다. 이러한 투자는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시화되었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삼성그룹은 거의 사색이 되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죽이기의 타깃이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글로벌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과 제한된 연구개발센터를 해외로 이전해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김대중에 이어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자 삼성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때부터 삼성의 핵심 역량 해외 옮기기는 본격화되었다.“ (49쪽)

그렇다면 삼성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좌파정권 때문인가? 그런데 박근혜 정부인 2013년에는 왜 중국 시안에 공장을 짓는 것일까? 그 다음 페이지를 보자.

“삼성의 의사결정 과정은 공기업적 마인드가 강했다...재무적 이익만 고려하면 해외 투자가 유리하지만” (50쪽)

삼성이 평택에 공장을 짓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삼성의 공기업적 마인드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그 다음 구절이 도무지 이해 불가다. 재무적 이익만 고려하면 해외 투자가 유리하다니, 바로 직전에는 좌파 정권 때문에 해외에 나간다고 했지 않는가? 다음을 보자. 

“삼성전자는 2014년 5월 시안에 70억달러를 투입해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건설해 기술유출 우려를 낳고 있다...이재용 체제가 연착륙하려면 무엇보다 중국 시장이 중요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삼성전자 시안공장을 현지 방문했다. 시장에서 삼성전자 시안 투자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63쪽)

“2014년 박찬훈 시안반도체 법인장은...고객 대응력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는 만큼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같은 쪽)

정리하면 이렇다. 좌파정권 때문에 해외로 나갔다. 사실 해외로 나가면 재무적 이익은 훨씬 좋다. 그런데 기술유출 우려가 있다. 그런데 좌파정권이 아닌, 친기업적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해외로 나간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고객 대응력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더라 이 말을 이해하라고?


6) 쥐꼬리만한 이유

-저자는 삼성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중국인들의 스마트폰 선호 성향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67쪽).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중국 시장에서의 침체는 중국삼성 CEO의 교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중국에 주재했던 소식통의 언급이다.” (69쪽)

박근희 부회장이 장 모 사장으로 교체된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 그게 이유인가? 그게 이유라면, 이런 식으로 잘못된 인사가 남발되는 사례가 몇 개 더 나와야 맞다. 하지만 그 다음 나오는 말은 놀랍다.

“삼성은 애플에게는 기술적인 안전성과 완전성에서 뒤쳐져 있고, 중국 업체들과는...가격경쟁력의 합리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70쪽)

그렇다면 다시 박 부회장이 들어서도 안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75쪽을 보자. 

“한편 삼성은 특유의 발 빠른 인사 및 조직 개편으로 단기 시장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이걸 보면 삼성은 인사를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뭐가 진실일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삼성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120쪽)

이 책에서 저자는 김대중 정권이 삼성에 적대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도 여러 번 강조해서 멀미가 나는데,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엔 그다지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단다. 왜? 

“정권 역시 삼성을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120쪽)

“정권이 국가경제를 책임지면 정책 방향에 배치되는 기업이라도 끌어안게 되어 있다.” (134쪽)

매우 당연한 얘기 같은데, 저자는 또 다른 이유를 댄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은 호남의 대표적 기업인 대상그룹의 자제인 임세령과 전격 결혼을 발표한다. 삼성의 심리적 긴장도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는 이재용의 호남 기업 오너 자제와의 결혼이 삼성이 DJ 정권을 잘 견디게 해준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21쪽)

이게 사실이라 해도, 이게 <삼성의 몰락>에 들어갈 내용인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좌파정권이 들어서지 않아야 삼성이 잘 나갈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이재용 부회장을 지칭하는 JY 이니셜은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 쓰였다. 그런데...사회 전반에까지 일반화된 것을 보면 삼성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183쪽)

JYP면 몰라도 JY는 처음 들어봤다. 굳이 이런 말도 안되는 억측을 쓰지 않아도 삼성은 일반 대중에게 아주 깊이 각인돼 있다. 


7) 이남석 교수

이 책에는 중대 교수인 이남석이 자주 인용된다. 삼성 비서실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으니 그의 말을 소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글쎄 네 번이나 나온다.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는......비판했다.” (77쪽)

“이남석 교수가 이와 관련해 적절한 사례를 제시했다...1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박사논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99쪽)

“2006년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에 따르면....” (188쪽)

“이남석 중앙대학 교수는 삼성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77쪽)

이렇게 자주 인용되는 걸 보면 석학인 모양인데, 솔직히 난 그분의 말씀이 아주 정확하게 핵심을 찌른다,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세 번째로 인용됐을 때는 좀 짜증이 났다. 


8) 글을 맺으며

299쪽엔 이런 좋은 말이 쓰여 있다. “이 책이 잘 팔리면 수익의 상당부분은...전직 수도자와 가난한 수도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그랬으면 좋겠다.”

책의 수익금이 그렇게 쓰인다 해도, 이 책을 사서 수도원에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보단 그냥 수도원에 기부를 하자. 아무쪼록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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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5-03-1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나싶어 리뷰를 봤더니 리뷰가 무려 23개나 달려 있고 평점도 8.3이다. 내가 이상한 걸까?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권이 비판을 많이 받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삼성과의 밀월이었는데 ( 노무현이 이학수를 말할 때 형님 형님 했다는... ) 노무현 정권 탄생해서 기겁을 했다는 저자의 말은 의아한데요....
그리고 사실 삼성은 대한민국 불굴의 1위`를 확정지은 때가 바로 노무현 정권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즉 적대적이라기보다는 밀월 관계였다고 보는게 주로 좀 쎈 좌파들의 비판이었는데...
멀리 볼 것도 없이 fta통섭 본부장이 김현섭 삼성전자 해외 법무 사장 아.. 이름이 가물가물.... 이었고 주미대사가 중앙일보 홍사장 아니었습니까....

마태우스 2015-03-15 18:14   좋아요 0 | URL
우왓 역시 곰발님은 아는 거 많으시네요. 노무현 시절 삼성이 원탑이 됐군요. 전 이상하게 한참 전에 그리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soyo12 2015-03-1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직 삼성맨스럽게 제목을 잘 달았나보내요. ^.^

마태우스 2015-03-15 18:14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원래 제대로 된 제목은 ˝자동차 다시 해요, 잉˝이 좋을 듯한데, 너무 거창하게 달아서 저를 낚았어요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촌철살인한 영화.시사 코드와 전문 OST 분석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 / 성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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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화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주제로 한 책이 제법 많이 나오는데,

최근에 읽은 책이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이다.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긴데다,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게다가 딴지영진공이라니, B급을 표방하는 딴지일보의 한 파트라는 걸 밝히면

책 판매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제목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제목 때문에 묻히기엔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다.

영화의 고수들이 모여 팟캐스트로 방송한 것들을 책으로 낸 건데,

글 한편 한편이 전문가의 식견이 물씬 담겨있는 수작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것인데,

이 책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가지고 반대편을 종북으로 모는 우리 사회를 탄식하고,

<괴물>을 얘기하면서 세월호를 오버랩시킨다.

물론 ‘딴지’의 정신은 죽지 않아, 글 곳곳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유머가 가득한데,

그 유머가 나같은 사람에겐 딱이다. 예를 들어 우베 볼이란 감독이 만든 <블러드레인>에 대한 평.

[<블러드레인>은 (터미네이터 3에 나왔던) 크리스타나 로겐의 떡신을 볼 수 있다는 것말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영화로, 그마저도 존나 짧다. 전편에 흐르는 똥칠의 정도로 봤을 때 떡신이 적어도 30분은 되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인데 10초도 안돼서...그래서 이 영화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140쪽)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이 시대의 거장: 심형래 편>이었다.

그 유명한 <디워> 논란이 있었을 때, 부끄럽게도 난 평론가보단 심형래 편에 섰었다.

심지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이 정도면 재미있지 않냐?”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글에 의하면 심형래는 영화를 만들고 띄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스킬을 이용한다.

‘추억팔이--> 선구자의 고행-->즙짜기-->위대한 도전자’의 4단계인데,

이 중 내가 넘어간 부분은 2단계와 4단계였다.

즉 심형래가 고초를 겪는 게 그가 정통 영화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에 격하게 동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에 진출해 블록버스터들과 맞짱을 뜨려는 그의 포부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사 직원들의 임금조차 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정선 강원랜드의 A급 고객”인데,

책에 의하면 “거기선 몇십 억 정도 쓴 걸로 A급 고객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적어도 몇백 억 정도는 돼야 한다” (156쪽)인데,

“투자금 명목으로 모아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써버린 돈 120억원의 행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그는 재기를 꿈꾸고 있단다.

“<디워>를 3D로 컨버팅해서 100개 나라에 팔겠다” “<디워>에 들어있는 아리랑을 알려서 중국의 동북아공정을 막아보겠다”고 떠들고 다닌다는데,

사람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마련이며, 

<용가리>와 <디워>로 두 번이나 속은 우리 국민들이 또 넘어갈 것 같진 않지만,

2007년 12월의 잘못된 선택에도 불구하고 5년 후 같은 선택을 한 걸 보면 심형래의 재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한번쯤 극장에서 봤거나 아니면 들어는 본 영화를 가지고 하는 얘기라 가슴에 더 와닿는 책,

<딴지영진공>과 함께 황사를 이겨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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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12 2015-03-1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캐스트 참 재미있게 듣고 있는대 다음 주에 나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마태우스 2015-03-15 18:12   좋아요 1 | URL
앗 그게 공지됐군요!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하겟습니다

블랙겟타 2015-03-1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팟캐스트는 쭉 들어왔지만 책으로 살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태우스님때문에 지름니다. ㅎㅎㅎ

마태우스 2015-03-22 01:08   좋아요 1 | URL
팟캐스트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책도 재미있을 겁니다!!
 
가슴 이야기 - 내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한
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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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교양과학서가 드물다는 것. 청소년들을 자극할 과학서의 부재는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 중 하나다. “너도 과학자 아니냐?”라는 반박이 나올까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나는 <기생충열전>이라는 책으로 기생충학계를 천하 통일한 바가 있으니, 다른 분야를 질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나를 경악하게 만든 책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가슴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은 솔직한 이유는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였지만, 막상 읽어보니 내 기대와 달랐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게 아니라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다. 책을 읽고 받은 감동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교양서를 쓰고 싶은 과학자라면 <가슴 이야기>를 읽고 참고하시라.”


 

이 책은 내가 그토록 뿌듯하게 여겼던 <기생충열전>마저 초라하게 만드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저자인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과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라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과학자는 글을 못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특히 그런데, 과학잡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과학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성토를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다. 교양과학서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으로, 얼핏 생각하기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게 너무 어렵다는 것.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이 등장한다. 글 잘쓰는 작가에게 과학을 가르치면 된다. 이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플로렌스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 전자보다는 훨씬 더 쉬울 듯하다. 그녀가 대학에서 환경저널리즘을 연구했다는 걸 알고나면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플로렌스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슴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 유방암, 사춘기 변화와 더불어 가슴의 진화와 기원 등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쓸 수 있었다. 저서가 있어야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대접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계속 글쓰기를 게을리 한다면 머지않아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전문가 타이틀을 빼앗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여성의 가슴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각적 즐거움 같은 차원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관해서 말이다. 예컨대 우리가 알을 깨고 나온 뒤 바로 먹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흘은커녕 이틀도 안돼서 다 죽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된다.
수유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먹이를 직접 구해야 하는 성체가 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죠.” (62쪽) 즉 젖을 분비하는 포유류는 새끼들에게 맞는 먹이가 있는 서식지에 머물러야 할 필요를 없앴고, 그 결과 먹이가 별로 없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새끼를 낳는 게 가능했단다. (64쪽)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딱딱한 먹이 대신 젖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태어났을 때 치아가 없어도 됨을 뜻하며, 이는 출생시 머리가 작아도 됨을 뜻한다. 또한 젖을 빨아야 하는 필요 때문에 “구개와 혀 근육이 발달”했고, 이는 “언어능력 진화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 됐다.” (65쪽) 그러니, 어머니한테,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잘하자. 여성들의 가슴 덕분에 언어능력을 기른 주제에, 그 능력을 여성들을 비하하는 데 써서야 되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내가 여태껏 읽은 교양과학서 중 단연 최고이며, 이를 본뜬 교양과학서가 많이 출간됐으면 좋겠다. 자신의 첫 책을 대박을 터뜨린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그 다음에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궁금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어떤 분야든 나는 그 책을 사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가슴을 정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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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2-1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열전>이라는 책으로 기생충학계를 천하 통일한 바가 있으니˝
하하~~ 그렇습니까?
꼭 한 번은 웃게 만드십니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 멋지네요. ^^
이 책을 보관함에 담습니다.

마태우스 2015-02-16 23:01   좋아요 0 | URL
아앗 한번밖에 못웃게 해드려 죄송해요. 다음부턴 꼭 노력할게요! 글구 프리랜서 작가는 울나라에선 참 살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아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던 경험이 있는데요, 저랑 결혼하자마자 때려치운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좋은 대중 교양 과학서`는 정말 재미있죠....

마태우스 2015-02-18 03:2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2015-02-17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5-02-18 03:26   좋아요 0 | URL
어머나 님한테 이런 멋진 멧시지를 받았으니, 좋은 명절 될 것 같네요. 님도 좋은 명절 보내시길.
 
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하는 51가지 방법 - 한 번만 따라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혼자 놀이법
공혜진 글.그림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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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주로 혼자 먹는다.
우리 과에 교수라곤 나밖에 없고,
작년 9월부터 학교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조교를 없앴기에 완전히 혼자가 됐다.
매번 같이 밥먹자고 부탁하는 것도 귀찮고, 하다보니 혼자 먹는 게 편한 면도 있다.
다른 사람과 먹으면 무슨 주제로든 얘기를 해야 하고,
그러다 밥알이라도 튀면 좀 쑥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혼자 먹는 건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왠지 인간성이 파탄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
그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난 꼭 잡지나 책을 들고 식당에 간다.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밥을 먹는 모습은, 이건 순전 내 생각이지만, 천생 학자 같다.

 

얼마 전부터 내 식사 파트너가 됐던 책은 <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하는 51가지 방법>이다.
이런 유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몇 가지 이야기’ 같은 제목은 십년도 더 지난, 외환위기 무렵에 유행했던 것인데다
‘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한다’는 건 아무래도 유치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내게 배달된 지 몇 달간 책꽂이에 꽂힌 채 먼지를 맞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드디어 내 간택을 받았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일단 내용이 별로 어렵지 않으니 밥 먹으면서 보기 딱 좋다.
땅에서 단추를 줍는다든지, 천으로 만든 시계를 차는 행위는 분명 유치하지만,
중요한 건 행위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며,
저자의 설명을 듣다보니 그런 것들도 ‘한번 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나 십자수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일들은 그냥 패스했지만,
그런 게 필요 없는 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만의 루틴 동작 만들기’!
이걸 읽다가 감명을 받아 멋있는 걸로 하나 만들었는데,
앞으론 이게 내 루틴 동작이다!


혹시 나랑 있을 때 이 동작을 보면 “왜 저러나?”고 딱하게 보지 말고,
“아, 쟤의 루틴이구나”라고 너그러이 봐주시길.

혼자 밥을 먹고 싶은데 인간성 파탄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분들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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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15-01-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실에서는 알라딘 잘 안들어오는데요.
잠깐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마태우스님의 깜찍한 모습을 보고가네욤.
책리뷰도 맘에 들지만
오랜만에 보는 마태우스님을 보고 기분좋게 갑니다^^

마태우스 2015-01-29 13:57   좋아요 0 | URL
네...제 사진 보고 기분좋아지는 분이 계시다니, 저도 좋습니다!

꽃핑키 2015-01-2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커피 마시다가 뿜었어요 ㅋㅋㅋ 내 노트북 어쩔 ㄷㄷㄷㄷ
노트북이야 닦으면 되고 ㅋㅋㅋ 덕분에 ㅋㅋ 힐링 제대로 하고갑니다 ㅋㅋㅋ 너무 귀여우셔요!! ㅋㅋ

마태우스 2015-01-29 13:57   좋아요 0 | URL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님도 멋진 루틴 하나 기대할게요!

순오기 2015-01-2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혼자 밥을 먹어도 마태님 감각은 죽지 않았어요!👍
혼자 산지 20개월쯤 되니까 혼자 사는 거 혼자 먹는 거...겁나지 않아요. 다만 남편이 천안에서 강릉으로 현장을 옮겨 마태님 보러 갈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ㅠ

마태우스 2015-01-29 13:56   좋아요 0 | URL
글네요. 강릉이라뇨... 이번엔 제가 한번 내려갈게요. 지난번에 대접을 넘 잘받아서, 한번 저도 베풀고 싶어져요!

마립간 2015-01-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루틴이면서도 인간성 파탄으로 보이는지조차 관심없는 저에게 마태우스 님의 글이 위 책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5-01-29 13:55   좋아요 0 | URL
아유 그래도 제가 글을 매일 쓰는 게 아니잖아요. 책 하나 장만하세요...^^

soyo12 2015-01-3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무늬 남방이 참 멋지네요. ^.^.

마태우스 2015-02-05 22:0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이거 집사람이 사준 거예요 제 눈으로 고를 수 없는 그런 남방이죠^^

신데렐라엄마 2015-01-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개그 본능 작렬.... 아침에 이거 보고 배꼽이 빠질 뻔했어요!!!! 뭘 해도 웃긴 마태우스 님... 사랑합니다^^

마태우스 2015-02-05 22:08   좋아요 0 | URL
루틴동작 멋진 거 하나 정하졌나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데렐라엄마 2015-01-3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블로그와 트위터로 가져갔어요. 저도 루틴 동작 구상 중... ㅋㅋ http://blog.naver.com/dymg98/220257518701 https://twitter.com/jimo_jiho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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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리뷰대회에 응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라딘 대주주라는, 스스로 낸 소문 때문에 혹시 내가 1등이라도 하면 “짜고 친다”는 오해라도 받을까 두려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방송출연 수입이 끊겨 주말마다 라면을 먹는 현실을 타계할 생각에 리뷰대회를 떠올렸고, 대상도서를 검색하다 고른 것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다. 


한 남배우가 운전기사를 뽑는다. 차를 고치러 맡긴 수리업체는 여성을 추천해 준다. 그 얘기를 들은 배우는 “그다지 달가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11쪽) 하지만 그 여자가 운전 하나만큼은 잘 한다는 말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한다. 이럴 때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가 올 것 같았지만, 막상 온 여자는 “어느 모로 보나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17쪽). 하지만 자동차는 사방이 꽉 막힌 방 비슷한 공간이라 같이 있다 보면 친밀감이 싹트기 마련이다. 미녀도 아니고 말수도 적은 이 여자와 나란히 있다보니 그 배우는 자기보다 스무살 가량 어린 그 운전기사와 친해지며, 죽은 아내에 대한 얘기를 비롯한 내밀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제부터 둘이서 뭔가 이루어지나 하는 기대감에 다음 장을 넘겼더니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아는 한 비틀즈의 <에스터데이>에 일본어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63쪽)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기타루’는 제1 장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내용도 이상해서, 차 얘기가 아예 없었다. 성큼성큼 책을 넘기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었다!


단편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집중할만하면 이야기가 끝나 버려, 밤을 새면서 읽어나갈 동력을 잃는다. 이 책이 단편인 걸 알고 실망했지만, 하루키의 글솜씨 덕분에 어느 정도 그 실망감을 만회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자기 친구한테 미녀인 자기 애인과 데이트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기타루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갑자기 끝나는 이야기에 실망하면 또 다음 얘기가 나를 기다렸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은 <기노>였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책 중간중간에 내 로망이 들어 있어서였다. 로망을 얘기하기 전에 소설 얘기를 잠깐 한다. 주인공인 기노는 운동화 세일즈맨으로, 출장이 잦다. 출장에서 하루 먼저 돌아온 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한 기노는 그 길로 집을 나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찻집을 하는 이모가 나이가 들어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으니까. 결국 기노는 월세로 그 가게를 빌렸고, 저금한 돈의 반을 들여 찻집을 ‘바’로 개조한다. 2층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퇴직금도 남아 있었다. 거기다 집을 판 돈을 아내와 나눴기에 “한동안은 먹고살 수 있을 터였다.” (226쪽) 처음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노는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227쪽) 


한때 나이가 좀 들면 책방을 할 생각을 했었다. 음료수를 파는 곳도 있으니 북카페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동네서점이니 사람도 많지 않아 임대료와 직원의 월급을 빼면 남는 건 별로 없지만, 거의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내가 꿈꾼 책방이었다. 한 몇 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내와 결혼하면서 꿈을 접었는데, ‘기노’를 읽으면서 그때를 다시금 떠올렸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던 그때를 말이다. 이런 말을 아내한테 하니까 아내가 이런다. “그럼 내가 바람을 피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기노와 나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첫째, 난 저금한 돈이 없다. 둘째, 기노와 달리 난 음식 만드는 데는 잼병이다. 셋째, 결혼해서 알게 된 건데 난 책만 읽는 것보단 아내와 강아지들과 더불어 사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러니 여보, 바람 피우지 마.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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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2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은 언제나 유쾌해요.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리뷰대회의 강자 블랑카님, 이번에도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페크(pek0501) 2015-01-2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수가 많으면 리뷰대회에서 뽑히는 건가요?
글 재밌게 읽고 보태고 갑니다. ^^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사실 제 스타일의 글은 리뷰대회에 적합하지 않죠. 리뷰를 못쓰니까 유머코드로 만회하는 거라...^^ 암튼 님의 마음은 감사히 받을게요

paviana 2015-01-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더러가 떨어져 살짝 결승까지 별 무리없이 가겠구나 안도했었는데....
어엉 베르디히한테 질 줄이야..ㅠㅠㅠ
근데 변가보다 마태님이 더 형 아니신가요? 글케 보이던데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