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술 먹으면 넌 인간도 아니다”
출근을 하는 내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어쩜 그렇게 맨날 정신을 잃은 채 집에 올 수 있담? 일주일쯤 전, 나를 늘 걱정해주는 지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는 바르게 살 거야. 나 믿지? 이번만은 진짜야!”
믿기는 개뿔, 나도 날 안믿는데 어떻게 그녀가 날 믿을 수 있겠는가. 할머니도 그러셨다.
“말로만 안먹겠다고 하면 뭐하냐? 내가 보니까 너 큰일났더라”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저녁 약속은 곧 술 약속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오늘만큼은 술을 먹지 않으련다. 내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으니까.
어제는 내가 관여하는-사실은 거의 주도하는-위원회에서 쫑파티를 했다. 날지 못하는 오리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고, 맥주도 마셨다. 거기서 끝났으면 양호했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위원회 멤버 중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선생이 하나 있었다. 말과 행동이 별로 교수같이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 선생도 “잘릴지 모른다”를 입에 달고 산다. 그 사람과 서울에 올라가 2차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유쾌하다. 문제는 그 인간도 술이 무진장 세다는 것. 12시 반 쯤 집에서 전화가 왔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 뒤 어떻게 거길 나왔는지, 집에는 어떻게 갔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자리에 누워 습관처럼 TV를 틀었다. 마이클 조던이 나온 <스페이스 잼>을 한다. 한 2분쯤 봤을까. 난 어느 새 잠이 들고 말았다. 희한하게도 내 꿈에 마이클 조던이 나왔다. 우리 어머님이랑 친해 보였다. 난 그의 근육질 팔도 만져봤고, 이해할 수 없는 모험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런데 꿈의 끝자락에 조던이 갑자기 바지를 내리더니 엉덩이를 보여준다. 이런. 조던은...........치질 환자였다. 그것도 상태가 심각한.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치질 덩어리가 너무도 생생하다. 그 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처럼 술만 마신다면 나도 치질에 걸린다는 경고? 한참을 앞서가던 책 vs 술의 스코어가 45대 45로 동점이 되었다.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이 편안하기만 한 내 속과 달리, 다시 라면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