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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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해도 생각보다 덤덤할 줄 알았다.
가을볕에 바짝 말린 빨래처럼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랄까.
처연해서 서글프긴 했지만 말이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이 책의 제목이 왜 '아침의 피아노가 됐는지를 알겠다.

서리 내린 초겨울 아침에,

살얼음이 얼듯 팽팽한 대기의 긴장을 '쩌억~'하고 가르며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의 느낌이었다.

한번 균열이 가기까지의 긴장감이 힘들지, 균열이 가고 나면 무너져 내리는건 한순간,

중후반에 이르면 '롤랑 바르트'니 프루스트', 바쇼의 하이쿠 등을 인용하는데,

나도 언젠가 한번쯤 봤던 책 속의 글들이 인용되는 데도,

왠지 슬픔이 속수무책 밀려드는거라 나중에는 '꺼이 꺼이' 목놓아 울어 버렸다.

조금만 슬픈 정조를 만나도 이때다 싶어 눈물을 흩날리느라 옮겨적지는 못했는데,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몸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말고 열어줄 것.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환자의 몸이 하는 얘기와 다르게 얘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허리가 원인인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던지,

몸을 혹사시켜 몸은 좀 쉬라고 아우성인데,

버틸 수 있게 주사 한방만 놔달라고 하는 경우 등,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식으로 함부로 대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자연이나 우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이나 우주의 기운을 내 몸이 잠깐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 싶으면...겸손해진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읽었지만, 그걸 번역하신 분이란걸 요번에 알게 되었다.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애도일기》는 슬픔의 셀러브레이션이다.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그건 무력한 상실감과 우울의 고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을 잃고 '비로소 나는 귀중한 주체가 되었다'는 사랑과 존재의 역설이다.(186쪽)

 

'애도일기'의 내용이 정확히 어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읽을 그 당시에도 그랬고,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중간에서 짬뽕이 되어 그랬을텐데) 사랑의 대상을 '애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애도'의 대상이 그의 어머니였단다.

그가 '애도일기'를 썼을 때가 예순 몇 살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애도의 대상이 애인이든 어머니든 애도의 정도가 희석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초의선사는 추사가 죽고 두 해 뒤에 망자의 묘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리는 법이구려."(192쪽)

이런 구절도 좋았지만,

 

수원 봉녕사에 다녀왔다. 25년 전 아우가 사십구재를 마치고 이승을 떠난 곳. 그때 나는 독경 소리를 뒤로 들으며 대웅전을 나왔었다. 마당에 가득하던 초여름 햇살 저편 수돗가에서 젊은 팔을 걷고 흰 무우를 씻는 비구니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청명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우를 보냈던가 붙들었던가. 모르겠다. 다만 세상과 삶의 부조리만이 깊이 가슴에 각인되었을 뿐. 그때 아우는 떠나는 자였고 나는 보내는 자였다. 그사이 세월이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 지금은 내가 떠나야 하는 자리에 선 걸까. 오늘 나는 여기에 왜 다시 왔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나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오후에 날이 흐리더니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193쪽)

이 구절에선 얼마전 나도 사십구재를 경험한지라 오래 머물렀다.

나는 사십구재 때 보냈는가, 붙들었는가.

붙잡고 싶었지만 보냈던 것 같다.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했었다.

 

늙은 제주 해녀들. 리포터가 묻는다. "물에 올라오면 그렇게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 "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거지 ㆍㆍㆍㆍㆍㆍ" 위기란 무엇일까. 그건 힘이 소진된 상태가 아니다. 그건 힘이 농축된 또 하나의 상태이다. 위기가 찬스로 반전되는 건 이 힘들의 발굴과 그것의 소용이다. 나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는 걸까.(216쪽)

이 구절을 읽고 그런 생각을 굳혔다.

물질만 사람의 힘이 아니라 물의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나고 살아가고 죽는 일, 어느 하나든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참 미미하게만 느껴지고,

거대한 자연에, 내지는 광활한 우주에 순응하게 된달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살면서 안달할 일도 아니고, 아둥바둥 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 벤치. 휠체어에 앉은 노파 앞에서 반백의 남자가 취한 목소리로 중얼댄다. "어머니 내가 너무 피곤해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요ㆍㆍㆍㆍㆍㆍ"그의 들썩이는 뒤통수를 말없이 쓰다듬는 휠체어의 노파.(220쪽)

 

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엔 이런 말을 들을 기회를 주지않고 가버린 아들에게 감사했다.

아들이 사는게 힘들다 한다면 무너져 내리지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그러다가 이내 들썩이는 뒤통수를 본일이 없는 것 같아,

말없이 쓰다듬어 준적이 없는 것 같아,

앞으로도 뒤통수를 쓰다듬어 줄 일 따윈 없을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게 좀 센치해지려 하는데, 분위기를 바꾸어...

이 책의 추천 코멘트를 이렇게 적고 싶다.

언젠가 한번은 죽을 사람들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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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2-04 14:08   좋아요 1 | URL
사십구재도 마치셨군요.
늦었지만 저도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드릴께요.
양철나무꾼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저는 코끝이 시큰해지는데 감히 제가 뭐라고 말씀을 덧붙이겠어요.
책으로 마음을 다잡으시려는구나 짐작만 할 뿐이지요.
마지막 줄에, 언젠가 한번은 죽을 사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숙연해집니다.

양철나무꾼 2018-12-04 15:14   좋아요 0 | URL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진영 님의 ‘아침의 피아노‘는 책의 내용이나 의미만으로도 좋았는데,
제 경험이랑 중첩되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책으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은 하는데...쉽지는 않네요.
다만 어디 한군데 감정이입하고 몰입하지는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어요.

그동안 천국이라던가 하는 걸 믿지는 않았는데,
지금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 죽게 되면 아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고싶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행동이 좀 착하고 순해지긴 합니다.

책읽는나무 2018-12-04 18:57   좋아요 0 | URL
언제일까?싶었는데....결국 지났고,
잘 보내주고 오셨군요.
저는 엄마를 보내드리고,‘애도일기‘를 한참이나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읽을 적엔 힘들었는데..읽고 나니 희한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같아요.그후로 죽음에 관한 책들을 처음엔 꺼려 했지만, 읽으면서 눈물 찍고 나면, 어느새 좀 치유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참 신기했습니다.
그래도 선뜻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이긴 합니다만...

암튼 모든 글들이 나무꾼님께 위로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12-05 12:27   좋아요 0 | URL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실감은 잘 안나지만 보내주게 되더군요.
‘애도 일기‘를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그때 읽은 기억 따윈 없고,
요즘 죽음이 언급되는 책들을 이상하게 읽게 되는데,
어떤걸 읽으며 눈물 흘리고,
어떤 건 서글프지만 위로 받고 그러고 있습니다.

요즘 선물받아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중 김관홍 잠수사 꼭지는 정말 읽기 힘들더군요~--;

님들 덕분에 위로받는 나날입니다, 감사합니다.

2018-12-06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8-12-07 15:34   좋아요 0 | URL
몸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말고 열어줄 것.
이 말이 제게도 와서 박히네요.
나무꾸님, 늘 마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12-11 22:52   좋아요 0 | URL
북극곰 님이 보내주시는 마음, 따뜻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12-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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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소설들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이 책 또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너무 잔혹하고 참혹하여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것들을 상충시키고 감안하고 읽어도,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만큼 리얼하게 잘 쓴 소설이라는 얘기도 되겠지만,

반대로 구태여 이렇게 잔혹하고 끔찍한 소설을 읽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열한 살이던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톰아저씨와 함께 사슴 사냥을 떠났고,

그곳에서 밀렵꾼을 발견하게 되고 라이플 총을 겨누어 살인을 하게 된 후의 파장을 그려내고 있다.

책에서의 어린 주인공은,

ㆍㆍㆍㆍㆍㆍ그래.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입도 다물고, 마음도 꽁꽁 닫았다. 햇빛을 받은 머리카락이 술 장식 같아 보였다. 지금도 그때 힘들었던 마음의 무게를 기억한다. 나는 그때 겨우 열한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부모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세상 모든 것을 부모를 통해 빨아들이는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105쪽)

이라고 그때를 되뇌는데,

여러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내가 여기에 관해서 명확한 가치관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이런 책을 읽으며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갈밭에 무릎을 꿇고 먼저 물냄새를 맡았다. 강 상류에 뭐가 죽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물맛은 차고 청량하고 무거웠다. 물은 차가울수록 무거워진다. 돌바닥에 바짝 엎드려, 수은처럼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낮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뱃속에도 하강인력이 생겼다. 나는 바틀릿 온천수와 레몬의 맛을 씻어내렸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석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마지막 하나의 발걸음으로 이끈다. 처음 기억이 생긴 그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14쪽)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열한 살의 나는 밀렵꾼을 살해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이 벌어진 후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를 나에게 알아듣게끔 설명하지 않은채,

어른들끼리 나의 거취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나의 가족, 주변 어른들의 문제이다.

아이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일이 벌어진 후에서야 어른들의 시선과 도덕적인 잣대를 드리워 버리는 건 잘못이다.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거나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게다가 왜인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톰아저씨는 내 어머니의 부재를 암시하고 있고,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가족의 따뜻함이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배우지 못한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한가지는 어떤 행동을 했으면 그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을 사냥에 몇 번 데리고 다니고,

그 사냥에 대해 어떤 가치관도 서지 않은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이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사냥이 전쟁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들짐승, 산짐승에게 총을 겨누는건 괜찮고,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건 왜 안되는 아이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없었다.

겪어보고 깨닫기엔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한다.

 

이 책에선 살인을 사냥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사냥을 정당화하게 되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낚시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으며,

곤충들을 해충이라며 죽이는 것이나,

길위의 꽃이나 식물들을 발로 밟는 행위 따위, 로까지 얘기를 확장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의 존재나 근원에 대해서, 나아가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의 글들은 아포리즘 같다.

성찰을 하게 만든다.

 

불꽃의 가장자리는 절대 깨지거나 찢기지 않는다. 불꽃은 어떤 모양이든 취할 수 있으나 변화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모든 가장자리는 결국 둥글어지고, 마지막 순간 불꽃을 완성하고 사라질 때마다 새로운 파장을 잉태한다. 막연한 미스터리에서 어떤 당연한 결과를 찾아내고 가장의 얼굴과 맞닥뜨리는 것은 오직 물과 불 속에서뿐이다. 하지만 불이 보다 직접적이다. 불 속이라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불은 우리 최초의 신이다.(70쪽)

 

이렇게 공기의 바다 밑바닥에 누워 거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그 굳건함에 마음이 놓였다. 별들은 아련하고 너무 멀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각각 하나하나가 아니라 수십억의 별들이 모여야 빛의 흔적을 만들 수 있다. 할아버지의 기원도 다르지 않다. 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곳. 그곳은 죽은 사내의 근원이자 동시에 나자신의 근원이다. 의미가 완전히 제거된 곳.(81쪽)

 

이 소설은 '자살의 전설'때도 그랬지만,

자전적이라고 해야할까,

개연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는데도 동떨어진 얘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

깊이 빠져들어 성찰을 하게 만든다.

 

암울했던 개인사가 삶의 최고의 선물이 된 기적을 경험한 데이비드 밴은 글쓰기가 주는 구원의 힘을 믿는 작가란다.

나는 글쓰기가 주는 구원의 힘은 모르겠고,

독서가 주는 위로의 힘은 알겠다.

 

좀 우울하고 암울하지만, 그 속으로 침잠하는게 두렵지만은 않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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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11-27 22:09   좋아요 0 | URL
자살의 전설의 그 작가 작품이군요. 번역도 같은 분이 하셨네요.
암울했던 개인사가 삶의 최고의 선물이 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었을까요. 기적을 경험했다고 할만 하겠지요.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하는 것. 아프지만 그것이 또 문학의 기능이 아닐까 주제 넘은 생각을 해봅니다.

양철나무꾼 2018-11-29 16:58   좋아요 0 | URL
hnine님~,
예전엔 경험이 가장 선물이다 라고 쉽게 말하곤 했는데...
어떤 경험들은 선물이나, 축복이라고 하더라도 살면서 하고싶지 않은 것들도 있더군요.
그 암울했던 경험이 선물이 되기까지 당사자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겪었을까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고기를 잡아줄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처럼,
삶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고력을 키워주는 방향을 제시했었는지...자문도 해보는 요즘입니다.
주제 넘은 생각이라뇨, 가당치 않습니다.
문학의 기능이 곧 삶의 기능이 아니겠습니까.
삶에 기능 따위가 존재하냐고 한다면 할말이 없지만서도...

북프리쿠키 2018-11-28 21:36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자주 오셔서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양철나무꾼 2018-11-29 17:00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 님,
오래간만의 댓글 반갑습니다.

저도 자주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님의 좋은 글들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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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편, 이 책은 유홍준 님의 새 책은 일단 들이고보는 습관 때문에 택했다.

그동안의 '답사기'에서 '산사 순례'편만을 엮어 펴낸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왕 발표한 글들을 다시 엮는다는 것이 한편으론 마음에 걸리셔서 책을 펴내며 '산사의 미학'이란 글을 새로 쓰셨다는데,

우리나라의 산사 7곳이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특별판이란다.

7곳은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 라는데,

대충 훑어보니 이 책에 언급된 곳은 4곳이다.

나머지 3곳을 더하여 엮어내는 것이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유홍준 님의 답사기는 (낯설고 어려워서) 일본편부터 안 읽었다.

어쩌다 보니 서울편1, 2권도 대기중이다.

산사순례 편은 한 번씩 읽은 거라서 지루하겠다는 건 나의 편견일뿐.

문장력에 탄복하며 새 책을 읽듯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지누 님을 엄청 좋아하여,

이지누 님의 그것들과 비교하며 읽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ㅋ~.

 

이 책에 나오는 16곳 중 직접 가본 곳이 반 정도 되는 것 같고,

나머지 반은 책으로만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절을 꼽으라면 순천의 선암사를 꼽겠으며,

여러 번 가봐서 익숙해서 좋은 절은 선운사와 내소사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말도 잘 하지만, 글도 훌륭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난 수사가 화려한 미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정도의 미문이라면 탄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동백꽃은 반쯤 져갈 때가 보기 좋다. 떨어진 동백꽃이 검붉게 빛바랜 채 깔려 있는데 밝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이파리 사이사이로 아직도 붉고 싱싱한 동백꽃송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그림 속에 점점이 붉은 악센트를 가한 한 폭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다면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나 동백꽃이 지는 모습 자체는 차라리 잔인스럽다. 꽃잎이 흩날리며 시들어가는 것이 꽃들의 생리겠건만 동백꽃은 송이째 부러지며 쓰러진다. 마치 비정한 칼끝에 목이 베여나가는 것만 같다.(134쪽)

 

실은 요번 추석때 도솔암에 다녀왔다.

시댁이랑 가까워서 간김에 좋은 기운을 받아오자 하는 취지에서 산책 삼아 다녀오게 되었다.

난 밑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갔는데,

가는 길에 오가는 차들이 있는 걸로 미루어 도솔암 바로 밑에까지 차로 오를 수도 있나 보다.

 

위의 사진은 요번에 내가 찍은 것이고,

아래 사진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편 개정판 62쇄의 사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진은 이 사진과 비슷한데 사람이 빠졌고 사진이 컬러이다.

내가 갔을땐, 사진에서 보이는 낭떠러지 같은 곳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길은 오르기 쉽게 평탄하게 조성된 듯 하지만,

가는 곳마다 기와불사에, 성미, 성수 판매에 상업색이 짙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중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쉼터가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곳을 운영하시는 듯한 스님 한분이 들어오시더니 아들을 향하여,

걸그룹 ㅇㅇ을 아냐고 반말로 묻더니,

맴버 중에 한 명을 지목하며 걔가 여기 광주 출신이란다...

라고 하며 울아들과 걸그룹 맴버를 같이 낮추어 버리는데,

좀 민망하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의 선운사 부분만 대충 비교해 봤는데,

'백파와 추사의 선 논쟁' 중 일부와 '추사의 백파비문'이 삭제 되었다.

마지막 '풍천장어와 선운리 당산제'라는 제목은 그대로인데, 당산제에 관한 내용도 삭제되었다.

이제는 당산제가 사라져서 내용이 삭제된 것이라면 제목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부분은 어떻게 빠지고 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의 초판 1쇄 발행일이 1993년이라고 되어 있는걸 보면 25년도 전의 일이다.

요즘 세상에 걸맞게 매만져서 나왔으면 좋았겠다...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보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화유산은 그대로 남겨둔다고 해도,

주변의 가림막이나 보호대 같은 것을 더 철저하게 보완하는데,

그게 문화유산이랑은 완전 동떨어져 겉도는듯 여겨진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란 시구를 '세월'로 바꿔본다.

'세월은 가도 문화유산은 남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현대적인 것을 더하여 보존하는 것이 나은건지,

좀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게 나은건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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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8-09-29 11:07   좋아요 2 | URL
동백꽃은 송이째 부러지며 쓰러진다. 마치 비정한 칼끝에 목이 베여나가는 것만 같다....
한창 이쁠때 뚝! 떨어지는 모습 좀 당황스럽긴 해요.

문화유산 보존...참 어려운 문제임에 공감합니다. 우리 맘은 그대로 냅두면 좋으련만....

양철나무꾼 2018-10-01 14:23   좋아요 0 | URL
그동안 꽃이 지는 걸 꽃잎이 흩날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동백은 진짜 이쁠때 목이 ‘똑~!‘하고 베듯 떨어져요.
알고는 있었지만 눈여겨 보지않았었는데,
그걸 글로 옮겨내는 것이 글 잘 쓰는 사람의 비결인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김훈의 ‘자전거 여행‘ 떠올렸는데,
님 페이퍼에서 보게 되어 반가웠어요~^^

북극곰 2018-10-02 13:51   좋아요 1 | URL
우리집은 남편이 유홍준 책은 나오는대로 사서 열심히 보는 편인데, 저는 잘 안 읽게 돼요.
아무래도 역사를 너무 몰라서인 것이 큰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이번 연휴에 통도사 댕겨왔답니다. 남해 보리암, 합천 해인사도요.

동백꽃 지는 모습이 (잔인할 지라도)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

양철나무꾼 2018-10-02 10:39   좋아요 0 | URL
아, 남편 분과 같이 독서를 하신다니 완전 멋지십니다.
저희 남편도 가끔 책을 읽기는 하는데,
독서 취향이 많이 달라서 겹치는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통도사에, 보리암에, 해인사까지...완전 좋았겠는걸요.
부럽습니다~^^

북극곰 2018-10-02 13:51   좋아요 1 | URL
남편은 책을 잘 안 읽고요, 특히나 소설은 잘 안 보고요. 근데 유일하게 저 시리즈는 열심히 보더라고요.
무튼, 같은 책을 봐도 좀처럼 읽은 감정, 소감을 나누지 않는 과묵형+이과형+남자사람인지라 재미는 없어요.

뭐 그렇긴 한데, 저는 이렇게 서재에서 보고 만나면 되니깐~~

양철나무꾼 2018-10-02 16:48   좋아요 0 | URL
북극곰 님 남편 분에게 간택 되시다니, 유홍준 님이 복이 많으시네요~^^
 
강원도의 맛
전순예 지음 / 송송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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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읽었던 '충청도의 힘'이란 책이 떠올랐다.

'충청도의 힘'이 사투리를 섞어서 충청도 사람들의 삶을 표현해내려했었다면,

이 책도 강원도 사투리와 맛을 빌려 강원도 사람들의 삶을 표현해 내려는건 똑같은데,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 삶이 아니라,

1945년생인 전순예 님의 추억 속의 음식과 삶이다.

추억 속의 그들은 정겹고 사투리는 찰지고 음식묘사는 맛깔난다.

 

솔직히 글이 빼어나게 잘 썼다던가,

아님 여러가지 기교와 표현 기법을 살려 현실감이 느껴진다던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 책은 참 좋다.

읽고 있으면 가슴에 맺혀있던게 '툭~!'하고 풀어지고 그리하여 어느새 순한 마음이 된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이 사셨을 삶을 책을 통하여 간접 체험하는 맛이 쏠쏠하다.

 

어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감동하긴 힘들 수도 있고,

'응답하라 1988'을 재밌게 봤던 그 세대라면 흥미로울 수 있겠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들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요리법은 낯설었다.

요리법이 낯선게 아니라,

그렇게 대가족들, 동네 사람들까지 함께 먹을 요량으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그 품이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네 살다가 서울로 올라간 할머니도 한번씩 다녀가실때마다 챙기고,

입덧하는 새댁도 챙기고,

남동생 친구들도 챙기고, 하는 품이 넉넉하다.

이건 양반이나 만석꾼 집안에서 챙기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는데,

산촌이고 계곡도 깊어서 사는게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한개도 공감할수는 없지만.

울 아빠 또래의 연세인걸로 미루어 아주 오래전의 얘긴 아니고,

이 글을 쓰신 전순예 님의 기억을 되살려 쓰신 것이니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하는 삶을 읽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미네 반찬'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났는데,

그 예능 프로그램은 어머니의 손맛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이고,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올드하게, 그때의 그 방식대로 재현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읽으면서 느낀건데,

손맛이랑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것은 대물림인가 보다.

글을 통해서도 야무진 손맛과 살림솜씨가 느껴진다.

 

또 한가지 삶을 오래 산 사람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후가 되니 몸이 뒤틀리고 지루합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꾸준히 뜯습니다. 할머니보고 그만 뜯자고 하니 "세상에 무슨 일을 하든 고비를 잘 넘겨야 된다"고 하십니다. 해가 질 때까지 뜯었더니 어제보다 훨씬 많이 뜯었습니다.(171쪽)

 

이런 문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서리가 내려 을씨년스런 아침에 나는 무를 뽑아오는 당번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무밭에 가면 머리 부분이 파랗고 둥글둥글하니 통통하게 아주 잘생긴 무들이 팔을 있는 대로 벌리고 반겨줍니다. 어머니는 무를 마구 뽑지 말고 잘 살펴보아서 세번째쯤 큰 것으로 골라 뽑아오라고 하십니다. 크고 좋은 것은 김장할 때 먹어야 하고, 또 좋은 것부터 먹어 치우면 못 산다고 하셔서 무밭을 잘 살펴봅니다. 세 번째 큰 것을 고르는 것도 힘들지만 무를 뽑는 것이 무한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싱싱한 무는 뽑으려 하면 움칠 놀라며 움츠러드는 것 같아서 용기를 내여 뽑습니다. (199쪽)

너무 좋아서 한참을 되새기고 곱씹었다.

나는 농사를 잘 모르지만,

만약에 나였다면 세번째 큰 무가 아니라 제일 큰 무를 뽑을 것 같다.

왜냐하면 큰무를 뽑아 먹으면 김장철까지 나머지 것들이 자란다고 생각할 것 같다.

 

햅쌀 밤밥이 끓으면 벼꽃 향이 납니다. 향긋하고 구수한 밥 냄새는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처럼 마음도 아주 고와지는 것 같습니다.(228쪽)

향긋하고 구수한 밤냄새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장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읽는 내내 한량처럼 밖으로 떠도는 이땅의 아버지들과,

고생하셨던 어머니, 할머니, 딸 들의 삶이 그려져서 눈물을 찔끔거렸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눈물을 눌러삼켰다.

영감님은 겁이 났습니다. "이놈의 할마시야. 내가 평생 믿고 살았는데 공기나 물보고 고맙다 하는 사람 보았나. 빨리 일어나라. 자식들을 불러 보는 앞에서 연금 통장도 당신에게 줄 테니, 마음대로 아들딸 사주고 싶은 거 다 사주고 가고 싶은데 가고 마음대로 살게 한다"고 약속합니다.(345쪽)

 

며칠전 조카가 베란다에서 키운 수박 사진을 보내줬다.

안에서 키워 그런지 수박은 작고 볼품없어 보였지만,

조카는 직접 키워서인지 행복한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힘들고 지난한 삶이었을테지만,

그것을 견디고 살았으며,

그리하여 당신의 꿈인 글쓰기를 나이 60이 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으셨단다.

이렇게 삶이 묻어나는 글들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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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9-20 08:57   좋아요 1 | URL
내일이면 추석맞아 곧 고향인 강원도로 가는데요. 어머니가 가자미식해 해놓았다고 하시네요.
고향에서 이 책 읽으면 좋겠다 싶어요. ^^
텃밭에 자라있을 것들도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양철나무꾼 2018-09-20 09:23   좋아요 1 | URL
내일 내려가시는요~^^
그동안 아프셔서 본의아니게 다이어트도 하셨으니,
가셔서 어머니표 맛난 음식들 많이 드시고 오세요.^^
이 책은 고향에서 읽으셔도 좋을 것 같고,
겨울날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고구마, 구운 떡 같은거랑 동치미 먹으면서 읽어도 완전 좋을것 같습니다.
책에는 텃밭에 나는 것 뿐만 아니라 산촌지역이어서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열매들도 여러가지 언급되고 있는데,
읽다보면 어느덧 침이 고이고 입이 몹시 궁금해집니다.

고향 잘 다녀오세요~^^

목나무 2018-09-20 09:3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그럼 이번 추석보다는 겨울 설날때 고향 아랫목에서 배깔고 읽어봐야겠어요. ~
이 책이면 부모님의 추억도 소환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런 책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양철나무꾼님도 추석연휴 잘 보내시구요. 맛난 것 많이 많이 드셔요. ^^

2018-09-2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0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9-21 21:36   좋아요 2 | URL
양철나무꾼님, 추석인사 드립니다.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내세요.
예쁜 보름달도 구경하시고, 편안한 연휴 보내시면 좋겠어요.^^

양철나무꾼 2018-09-22 09:28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오전 근무하고, 그리고 시댁 내려가요.
차로 긴 이동에, 명절 음식 장만에...몸이 힘들 일만 남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나 북적댈 생각을 하니 설레이기도 합니다.

님도 메리 베리 해피 추석보내세요~^^

AgalmA 2018-09-22 00:39   좋아요 1 | URL
추석맞이 글로 딱이군요^^
와, 집에서 키운 수박은 처음 봐요. 신기신기. 먹기 아까울 거 같아요.
글 읽으면서 햅쌀 밥맛 느끼며 침이;;;
추석 잘 쇠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9-22 09:36   좋아요 1 | URL
쟤가 베란다 화분에서 키운 거라서 저기서 더 자라지 않고 멈추더래요.
골아서 못 먹게 될까봐 저 크기에서 땄는데,
엄청 맛있더래요~^^

전 수박만 보면 님 생각이 난다나 어쨌다나.
추석때도 수박 드시려나?
저 책에 송편 얘기도 나왔던것 같은데,
전 깨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깨송편 좋아요.^^

AgalmA 2018-09-22 21:52   좋아요 1 | URL
맛있었다니 수박 키워보고 싶네요ㅎㅎ 방울토마토랑 딸기는 키워봤는데 확실히 맛있더라고요.

차례를 안 지내서 수박 같은 과일은 준비를 안합니다. 수박은 딱 한 조각만 먹어도 좋은데 한 통 다 사야해서 잘 안 먹게 돼요. 반 통은 신선도가 떨어지니 꺼려지고.

저도 깨송편 파ㅎ 갑자기 떡 먹고 싶네요.
전 낼 아침 출발~
맛난 거 많이 드시길 바라며 이만 빠빠이~

양철나무꾼 2018-09-28 12:30   좋아요 1 | URL
저도 요번 차례는 완전 간소하게 지냈어요.
심지어 남편과 아들이랑 부침 대신 피자 주문은 어떠냐고 너스레를 떨었으니까요.
차례라는게 말이죠.
마음과 행동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고,
그 조화라는 것도 가족 모두의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가족은 될 수 있으면 여행 가듯 놀이하듯 기꺼이 하는걸로 바꿔볼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수박 같은 과일은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나눠팔았으면 좋겠어요.
전 올여름 수박을 한번도 못 사먹었어요.
대신 쥬시팍시에서 수박큐브 음료를 엄청 먹었습니다, ㅋ~.

추석 잘 지내시고 일상으로 복귀하셨나요?
이제 일상이 주는 여유로움, 편안함 따위를 만끽해보자구요~^^

AgalmA 2018-10-04 17:15   좋아요 1 | URL
추석 때 내려가니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깨송편을 사 놓으셨더라고요ㅎ 깨송편 제가 다 먹음ㅋㅋㅋ

날이 많이 쌀랑해져서 건강 잘 챙기시길^^/

양철나무꾼 2018-10-05 11:12   좋아요 1 | URL
전 10월2일 근무 마치고 모임이 있어 강화도에 갔었는데,
강화도가 명색이 섬이라서 그랬는지,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요즘은 덥더라도 옷을 껴입는게 나을것 같아요.
더우면 벗으면 되지만,
얇게 입었는데 추우면 어쩌지 못하잖아요.

님도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근데,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꾸물한게 따뜻한 전이랑 술 땡겨요~^^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노승영.박산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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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번역 관련 서적을 읽었지만 이 책은 또 다르게 읽혔다.

그동안의 번역 관련 서적들이 번역의 일반론 내지는 어떻게 하면 번역을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 책은 번역가의 일상에서부터 번역과 관련한 에피소드, 번역의 테크닉, 번역가가 되는 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 궁금한게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겠고,

나처럼 번역에 대해 관심은 없지만 박산호 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재밌게 읽힌다.

박산호 님이야 장르소설 분야에서 입지를 굳힌 분이란걸 알겠고,

노승영 님은 과학책을 주로 번역하셨다는데,

안타깝게도 노승영 님이 번역하신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

다만 노승영 님의 번역 여부와는 상관이 없는 과학서나 기술서 내지는 의료관계서 따위를 읽으면서,

번역의 잘ㆍ잘못은 차치하고라도,

용어가 익숙하지 않고 통일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고로,

노승영 님이 말씀하시는 애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1부 번역이라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2부 생계형 번역가의 하루,

3부 살펴보고, 톺아보고, 따져보기,

4부 번역가의 친구들, 5부 번역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에 이르기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번역 관계 서적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근래에 읽은 것만 해도 정영목 님, 조영학 님에 이어 세번째인데,

가장 재밌고 가독성도 좋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번역가와 편집자들 입장에선 내가 밥맛이었겠구나 싶다.

그러니까 나는 트집잡기 대장이었다.

책을 읽다가 티끌이라도 발견하면 그게 내게는 들보만한 오류로 여겨졌다.

번역에서는 더 했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뉘앙스와 풍습 등 비언어적 요소들까지 '복원'(들어가는 말-'번역은 복원이다)해내는 과정에서 여백이랄까,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간극이 크다 싶으면 불편했다.

 

노승영, 박산호 두 분의 글을 읽고 보니,

어쩔 수 없는 번역 오류들이 있게 마련인것 같고,

언어뿐만이 아니라 뉘앙스와 풍습 등 비언어적 요소들까지 번역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그런 오역들 보다는,

(내로라 하는 번역가들도 오역한 것은 나도 잡아내지 못했을테니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간단한 실수에 더 크게 툴툴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노승영 님의 글을 읽다보면 복원이나 이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말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스미스의 번역을 대략적으로 평가하자면 내용을 크게 누락하지 않으면서도 원문에 종속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어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영어에 대입하면 흐름이 끊기고 리듬이 어긋나기 마련인데 그녀의 문장은 영어로만 놓고 보아도 짜임새가 훌륭하다. 문학 번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은 원작의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번역해내느냐다. 이 점에서 『The vegetarian』은『채식주의자』가 한국어로 거둔 문학적 성취를 영어로 엇비슷하게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는 단순히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영국 문학에 한국 문학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이다.(19쪽)

 

'번역가의 직업병' 꼭지도 재밌게 읽었다.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은 직업병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단다.

쇼핑중독이나 눈이 뻑뻑하고 초점 맞추기가 힘들다('노안'이라고 하지 말란다) 따위가 있지만,

노승영 님이 힘주어 언급하신 직업병으로는 독서불능증이 있다.

근데 이게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번역서들을 보게되면 오타나 오류가 빈번한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대단한 오역이야 전문 번역가들이 모르면 우리는 더 모를 것이니까 논외로 하고 말이다.)

이 문단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번역 강의 때마다 수강생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번역은 실력이 아니라 속력에 따라 보상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매번 최선을 다하고 언제나 실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번역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131쪽)

 

물론 이해가 되었다고 오타나 오류를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아니다.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 건강한 글도 나온다, 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고,

이건 글을 쓰는 작가나 번역가에게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런 구절도 재미있었다.

이게 전부다. 번역가의 장비는 소박하다. 컴퓨터는 워드프로세서의 브라우저만 잘 돌아가면 충분하다. 원서와 노트북만 달랑 들고 동네 카페에 가서 작업하는 번역가도 많다. 번역가가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은 머릿속이다. 장비의 효율성은 뇌의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한다.(255쪽)

 

이런 부분은 앞의 '데버러 스미스'의 『The vegetarian』과 비교가 되어 좀 씁쓸했던 부분이지만,

'균형감각'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쯤으로 생각해야겠다.

논지를 부각하느라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썼지만 사실 단어는 언어 공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거칠게 말하면 어휘와 문법이야말로 언어의 전부 아니겠는가? 번역가 입장에서 보면 뉘앙스와 문화 등의 비언어적 요소조차 어휘에 녹아 있는 셈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 텍스트를 저 텍스트로 바꾸는 것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289쪽)

 

'주'에 나오는 도서와 자료, 홈페이지 다 한번쯤 봐두어도 좋을 것 같고,

책 속에 언급되는 책들을 한 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뒤에 '도서 목록'으로 따로 정리되어 있어서 좋았다.

여러 모로 책읽기가 힘들었던 요즘 도움도 되고 흥미로웠던 독서였다.

 

개인적으로 존카첸바크의 책들이 좀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완전 좋아하는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 장르이거나 작가인가 보다.

 

책 겉표지의 제목 박스를 보고 테트리스 블록깨기를 연상했다.

번역 뿐만 아니라 삶도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고 맞춰 깨나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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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05 17:06   좋아요 2 | URL
요즘엔 정영목 선생님 책 등등 번역관련 책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전 이 책은 처음 보는데 당장 읽고 싶어요.
<채식주의자> 언급한 대목도 읽고 싶고, 뇌의 효율성 ㅋㅋㅋㅋ 이 부분도 무척 재미있네요.
양철나무꾼님 따라 읽으려면 한참 바빠야하겠지만(헉헉), 그래도 양철나무꾼님 따라 읽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8-09-05 17:29   좋아요 1 | URL
저는 박산호 님이 좋아서 이 책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노승영 님의 글들도 다 재밌더라구요~^^

아무래도 눈이 쉬이 피로해서 그렇겠지만, 짧게 끝나서 한꼭지씩 읽을 수 있는 이런 글들이 좋더라구요.

저도 단발머리 님 책들이 다 좋아보이지만,
서두르지는 않고 천천히 따라읽겠습니다~^^

[그장소] 2018-09-07 22:06   좋아요 1 | URL
저는 문학 잡지에서 노승영 님 글을 보고 반했었어요 . 악스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 아마 김연수 작가 편이었나 그래요 . 문체가 제 취향이라 그랬는지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8-09-10 08:44   좋아요 1 | URL
넵, 이 책만 봐도 노승영 님...반할만한 글을 쓰시더군요.^^
아직 이 분의 문체를 파악할 정도로 글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그장소] 님께서 이렇게 강추하시니 믿고 골라읽을 수 있겠어요~^^

루쉰P 2018-09-08 23:43   좋아요 1 | URL
여전하십니다 그려 껄껄껄 전 시험 떨어져서 낙향해 집에 와 있습니다. 훗.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크흑...눈물이 멈추지 않지만...뭐 어쨌든 ㅎ
잘 지내시죠? 죄송합니다. 자주 오지 못해서...

2018-09-1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8-09-13 13:34   좋아요 2 | URL
번역가들 책이 요즘 참 많긴 하네요. 저는 늘 그냥 지나쳤지만 나무꾼님 후기를 보면 또 궁금증이 동합니다.
노승영 님은 이러저러 번역 관련 발언들도 많고 해서 글은 자주 봤던 것 같아요.
꼼꼼하고 논리적이고 대충 물러서지 않는 느낌.
이런 류의 책중에 가장 재미있었다하시나 또.... 읽게 될 것 같아요. 흐흐.

양철나무꾼 2018-09-13 16:28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들이 몇 분 계신데,
그중 한분은 은퇴하신듯 하고,
(손주 볼 동화책 쓰시고 동화책 번역하시는 듯)
나머지 분들은 제가 좋아하는 것처럼 다른 분들도 좋아하시는지,
이렇게 책들로 만나보게 되네요.
이 책도 좋았지만, 조영학 님도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두권 모두 강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