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해도 생각보다 덤덤할 줄 알았다.
가을볕에 바짝 말린 빨래처럼 감정의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랄까.
처연해서 서글프긴 했지만 말이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이 책의 제목이 왜 '아침의 피아노가 됐는지를 알겠다.
서리 내린 초겨울 아침에,
살얼음이 얼듯 팽팽한 대기의 긴장을 '쩌억~'하고 가르며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의 느낌이었다.
한번 균열이 가기까지의 긴장감이 힘들지, 균열이 가고 나면 무너져 내리는건 한순간,
중후반에 이르면 '롤랑 바르트'니 프루스트', 바쇼의 하이쿠 등을 인용하는데,
나도 언젠가 한번쯤 봤던 책 속의 글들이 인용되는 데도,
왠지 슬픔이 속수무책 밀려드는거라 나중에는 '꺼이 꺼이' 목놓아 울어 버렸다.
조금만 슬픈 정조를 만나도 이때다 싶어 눈물을 흩날리느라 옮겨적지는 못했는데,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몸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말고 열어줄 것.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환자의 몸이 하는 얘기와 다르게 얘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허리가 원인인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던지,
몸을 혹사시켜 몸은 좀 쉬라고 아우성인데,
버틸 수 있게 주사 한방만 놔달라고 하는 경우 등,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식으로 함부로 대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자연이나 우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이나 우주의 기운을 내 몸이 잠깐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 싶으면...겸손해진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읽었지만, 그걸 번역하신 분이란걸 요번에 알게 되었다.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애도일기》는 슬픔의 셀러브레이션이다.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그건 무력한 상실감과 우울의 고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을 잃고 '비로소 나는 귀중한 주체가 되었다'는 사랑과 존재의 역설이다.(186쪽)
'애도일기'의 내용이 정확히 어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읽을 그 당시에도 그랬고,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중간에서 짬뽕이 되어 그랬을텐데) 사랑의 대상을 '애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애도'의 대상이 그의 어머니였단다.
그가 '애도일기'를 썼을 때가 예순 몇 살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애도의 대상이 애인이든 어머니든 애도의 정도가 희석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초의선사는 추사가 죽고 두 해 뒤에 망자의 묘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리는 법이구려."(192쪽)
이런 구절도 좋았지만,
수원 봉녕사에 다녀왔다. 25년 전 아우가 사십구재를 마치고 이승을 떠난 곳. 그때 나는 독경 소리를 뒤로 들으며 대웅전을 나왔었다. 마당에 가득하던 초여름 햇살 저편 수돗가에서 젊은 팔을 걷고 흰 무우를 씻는 비구니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청명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우를 보냈던가 붙들었던가. 모르겠다. 다만 세상과 삶의 부조리만이 깊이 가슴에 각인되었을 뿐. 그때 아우는 떠나는 자였고 나는 보내는 자였다. 그사이 세월이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 지금은 내가 떠나야 하는 자리에 선 걸까. 오늘 나는 여기에 왜 다시 왔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나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오후에 날이 흐리더니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193쪽)
이 구절에선 얼마전 나도 사십구재를 경험한지라 오래 머물렀다.
나는 사십구재 때 보냈는가, 붙들었는가.
붙잡고 싶었지만 보냈던 것 같다.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했었다.
늙은 제주 해녀들. 리포터가 묻는다. "물에 올라오면 그렇게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 "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거지 ㆍㆍㆍㆍㆍㆍ" 위기란 무엇일까. 그건 힘이 소진된 상태가 아니다. 그건 힘이 농축된 또 하나의 상태이다. 위기가 찬스로 반전되는 건 이 힘들의 발굴과 그것의 소용이다. 나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는 걸까.(216쪽)
이 구절을 읽고 그런 생각을 굳혔다.
물질만 사람의 힘이 아니라 물의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나고 살아가고 죽는 일, 어느 하나든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참 미미하게만 느껴지고,
거대한 자연에, 내지는 광활한 우주에 순응하게 된달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살면서 안달할 일도 아니고, 아둥바둥 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 벤치. 휠체어에 앉은 노파 앞에서 반백의 남자가 취한 목소리로 중얼댄다. "어머니 내가 너무 피곤해요. 사는게 너무 힘들어요ㆍㆍㆍㆍㆍㆍ"그의 들썩이는 뒤통수를 말없이 쓰다듬는 휠체어의 노파.(220쪽)
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엔 이런 말을 들을 기회를 주지않고 가버린 아들에게 감사했다.
아들이 사는게 힘들다 한다면 무너져 내리지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그러다가 이내 들썩이는 뒤통수를 본일이 없는 것 같아,
말없이 쓰다듬어 준적이 없는 것 같아,
앞으로도 뒤통수를 쓰다듬어 줄 일 따윈 없을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게 좀 센치해지려 하는데, 분위기를 바꾸어...
이 책의 추천 코멘트를 이렇게 적고 싶다.
언젠가 한번은 죽을 사람들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