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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때로 어떤 소설들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근원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이 책 또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너무 잔혹하고 참혹하여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것들을 상충시키고 감안하고 읽어도,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만큼 리얼하게 잘 쓴 소설이라는 얘기도 되겠지만,
반대로 구태여 이렇게 잔혹하고 끔찍한 소설을 읽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열한 살이던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톰아저씨와 함께 사슴 사냥을 떠났고,
그곳에서 밀렵꾼을 발견하게 되고 라이플 총을 겨누어 살인을 하게 된 후의 파장을 그려내고 있다.
책에서의 어린 주인공은,
ㆍㆍㆍㆍㆍㆍ그래.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입도 다물고, 마음도 꽁꽁 닫았다. 햇빛을 받은 머리카락이 술 장식 같아 보였다. 지금도 그때 힘들었던 마음의 무게를 기억한다. 나는 그때 겨우 열한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부모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세상 모든 것을 부모를 통해 빨아들이는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105쪽)
이라고 그때를 되뇌는데,
여러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내가 여기에 관해서 명확한 가치관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이런 책을 읽으며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갈밭에 무릎을 꿇고 먼저 물냄새를 맡았다. 강 상류에 뭐가 죽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물맛은 차고 청량하고 무거웠다. 물은 차가울수록 무거워진다. 돌바닥에 바짝 엎드려, 수은처럼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낮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뱃속에도 하강인력이 생겼다. 나는 바틀릿 온천수와 레몬의 맛을 씻어내렸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석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마지막 하나의 발걸음으로 이끈다. 처음 기억이 생긴 그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14쪽)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열한 살의 나는 밀렵꾼을 살해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이 벌어진 후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를 나에게 알아듣게끔 설명하지 않은채,
어른들끼리 나의 거취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나의 가족, 주변 어른들의 문제이다.
아이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일이 벌어진 후에서야 어른들의 시선과 도덕적인 잣대를 드리워 버리는 건 잘못이다.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거나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게다가 왜인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톰아저씨는 내 어머니의 부재를 암시하고 있고,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가족의 따뜻함이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배우지 못한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한가지는 어떤 행동을 했으면 그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을 사냥에 몇 번 데리고 다니고,
그 사냥에 대해 어떤 가치관도 서지 않은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인간이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사냥이 전쟁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들짐승, 산짐승에게 총을 겨누는건 괜찮고,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건 왜 안되는 아이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없었다.
겪어보고 깨닫기엔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한다.
이 책에선 살인을 사냥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사냥을 정당화하게 되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낚시는 어떻게 얘기할 수 있으며,
곤충들을 해충이라며 죽이는 것이나,
길위의 꽃이나 식물들을 발로 밟는 행위 따위, 로까지 얘기를 확장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의 존재나 근원에 대해서, 나아가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의 글들은 아포리즘 같다.
성찰을 하게 만든다.
불꽃의 가장자리는 절대 깨지거나 찢기지 않는다. 불꽃은 어떤 모양이든 취할 수 있으나 변화는 언제나 유동적이다. 모든 가장자리는 결국 둥글어지고, 마지막 순간 불꽃을 완성하고 사라질 때마다 새로운 파장을 잉태한다. 막연한 미스터리에서 어떤 당연한 결과를 찾아내고 가장의 얼굴과 맞닥뜨리는 것은 오직 물과 불 속에서뿐이다. 하지만 불이 보다 직접적이다. 불 속이라면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불은 우리 최초의 신이다.(70쪽)
이렇게 공기의 바다 밑바닥에 누워 거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그 굳건함에 마음이 놓였다. 별들은 아련하고 너무 멀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각각 하나하나가 아니라 수십억의 별들이 모여야 빛의 흔적을 만들 수 있다. 할아버지의 기원도 다르지 않다. 닿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곳. 그곳은 죽은 사내의 근원이자 동시에 나자신의 근원이다. 의미가 완전히 제거된 곳.(81쪽)
이 소설은 '자살의 전설'때도 그랬지만,
자전적이라고 해야할까,
개연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는데도 동떨어진 얘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
깊이 빠져들어 성찰을 하게 만든다.
암울했던 개인사가 삶의 최고의 선물이 된 기적을 경험한 데이비드 밴은 글쓰기가 주는 구원의 힘을 믿는 작가란다.
나는 글쓰기가 주는 구원의 힘은 모르겠고,
독서가 주는 위로의 힘은 알겠다.
좀 우울하고 암울하지만, 그 속으로 침잠하는게 두렵지만은 않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