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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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들 이름이 낯설어서 애를 먹는것처럼,

이 책도 낯선 용어들과 숫자, 곳곳에 달린 각주(사실 상세하고 친절하다. 책 뒤를 보면 80여쪽에 걸쳐서 나와있다.)

때문에 진입장벽은 있었지만,

그 부분들만 체계를 잡으면 재밌게 읽혔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할애해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읽으면서 모든 것을 인간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중심의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였다.

이 책의 주요개념인 미생물만해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개념이어서 미생물이란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추정치이긴 하지만 우리는 약 30조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마리의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한다.(22쪽)

인간 세포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하니 크기가 아닌 개체 수의 개념으로 넘어가면 쉽게 '미'를 붙일 수준은 아니다.

 

암튼, 미생물을 직접 볼 수 없고,

그리하여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건 미생물로 인해 발생한 결과 뿐이라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미생물=세균=전염병을 가져다주는 불청객'이란 통념에서 벗어나면,

대부분의 미생물은 병원균이 아니고, 우리를 병들게 하지도 않는다.

 

우리 몸에 머무르는 미생물을 가지고도 공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몸에서 '각자' 머무르면서 서로의 성질은 변하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지게 하는 그런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제3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화학적 변화로 이해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이 미생물과 공생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렐먼의 말을 빌어 '인간과 세균(=미생물)이 조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우리가 흔히 '원시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히드라'의 경우,

지난 5억년 동안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 왔으니,

(놀리는 의미로)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단다.

연구에 사용된 히드라의 경우 플라스틱 용기 안에서 30년을 사육되기도 했다는 예를 든다.

 

사람으로 따지면 철저히 통제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사람들은 장기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들은 정신이 흐리멍텅해져 정체성을 상실하기 직전일 것인데,

히드라는 30년이 흐른 뒤에도 제각기 자신이 속한 종에 맞는 고유의 미생물 군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245쪽)

 

감사의 글에 등장하는 책 중엔 읽은 건 한권,

읽지 못한 것도 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슬쩍 넘겨다봤던 것 같고,

'도도의 노래'와 '오류의 인문학'은 접해보지 못했으며,

'메이블이야기'는 가지고 있으나 아버지를 잃은 아픔에 관한 책으로 알고 밀쳐두었었는데,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그동안의 다른 책과 달리 좋았던 것은,

미생물을 인간, 건강, 다이어트 따위 이슈에만 집중하는 대신,

미생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놓고,

아니 인간만이 아닌, 동물들과도 나란히 놓고,

전체적으로 아우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하는 '가시나무'란 노래도 생각나는 것이,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란 제목은 참 그럴듯 한 것 같다.

 

아참참, 이런 이론서의 경우, 번역이 겉도는 경우가 많았는데,

번역이 완전 깔끔하다.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건 번역이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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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4 09:28   좋아요 1 | URL
제 글은 리뷰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요~--;
내용은 훨씬 재밌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8-01-23 17:50   좋아요 1 | URL
주인공들 이름에 질려 두손두발 다 들었던 소설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주는 문학상도 받았다던데... 잉게슐체의 심플스토리...
제목만 심플하고 그 외 다른것은 하나도 심플하지 않았던... 그래서 제목외에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비운의 소설책...

정말 번역본은 번역이 좋아야 읽을 맛이 나는것 같아요~ 가독성도 좋고 작가의 의도도 잘 전달하면서 깔끔한... 어려운 작업이에요

양철나무꾼 2018-01-24 09:33   좋아요 0 | URL
‘잉게슐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책이예요.

그래서일까, 전 예전부터 책을 읽을때 옆에 종이를 두고 메모를 하면서 읽어요.
가계도, 족보 그리기에 일가견이 있다고 할까?^^

이렇게 좋은 번역의 책이 많이 낭핬으면 좋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8-01-24 13:39   좋아요 1 | URL
작가이름도 틀리게 알고 있었어요~ 잉고 슐체..

양철나무꾼 2018-01-24 13:43   좋아요 0 | URL
우핫~^^ 상관없습니다.
댓글 쓰면서 찾아봤는데 저도 틀리고 말았지 뭡니까요, ㅋㅋㅋ~.
그나 저나 날이 엄청 추운데 따뜻한 점심 드셨습니까?^^

지금행복하자 2018-01-24 14:08   좋아요 1 | URL
아직이요~ 이제 먹어야죠~ 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8-01-24 18:19   좋아요 0 | URL
점심은 이미 드셨을테고, 이제 저녁시간이네요.
저녁은 말이죠~,
진짜 따뜻한걸 드셔야 합니다.
창문을 살짝 열었었는데, 코가 베이는 느낌이었어요~^^

CREBBP 2018-01-25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과학의 위안(강석기 저, 2017)에 나와있는 내용 중 하나가 우리가 미생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10배 오류더라구요. 그게 애초 인간의 세포수랑, 장내 미생물 수 등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하고 대충 어림한 것을 처음에 누가 어떤 책인지 논문인지에 언급했는데, 이후 계속해서 인용되어 와서 팩트처럼 굳어졌는데, 최근 다른 과학자가 다시 따져봤더니 인간 세포수와 미생물 개체수가 거의 비슷비슷하다고 해요. 비슷하다고 해도 놀랍죠 ^^

양철나무꾼 2018-01-25 10: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조 단위까지 나가게 되면 정확한 개수 자체가 불가능할거예요.
왜 수학이나 과학 관련서 보면 그런거 많잖아요.
‘,‘나 ‘.‘따위를 잘못 찍어 크기가 뒤바뀌어 버리는 사례요.
눈에 안보일 정도로 작아서 ‘미‘자를 붙인것이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숫자라면 ‘미‘를 붙이기엔 민망한 수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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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글을 잘 쓰고 싶었다.

학창시절에는 누군가에겐 로망이었을, 글을 잘 쓴다고 하면 우쭐했고,

그 잔재들이 남아서 지금의 나로 이어진 것 같다.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글을 잘쓰고 싶다는 꿈은 버리지 못하고 이런 저런 작법서를 들춰보곤 했다.

지금도 이런 류의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들이지만,

고백컨대 이제 난 더 이상 글을 잘쓰고 싶지는 않다.

아니다.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들이는 만큼의 공을 들일 자신이 없다.

 

이곳에 올리는 리뷰나 페이퍼만 해도 그렇다.

시작이나 맺음을 어떤 말로 하면 근사하고,

제목은 이렇게 뽑으면 내용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함축하겠고,

뭐 그런 생각을 가끔하지만,

쓸때는 아무 생각없이 일사천리로 휘리릭이다.

중간에 맥이 끊기면 더 이상 글을 이어가지 못한다.

 

책을 읽었을때의 느낌이나,

책과 관련된 상념들을 잊지않고 붙잡아두고는 싶지만,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깜냥도 아니다.

 

그걸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소설가나 작가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바로 그것이 모든 사람이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중혁 님의 이 책은,

개인의 사변적인 기록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이 땅의 많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글로써 그날의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와 공감을 하고 소통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비법 전수서 쯤으로 읽히기도 하는 것이,

내겐 따뜻한 위로가 됐다.

 

한권의 책으로 엮여 나오기에 좀 가볍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전문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라,

무언가 간단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서로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이 책은 글을 쓰는 것 말고도,

수집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사람들에게도 롤모델 역할을 충실히 한다.

한명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얼리어덥터가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도구는 '손톱깎이'였다.

그런데 김중혁 님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손톱이 길다고 할퀴는 것이 아니라,

손톱에 줄질을 하여 매끈하게 다듬질 않으면,

날카로운 부분들이 걸려 할퀴게 되는 것이다.

손톱이 길면 자판을 두드릴때 미끄러지거나 하여 소리가 경쾌하지 못할 뿐이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하는 서너가지 정도의 기준은 나에게 죄다 해당되어 뭐라 할 말이 없다, ㅋ~.

 

독서습관도 나와 비슷하신 것 같다.

나도 예전엔 무조건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했었는데,

이젠 익숙한 책을 새롭게 보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싶으니 말이다.

글을 쓰면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다는 것 또한 나와 같아서 맘에 든다, ㅋ~.

 

김중혁 님처럼 하면 무엇이든 쓰게 될테지만,

그렇게 무엇가를 쓰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장비'들도 일조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요즘 내가 장비'빨'이라며 장착하고 뿌듯해 하는 것은 '아이패드'이다.

물론 나는 김중혁 님처럼 이걸로 많은 것들을 하지는 못한다.

웹서핑만을 가끔 할 뿐이다.

(어떻게 알고 보내주신 서니데이 님의 파우치는 안성맞춤이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책을 읽고, 그걸 글로 남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남아있는 나날동안,

누군가를 할퀴는 글이 아닌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너무 뜨거워 다가가는 것만으로 화들짝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하는 그런 글이 아니라,

어깨를 살짝 감싸주거나, 등이라도 툭 두드려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겐 김중혁 님의 이 책이 충분히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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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8-01-19 16:45   좋아요 2 | URL
김중혁님 참 좋아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아서요.
양철나무꾼님 글에선 따뜻한 온기가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8-01-22 09:14   좋아요 2 | URL
제 글도 온기가 있다고 해주셔서,
완전 따뜻한 글을 쓰시는 꿈섬 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좋아요~^^
김중혁 님은 가벼우면서 깊은 것 같아요.

2018-01-19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2 09:1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전문적으로 글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전문적인 글쓰기로도 밥 먹고 사는 일은 더 더욱 쉽지않은 일이죠.
글쓰기가 됐건 무엇이 됐건 전문적으로 하는 일들이,
적어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2018-01-19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2 09:26   좋아요 0 | URL
님께서 이렇게 상찬을 해주시다니 완전 감개무량합니다.
저도 잘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알아먹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로도 그렇지만,
글만으로 내 자신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상호적인 것일테니까 말예요.

님의 말씀처럼 ‘위트도 있고 가끔 가시도 보이고 따뜻함도 있는 다양한 글‘이 될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cyrus 2018-01-19 17:53   좋아요 2 | URL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꾼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생각에 공감하는 행위, 이게 참 중요하고 글쓴이와 글 읽는 이의 마음 모두 따뜻하게 만들어요. 그러므로 나무꾼님의 글은 따뜻한 글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8-01-22 09:31   좋아요 0 | URL
그렇죠, cyrus님과는 2010년부터 꾸준히 이곳에서 활동을 해왔죠.
제가 우리 아들 고3때 하는 일도 없이 좀 번잡하여 활동이 뜸했었고,
그걸 제외하곤 꾸준한 것 같습니다.
그때 활동하던 분들이 지금은 뜸한 분들도 계시고,
그 후에 꾸준히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서도,
cyrus님은 뭐랄까 닉네임만 마주쳐도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느낌이예요.
앞으로도 그곳에 그렇게 계셔주실거죠?^^

2018-01-19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2 09:35   좋아요 1 | URL
저는 제 리뷰보다 님의 리뷰가 더 기다려져요.
어여 올려주세요~^^

며칠전에 필기구 정리를 좀 했는데,
아낀다고 끼고 있다가 못 쓰는 것들이 좀 있더라구요.
그래서 요번 건 열심히 써보려구요.
근데 글씨 쓸 일이 잘 없어서리~--;
암튼 덕분에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겠다고, 사부작거려 봅니다~^^

박균호 2018-01-19 21:39   좋아요 3 | URL
본인의 의도를 독자들이 되묻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를 시켰다면 충분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2 09:42   좋아요 1 | URL
저도 글은 상대방이 알아먹을 수 있게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고 말이고 간에 실상은 내 얘기만을 하는게 아니라,
상대방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게 목적일테니까요.

그나저나 오래간만이십니다.
새해 복많이 지으시고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AgalmA 2018-01-25 00:25   좋아요 0 | URL
음악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 기타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나 봐요ㅎ? 기타 때문에 길게 기르기도 하는데...그렇게 되면 나만의 현을 울리기 위해 나는 손톱깎기는 멀리한다는 표현이 나올 걸요? 역시 사람은 천차만별^^ 그게 글의 묘미이기도 하죠.
저도 서니데이님이 주신 파우치 아이패드 파우치로 쓰는데^^

양철나무꾼 2018-01-25 10:18   좋아요 0 | URL
학창시절 코 판다고 새끼손톱만 길렀던 미술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그땐 학생들 용의검사한다고 선생님들도 용의를 단정히 하던 때였는데 말이죠~^^
그때 손톱을 생인손이 될 정도로 유난히 바짝 깎던 친구도 생각나고,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입니다.
서니데이님 표 파우치 이쁘죠~?^^

CREBBP 2018-01-25 08:34   좋아요 1 | URL
아 최근 읽은 거만 벌써 두 권.ㅎㅎ 양철나무님과 독서 패턴이 비슷한 걸까요 우연일까요. 저도 이 책 그런데 다 안읽고 앞부분만 뒤적거렸는데 말이죠. (앞부분이 애플빠여서 흥미가 급떨어지더라구요. 애플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아무리 가벼워도 한 권의 책인데 첫장부터 상품 브랜드 찬양부터 하니 김이 빠져서요. ㅎ) . 그런데 김중혁작가는 가볍고 위트있게 쓰는 게 매력이기도 한데 말이죠. 오늘부터 뒷부분도 읽어봐야 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1-25 10:27   좋아요 0 | URL
CREBBP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 만병통치약 님이 계실때부터 읽은 책들이 많이 겹쳐왔었죠~^^
그때 치약님(님이 그렇게 부르셨는데 되게 신선했어요~^^)께서 님을 추천해주셔서 님을 알게 되었는 걸요.
김중혁 님의 사과 사랑은 바디무빙 때부터 익히 알아와서 새로울 것이 없어요.
폰도 그렇고 패드도 그렇고,
전 번거롭기만 하던데,
대체로 남자들이 애정하더라구요~^^

북극곰 2018-02-02 09:49   좋아요 0 | URL
요즘 나무꾼 님의 글은 더 따뜻하고, 쉽고... 물흐르듯 술술 읽히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도 뭐든 힘이 빡.... 아니면, 그냥 낙서인데.
오랜시간의 독서내공으로 원래의 재능이 다져지신 거 아닌가 싶어요.
알라딘 들어오면 시간을 넘 뺐겨서 많이는 못 읽지만, 늘 계셔서 정말 좋아요~!! ^---^

양철나무꾼 2018-02-02 11:00   좋아요 0 | URL
좋다고 해주셔서 정말 좋습니다.
산삼 먹은 것보다 더 기분 좋아지는 칭찬이예요.

저도 예전엔 잘 읽고, 잘 쓰고... 다 잘 하고 싶었는데,
그 ‘다 잘 하자‘는 생각을 버리니까,
편해지고,
읽고 쓰기가 수월해 지더라구요~^^
 
정재훈의 식탐(食探)
정재훈 지음 / 컬처그라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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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나 식재료, 음식문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을 읽을라치면 이러한 문제들을 논쟁적으로 끌고가버려 맥이 빠지고 빈정이 상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논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취향의 문제라는 말로 잠재울 수 없는 음식이나 식재료, 음식문화에 대해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명확히 한다.

약사라는 그의 직업에서 파생된 과학적 근거와 논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예 같다.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은 많이 읽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것이 맛깔스럽기론 1등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개인의 감각이나 입맛, 기호 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관습이나 습관을 걷어냈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통찰을,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과 식재료 들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상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없었다.

'악법도 법이다'하고 독배를 들었던 소크라테스의 심정으로,

그냥 오늘을 살기 위하여 그냥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는 음식의 주도권을 내가 쥐어야지,

언론이나 여론에 맡길 일은 아니다, 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걸 <먹거리X파일> 같은 TV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너무도 자주, 맛과 취향의 문제를 건강과 생존의 문제처럼 왜곡시킨다(13쪽), 고 했는데,

나도 여기에 강하게 동의한다.

 

그러면서 <수요미식회>와 <3대천황>을 예로 들면서 '좋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는게 후각과 미각으로 맛을 평가해야 하지만,

실제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렇게 맥락이 단절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공간, 인간이 음식과 어울려서 만들어낸 총체적인 경험이라고 얘기한다.

 

'생각과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결과는 종종 파괴적이다(17쪽)' 라는 말은 완전 멋졌다.

 

글이 얼마나 맛깔스러우냐 하면,

올리브가 하늘을 나는 새들을 위한 과일이라고 하면서,

여기서 튀김 요리로 넘어간다.

튀김은 축제나 특별한 날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꼭지의 글을 이렇게 끝낸다.

축제는 가끔 한 번씩 있어야 즐겁다. 그래도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다면 기억하시라. 먹기만 해서는 하늘을 날 수 없다.(34쪽)

이 얼마나 근사한, 다른 맛을 한꺼번에 잠재우는 깔끔함인가 말이다.

 

가장 수긍이 갔었던 것은,

누군가 새롭고 특이한 이론을 들고 나오면 미디어는 마치 증명된 사실인양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론이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 과학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46쪽)

 

보통 음식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건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어떤 한가지 감각만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공감각을 요구하는 복합적인 행위여서 그럴 것인데,

이 책에선 그냥 심정적이고 느낌적인 것 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사람보다 음식 선택이 덜 자유로우며, 평생 조제식을 먹고 사는 애완동물들의 수명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시리얼이 건강에 유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ㆍㆍㆍㆍㆍㆍ사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오랫동안 먹을거리를 얻는 게 대단히 불안정한 환경에서 버텨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의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맞다.(156쪽)

 

 사실 건강에 필요한 음식의 기준이 복잡하고 어려워야 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면 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최소한의 조건이 반드시 무설탕, 유기농, 천연 식품인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옷, 최소한의 집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영양 균형을 맞춘 음식이면 충분하다. 다만 그 최소한의 조건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논할 수는 없다. 우유에 말아 먹는 시리얼은 애초부터 맛보다 영양을 우선시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식품이다.(156~157쪽)

 

여러가지 음식과 재료, 조리법, 음식 문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걸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쯤될 것 같다.

잡식동물인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버터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버터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버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음식은 골고루 먹으라는 교훈일 것이다.(48쪽)

 

이렇게 깔끔한 책도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니라, 화면에 글이 차지하는 방식이 성글다.

여백이 과하다.

또 한가지 어떤 의도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종이를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두께는 그만그만한데, 220쪽 내외다.)

감수성 충만하면서도, 논리로도 무장한 그의 글이 더 보고싶었던 나로서는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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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하루 -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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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폭설과 추위는 그에 비하면 애교인것 같다.

며칠전 사하라 사막에 40센티가 넘는 눈이 쌓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어딘가는 영하 40도가 넘어가고,

호주의 어딘가는 영상 47도에 이르러 야외불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런 기상이변 중 날이 가물었을때 기우제를 지낸다는 들어봤는데,

조선시대에는 날이 가물면 궁녀를 내보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결혼하지 못한 여인의 한이 하늘에 닿아 날이 가물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원통한 마음을 풀어줘야만 가뭄이 해소된다고 믿었던 것이다.(151쪽)

 

이 책은 흥미롭게, 다른 한편으론 아프게 읽었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궁녀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흥미를 가지고 다가갔는데,

평범한 궁녀들의 이야기로 일반화시키기는 힘들갓 같다.

평범한 궁녀들의 이야기는 기록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책에는 역사에 획을 그은 궁녀들의 이야기인데,

그런 궁녀들의 얘기는 다른 책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서도 접했던 터라 새롭지는 않았다.

 

이 책이 혹여 포장만 번지르르한 출판 상품이 되거나 기존 연구서들의 내용을 답습하는 박제된 화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슴 한편에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궁녀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것은 감히 말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임을 자부한다.(7쪽)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기획의도는 높이 살만하지만, 내용 또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랜 세월 우리네 삶 속에 배어있는 구태의연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궁녀들의 지난한 삶이 눈물겨웠는데,

궁녀들이 궁에 들어가는 나이는 보통 10세 전후였지만,

개화기에 더 낮아졌고 개중에는 4, 5세 궁녀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설들이 분분했던 부분도 다소 해소되었다.

그 중 하나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최하위급 궁녀인 무수리로 알고 있었는데,

침방처소 나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영조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대화를 고종이 들은 것을 인용한다.

또 하나,

역사서에 따라서는 자살로 얘기되어지는 장희빈의 죽음을 사약을 받아 죽었다고 리얼하게 그려놓는다.

 

궁에서 평생을 지낸다고 알고 있었던 궁녀가 궁에서 방출되는 예가 있었는데,

앞에서 얘기했던 날이 가물었을 때 외에도,

중병에 걸려 더 이상 궁녀로서 업무수행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

자신이 모시던 상전이 죽었을 경우,

늙어서 더 이상 궁녀로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

이는 왕족 외에는 궁에서 죽을 수 없다는 엄격한 법 때문에 그리 되었단다.

 

궁녀가 퇴직하고 살았다는 '궁말'은 지금 은평구 갈현2동 수국사 인근이란다.

내가 사는 옆동네여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녀의 지난한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결혼하지 못한 여자의 한이 하늘에 닿아 날이 가물다고 했던 것을 보면,

진위 여부를 떠나 궁녀들의 삶이 한이 맺힐 정도 였다는 것이 보편적인 통설인 셈이다.

 

궁녀도 그렇고, 신하도 그렇고, 그 누구든지 간에,

공인으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거기에다 자기애, 자아존중감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책 날개 안쪽을 보게 되면,

이 책에서 저자는 왕조사의 그늘에 가려진 궁녀들의 생애를 하루의 코드를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하면서 과연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묻는다.

고 되어있다.

 

요즘 최저임금 보장제로 인하여 임금이 보장되는게 아니라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관련하여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그리하여 참 많은 것들이 꿀꿀한 하루하루다.

 

<바로잡을 곳>

궁녀들 자신이 입는 남치마와 옷색 저고리=> 옥색 저고리(103쪽)

이모가 궁중에 들어가자 이씨도 따라 궁에 들어왔다.=>들어갔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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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5 14:48   좋아요 1 | URL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었던 중세 여성들은 한 방에 모여 바느질을 하고,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해요.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분출되는데, 그 과정에서 중세 여성들의 애환이 반영된 ‘노래’가 만들어졌어요. 아마도 궁녀들도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입니다. 궁녀 중에 노래를 만드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들끼리 부르는 노래가 만들어졌을 거예요. 확실하지 않지만, 궁녀들끼리 부르고 유행한 노래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만약 발견된다면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8-01-16 10:05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뒷부분에 가면 박상궁이라고,
실세의 상궁이 금강산 유람가는것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뭐, 하인이나 시종들(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리~--;)을 데리고 가는건 그렇다 치고,
기생들을 그 유람단에 끼워넣어요.
좋은 풍경을 구경하는데 남녀노소가 어디 있겠나 싶다가도,
기생들까지 데리고 유람이라니,
양반들의 못된 행태를 답습하는 건가 싶어 씁쓸하더라구요.
암튼 금강산 절경을 보고 시도 읊고 그래요.
이 책에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까지는 안 나오고,
전기수 얘기랑 소설 필사에 관한 얘기는 등장해요~^^

2018-01-1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6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5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16 10:12   좋아요 1 | URL
뭐, 이 책에는 사극에 나오는 수준이예요.
사극에 나오는 수준이 상상력의 최대 비약인듯 해요.
더 드라마틱한 얘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궁궐 권력의 줄서기도 그렇지만,
제가 더 우스웠던 것은,
양반 님네처럼 유람도 다니고,
거기서 음주가무도 즐기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하는 상황이었어요.

전 양반 집 아녀자들이 유람을 다녔다는 얘기도,
(절에 불공드리러 가는 것 외에)
야외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도 접한 적이 없는지라,
궁녀들이 그랬다는 것이(일부 궁녀겠지만) 좀 생소했어요~--;
 
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경외과 의사의 자전적 기록이라는 이 책은 의학서라기보다는 수필집에 가깝다.

그만큼 그가 행했던 의료행위의 나열이라기보다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 사이에서의 방황의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읽는 동안 치료가 아니라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걸음 떨어져서 이 책을 읽게 되니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의료현실을 접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영국의 의료보험 제도의 단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건 또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은 의료보험제도가 발달되어,

그 비용을 세금에서 충당하기때문에 의료보험료도 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간단한 질병 뿐만 아니라,

암이나 수술 따위도 따로 돈을 내지 않는다.

 

물론 민간보험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따로 있지만,

그런 병원은 개인이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듯 하고,

책 속의 헨리 마시도 따로 보험을 들었고,

개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속전속결로 치료를 받는다.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은 융통성 없고 고지식할 뿐더러 무엇보다 느리게 굴러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수술 후 예후가 비관적이더라도,

때로 깨어나지 못 하고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는데,

수술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환자분이 평생 불구가 된다고 해도 정성스레 보살필 만큼 사랑하시나요?"

이 말은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 우리는 결국 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하고 끝내는 편이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고통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긴 설명 끝에 나는 당직 레지던트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는 환자가 살아서 병원을 떠나니까 수술이 성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몇 년 뒤 환자가 사는 모습을 보면 그 수술은 사람이 일부러 만든 재앙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ㆍㆍㆍㆍㆍㆍ

하지만 내가 경험을 통해 수술의 한계를 더 현실적으로 가늠하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니다.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면 과연 수술로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 그 환자를 위한 길인지 의문이 점점 커진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살 바에는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측하는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신경을 덜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후란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에 무사히 회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의사로서 일을 쉽게 하려면 그냥 모든 환자를 수술해버리면 된다. 이를 통해 많은 환자들에게 끔찍한 뇌 손상이 생길 수 있고 그 환자들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다.(173~175쪽)

 

위 문단을 읽으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살짝 비껴가는 부분을 담고 있는 예가 될텐데,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다가 하게 되는 치명적 실수와 관해서 말이다.

의사도 이전에 사람인데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수술은 잘 되어도, 후유나 장해가 남게 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수술이 잘 될 가능성이 없는데도,

환자가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못하고 수술을 원할 경우 등에 관해서 말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 뿐만 아니라,

의사의 입장에서 흠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무시무시한 결과와 함께 사는 법(9쪽)을 배우지 않는다면,

깊은 보람은 커녕 본인의 삶도 받아들이기 힘들테니까 말이다.

이때 배워야 할 것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법이 아닐까.

 

가장 공감이 가고 아프게 와닿았던 부분은 그의 의대 면접과 관련해서이다.

어쨌든 그는 제물낚시를 즐기느냐고 물었고 나는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의학을 두고 예술도 과학도 아닌 기능의 한 형태로 보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른뒤엔 나도 똑같이 생각하게 된 말이다.(110쪽)

의학이 예술도 과학도 아닌 기능의 한 형태로 보는 게 최선인 이유는,

인간만이 우월하다던가, 어떤 특별한 누군가가 우월하다는 생각해서 벗어나,

세상을 객관성을 갖고 바라보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때로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는 착각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이롭지 않게(= 해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는 요즘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그는 환자의 최선만을 생각하기에 의미 없다고 판단한 치료를 과감히 포기한 적도 있지만,

환자의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서라면 가망없는 수술도 감행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운 게 있다면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가능한 한 적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무척이나 느리고 아프기 때문에 어색하고 슬픈 정적이 필연적인데 이를 채우려고 무슨 말이든 하려는 충동은 최대한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눈길에 더 이상 입을 꾹 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렵게 입을 뗀 나는 만일 내 가족이라면 더 이상 치료 받지 않기를 바랄 거라고 말한 뒤,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실토했다.

"꽤 여러 해를 버텨왔는데ㆍㆍㆍㆍㆍㆍ.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난 것 같아요."(214쪽)

이런 구절만으로도 헨리 마시의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겠고,

어떤 직업이라도,

남들이 봤을 때 아무리 멋져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직업이라도,

나름 직업적 애환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이기도 한 '참 괜찮은 죽음'은 헨리 마시의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암세포의 침공을 받아 무너져가는 몸 안에는 '어머니의 자아'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모든 뇌세포는 죽었다. 그리고 어머니 - 어떤 의미에서눈 뉴런 수백만 개의 복잡한 전기화학적 상호작용이었던 -도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두고 '결합 문제'라고 부른다. 무생물에 지나지 않는 껍데기가 의식과 느낌을 알 수 있다는 신비롭고 굉장한 사실 말이다. 나도 그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아무리 죽어가고 있어도 그 몸뚱이 속에는 아직도 '진짜 어머니'가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괜찮은 죽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물론 고통이 없어야겠지만 죽음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처럼 나도 온갖 형태의 죽음을 봐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신 건 정말이지 커다란 복이었다.ㆍㆍㆍㆍㆍㆍ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274~275쪽)

죽음을 놓고 얘기할때,

'참 괜찮은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이든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스스로 예비하고 준비하는 죽음이 그러하고,

오래 아프지 않고 자는 듯 돌아가시는 걸,

그리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ㆍㆍㆍㆍㆍㆍ나는 '실제적'통증과 '심리적' 통증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통증은 어차피 뇌 안에서 만들어진다. 내 혼자들 중 상당수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은 모종의 심리 치료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분주한 외과의 외래 진료실에서 해 줄 처지가 못 된다.(370쪽)

헨리 마시가 멋진 건 이런 것에도 자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뷰의 처음에서 난 치료가 아니라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바꾸어야 할듯 하다.

어떤 때는 위로가 가장 큰 치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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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03 16:25   좋아요 1 | URL
프필의 자화상 양철나무님이 그린 건가요 ? 좋은데요. 그림이..

양철나무꾼 2018-01-04 16:37   좋아요 0 | URL
네, 새해 맞이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함 바꿔봤습니다.
님이 좋다고 해주셔서 저도 좋습니다.
참고로 님의 출중한 그림 솜씨는 전에 언젠가 연필 자화상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습죠~^^

책읽는나무 2018-01-03 17:06   좋아요 1 | URL
위로가 가장 큰 치료가 된다는 그말씀!!
맞는 말입니다.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치료일 수도 있지만,어떤 때는 의사가 직접 해주는 위로가 더 큰 안정과 위로를 주는 것같더라구요.
환자들은 또 극한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듣고 싶어지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도 같구요^^
요즘 저도 나이를 먹는건지 부쩍 삶과 죽음에 관한 책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두려워 죽음에 관한 책들은 넘기진 못하구요.ㅜ

모쪼록 올 한 해,
나무꾼님의 가정 늘 화목하시고,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1-04 16:41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힘이 되네요.
저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부러운 것이,
환자와 의사간의 유대감 형성과 신뢰에 관한 부분이예요.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의사가 환자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는거,
좀 멋지잖아요?^^
만약 우리나라 의사 보고 환자랑 대화를 나누라고 한다면,
무사히 잘 끝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올 한해도, 좋고 재미난 책 같이 읽으면서 지내요~^^

AgalmA 2018-01-03 18:54   좋아요 0 | URL
서로를 배려하는 인내심 잃지 않으시고ㅎ;; 좋은 친구가 되어 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 노력이 또 삶을 값지게 만드는 건지도요.
올해도 양철나무꾼님이 뜻있고 즐거운 독서 순항하시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웃는 여유 잃지 않는 건강도 잘 챙기시길 바라며...총총.

양철나무꾼 2018-01-04 16:45   좋아요 1 | URL
좋은 친구라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록 온라인 상에서의 친구이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듯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도 좋은 책들 읽으며 여러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03 18:5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양철나무꾼 2018-01-04 16: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지난 한해 겨울호랑이 님 덕에 행복했는데, 인사가 한발 늦었네요.
님도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는 한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8-01-03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18-01-03 22:35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양철나무꾼 2018-01-04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 님도 복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카스피 2018-01-04 21:0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며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양철나무꾼 2018-01-06 10: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카스피 님의 요번 컴은 말썽부리지 않아서,
좋은 글들로 자주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8-01-11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2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