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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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내가 옛날에 쓴 글들을 돌이켜보았다.

이곳 서재에서 활동을 한게 2010년 5월11일부터이니까 햇수론 9년, 꽉찬 8년이다.

그때 쓴 글들을 읽다보니 뭐랄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럴 것 같진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이 책을 켄폴릿이 썼을 때가 지금부터 40년 전인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때였다고 한다.

어떻게 나이 스물일곱 살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출간 40주년 기념 서문'에서 그는 폴 매카트니를 인용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초기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곡들에 귀기울이면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영리한 녀석."(9쪽)

 

비틀스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보기엔 켄 폴릿도 천재인것 같다.

하지만 천재이기만 했다면 난 켄폴릿을 가지고 설레발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쓰는 경험은 꼭 비탈길을 달려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제 소설 한 편을 쓰려면 삼 년이 걸린다. '바늘구멍'은 삼 주 만에 거의 모든 것을 썼다.(11쪽)

4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쓴다는 것,

그 당시 삼 주만에 소설 한편을 썼었는데,

이젠 삼 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쓴다는게 내가 설레발을 치는 첫번째 요인이고,

또 하나는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게 또 하나의 요인이다.

 

나 자신이나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을 봐도 그렇고,

충전 없이 소진만 하는 것 같다.

천재로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계발이나 노력으로 천재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민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신의 건강, 심신의 균형잡힌 건강이 아닐까 싶다.

 

켄폴릿은 '대지의 기둥' 때도 그랬고, '20세기 3부작'때도 그랬고,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여성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남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캐릭터를 잘 그려내고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는 힘이 뛰어난 것 같다.

배경이 중세도 있었고, 20세기도 있었고, 먼 나라 영국의 일이고 하니,

나같은 독자는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법도한데 흠뻑 빠져들었다.

 

이 책에선 여성 영웅을 등장시키면서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문학적인 이유에서라고 하지만,

영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테고,

우리같은 입장에선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애기 아닐까 싶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을 내세워서 정치색을 흐려지게 하려는 고도의 트릭으로도 읽혔다, 내겐.

 

나는 켄폴릿이 다 좋지만,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아주 맘에 든다.

페이버 씨는 과묵한 남자였다-그것이 곤란한 점이었다. 그는 악행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술냄새를 풍긴 적도 없고, 매일 저녁 자기 방에만 머무르며 라디오로 클래식을 들었다. 그는 신문을 많이 읽었고 산책을 오래 했다. 직업은 변변치 않지만, 그녀는 그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리라 짐작했다. 식사할 때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어봐도 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깊었다. 노력하면 틀림없이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마땅히 누릴 만한데도 그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25쪽)

 

고들리먼의 속마음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게임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역시 그를 침울하게 했다.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요소도 있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 영리함 자체의 가치, 세심함, 추측. 그러나 협박, 속임수, 필사적인 노력, 언제나 적의 등을 찌르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41쪽)

 

블로그스의 이런 속마음도 완전 맘에 든다.

"그럼 상실이 사람에게 증오를 안긴다는 걸 알겠군요."

"네." 블로그스가 말했다. "상실은 증오를 안기지요."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뒤쪽에서 문이 닫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ㆍㆍㆍㆍㆍㆍ

두려움 없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불렸다. 그렇지만 블로그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두렵지만 애써 감춘다는 것을. 그가 일어나고 그녀가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아침이면, 그녀의 방어막이 걷히고 다만 몇 시간이라도 쉴 수 있을 때면 그는 그녀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었다. 그것이 두려움 없음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134~135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다른 애기는 조심하겠지만,

루시에게 엄마가 하는 이런 말은 옮겨도 좋을 것 같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떠들어선 안돼. 하지만 내 인생은 견뎌내느냐 마느냐였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가 그렇게 살았다. 변함없이 자리('자리'가 중복된것 같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희생처럼 취급되기 일쑤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어쨌든 난 너한테 조언을 하진 않겠다.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설사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가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릴 테니까."

현명한 엄마 밑에 현명한 딸이 있다.

 

켄더베리대성당에 대한 깊이있는 언급은 훗날 '대지의 기둥'이 탄생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것을 고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좋았다.

 

천천히 아껴 읽으려고 했는데, 내처 읽었다.

파격적이고 야한 내용이 한 번씩 등장하는 것도 켄폴릿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 수 있겠다.

적재적소에 우리말을 잘 살려쓰시는, 깔끔하고 맛깔나는 번역도 한몫하는 것 같다.

역자가 김이선 님이다.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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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6-30 12:07   좋아요 1 | URL
인용한 문구들도 맘에 들고
그걸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시는 양철나무꾼님 해설도 부럽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16   좋아요 1 | URL
‘해설‘이라고 표현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헤에~^^
켄폴릿은 제가 완전 좋아하는 작가라서 어느 부분을 들이대도 설레발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아이즈 님의 소설 또한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그냥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
전 님의 소설들이 ‘완죤‘히 좋지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30 12:24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리뷰를 맛있게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42   좋아요 1 | URL
맛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 책 뿐 아니고 켄폴릿의 책은 다 강추합니다.
좀 길다는게 단점이 될수도 있지만,
완전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감정 이입하며 읽기 좋습니다~^^

2018-06-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3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6-30 20:11   좋아요 1 | URL
진짜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한 권에 네 권의 소설인가가 축약
되서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로 켄
폴릿의 <바늘구멍>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오래 전이었는데...
이제 제 모습으로 다시 나왔나 보네요.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한 영화도 있다고
하던데 보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8-07-02 09:0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님의 100자평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땡스 투를 누르고 싶었지만,
비구매자 100자평엔 땡스투를 못하게 되어있더라구요~--;

역시 켄폴릿이지 싶었습니다.
저도 영화는 아직입니다.
영화에선 소설에서 공들여 묘사한 캐릭터들이 또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좋은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꾸벅~(__)

cyrus 2018-07-01 14:02   좋아요 1 | URL
저는 2010년 5월 8일에 블로그에 첫 번째 글을 등록했어요. 옛날에 쓴 글을 읽는 것은 어린 시절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8-07-02 09:08   좋아요 0 | URL
님과 저는 학교로 따지면 동기동창이네요.
그래서 그런가 전 이상하게 님이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모든 단체나 모둠이 그렇지만, 그때 활동하셨던 분들 중 몇몇 분들은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이곳에서도 맛보게 될 줄이야.
요즘은 야무 님이 궁금하네요~--;
 
산림청장의 귀촌 일기
조연환 지음 / 뜨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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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준환 님의 '다시, 나무를 보다'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문장이 아무리 화려하고 수려하고,

온 우주나 생명, 삶 자체를 담고 있다고 하여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이 못 미치면 버거울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때문인지, 이런 책을 만나면 좀 망설이게 된다.

 

신준환 님을 떠올린 이유는,

두 분 다 산림청장 출신이다.(지금은 국립수목원.)

조연환 님이 먼저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25대 산림청 청장을 한 것으로 되어 있고,

신준환님은 국립수목원 원장직에서 2014년 물러난 것으로 되어있다.

 

신준환 님의 그것이 좀 학술적인 것도 같고 철학적인 것도 같고 그랬다면,

조연환 님의 이 책은 제목처럼 '일기'에 가깝다.

그래서 가볍게 접근하고 다가갈 수 있겠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유용할 여러가지 정보들도 제공하고,

저자 자신이 산촌에 살고 있으니 그 즐거움에 대해서 수더분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4장의 '행복한 귀촌 설계'는 귀촌을 결심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따지고 볼 것들을 모아두어 따로 읽어볼만하다.

 

이 책을 찬찬히 읽다가 이 분의 귀촌은 아내 분의 내조와 바람으로 성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귀촌까지는 아니고 전원생활을 꿈꾸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시골 종갓집 장손인 남편이,

그래서 문중 땅을 다량 가지고 있는 남편이,

고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귀촌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삶이 팍팍할때면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여러 개 나열해 놓고 혼자 저울질을 해볼 뿐이다.

 

이 책의 저자 조연환 님은,

산림청장 출신이 시골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건축 디자인부터 정원 설계까지 치밀하게 계획하여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았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당신은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왔다. 사실 귀촌을 하는 데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서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면 된다.(6쪽)

고 하신다.

그런데 현실이 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시인일기'를 쓰신 박용하 님의 경우 시골 텃세가 심해 이사까지 불사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텃세라는건 시골에서뿐만이 아니라 똥개들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것이니,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자신이 먼저 맞춰가도록 노력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참깨농사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참깨를 벨 때 아내는 참깨 대궁을 짧게 베라고 이른다. 나는 길게 벤다. 참깨는 아내 몫이지만 대궁은 내 차지이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 모닥불을 피워놓고 참깨대궁을 태워보라. "참깨 참깨'하며 타오르는 불꽃, 온 사방에 번지는 고소한 냄새, 화려하게 퍼지는 장관, 화끈하게 타는 그 정열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올해도 나는 참깨 대궁을 길게 자른다.(72쪽)

이런 소박하고 슴슴한 문장이 좋다.

 

이런 구절도 좋았다.

참나무는 쓸모가 없다면서 잡목으로 치부한다. 아까시나무는 일본 사람이 우리 땅을 망치려고 심은 건데, 그것도 모르고 아직까지 아까시나무가 온 산을 다 덮고 있는데도 뽑아버리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린다. 낙엽송은 예전에 전봇대로 썼는데 요즘은 콘크리트 전봇대를 쓰니까 쓸모가 없다고도 한다. 틀린 말이다.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 나무마다 쓰임새가 다를 뿐이다.(109쪽)

 

조연환 님은 이쁜 꽃들도 좋아하시나 보다.

동백이나 노각나무도 그렇고, 작약이랑 목련도 자주 언급된다.

 

어쩌면 몸을 움직이기 위해 산촌에 사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머리를 싸매가며 일하는 정신노동자들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노동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다.

 국장, 차장, 청장 재직 시절에 때때로 숨쉬기조차 힘들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업무 때문에 지쳐 있다가 금산에 오면 우선 가슴이 확 트였다. 공기 맛이 그리 달콤할 수 없다. 보이는 게 모두 아름답다. 삽과 괭이를 들고 밭으로 간다. 굳은 땅을 삽으로 파고 괭이로 고르고 유기질 비료를 주고 비닐을 씌우면 한나절이 쉬이 지나간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정신은 맑고 상쾌해진다. 몸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땀으로 다 배출되는 것만 같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밭에 나가 괭이질을 할 일이다. 몸을 움직여야 머리가 맑아진다. 몸을 움직이기 싫다면 산촌에 내려올 필요가 없다.(158쪽)

나는 하는 일이 몸을 좀 움직여야 해서 내가 정신노동자인지 육체노동자인지를 놓고 고민할때가 있다.

몸을 움직이니 육체노동자이지만,

환자를 상대해야 되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내가 육체와 정신, 어느 쪽을 쉬면서 힐링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몸을 움직여도 머리를 쉴때이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좀 게으른 편이다.

책을 읽을때 가장 편안하고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읽는다는 행위는 육체와 정신, 양쪽을 아우르는 만병 통치약인가 보다.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애기하고 있다.

산에 나무를 심으면 심은 사람에게는 돈이 되지 않지만 그 나무가 자라면서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혜택을 베풀어준다, 그러기에 산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야말로 애국자라 할 수 있는데, 정부도 국민들도 나무 심는 이들의 공덕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가슴 아팠다.(195쪽)

 

옛날에, 나 어릴적 학교에선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라고 배웠는데, 이 책에선 64퍼센트(228쪽)라고 한다.

산을 논이나 밭으로 개간해서 그런 것일까?

 

산에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과 닮았다.

하루 아침에 성과를 볼 수 있는게 아니라, 꾸준히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당장 귀촌하여 나무를 심을 순 없겠지만,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베어넘겨지는 나무에게 경의를 표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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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19:34   좋아요 1 | URL
저도 산이 전 국토의 70%라고 배웠습니다. ㅎㅎ
매일매일 자연이 그리워지니 이런 책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8-06-28 10:00   좋아요 0 | URL
산이 개간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바다가 간척사업으로 땅에 편이뵈어 그런건지, 궁금하긴 합니다.ㅎ

매일 아파트에 갇혀 지내나 보니 자연이 그리워지긴 합니다.
근데 자연으로 가게 된다고 해도,
벌레도 무섭고(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전 광적으로 벌레를 싫어합니다~--;),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좀 있습니다.

가끔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 보면서 감정이입을 해보곤 합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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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 혹해서 사게 되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했다고나 할까.

책의 띠지를 보면,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책의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했다는건 뭘 얘기하냐면,

나 또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였으나,

먹고나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고로,

이젠 먹고 싶으나 두려움으로 잘 못먹는 음식이 되겠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울때는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하지만,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느냐 잊어버리고,

또 다시 떡볶이를 먹기 위하여 바람을 잡는다.

 

이 책은 내겐 좀 가벼웠다.

내용이 별로라거나 가벼웠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내 나이 또래에서 이 책의 지은이 같은 고민을 한다는게 좀 배부른 고민처럼 여겨진다는 거다.

나보다는 아랫세대에게 잘 맞겠다.

 

선생님 

영화를 보면 꼭 의미를 찾아내야 할까요? 내가 좋아썬 부분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나는 재미 없었는데 타인은 좋았을 수도 있잖아요. 모든 것을 너무 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정에 중점을 두는 거죠. '아무렴 뭐 어때'라는 생각이 중요해요.(45쪽)

 

선생님

부러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겠죠?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부러워하는 것과 자신을 계속 비교하고 비하하는 건 다른 거죠. 지금은 동경하는 정도로 느껴지고, 심해보이지는 않아요.(55쪽)

 

선생님

ㆍㆍㆍㆍㆍㆍ그런데 그렇게 해서 '행복했다'라는 기억이 남았다면, 그 부분이 편한 거죠. 나를 편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는 건 중요해요.(74쪽)

 

선생님

너무 강박적으로 이상화된 잣대를 계속 가져와서,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거죠. 자신을 벌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82쪽)

 

이 책의 앞부분에는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우울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는 지은이의 상담내용이 녹취록의 형태로, 뒤에는 문창과 출신이라는 저력을 살려 가벼운 단상들이 실려있다.

 

떡볶이를 먹는 그 순간에는 나중에 속이 쓰려서 배를 부여잡고 뒹굴게 될 줄은 까맣게 잊게 된다.

그렇듯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다가가지 않는다면 젊음이 아니다.

상처는 옹이를 남기고 단단해지지만 우리는 그걸 흉터라는 이름 대신 훈장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남우세스러워서 안아주지는 못할 것 같고,

어깨를 아무렇지않게 툭 치며 술 한잔을 권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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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22 18:19   좋아요 1 | URL
이 책 제목을 보고 저는, 매워서 나중에는 괴로워도 일단 떡볶이를 먹겠다,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페이퍼를 읽으니 그런 내용이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제가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렇게 보였나봐요.
맛있긴 하지만 너무 매워서 요즘 못 먹거든요.;;

양철나무꾼님, 기분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떡볶이 보다 더 맛있는 저녁도 드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6-23 09:34   좋아요 2 | URL
그러고보면 주변에 매운걸 좋아하고 매운걸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많지만,
의외로 매운걸 잘 못먹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대체음식으로 간장 떡볶이 어때요?
아님 감자를 크게 썰어넣은 짜장 떡볶이요.

저는오늘 날이 더울걸 대비해서 오이랑 토마토 적당하게 썰어 고명으로 얹은 콩국수요~^^

단발머리 2018-06-23 09:59   좋아요 2 | URL
일단 떡볶이라면~~~ 저희 집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자주 먹고 있어요.
국민 간식 아니고 우리집 간식으로요..... 사 먹기도 하고 만들어먹기도 합니다.
사실, 어제 저녁에도 먹었어요^^

양철나무꾼님의 ‘내겐 좀 가벼웠다˝ 이런 게 전 좋아요.
뭐랄까요.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솔직함이 필요한데 전 아직도 별로인 책에 대해 별로라고 잘 말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마지막 문단도 좋아요.

남우세스러워서 안아주지는 못할 것 같고,

어깨를 아무렇지않게 툭 치며 술 한잔을 권할 수는 있겠다.


키햐~~~~~~~~~~~~!!!

양철나무꾼 2018-06-23 10:20   좋아요 1 | URL
아침부터 단발머리 님께 칭찬받고 완전 기분이 업되어 트렘폴린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입니다.
사실 저도 ‘별로‘여도 ‘별로‘라고 잘 못하는 편이어서,
별 셋 미만은 페이퍼로 돌려버리기도 하고 그래요~^^

이 책은 내용이나 기획의도 이딴 게 별로였던게 아니라,
이 처자가 힘들어하는 그 부분이,
제 나이에 이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부질없는 것이 되더라 하는 그런 소심한(?) 제 의사표현이었습니다.

저희집은 남편도, 아들도 별로라 하고 저 혼자만 좋아해서 만들어 먹지는 잘 않습니다.
(제가 은근 손이 커서 1인분을 해도 하다보면 한솥이 되는지라~--;)
저희 동네엔 수요미식회에 나왔던 소문난 떡볶이집이 있어서 거길 애용한답니다.(속닥~^^)

AgalmA 2018-06-24 13:58   좋아요 1 | URL
죽고 싶지만 울고 싶지만... 대신 다른 걸 하는 게 많죠.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그럴 때 많고요. 맛있는 걸 먹는 것도 그런 대용일텐데 굳이 떡볶이인 게 더 짠함.

양철나무꾼 2018-06-25 09:14   좋아요 0 | URL
저는 오히려 떡볶이라서 이 책을 사 읽었어요~^^

이 친구 홈페이지를 가봤는데 얼굴도 완전 예쁘고, 분위기 있는 맛집도 찾아다니고,
떡볶이만 먹고 살지는 않더라구요, 적어도.
암튼 마음 속의 우울한 기조를 이렇게 책이란 예술로 승화시키는게 멋져보였어요~^^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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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책의 역자가 정영목 님이라고 하면 무조건 사들이고 봤으니 제법 읽었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꽤 돼도,

읽은 것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건 취향에 문제인 것도 같다.

내가 정영목 님을 번역가로 알고 있으니 책에 관한 걸로만 생각했었고,

정작 정영목 님은 음악으로, 영화로, 분야를 확장시켜 나가시니,

님이 번역하신 책 몇 권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안다고. 그를 좋아한다고 설레발 칠 일도 아니지 싶다. 

거기다가 이 책에선 님이 번역하신 책 뿐만 아니라 읽으신 책들에 대해서도 소신을 엿볼 수 있었고,

그러고 나서 바라보니 이 분을 '번역가 정영목' 님이라는 테두리에 가두기에는 좀 큰 분이란 생각이 든다.

 

보통 번역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당신 나름대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양의 균형이 아니라. 나 지신의 어떤 균형, 을 염두에 두고 소설만이 아니라 인문학 등 소설 외의 책들도 번역해 왔다(6쪽)고 하신다.

 

한군데 모아놓고 보니,

필립로스는 이제 시작이고 주제 사라마구는 좀 읽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정영목 님이 번역하셨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고,

존 업다이크는 읽어보지도 못했고 가지고 있는 책도 없다.

이창래 같은 경우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왠지 정이 가지 않았는데,

정영목 님도 그 부분을 언급하신다.

'소설의 서사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개성적이고 우아하며 유려한 문체로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가,

설익은 희망적 메시지 대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오는 극복의 에너지에 집중해 왔다'고 하니 한번 시도해 봐야 겠다.

 

알랭드 보통은 젊은 시절의 치기가 좀 맘에 안들었는데,

정영목 님의 말씀으로는 나이가 들면서 보통다움을 회복하고 일상의 철학자로 거듭났다고 하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 외에도 오스카 외일드, 존 밴빌. 코맥 매카시, 윌리엄 트레버, 커트 보니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이 있는데,

윌리엄 트레버는 요즘 내가 흥미를 갖게된 작가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필립 로스라고 하면 유대인과 미국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가 번역한 책 속에서는, 역자후기를 통하여서도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던 일을 배경으로 하였음을,

사람이 삶을 견뎌내는 방식을 중요시 하였음을, 명확히 집어내고 있다.

 

존 업다이크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도 흥미로웠다.

 

번역이야 물론 훌륭하니 말할 것도 없고 이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제 사라마구'에 대한 이런 코멘트를 보고나서 였다.

 

헤밍웨이 편에서 이런 구절을 보고는 헤밍웨이 단편집을 당장 사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마치 묵언 수행 과정을 묘사한 듯한 이 단편에서 걷기와 낚시는 남성성의 과시가 아니라 치유의 과정이 되며, 자연은 대상의 수준에서 벗어나 인물과 일체를 이룬다. 아마도 헤밍웨이는 늘 이런 상태가 그리웠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것이 지난했을 뿐(61쪽)

완전 멋진 문체다.

그동안 번역한 저자를 앞에 드러내느라고,

역자의 문체는 묻혀있어서 몰랐었다.

 

존 밴빌의 '바다'같은 경우는 언젠가 책을 읽고 리뷰(==>링크)를 쓸때도 밝혔지만,

정영목 님의 번역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좋다고 상찬하는데(역자 정영목 님까지도),

실상 나는 공감하기 좀 힘든 상황이었고,

그건 역자의 해석을 보고난 지금도 그렇다.

 

그동안 번역가 정영목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었다면,

'번역가인' 정영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소신을 가지고, 이런 취미생활을 하면서...자신을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번역가란 다른 작가의 삶을 번역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괜히 숙연해지고 경건해지는 것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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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8-06-21 16:29   좋아요 1 | URL
이 책 빨리 사서 봐야할텐데 읽고 있는 책들이 많아 자꾸만 밀리네요^^

양철나무꾼 2018-06-21 16:52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싶은 책 목록이 볼록해졌어요.
읽으시는 책 마저 읽으시고 차차 읽으셔도 마찬가지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안 읽은 정영목 님의 역서들을 읽은 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땐 또 다른 새로움으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CREBBP 2018-07-13 21:13   좋아요 1 | URL
아 정말 존 밴빌의 바다는 말씀하신 것 강하게 동의해요. 그 책에서 특히 번역은 예술임을 실감하게 되죠. 꼽아주신 책 작가를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번역이 좋아서라는 이유도 큰 몫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필립 로스는 제가 세계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만일 형편없는 번역서를 읽었다면 세계문학에 흥미 자체를 안가지게 되옸을 것 같아요. 특히 문학성 뛰어난 작가와 작품들은 장르 소설에 비해 번역의 비중이 크잖아요. 김화영님도 그렇고 절절하게 번역하시는 분들 많이 계신 것 같아요

2018-07-14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7-14 09:2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가만 생각해보니 <김화영님의 번역수첩>을 읽고 좋은 인상을 받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김화영님 덕분에좋아하게 되었거든요. 물론 원작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런 출판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 전 다른 수상작도 없던 시절부터 김화영님이 그 분을 발굴 소개하시는 안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번역 관련 책 관심 많으시다면 그 책도 미리보기 한 번 해보세요. 전 반쯤만 읽어서 리뷰도 못썼어요 ㅋ

양철나무꾼 2018-07-14 09:26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극곰 2018-07-18 14:54   좋아요 1 | URL
저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읽고 있는데 의외로? 너무 와닿는 말들이 많아서....
나무꾼님이 예전에 그 책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부러 찾아와 봤어요.
요 책도 완전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저도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볼록하게 만들고 싶어서~~~라나 뭐라나. ^^

근데 어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해 보이는 책을 두 권이나 내셨을까요?
<완전..>은 좀 더 번역에 관한 일반적인 접근이고, <소설이..>는 본인이 번역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많은가봐요??

양철나무꾼 2018-07-18 18:21   좋아요 0 | URL
북극곰 님, 연일 열대야예요.
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

‘완전한 번역...‘은 당신의 번역에 관한 노력과 소신을 밝혀놓으신 책이라면,
이 책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법‘은 당신이 번역하신 책의 번역 후기랄까, 당신 만의 독후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두 책 다 나름 괜찮았는데,
님의 말씀처럼 비슷한 책 두 권을 내처 읽으니,
그리고 내용들이 역자 후기에서 봤던 것들이 많다보니,
좀 많이 지루했습니다.
요 책은 한 템포 쉬셨다가 좀 천천히 읽으셔도 괜찮을 듯 해요~^^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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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장래희망이 번역가였다.

장래희망이라고 말을 하기엔 내 직업을 갖고 어느 정도 나이가 먹은 이후이고,

감히 번역가라고 갖추어 직업의 형태로 말하기 민망한 건,

나의 그것이 좀 치기어린 이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을 읽다가 보면,

(난 책을 좀 꼼꼼이 공부하듯 읽는 경향이 있는데,)

내용이 이어지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툴툴거릴 바에야 '내가 직접 번역을 해봐?'하고 기웃거렸지만,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님을 깨닫고,

일찌감치 그 꿈을 접었다.

(나이가 '일찌감치'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고 얼마 안있어 꿈을 접었다는 얘기다, ㅋ~.)

 

암튼 번역가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실력이나 능력과는 별개로 번역가는 구도자와는 맞먹는 수련과 정신세계가 필요한게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정영목 님의 올곧은 성실성에 대한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성실성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구도자의 경지를 느끼게 되었다.

 

정영목 님의 작품을 처음접한건 (내가 인식하기론) 주제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가 처음이었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없는 글들의 나열에 완전 당황하게 된다.

나는 우리말로 쓰여진 글을 읽는 것을 가지고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호흡을 조절하기 버거워했던걸 보면,

역자 정영목 님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원래 포루투갈어였으니, 영어로 번역된걸 다시 번역햇을테니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은 '책도둑'이다.

 

이제 정영목 님이 번역한 작품은 망설이지 않고 그냥 읽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번역가나 번역 참고서에 나왔던 얘기랑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

조근조근 그의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앞부분의 김혜리 기자와의 이런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의 번역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저는 기본적으로 번역가란 이방의 언어와 문화에 반한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요.

상상하셨던 번역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제 아랫세대를 만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나 제 윗세대가 외국문화에 대한 매혹을 번역가가 된 동기로 꼽는다면 전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것 같아요. 저희 세대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게 과연 정당하냐고 의문을 제기한 세대거든요. 영문과더러 제국주의학과라는 농담도 오가는 상황에서는 서구문화에 대한 매혹이 있다 해도 뒤틀려서 표현됐겠죠.(18쪽)

 

번역을 논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외국어도 잘 알아야 하지만 모국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던데요.

소설은 번역의 결과 자체가 소설로서 읽혀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모국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맞는 말인데, 문제는 그 능력이 어디서 오냐는 거죠. 예를 들어 글솜씨가 있으면 되느냐, 문장 구조가 정확하고 비문만 없으면 되느냐. 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우리말을 구사하는 법은 국어 실력뿐 아니라 번역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번역은 저자의 스타일을 향해 가려고 애쓰는 것이기에 문제는 내가 우리말을 잘 쓰느냐보다 저자의 문체를 우리말로 잘 옮겼냐입니다.(23쪽)

 

여러가지 내용들이 다 좋아서 일일이 옮겨 적기는 힘들고 일독을 권한다.

다만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인간의 문제라고 하는 부분,

그리고 자동 번역기가 나왔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하는 부분은, 같이 새겨둘만 하다.

 

선생님은 유학도 간 적이 없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시지도 않는데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온갖 투자와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면 비결을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언어에는 끈적한 속성이 있고 해당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게 핵심이라고 본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있죠.ㆍㆍㆍㆍㆍㆍ

 

자동번역기계가 등장했을 때는 감회가 어떠셨나요?

서류 양식의 번역이라면 모르지만 소설의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배우처럼 불가분의 육체성이 번역에 붙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교환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개입하거든요. 아닌 척하고 싶지만, 투명한 체하고 싶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번역가의 무엇인가가 책 속에 남을 겁니다.(35~36쪽)

 

이 인터뷰 부분 이후 딱딱하고 지루한 부분들을 꾸역꾸역 일독하였다.

뒷부분을 꾸역꾸역 읽을수록 그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엿보이는듯 했고,

끝내 알수없는 감동으로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좀 딱딱하고 지루했지만,

나도 모르게 정영목 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차올랐고 그런 의미에서 별 다섯을 꽉꽉 채워도 부족함이 없겠다.

배우고 닮고싶다는 마음은 언감생심, 우러를 수는 있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이와 함께 체력이 쇠하고 집중의 지속이 짧아졌다는 정영목 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저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책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고 한다.

천하의 정영목 님도 그러한데,

나의 게으름은 어쩜 당연한 것인가 싶어 위로가 된다.

앞으로 얼마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꺼이 읽는 나날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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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20 09:45   좋아요 3 | URL
저는 글은 무조건 알아먹기 쉽게 써야한다는 주의였는데,
번역가 입장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네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렵게 썼거나 작가의 문체가 그러할때는 작가를 그대로 번역해주는게 맞다는게 정영목 님 입장이셨습니다.
번역가라는게 엉덩이가 무겁고 꾸준해야 하는 직업이더라구요.
전 엉덩이 무겁고 꾸준한 걸로는 자신 있는데,
기본적인 실력이 많이 못 미치더라구요~--;

번역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번역가들이 꾸준히만 하면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런 거 말고, 처우개선이 시급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