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식탐(食探)
정재훈 지음 / 컬처그라퍼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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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나 식재료, 음식문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을 읽을라치면 이러한 문제들을 논쟁적으로 끌고가버려 맥이 빠지고 빈정이 상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논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취향의 문제라는 말로 잠재울 수 없는 음식이나 식재료, 음식문화에 대해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명확히 한다.

약사라는 그의 직업에서 파생된 과학적 근거와 논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예 같다.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은 많이 읽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것이 맛깔스럽기론 1등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개인의 감각이나 입맛, 기호 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관습이나 습관을 걷어냈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통찰을,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과 식재료 들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상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없었다.

'악법도 법이다'하고 독배를 들었던 소크라테스의 심정으로,

그냥 오늘을 살기 위하여 그냥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는 음식의 주도권을 내가 쥐어야지,

언론이나 여론에 맡길 일은 아니다, 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걸 <먹거리X파일> 같은 TV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너무도 자주, 맛과 취향의 문제를 건강과 생존의 문제처럼 왜곡시킨다(13쪽), 고 했는데,

나도 여기에 강하게 동의한다.

 

그러면서 <수요미식회>와 <3대천황>을 예로 들면서 '좋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는게 후각과 미각으로 맛을 평가해야 하지만,

실제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렇게 맥락이 단절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공간, 인간이 음식과 어울려서 만들어낸 총체적인 경험이라고 얘기한다.

 

'생각과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결과는 종종 파괴적이다(17쪽)' 라는 말은 완전 멋졌다.

 

글이 얼마나 맛깔스러우냐 하면,

올리브가 하늘을 나는 새들을 위한 과일이라고 하면서,

여기서 튀김 요리로 넘어간다.

튀김은 축제나 특별한 날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꼭지의 글을 이렇게 끝낸다.

축제는 가끔 한 번씩 있어야 즐겁다. 그래도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다면 기억하시라. 먹기만 해서는 하늘을 날 수 없다.(34쪽)

이 얼마나 근사한, 다른 맛을 한꺼번에 잠재우는 깔끔함인가 말이다.

 

가장 수긍이 갔었던 것은,

누군가 새롭고 특이한 이론을 들고 나오면 미디어는 마치 증명된 사실인양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론이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 과학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46쪽)

 

보통 음식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건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어떤 한가지 감각만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공감각을 요구하는 복합적인 행위여서 그럴 것인데,

이 책에선 그냥 심정적이고 느낌적인 것 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사람보다 음식 선택이 덜 자유로우며, 평생 조제식을 먹고 사는 애완동물들의 수명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시리얼이 건강에 유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ㆍㆍㆍㆍㆍㆍ사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오랫동안 먹을거리를 얻는 게 대단히 불안정한 환경에서 버텨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의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맞다.(156쪽)

 

 사실 건강에 필요한 음식의 기준이 복잡하고 어려워야 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의 조건만 맞추면 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최소한의 조건이 반드시 무설탕, 유기농, 천연 식품인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옷, 최소한의 집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영양 균형을 맞춘 음식이면 충분하다. 다만 그 최소한의 조건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논할 수는 없다. 우유에 말아 먹는 시리얼은 애초부터 맛보다 영양을 우선시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식품이다.(156~157쪽)

 

여러가지 음식과 재료, 조리법, 음식 문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걸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쯤될 것 같다.

잡식동물인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버터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버터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버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음식은 골고루 먹으라는 교훈일 것이다.(48쪽)

 

이렇게 깔끔한 책도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니라, 화면에 글이 차지하는 방식이 성글다.

여백이 과하다.

또 한가지 어떤 의도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종이를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두께는 그만그만한데, 220쪽 내외다.)

감수성 충만하면서도, 논리로도 무장한 그의 글이 더 보고싶었던 나로서는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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