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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평점 :
외국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들 이름이 낯설어서 애를 먹는것처럼,
이 책도 낯선 용어들과 숫자, 곳곳에 달린 각주(사실 상세하고 친절하다. 책 뒤를 보면 80여쪽에 걸쳐서 나와있다.)
때문에 진입장벽은 있었지만,
그 부분들만 체계를 잡으면 재밌게 읽혔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할애해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읽으면서 모든 것을 인간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중심의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였다.
이 책의 주요개념인 미생물만해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개념이어서 미생물이란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추정치이긴 하지만 우리는 약 30조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마리의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한다.(22쪽)
인간 세포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하니 크기가 아닌 개체 수의 개념으로 넘어가면 쉽게 '미'를 붙일 수준은 아니다.
암튼, 미생물을 직접 볼 수 없고,
그리하여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건 미생물로 인해 발생한 결과 뿐이라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미생물=세균=전염병을 가져다주는 불청객'이란 통념에서 벗어나면,
대부분의 미생물은 병원균이 아니고, 우리를 병들게 하지도 않는다.
우리 몸에 머무르는 미생물을 가지고도 공생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몸에서 '각자' 머무르면서 서로의 성질은 변하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지게 하는 그런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제3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화학적 변화로 이해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이 미생물과 공생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렐먼의 말을 빌어 '인간과 세균(=미생물)이 조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우리가 흔히 '원시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히드라'의 경우,
지난 5억년 동안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 왔으니,
(놀리는 의미로)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단다.
연구에 사용된 히드라의 경우 플라스틱 용기 안에서 30년을 사육되기도 했다는 예를 든다.
사람으로 따지면 철저히 통제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사람들은 장기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들은 정신이 흐리멍텅해져 정체성을 상실하기 직전일 것인데,
히드라는 30년이 흐른 뒤에도 제각기 자신이 속한 종에 맞는 고유의 미생물 군집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245쪽)
감사의 글에 등장하는 책 중엔 읽은 건 한권,
읽지 못한 것도 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슬쩍 넘겨다봤던 것 같고,
'도도의 노래'와 '오류의 인문학'은 접해보지 못했으며,
'메이블이야기'는 가지고 있으나 아버지를 잃은 아픔에 관한 책으로 알고 밀쳐두었었는데,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그동안의 다른 책과 달리 좋았던 것은,
미생물을 인간, 건강, 다이어트 따위 이슈에만 집중하는 대신,
미생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놓고,
아니 인간만이 아닌, 동물들과도 나란히 놓고,
전체적으로 아우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하는 '가시나무'란 노래도 생각나는 것이,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란 제목은 참 그럴듯 한 것 같다.
아참참, 이런 이론서의 경우, 번역이 겉도는 경우가 많았는데,
번역이 완전 깔끔하다.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건 번역이 한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