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언어사전
이정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을 하자면 이 책을 받아보고 놀랐다.

이게 사철 방식의 편집이라는데 난 파본인줄 알았다.

뭐, 여기 저기 물어 이게 요즘 유행하는 편집 방식이라는 건 알았는데,

그걸 알고 난 이후에도 나처럼 책에 물성을 부여하고 책신을 모시는 사람의 입장에선 대략난감이다.

실은 언제부턴가 문학동네 시집을 살때 표지는 파스텥 색상인 것이 예쁜데 몇 장 펼쳐서 넘기다보면 낱낱이 뜯어져서 힘들었었는데,

이 책도 그럴까봐 불안한 거라.

이런 방식의 편집이 책을 활짝 펼쳐놓고 필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적어넣을때는 좋은 방식이라는데,

참고서도 수험서도 아닌,

(사전이란 이름을 달긴 했지만) 시집 한구퉁이에 뭘 적어넣는단 말인가~--;

 

제목은 '동심언어사전'이지만 이 책은 언어가 가진, 언어가 내포한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하는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짧아서 여운을 주는 것들이 더 좋았다.

내용이 길어지고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서술하려는 것들은 좀 지루했다.

보통 시집의 두께였고 그 정도 분량이었다면 황홀하다며 설레발 쳤을 시들이 수두룩한데,

사전 형태로 묶어 양이 방대해지다보니 지루해 하품이 난다.

 

그렇다고 시집이 별로였다는 애기는 아니다.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시들을 응축시키고 추려냈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다는 얘기다.

시인의 저력을 알고 충분히 더 좋은 시들이 나와줄 수 있음을 아는데,

좀 널브러진 느낌이라서 아쉽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 몇 편을 옮겨본다.

 

굴뚝연기

 

굴뚝연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의

차가운 등짝을

덥히고 왔기 때문이지

 

돌부리

 

땅속에 박혀 사는 새가 있지.

부리만 조금 내밀어

빗물과 눈송이를 받아먹지.

구둣발에 차일 때 많지.

괭이나 쟁기에 으깨지기도 하지.

울대가 없어서 삽날이 대신 울어주지.

발로 찬 사람이 울어주지.

눈을 감고 돌부리를 쓰다듬으면

내 어깨의 새부리뼈가 활개를 치지.

어깻죽지가 나른하지.

 

되새김질

 

내 것을 토해내야만

되새김질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일단 가득 채워야 한다.

먼저 저 바깥을 들여앉히고

속앓이부터 해야 한다.

지는 해가 긴 혀로 솔숲을 곱씹듯.

밤바다가 끝없이 트림을 하며

물방울별 하나하나를 새김질하듯.

너만을 생각할 때처럼.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혀의 춤사위만 미끄러질 때까지.

 

백합조개

 

깜짝이야.

개펄에서 아침 먹더가 혀를 깨물었어.

바삐 놀러 나가다가

문틈에 옷자락이나 손가락이 끼듯.

 

서두르지 마.

바다가 몽땅 밥그릇이듯

세상이 모두 놀이터니까.

모래 한 알도 친구니까.

바다놀이 나갈까.

 

붕어빵

 

붕어를 살려보려고

호호, 인공호흡을 했다.

끝내 살아나지 않아서

눈 딱 감고 해부를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죽은 이유가 밝혀졌다.

달콤한 팥만 편식한데다

과식했기 때문이었다.

호호, 내가 대신

소화시켜줬다.

 

산더미

 

맑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어야

 

하늘을 우러르고

바람을 만져보지.

 

밤과 낮이 있고

새싹과 낙엽 태우는 향이 있지.

 

사노라면, 일거리가

밤바다 눈보라처럼 몰려올 거야.

 

일머리를 깨치면

꽝꽝나무 이파리처럼 작고 눈부신 축복이지.

 

내 일이 산더미라야

내일이 반갑지.

 

손잡이

 

풀과

모든 열매는

자신이 손잡이가 되는 게 싫다.

 

내 귀를 비틀어

내 꿈을 내동대기친다면

그 누가 좋아할까.

 

그런데, 누가 나를 열고

깊은 방으로 들어간다면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그 누가 마다할까.

 

이 외에도 아침뜸, 앉은뱅이저울, 앞길,오색딱따구리,잔가시, 징소리, 짝사랑, 칠성무당벌레 등 좋은 시가 여럿이다.

 

여러 편의 시를 옮겨적으려니 좀 힘들지만,

되내며 옮겨 적는 한 호흡 한 호흡 행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인의 시가 좋은 것은,

알아먹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들로 쓰여졌고,

그리하여 읽고 있노라면 어딘가 모를 곳이 따뜻해지는 것이, 적당한 온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온기를 품고 바라보는 세상은 시리거나 눈물 겨워도 견딜만하니까 말이다.

 

동시라고 하긴 힘들겠고,

맑고 순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폭폭할때,

그래서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시린 날에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툰 목수만이 연장을 탓한다고 술꾼들은 안주를 개의치 않아 깡술도 불사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그래서 말인데 옛날 허름한 술집 문이나 벽에 붙어 있던 '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10쪽)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다고 하는데,

맛있는 걸 먹을때를 받고, 읽는 책이 재밌을때를 얹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글이 완전 맛깔스러운 지라 이런 게 글을 읽는 맛이지 싶어 '헤헤~' 거렸다.

적당한 어조와 운율, 마침한 곳에 걸린 쉼표나 마침표 따위의 문장 부호, 의성어와 의태어를 넘나들며 언어를 구사하는데,

합이 잘 맞는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조화가 잘 맞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입이나 귀만이 아닌, 눈을 콩해서도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한달까.

 

권여선 님은 안동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 사람이고 아버지는 부산 사람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졌을테고,

그래서 서울 토박이인데다가 편식도 심한 내가 이물감 없이 하나 같이 입맛 다시며 읽을 수 있었다.

시작은 만두였다.

왕짱구 분식의 주인 부부는 역할을 나누어, 아저씨는 만두를 빚고 아주머니는 만두를 쩠다. 아저씨는 밀가루 반죽을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어 칼로 적당하게 토막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 토막의 반죽을 작은 밀대로 슬쩍 밀어 동그랗고 얇게 만든 다음 숟가락으로 만두소를 떠넣고 어물쩍 주름을 잡아 만두를 빚었는데 그 시간이 이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슬쩍 쓱 어물쩍, 그러면 끝이었다. 불필요한 손놀림은 전혀 없었다. (32쪽)

 

양배추쌈에 고추장물이 뭐라고 이런 구절은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달착지근한 양배추쌈 위에 푸릇푸릇하게 매운 고추장물과 밥을 얹어 한 쌈 싸 먹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맵다가 이내 머릿속이 시원하고 개운해진다. 된장이 줄 수 없는 깨끗한 짠맛과 땡초의 번쩍 깨는 매운맛이 별안간 내 존재를 순수하게 텅 비운다. 심심한 열무김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낯설고 허무한 생각마저 든다.(110쪽)

 

난 권여선 님의 글들을 읽으며 같은 생각들을 하였으니 쌤쌤이다, ㅋ~.

 

밥 한 숟가락에 자르지 않은 긴 시래기 한 줄기를 둘둘 얹어 먹기도 한다. 바삭한 가을 햇빛과 씁쓸한 땅의 맛을 은은하게 간직한 시래기 나물의 독특한 맛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123쪽)

이 구절에선 '씁쓸한 땅의 맛'이란 구절이 좋았다.

'바삭한 가을 햇빛'이라는 하늘의 기운과,

씁쓸한 땅의 맛과,

그걸 밥 한 숟가락에 둘둘 얹어먹는 권여선 님과,

뭐랄까, 천지인 물아일체를 경험하신다고 해야 할까.

그걸 엿보는 나도 자연스레 천상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생선 비늘을 비닐이라고 발음하시는 생선가게 남자에게선 이런 헤프닝을 떠올린다.

어느 날 귀엽게 생기고 패션에 민감한 어린 게이머가 진회색 니트로 된 비니를 쓰고 나왔다. 젊은 해설자가 "아, 저 선수, 오늘은 비니를 쓰고 나왔네요."라고 말하자 나이 든 해설자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비닐을 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네?"

"암만 봐도 비니루 같지는 않다고요."

그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화면에 입을 가리고 끅끅 숨넘어가게 웃는 젊은 해설자와, 영문을 몰라 인상을 찌푸린 나이 든 해설자의 모습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166쪽)

 

아, 좋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

사는 게 폭폭하여 목이 막히거나 메일때,

고인 침을 눌러 삼키듯 눈물도 그렇게 눌러삼키면 그만이라고 알고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좀 빨리 끝나버리는 건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길면 또 물릴 것도 같다.

아직은 못 읽은 님의 작품들이 남아 있으니, '안녕, 주정뱅이'부터 시작해야 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1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8 11:55   좋아요 1 | URL
소주 석잔이면 만취하는 저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애기인데,
또 남자들 중에, 개중에는 술이 들어가면 밥이고 안주고 입에 안대는 사람들도 있죠.

술을 드시더라도 안주도 같이,
배 고프면 밥을 드신 후에 술은 천천히 드시길 강권합니다~ㅅ!^^

잠자냥 2018-06-18 11:52   좋아요 1 | URL
예문만 읽어도 침이 고이네요. 하하하하.

양철나무꾼 2018-06-18 11:57   좋아요 0 | URL
권여선 님 글 처음 읽었는데, 맛깔 나네요.
글이 맛있을 뿐더러 정갈해요~^^

지금행복하자 2018-06-18 14:11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맛갈나는 표현에 침이 스르르~

양철나무꾼 2018-06-18 18:10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맛있는 책의 말견이었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8 17:57   좋아요 1 | URL
비니루, 공구리 등등 표현은 멋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네요^^:)

양철나무꾼 2018-06-18 18:12   좋아요 1 | URL
이게 입말을 옮기는 과정이어서 멋은 없지만,
구수한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ㅎ,ㅎ.

moonnight 2018-06-18 18:27   좋아요 1 | URL
저도 방금 행복하게 다 읽었어요. 배고프네요^^;

양철나무꾼 2018-06-18 18:30   좋아요 0 | URL
정말 맛있는 책 아닌가요?^^

오늘은 야구를 하지 않아서 좀 우울할라 그랬는데,
축구가 기다리고 있네요.
축구를 보면서 먹을 주전부리를 궁리해봐야겠어요~^^
 
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언젠가 읽었던 '사랑의 묘약'(<==링크)이 너무 좋았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사랑의 묘약'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작가들이란 그게 그림이 됐건, 글이 됐건, 그밖의 다른 창작물의 형태가 됐건 간에,

'첫'이란 걸 훈장이나 멍에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비교하고 얽어매고 그리하여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을테니 조심 또 조심하여야 겠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그림자밟기'라는 제목부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사람의 다른 면을 보고 비출 수 있듯이,

그림자라는 것도 빛이 비추는 방향이나 각도, 또는 형태가 만들어내는 운동성 등에 따라 다른 크기와 농도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가족이 습기를 머금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면 그건 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화가였다. 결코 시시한 재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감과 자제력을 상실하고 있었다.(23쪽)

 

이 그림자는 때로 그림의 음영으로 나타난다.

이 음영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즉각 초자연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드리하여 음영이 정말로 주체를 훔쳤고, 나머지 세상에서는 음영이 더욱 리얼해져 마침내 남은 것은 음영뿐인 것처럼 보였다.(184~185쪽)

빛의 형태로 얘기되어지기도 한다.

빛은 신기해. 만질 수도 없고 질량도 없지만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거든. 마치 파도처럼 움직여. 또한 입자처럼 움직이지. 이 둘을 하나로 이해하는 건 사람의 머리로는 어려워. 그러니 너만 모르는 게 아냐. 외로워할 필요 없어. 딱딱한 물체에 빛이 부딪칠 때 그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건 빛이 아니라 빛의 에너지야. 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거라고 생각하니?ㆍㆍㆍㆍㆍㆍ하지만 엄마는 빛이고 아빠는 중성자별이야.(239쪽)

 

사실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잠식하고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둘은 화가와 모델 관계로 만났는데,

화가는 선정적이고 어두운 그림들을 그린다.

모델인 아내 입장에서는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들인 플로리언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을,

엄마인 아일린는 포르노를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했거든요. 삶이 침해받는 기분이었어요.(95쪽)

 

또 하나 불편하였던 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지 싶어서 였다.

길도, 아이린도, 자기 부모에게 효자, 효녀 자식이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음은 물론,

그냥 부모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겠죠. 아마 안심하고 싶어서 그럴 거예요.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전쟁, 살인, 유기, 납치 같은 일들이 자기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서요. 홀로 남아서 스스로 살아가거나 남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싶은 거예요.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플로리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가 어머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168쪽)

플로리언의 선생님이 아이린에게 한 이 말은 많은 걸 짐작케 한다.

 

책의 곳곳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하고 의지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다면,

속으로만 사랑할 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 그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사랑은 다른 과정을 거치고 다른 형태로 변해져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길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잠든 그녀의 구부러진 벽 같은 등에 살짝 등을 대고 누웠다. 습관이 위안을 주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잠든 아이린의 존재는 그를 안심시켰다.(43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결말을 얘기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의 결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정적으로든, 현실에서의 삶의 형태로든,

더하거나 덜하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보면 잠식당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하게 그림자를 밟고 드리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상관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안되면,

관계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어서,

부모나 자식,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자라거나 어긋나고 틀어진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는게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삶도 기꺼이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8-06-15 18:23   좋아요 2 | URL
자기의 모습,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려면 스스로를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만들기 위한 ‘힘 기르기’, 즉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

양철나무꾼 2018-06-16 10:51   좋아요 1 | URL
이 책이랑, 님의 댓글이랑 좀 어긋난 내용일지 모르는데,
전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자기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술적인 문제랑 결부되어 내용이 좀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발설할 수는 없고~--;
상처받고 피 흘리고 넘어져 본 사람들은 상처받는게 견딜만하다고 여길 것이고,
상처받는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소심하게 말씀드려봅니다.
페미니즘에 요즘 관심 많으신 cyrus님이라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긴 합니다~^^
 
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한때 똑부러지고 야무진 부류였다.

아니 야무진 과라고 자신할 수는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었다.

금전적이나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손해보는게 싫었었다.

헤플 필요도 없지만, 구태여 자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고보니 '중도' 내지 '중간', '중용'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그리 먹는다고 하여 내 입맛에 맞게 그렇게 '중간'을 지키게 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묻기 위해선 목소리를 과하게 높여 크게 말해야 하고,

대답으로 듣는 목소리 또한 그렇게 큰 목소리들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정적이 그립다.

감히 정적을 '중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로퍼는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보스톤에 위치한 브리검 여성 병원의 신경과학부의 최고 임상의이다.

이 책을 시도하는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뇌나 신경,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주변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에 좋겠다.

 

책엔 앨런 로퍼 말고도 브라이언 러셀이라는 사람이 지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기획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여러 가지 교훈과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이 책이 깔끔하게 읽히진 않았다.

읽으면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인가 했었는데,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두 명이어서인듯 하다.

 

한 꼭지에서 한 사람의 얘기가 명확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친절한 설명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뒤섞여 버린다.

없어졌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두뇌와 신경 쪽으로 접근하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것 마냥 (원제가 Reaching down the rabbit hole이다) 너무 깊숙해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접근하는 것도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고 존경하는 마음이 샘솟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였다.

 

데니스,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병동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한 시간, 두 시간, 심지어 세 시간이나 차를 달려 우주의 중심(보스턴이 그렇게 자칭한다)으로 왔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들어야 할 것들이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치료다. 제대로 들을 때 우리는 자세한 사항을 알아서 다음 환자에게 더 나은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다. 레지던트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진단과 치료, 기술, 척도, 농도, 복용량, 비율, 증가와 감소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들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잊지 마라.(19쪽)

 

여기서 듣는 다는 것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듣는다는 의미 이상의 좀 복잡한 의미일 것이다.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는 의미 외에,

말하는 장단이나 어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능력,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 의 여부는 두뇌의 영역과 관련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환자가 하는 말을 그냥 주의깊게 들어도 좋겠다.

사이 사이 적당한 추임새는 덤이다.

 

히스테리 증상 대다수는 진짜 신경에 질병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증상으로는 마비, 걷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것, 발작, 힘이 빠져 약해지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때로 문제를 조작해내는 한 기관(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증상은 더욱 얼토당토않게 될 수 있다. 몸의 오른 쪽이나 왼쪽, 즉 한쪽 부분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해당 쪽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든가 눈이 보이지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신경계는 이러한 결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은 질병이 신경계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뇌가 뇌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위장은 위장의 문제를 만들어낼 자체의 정신이 없다. 결장도 그렇고 폐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다.(129쪽)

 

이 부분은 내가 만나는 환자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뇌나 신경 분포 영역대로 공식에 대입하듯 아픈 사람들도 있지만,

그 패턴에서 벗어나서 전혀 상관 없는 부위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가치 판단이나 조언, 진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줄 귀'가 절실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두뇌나 신경과 관련된 지침서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가고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ㆍㆍㆍㆍㆍㆍ조지,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지난 10년 동안 나는 100퍼센트 현재에서 살았어요. 나는 4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3년 전에는 갑상선암을 진단받았고, 지금은 조지가 병을 앓고 있어요. 우리 삶이 이제 평온해졌고,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주 분명해요. 최우선순위는 도덕적, 정신적 나침반을 유지하는 것, 우리의 건강과 웰빙 그리고 우리 딸의 건강과 웰빙, 나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일 년 후, 혹은 24개월 후, 혹은 48개월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그때 우리가 괜찮을까, 혹은 그때 괜찮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여기에 살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니까요.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조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ㆍㆍㆍ."(261쪽)

 

이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무릇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지기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줄여,

그리하여 더 단순하고 소박해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때때로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6-08 18:11   좋아요 2 | URL
지나간 것과 오지 않은 것들에 마음 쓰일 때가 있어요.
그건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을 잘 찾고 잘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잘 되지 않는 걸 알지만, 생각나면 그 때만이라도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저녁도 맛있게 드시고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37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의미에선 좋은 것 같아요.
지나간 과거는 잘 기억나지 않고,
얼마남지 않은 미래의 일들은 미루어 짐작하겠는지라 두근거리거나 설레일 일이 별로 없어요.
매일 그날이 그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평상심이 무심이 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 내공에는 이르지 못했네요~--;

아침부터 날씨가 훅훅 거려요.
얼마나 대단하려고 그러는지...
시원하고 맛난 점심 드세요~^^

페크pek0501 2018-06-08 19:16   좋아요 3 | URL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준다는 건 그의 얘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집중하며 편견이나 선입감 없이 제대로 들어 주려는
의지의 영역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것도 일종의 습관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양철나무꾼 2018-06-09 10: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누군가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건 쉽지않아요.
게다가 저분처럼 얘기에서 의학적 정보들을 캐치해 내려할때는,
그 얘기가 증상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해내야하니 좀 더 어려울 수 있을 거예요.

알라딘 서재에서의 패크님을 보면,
꾸준히 마실도 다니시고,
댓글도 교환하고,
좋은 습관이 형성되신것 같아서,
전 마냥 부러워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던가,

저자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이런 느낌을 남겼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충격도 고스란히 내몫이었다."

 

소설집은 소설이라서 자신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아도 좋으니,

재기발랄하고 좀 파격적이기도 했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복면가왕'에서 좀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가수들 마냥,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일, 있을 법한 일을 쓰는 것이니,

소설 속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든 작가 자신일 필요는 없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망하게 펼쳐내는 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수필집은 수필집대로 좋았다.

수필집에선 그동안 내가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던 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에서 봤던 글들도 있어서 그랬을테지만,

문장이 깔끔하고 단정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피격적이고 자유분망하다기보다는 감정을 많이 절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신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웅숭깊다. 

 

미니 에세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책은  사람, 생활, 책, 일상, 글과 관련된 것들이라는데,

가볍다기 보다는, 좀 학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변잡기라고 하기엔 학구적인 고찰이 돋보인다.

영화나 책 따위에서 뻗어나가는 발상의 전환들이 그러하다.

 

암튼 이 책을 님의 조언대로 손길 가는 대로 편하게 펼쳐서 읽다가,

옳다구나 하고 학문하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그게 '잔소리'라는 꼭지였다.

 

부모는 말하고 자식은 거부하는 것, 그것이 잔소리의 속성(28쪽)이라는데,

나도 요즘 '나의 두번째 애인'이었던 아들만 보면 잔소리를 시전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름이 깊게 패이고 늙는게 느껴진다.

 

아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맘에 안드는데,

힘들면 씹어보지도 않고 뱉으려 한다.

친구에게 하소연하였더니,

신세대라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요즘 신세대는 무엇을 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빨이 약한가 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책의 곳곳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하여 하는 잔소리가 내게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말이다.

 

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긍정하도록.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타자의 시선도 나를 곡해하게 된다. 호의적인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껏 스스로를 옭아매고 몰아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부터 버린다.(57쪽)

 

판단의 무능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게 문제라는 말.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거듭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 그것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129쪽)

 

'작가의 말'에서 님은 일천 글자 쓰기를 거의 매일 하셨단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업이었다며 겸양을 부리신다.

말이니까 하기 쉽지 육백여편이면 2년이라는 세월이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일천 글자 쓰기'라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엄청 좋아서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며 읽다가,

보이지 않는 밑줄을 계속 긋다가,

외워버렸다.

ㆍㆍㆍㆍㆍㆍ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하고, 망원경으로 새나 관찰하는 독신녀 제인 마플. 별일 하지 않는 척,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그녀는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요란 없이 꿰차는 노파 탐정이었다.

  미스 마플이 될 수도, 그럴 마음도 없었던 나는 다만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무심해 보이는 그녀도 멜랑콜리에 젖은 옷소매를 말리기 위해 바람 드는 새벽 창가를 찾는 일이 잦았을 거라고. 단단해 보이는 한낮의 미스 마플일수록 울지 않는 새벽은 드물었을 것이다. 해결하지 못할 숱한 과제 앞에서 눈물짓는 미스 마플이야말로 내 오랜 친구였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겸손하고 두루뭉술하다.

한낮에 단단해 보이는 미스 마플에겐 늘 울면서 맞이하는 새벽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일 앞쪽을 보면,

곱게 미소짓는 님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ㆍㆍㆍㆍㆍㆍ여전히 바닷가 소도시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책장을 넘기는 횟수만큼 감사하고, 백스페이스나 딜리트 키를 누르는 횟수만큼 용서를 바라는 그러저러한 나날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그렇게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누리시길 기원하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1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6-01 17:54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거의 다 읽어가는데, 문장이 간결해서 좋던데요.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요.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6월엔 더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6-02 09:12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매력인것 같아요.
간결하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어디서 부터든지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님은 또 어떤 감상을 올려주실지 기대가 돼요.
요즘 손글씨로 올려주시는 거 잘 보고 있거든요~^^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진 열어놓은 창문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네요.
오늘도 힘내자구요~!^^

세실 2018-06-02 06:41   좋아요 1 | URL
아 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님은 벌써...
스마트폰 만지는 시간만 줄여도...그쵸?
팜므님 글 정갈하고, 사람내음이 나죠. 매일 일천자 쓰기... 참 대단하신, 멋지신 팜므님^^
그리고 훌륭한 애독자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8-06-02 09:20   좋아요 1 | URL
아마 님은 일로도 여러 가지 책을 접해서 더 그러실거예요.^^
요즘 나이가 드는건지 부쩍 책 읽기도, 음악 듣기도 버거운데,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서 한꼭지씩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팜므님 멋지신거야 웬만한 알라디너야 다 아는 것이고,
저에게까지 덕담을 날려주신 세실 님,
님은 분명 천사이십니다~!^^

2018-06-02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6-02 16:23   좋아요 0 | URL
ㅎ, ㅎ....잘 지내세요?
꼼꼼이 읽으시고 댓글 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폰에선 수정이 불가능해요. 월욜날 출근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꾸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