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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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책을 처음 읽었다. '아가씨와 밤'은 2018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스릴러를 표방하는 소설이다. 스릴러답게 독자의 궁금증을 계속 유발하면서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든다. 그런데, 왜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까? 이 소설의 주인공, 화자도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마치 자기를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일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직업이 인세로 돈을 번다. 여유 시간도 많고, 돈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조사하는데 최적의 직업이 작가가 아닐까?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으로 야기된 안타까운 사고를 대하는 부모의 희생이다. 모든 사건, 사고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하니 이 범주를 벗어나는 스릴러 소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25년 전 사건의 주모자인 주인공이 예전의 과거를 떠올리며, 본인과 주변인들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증이 풀리지만, 뒤통수를 치는 듯한 반전은 없다. 초반부터 계속 나오던 인물이 전혀 생각하지 않게 범인으로 밝혀질 때 독자가 놀라는 경우가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전개를 따르고 있지 않다. 


스토리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진부한 면이 있지만, 스릴러 소설답게 몰입감은 있다. 책을 손에 놓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몰입감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스릴러 소설의 구성 요소와 전개는 충실한 거 같다. 하지만, 너무 진부하다. 왜 비밀을 알면 꼭 혼자서 찾아가 위험을 스스로 초래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왜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못하고, 꼭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지, 결국 만나지 못하고, 다시 미궁에 빠지는 전개를 반복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뭐, 영화나 소설을 접하면서 이런 말을 하면 맥이 빠지지만, 매번 궁금하다. 


그래도 버스, 전철 안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2019.12.25 Ex. Libris. HJK


마농은 가루프 길이 끝나는 곳에 관용차를 세웠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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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0-01-1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유명한 작가라 궁금해서 저역시 두세권 정도 읽었는데 아타락시아님과 비슷한 결론으로 그만 두었습니다. 물론 취향의 팬덤이 있다는 얘기겠지만요:-)
 
뜻밖의 계절
임하운 지음 / 시공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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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기대하지 않고,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다. 저자인 임하운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즐거운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책을 읽고, 소감을 남겼는데, 주제와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이야기 전개나 표현 방식은 '뜻밖의 계절'이 더 낫다. 물론, 전문가적인 시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우리가 흔히 왕따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격이 이상하다는지, 사교적이지 않다는지, 이기적이라는지 등 많은 원인을 갖다 붙인다. 심지어 집안이 안 좋다는 말도 한다. 집안이 안 좋은 것이 그 아이 잘못도 아닌데, 그냥 원인을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가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를 왕따시키거나 가담한다.


이 책에서 몇 명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간직한 채 오로지 살기 위해 나름대로의 대처를 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위해서, 누군가를 잊기 위해서, 이런 마음을 철저히 숨긴 채 이기적인 행동, 남을 괴롭히는 행동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골칫덩어리 존재들이 서로 고백하고, 서로의 상처를 알 수 있을까? 알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제목이 왜 '뜻밖의 계절'인지 모르겠다. 나의 한계다. 


모두가 보편적인 상황을 만나,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는 부모에게 버려졌을 수도 있고, 누구는 부모를 잃었을 수도 있고, 누구는 부모의 잘못된 사랑에 상처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상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했으면 좋겠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라고 어쩌면 그 한 번의 생각이 한 걸음이 되어 쓰러져가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도 있다. 죽어가던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처럼. (P.276)


어제 MBC 뉴스를 보았다. 요즘 TV 뉴스는 MBC만 본다. 그나마 가장 개념이 있고, 객관적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마트에서 생필품을 훔치던 아버지와 아들이 현장에서 들통났고, 경찰까지 출동을 했다. 마트 주인은 소리를 지를 것이고, 경찰은 체포해서 경찰서로 데려갈 것이고, 그걸 옆에서 보던 아들은 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다.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이 쏟아질 것인가?

하지만, 우리가 이 사회를 아직까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다.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그 모습을 여기에 남긴다.(왜 동영상 등록이 안되는지 모르겠다.)


https://youtu.be/ipfBjpbeXK4



2019.12.14 Ex. Libris. HJK


4교시가 끝날 때까지 나는 기절한 듯 잤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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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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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후속편이다. 주인공 알란이 100세일 때 창문을 넘었으니 이제 101세가 되어서 또다시 세상을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세상을 구한다.


알란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북한 김정은이 확보한 우라늄을 탈취한다. 엄청난 행운의 소유자인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못하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북한의 이야기가 나와서 좀 그렇지만, 위트로 포장한 북한에 대한 비하 정도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다. 딱 외국인이 생각할 수준이다. 김정은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무시가 훨씬 크고, 메르켈 총리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세상에 안 좋은 일을 뒤에서 계속 획책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일본 아베 총리는 아예 언급도 없다. 뭐,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없으니 일본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는 강하다. 경제 대국이고, 국방력도 2019년 기준으로 세계 7위라고 한다. 무기 수출도 많이 하고, 웬만한 무기는 모두 생산 가능한 국가이다. 외환 보유 금액도 많다. 아직도 우리를 발톱의 때만큼 여기는 일본이 정신 승리로 애써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1인당 GDP도 거의 차이가 안 나고, 2023년 이전에 역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슬라에서 자사 전기차 배터리를 파나소닉에서 국산 LG로 바꾸었고, 폭스바겐에서 전기차 배터리 납품 회사로 선정한 5개 회사 중에 한국은 3개 회사가 포함되었다. 파나소닉은 여기에 포함이 안 되었다. 조선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선을 90프로 이상 수주해서 몇 개월째 세계 1위를 질주하고 있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아시아 넘버 원 손흥민은 유럽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방탄소년단, 그리고 영화, 드라마 등 한류 문화의 힘은 엄청나다. 독일에서 진행한 어느 한 오디션에서는 방탄소년단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정치적인 후진성이 있고,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발,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 토착 왜구 등의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이때까지 버티면서 생존하고, 약 7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위안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발돋음한 우리이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의 길을 나아가기를 바란다. 


아.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만약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뜻밖의 상황을 기상천외한 우연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위트 있게 잘 표현한 책이다. 킬링 타임으로 적격이다. 하지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건 아니다.


2019.12.14 Ex. Libris. HJK


여느 사람 같았으면 낙원과도 같은 섬에서 귀족같이 화려한 생활을 하는 데에 아주 만족했을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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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0-01-14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을 읽고 영화까지 깔깔대며 봤던 터라, 제목만봐도 이마를 탁 치게 되네요:-)
 
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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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는 상당히 마음에 안 들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꽤 많다. 흔히 전쟁, 바이러스, 외계인 침략 등으로 이 세상의 종말이 닥쳐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지구가 병들어 환경 재앙이 닥치는 것이 아닐까?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에너지 자원의 고갈 등이 초래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 책은 물이 없어서 세상이 망해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약 일주일 동안 부모와 떨어져 물이 없는 삭막한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서 물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십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배경 설정이나 전개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고, 작위적인 부분이 있지만, 물이 없어진 세상을 상상하며 소설 속에 빠져드는 재미는 있었다. 


예전에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를 재미있게 보았다. 시즌 4 정도까지 봤다. 지금은 시즌 9까지 나왔다고 한다. 시즌이 갈수록 계속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어서 흥미를 잃었다. 정착지 찾기 위해 이동하고, 정착지를 찾은 후에 갈등이나 좀비의 습격으로 정착지가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서는 줄거리는 반복된다. 이해는 간다. 이런 형태의 줄거리는 엔딩을 끝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 <더 로드>는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고, 여운을 남기면서 나름대로 끝을 잘 맺었다. 하지만, <워킹 데드>는 성공적인 끝을 맺기에 이미 늦었다.


<워킹 데드>를 보면서 나름대로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시뮬레이션 해 본 적이 있다. 식료품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좀비를 어떻게 죽여야 할지, 정착지는 어디가 좋을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면, 그냥 자살하는 것이 나을지도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이>를 읽으면서 물이 없어지는 상황은 또 다르다고 생각했다. 만약, 비가 안 오고, 온난화로 기온은 올라가고, 모든 물이 없어지면, 종말은 정해져 있고, 좀 더 오래 생존했다는 뿐이지 다른 방법은 없다. 운좋게 비가 내릴 때까지 버틸 수는 있겠지.

이 책은 완전히 끝난 이 세상의 종말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마스>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과학적 지식이 이 책에서 보이지 않지만, 이 책에 나오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상식 같은 것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만약, 개인 주택이라면 지하실에 대피소를 만들어 놓거나 외딴 산에 벙커를 구축해 놓을 수도 있겠다. 주택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초래해서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는 벙커가 도움이 되겠지만, 그곳까지 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도로에 차가 있을 것이고, 길에서 만나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아 발견은 우주 저편의 이야기이겠지. 암튼 나도 모르겠다. 지금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 둔다고, 내가 그대로 행동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겠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기, 토목, 군사 지식 등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렸을 때 보이스카우트는 했었는데, 그때 열심히 안 한 것을 후회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것도 자연의 축복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이 지구를 지켜야 한다.


2019.11.17 Ex. Libris. HJK


부엌 수도꼭지에서 기묘한 소리나 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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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데미안 (양장)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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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학교 때 교회를 다녔다. 중등부 교회 회장을 하고 있었다. 매년 문학의 밤 행사를 했고, 문학의 밤에 독후감 낭독하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 지금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엄청 부담이 컸다.


그때 독후감 낭독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다.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어떤 내용을 낭독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내용을 모두 다 이해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지 않다가 뒤늦게 <데미안>을 구매했다. 사실 <데미안>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구매하고, 5만 원 이상 구매 시 주는 적립금 2천 원 때문에 추가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 소설이다. 자신의 욕망과 싸우면서 자기의 사랑, 꿈, 자아를 찾아 고민하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게 표현한 소설인데, 내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완독은 했지만, 정말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어느 한순간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1장이 넘게 표현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보다는 덜 하지만, 에밀 싱클레어 또한 만만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인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의 친구이지만, 에밀 싱클레어를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구세주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기존의 신앙, 제도, 사회에 정신적인 저항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함께 떠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편안함의 문제거든! 편안함에 빠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귀찮은 사람은 법을 있는 그대로 따르지. 그게 쉬우니까. 반면에 다른 이들은 자기 내면의 법칙을 스스로 감지해. 그 법칙은 신사로서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을 금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른 일을 허용하기도 하지. 각자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거야." (P.82)


술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우연히 한 여인을 발견하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오로지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싱클레어를 보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의 아픔과 너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베아트리체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당시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내 앞에 그 모습이 떠오르게 만들었고, 내게 성전을 열어주었으며, 나를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나는 술 마시고 밤새 쏘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시 혼자가 되어 책을 가까이하며 산책을 즐겼다. (P.101)


그러나, 한 여인의 영향력이 점차 희미해지고, 다시 불안감에 휩싸야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는 싱클레어는 우연히 거리를 쏘다니다가 작은 변두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를 듣고, 음악을 통한 영혼의 표현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또 한 번의 정신적 성장을 한 싱클레어는 우연히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그토록 자신이 갈망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한 여인이 데미안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환희에 휩싸인다. 


몇 번의 정신적 방황을 고백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하죠. 그러면 길이 쉬워집니다. 하지만 영원한 꿈은 없으니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기 마련이에요. 어떤 특정한 꿈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 하면 안 돼요." (P.177)


"사랑은 애원해도 안 되고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부인이 말했다. "사랑은 그 안에 확신하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끌어당기게 되죠.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내게 이끌리고 있어요. 그 사랑이 나를 끌어당기면 나는 그리로 갈 거에요. 나는 나 자신을 선물로 주고 싶지 않아요. 이끌리기를 원해요." (P. 186)


아. 이게 무슨 말인가. 이끌리기를 원하지만, 선물로 주고 싶지 않다는. 심지어 요구해서도 안되고. 이게 과연 어떤 방식의 사랑일까?


싱클레어는 자신을 탐구자로 생각하고, 탐구자를 '표식'을 지닌 자들로 표현한다.


표식을 지닌 우리가 세상에서 이상한, 심지어 미치고 위험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깨어났거나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언제나 완벽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 이상과 의무, 사랑과 행복을 집단의 것과 더욱 가까이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행복을 추구했다. 그것 역시 노력이었으며 힘과 위대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표식을 지닌 우리는 자연의 의지를 새로운 것, 개인과 미래를 향해 표현된 것으로 여긴 반면, 다른 이들은 옛것을 고집하며 살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인류란 유지하고 보호해야 하는 완성품이었다. 반면 우리에게 인류는 우리 모두가 향해 가고 있는 먼 미래로, 아무도 그 모습을 알지 못했고 그 법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P.181)


전쟁에 참여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길이었는가 모르겠다. 인류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완벽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 전쟁으로 파괴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인가? '표식'을 지닌 자들이 정녕 원하는 길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사고와 사유의 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 온갖 잡생각이 떠올라 나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지도 못하는데, 어찌 알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야 할 방향, 가야만 하는 그 도착지를 찾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를 이 책을 읽고, 어렴풋이 느꼈다. 에밀 싱클레어와 함께 하는 동안 잡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2019.11.16 Ex. Libris HJK


나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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