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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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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지 않는 밤이 찾아왔습니다. 살그머리 거실로 나가서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까 생각하고, 고른 책이 김훈 작가님의 <허송세월>입니다. 김훈 작가님의 나이가 70대 중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을 읽고, 소감을 쓸 때 보통 작가 이름만 쓰는데, 김훈 작가님으로 부르게 되네요.


잠을 청하기 전에 또는 잠이 오지 않을 때 산문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소설은 줄거리에 빠져서 책을 덮기 힘들고, 역사는 생각이 많아지고, 자기계발은 머리를 또렷하게 만듭니다. 산문은 하나의 주제로 짧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생각을 나누다가 잠을 청하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김훈 작가님은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 산다고 합니다. 저는 수원시 광교에 사는데, 일산에 호수 공원이 있듯이 광교에는 호수 공원이 있습니다. 일산을 오래전에 가봐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일산보다 작은거 같네요. 작가분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대단합니다. 분명 광교 호수 공원에도 새가 있고, 여러 가지 풍경이 있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칠 뿐 감히 글로 남길 생각을 못합니다. 걸음수 정도만 체크하면서 운동했다는 자부심만 느낄 뿐이죠.


산문을 읽다 보면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읽을 책을 발견하고, 독서 리스트를 확대합니다. <일본제국패망사>, <장자>, <걸음예찬>, <비글호의 항해기> 를 읽어 볼까 합니다.
<일본제국패망사>는 소장하고 있는 책인데, 진주만 공격까지만 읽고, 멈춘 상태입니다. 저자의 친일 시각이 안 좋았습니다. 미국이 잘했으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는 내용을 꽤 길게 풀어 씁니다. 역사는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만, 저는 무책임하게 행사되는 권리에는 반대합니다. 핵무기를 쓰는 것이 가혹하다면, 그전에 일본이 한 가혹한 짓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악이 있다면, 악으로라도 처벌한다. 저는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도입니다. 그에게 세례를 한 신부는 그가 하얼빈에서 한 역사적인 의거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안중근 의사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참으로 치졸한 대처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객관성 또는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현실을 외면한 종교, 기득권에 붙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습니다. 대가야의 왕조는 신라 진흥왕과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서기 562년의 일입니다. 신라는 주변국들을 멸망시키면서 한반도 일부를 통일합니다. 한국이 한반도에 갇힌 이유 중의 하나가 신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세의 힘을 빌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드넓은 땅을 당나라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구려가 통일했다고 해도 이후 광대한 영토를 잘 지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만으로 보면 신라의 통일로 인해 한반도 일부로 줄어들었습니다.
김훈 작가님은 김부식의 <삼국 사기>를 통해 열다섯 살의 소년 화랑 사다함을 이야기합니다. 김부식은 철저하게 승자와 집권자의 편에서 역사를 기술합니다. 명분의 모호한 신라의 침략으로 시작된 참상은 언급 안하고, 어린 영웅을 치켜 세웁니다.


출근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 민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중의 일부는 좋은 결과를 나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현장에서 노동자 7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착공한 지 887일 만에 428Km를 개통했다고 합니다. 세계는 놀랐지만, 노동자 77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알지 못합니다. 좀 더 안전하게 오래동안 건설하면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산업 발전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 사뭇 무섭습니다.


한국 자동차 역사의 원년이 1911년 입니다. 1911년 일제 치하 시대인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일본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영국에서 리무진 자동차 두 대를 구입해서 그 중 하나를 고종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 자동차가 한국의 최초 자동차입니다. 서글픈 역사입니다.


두서 없이 소감문을 썼습니다. 읽은 책이 산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새끼 지상주의를 이 책에서 인용합니다.


지금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학교와 교사를 괴롭혀서 교육의 근본을 파괴하고 사회 계층 간의 적대 의식을 고조시킨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고위직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위장전입의 전과가 있다. 이 위장전입은 모두 부동산 거래의 이익을 노린 것이거나 '내 새끼'를 명문 중고등학교에 보내고 명문 대학에 보내서 기득권을 세습해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위장전입은, 맹모삼천이나 애꿇는 부정의 프레임 속에서 사면된다. 위장전입은 실정법(주민등록법)을 위반한 범죄인데, 위장전입만으로 공직 임명에서 탈락한 후보자는 없다. '내 새끼'의 위력은 헌법도 국회도 여론도 당해 낼 수가 없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는 아기를 보호하자는 취지로서 아름답지만, 이 아기가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이 가까워도 '아이고 내 새끼야'는 메아리친다.



2024.10.28 Ex. Libris HJK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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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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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지 않았다. 동네 도서관에서 23년 소설 분야 1위를 한 책인데, 아직까지도 대여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제 도서관의 책은 거의 망가져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님의 에세이이다. 그런데, 제목이 특이하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즉 술에 대한 주제일 거 같은데, 책을 읽어보니 술을 엄청 좋아하고, 흡연도 하는 작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술이 조니워키 블루라벨 이라니..


1 년 정도 된 거 같다. 갑자기 위스키에 관심이 높아진 시점이다. 당시 발베니 12년 더블 우드, 맥켈란 12년 더블 캐스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마트 오픈런을 했던 때이니 나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 거 같다. 지금은 마트에서 쉽게 구하는 위스키라서 남이 좋다면 무조건 따라 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전까지 마셨던 위스키는 글렌피딕 12년 정도인데,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당시에 위스키는 그냥 집에서 혼자 멋부리고 싶을 때 마셨다. 멋부린다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다. 테네시 위스키인 잭 다니엘 올드 넘버 7을 코크와 함께 마시고, 너무 맛있어서 꾸준하게 마셨던 적도 있다.


아직까지 고급 위스키는 비싸다고 생각해서 주로 명절 때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에 가서 몇 병을 구입하곤 한다. 작년에 짐빔, 시바스 리갈 12년, 발렌타인 마스터즈, 와일드 터키 8년을 구매했다. 이 중에서 와일드 터키 8년을 제외하고 1년에 걸쳐 모두 마셨다. 스트레이트보다 하이볼을 좋아하는데, 와일드 터키 8년은 온더락이나 물을 약간 타서 마시고 있다.
오늘 트레이더스에서 에반 윌리암스, 조니워커 그린 라벨 15년, 탈리스커 10년을 사 왔다. 그런데, 작년에 사놓은 발베니 12년 더블 우드, 맥켈란 12년 더블 캐스크는 아직 밀봉으로 보관 중이다. 왠지 술을 모으는 취미에 빠진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간다. 하지만, 이 정도로 취미라고 한다면 실례일 거 같다.
퇴근 후에 1~2잔의 위스키는 나에게 있어서 소확행이다. 누군가 매일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이라고 걱정을 했다. 그런가 싶기도 해서 이틀에 한 번으로 바꾸었는데,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가 좋아하는 조니워키 블루 라벨은 약 25만 원 정도의 가격이기 때문에 구입하기 쉽지 않다. 이 정도 가격이면 부담 없이 하이볼로 마시기도 아깝기 때문에 부담이다. 정지아 님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을 즐겼다는데, 술꾼임이 틀림없다.


책을 읽고, 술 이야기만 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사연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제목이 술에 관한 것인데, 사람을 만나야 술도 마실 테니 사람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사연이 술 이야기와 함께 어울려져 재미있게 읽었다. 맥켈란 1926이라는 엄청난 고가의 술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 한 권을 낼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진 저자가 솔직히 부러웠다. 저자를 만나기 위해 전라도 구례까지 찾아와서, 더구나 비싼 조니 워커 블루 라벨을 가져와서 만나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있었다는 점이 부러웠다.


퇴직 후 멀리 지방으로 가서 산다면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내가 위스키를 사서 찾아가고 싶은 사람은 있을까? 갑자기 우울해진다. 오늘도 위스키 한 잔이 필요한 밤이다.





2024.2.2 Ex. Libris. HJK

오래전, 부모님 이야기를 <빨치산의 딸>이라는 실록으로 쓰고 수배를 당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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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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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을 쓴 황보름 작가의 에세이인 <단순 생활자>를 읽었다. 읽으면서 단순 생활이라는 의미가 뭔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별로 신통치 않다. 그저 혼자 살면서 쓰고 싶을 때 글 쓰고, 산책하고, 배우고 싶으면 수강하고, 깨끗하게 주변 정돈하면서 청소를 즐기는 사람의 라이프이다. 인세를 받아서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단순하게 사는 삶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아니 부러웠다. 퇴사를 하고 전업 작가가 된 저자가 퇴사를 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저 출근하기 싫어서였다는 대목에서 공감했다. 모든 직장인은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저 출근하기 싫어서이다.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작가들은 비슷한 패턴인 거 같다. 베스트셀러 책을 내고, 이름이 알려지면 그들의 삶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책을 출간하는 패턴, 왠지 반복된다는 느낌은 나만 느끼는 걸까? 그렇다고, 그들의 에세이를 안 읽는 것은 아니다. 나는 책과 독서를 다루는 책을 좋아한다. 작가들의 삶도 책과 독서와 관련이 있으니 틈나는 대로 읽는다. 다만, 구매는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대여한다. 다음에 읽을 책 중의 하나가 정지아 작가가 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도서관에서 예약하고, 대여했다.

하지만, 이 책은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단순한 생활을 쓴 것이니 그런 것일까? 이 책에서 황보름 작가가 언급한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는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나중에 다시 읽기 위해 소장 중인 아끼는 책이다.

어찌 보면, 유투브의 브이로그나 에세이는 비슷한 거 같다. 그들의 생활이 주제이다. 인간이 가지는 호기심 중의 하나가 남이 어떻게 사는가이다. 나만 그럴까?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재미가 유투브를 계속 보게 하고, 에세이를 계속 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독한 삶에서 자신의 루틴을 만들고, 심플하고 소박한 라이프를 즐기면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하다. 인생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나이가 들면서 점차 고독의 시간이 찾아올 때 덤덤하게 맞이하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 고독의 시간은 찾아온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2024.1.22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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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이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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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책을 읽는 것과 다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글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책을 많이 읽으면 글 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글을 쓰는 행위, 그 행위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기는 나만 읽는 글이다. 일기를 쓰면서 남에게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기는 자신만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해서 남긴 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쓸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일기를 잘 쓸 수 없어서 일기를 못 쓰는 것이 아니다. 잘 쓰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일기를 쓰는 행위, 그 자체를 하기가 어렵다. 어렸을 때 방학 때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정말 싫었는데, 지금 나이 들어도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


책을 읽고, 소감을 남기는 과정은 어느 정도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귀찮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이 마음에 든다면 더욱 소감을 남기고 싶다. 책을 통해서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나 자신의 이야기는 굳이 글로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과정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여곡절이 있는데, 남이 쓴 책은 읽고, 쓰면서 왜 나에 대한 글은 못 쓰는 것일까? 항상 의문을 가져왔다. 대체 왜 글을 쓰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쓰기에 대한 적지 않은 책도 읽었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좋은 글들이 내가 가져왔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책이다. 비록 후반부로 갈수록 전반부의 인상이 이어지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책의 일부분이라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이라도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품고 있던 화두인 왜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베스트셀러가 나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처럼 내 의문의 답도 누군가에게 답이 아닐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이를테면 밥벌이의 현장에서 부당한 시스템에 부딪혔을 때, 그리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능력이 없을 때, 그래서 그 무능이 모멸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라고 생각했다. 이미 세계에 공고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려운 권위들이 내게 순종을 요구할 때, 그를 따르지 않으면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더 많아질 때, 넙죽 고통을 받아 들지 못하는 비겁함이 또 다시 모멸로 돌아왔을 때도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고 실제로 달라지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한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구체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도 '쓸 수 있다'라는 사실 자체는 내게 구체적인 힘을 되었다. 내 힘을 내가 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되니까. <P.33>


더 나은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 더 정확한 글을 쓴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글쓰기는 나를 둘러싼 거대한 미지를 구획하여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 내가 처한 상황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단어는 언제나 모자랄 수밖에 없다.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같아 보일 수 있는 '그 상황'과 '이 상황'이 왜 다른지 알고, 어떻게 다른지 표현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짜증의 덩어리일 뿐인 감정이 귀퉁이마다 얼마나 다양한 맥락을 갖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P.38>


모든 인간이 한평생을 지지고 볶아도 결국 제 인생 하나 살다 간다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 될 일들이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도 맞지만 태양 아래 '나'는 나 하나라는 것도 맞다. 모든 글은 쓴 사람의 몸(마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태양빛이다.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 내가 저자들에게 보내는 응원은 그래서 전부 진심이다. 많이 팔릴 책, 세상에 균열을 낼 책, 비평적 찬사를 받을 책의 저자는 따로 있을지 몰라도, '단 한 사람'을 통과한 원고는 언제나 내 앞에 있다. <P.112>


저자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명언이라고 소개한 한 문장이 있다. 대단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먼저 기죽지 말고,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노력은 필요하다. 겸손하게 물러서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에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그냥 대단하지 않은 내가 이 정도까지 했으면 잘했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이 아닐까?

- 겸손해지려 하지 마. 넌 그만큼 대단하지 않아.


2023.10.21 Ex. Libris. HJK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는 제목은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가제로 붙여둔 것이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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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2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타락시아 2023-10-30 21:03   좋아요 0 | URL
앞으로 마음에 두고 싶은 말입니다. ㅎㅎ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현황을 매일 들여다 보면서 러시아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도 우크라이나를 네오 나치로 정의했기 때문이라는데 물론 이는 거짓이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명분을 찾기 위해서 제2차세계대전 나치를 다시 소환시켰다니 얼마나 나치에 대한 증오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엄청난 책이 도착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 모스크바 함락이라는 중대한 목표를 가진 독일 국방군 중앙집단군이 수행한 바르바로싸 작전에 대한 책이다.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독소전쟁사 책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소전쟁사 초반부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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