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 - 세계사를 뒤흔든 중동의 거대한 바람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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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눈으로본 세계사'를 읽고, 이슬람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 책을 읽은지 꾀 오래되어 이슬람에 대한 역사도 희미해져갔다. 이슬람 역사에 대하서 다시한번 빠져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전직 외교관 출신이라 그런지, 이슬람의 역사를 설명하면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막에 떠돌아 다니던 유목민을 이슬람교는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리고 그 힘은 대단했다. 이베리아 반도까지 팽창하며 유럽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이 이슬람이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빈을 포위 공격하며 유럽을 위협하였다. 

  이러한 화려한 이슬람의 역사를 이슬람인들은 잊지 못한다. 서세동점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슬람인들은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추구하는 정치인들과 과거 영광스러운 순수 이슬람시대로 돌아가자는 종교인들로 양분된다. 이에 대해서 유광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에 생긴 문제는 이 시대의 중지를 모아 현대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187쪽


  영광스러운 과거가 오늘의 족쇄가 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 것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설계해야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과거만을 고집하며 과거를 오늘에 재현하려고 한다면 이는 과거의 노예일 뿐이다. 우리가 과거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교훈을 얻고, 과거의 승리와 패배의 요인을 알아내어, 오늘을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인 과거의 성공 이야기에 취해서, 과거에 했었던 모든 것을 재현하면 과거의 영광이 돌아올 것으로 착각한다. 역사는 변화와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 다시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변화된 환경과 발전된 사회라는 조건 하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할지라도, 과거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패배자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이슬람은 중세 유럽인들이 이슬람의 발전된 문물을 배워 근대를 이끌어낸 점을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탈레반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과 IS에서 이뤄지는 반인륜적인 행동은 이슬람교의 전통에도 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재미있게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싶다면, 이책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도 몇가지 오류들이 있다. '알라신'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알라'는 '신'을 의미한다. '알라신'은 '신신'의 뜻이니, 너무도 황당한 표현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120쪽에 "오스만이 진출하는 곳에는 언제나 예니체리가 앞장섰다."라는 표현이다. 물론, 예니체리를 미화시키는 표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사실과는 다른다. 예니체리는 다른 군대를 보내고, 최후의 결정적 순간에 투입해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부대이다. 그들을 총알받이로 앞장세우는 일은 없다. 

  분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서아시아 지역(중동)을 바라보며, 이제는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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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4-13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광스러운 과거가 오늘의 족쇄가 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된다는 교훈을 배워갑니다. ^^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박상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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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얼굴을 보려면, 물에 비춰보고,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려면 옆사람의 얼굴을 보라! 라는 말이 있다. 조선의 모습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이웃나라를 바라보면서 조선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듯 싶다. 저자 박상휘는 제일교포 3세로 학부는 중국어 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에서 '조선 통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중국 중산 대학 국제 번역 학원 특빙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경계인으로서 한중일의 문화를 두루 섭렵한 박상휘가 쓴,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라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본에 우리를 비춰보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수 많은 조선 선비들의 눈을 통해서, 일본을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통해서 조선 시대 우리의 모습을 바로 비춰볼 수 있다. 


1. 임진왜란의 트라우마

  신숙주가 죽으면서 왕에게 "일본과 관계를 끊지 말아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신숙주는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적이기에 적의 동태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쪽 손은 반드시 잡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삼포왜란과 을묘왜변을 거치면서 조선은 일본과 관계를 끊는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맞이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수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 중에는 조선의 선비, 강항도 있었다. 강항의 눈에 일본은 삶을 가볍게 여기며 가족과 살갑게 지내지 않는 사무라이의 나라로 비춰졌다. 1617년 사형수 중에서 참수를 거부하고 스스로 할복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 이경직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또한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자결하기를 원한다. 목욕하고 이발한 다음 눈을 감고 염불한다. 스스로 배를 가르고 손으로 오장을 끄집어내어 죽으면, 보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 칭찬하고 그 자손도 또한 세상에 이름이 높아진다."-45쪽


  죽음을 미화하는 일본! 죽은 죄인의 시체를 시험삼아 만두처럼 마구 찍으며 자신의 칼을 시험하는 '타메시기리'를 행하며 어린아이들이 와서 보도록 하는 일본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단오에는 창칼로 사람을 죽인다. 특히 원한을 가진 사람을 죽이며, 이때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조선 선비의 문화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이러한 사무라이 문화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 "롯본기 김교수"에서 타메시기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폭력이 일상화된 일본의 민낯을 바라보니 소름이 끼쳐온다. 

  조선의 선비들은 폭력이 살아있는 일본 사회를 보며 임진왜란의 공포와 충격이 소환되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일본이지만, 무력으로 그들을 응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 원한이 없냐는 일본인의 질문에 조선 선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처단해 원수를 갚아주었기에 원한이 없다고 말했다. 어찌 임진왜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사람만의 잘못일까? 일본을 응징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며 다시는 임진왜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일 것이다. 조선 선비들은 칼의 문화가 살아있는 일본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다시는 이들과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2. 귀머거리 조선의 정신승리

 오규우 소라이는 1711년 통신사와 제자들이 주고 받은 수창시를 모아 '문사기상'을 편찬했다. 이 책의 발문에 "우레가 치면 만물을 놀라게 할 수 있지만 귀머거리는 편안하게 여기니, 문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라는 말이 있다. '귀머거리'는 조선 사절을 뜻하며, 우레는 소라이 학파를 뜻한다. 조선에 대한 비하와 소라이 학파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표현이다.  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시한수를 얻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문사기상'의 이 구절을 우리는 웃어 넘길 수 없다. 도대체 일본에 무슨 일이있었던 것일까?

  1636년 김세렴이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 일본의 문화는 조선에 한참 뒤졌다. 유교 경전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한시를 짓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너무도 많은 일본인들이 통신사의 시한수를 얻기 위해서 줄을 섰다. 통신사의 글은 값이 꾀나 나갔으며, 부적처럼 사용되었다. 통신사 스스로 생각해도 수준이 떨어지는 시를 급하게 지어서 일본인들에게 주면, 일본인들은 즐거워했다. 

  그런데, 1748년 통신사로 일본에 간 홍경해는 조선의 조선술이 일본에 뒤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조선술의 순위가 아란타, 중국, 일본, 조선이라고 서술될 정도로 조선의 기술은 뒤떨어졌다. 심지어 1763년 기록에는 조선배가 일본인에게 비웃음을 받을 지경이라고 적고 있다. 조선의 판옥선이 일본의 세끼부내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계속된 기술개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조선의 조선술은 일본에 역전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기술자를 천시여기는 조선이 결국 일본에 기술역전을 당했다.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항이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성리학을 전해준 이후, 조선의 성리학은 교조주의에 빠져든다.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조선의 경직된 학문 풍토이다. 그에 반해서, 뒤쳐졌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일본의 학자들은 성리학을 비판하며 자유롭게 학문의 날개를 펼쳤다. 그들 학자들 중에서 오규 소라이는 단연 돋보인다. 주자학을 비판하며 주체적으로 유교경전을 비판 그는 조선 통신사들의 한시 수준을 단신 빨리 짓는 것만을 추구한다며 비판한다. 그의 제자는 조선을 '귀머거리'에 비유한다. 그랬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사실이다. 조선의 주자성리학은 교조화되었다. 유연성을 잃어버린 조선 성리학은 주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오규 소라이의 사상은 중화사상의 틀을 벗어나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규 소라이의 영향을 받은 카꾸다이의 말을 들어보자.


  "나라에는 각기 나라의 도가 있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백성이 편안해집니다. 인ㄷ도에는 브라만교가 있어 부처의 도와 함께 나란히 행해집니다. 서양에는 천주교가 있고, 그밖에 이슬람교라든지 라마교 같은 것을 여러 나라들이 혹 모두 갖고 있습니다. 작자칠인은 모두 개국의 군자이고 (중략) 어찌 꼭 중국만이 유독 귀하고 이적의 가르침은 없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 268쪽"장문계갑문사"


  일본은 중국중심사상에서 벗어나서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중국의 중화사상에 얽매여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 오규 소라이 학파의 말을 귀담이 듣고 성리학 교조주의의 알을 깨고 나오기를 기대하기에는 조선 선비는 '귀머거리'나 다름없었다. 조선의 비극은 이미 이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어찌 흥선 대원군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했기에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졌다고 단정할 수 있으랴?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조선이 빨리 개항한들 근대화에 성공했으리라고 확언하기 힘들다. 역사에서 비약은 있을 수 없다. 조선은 18세기 부터 근대를 준비했어야했다. 그 출발점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조선의 사신을 일본은 '조공사절'로 위장하였다. 이를 통해서 막부의 권위를 전국에 과시했다. 조선은 문화사절로서 야만적인 일본은 문명국으로 만들어 다시는 임진왜란의 전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믿음으로 통한다는 뜻의 통신사는 본래의 뜻을 잃어만 갔다. 조선이 일본에 문화적 우월감에 취해있을 때, 일본은 부단히 조선을 배웠다. 마침내 조선을 뛰어 넘기 시작했다. 1811년 더 이상의 통신사는 파견되지 않았다. 일본은 인공섬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이미 일본은 서구화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고, 우리는 찬란한 중화 문명에 취해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에서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배자도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는 승리할 것이요. 현재의 승리에 취해서 안일에 빠진다면 패할 것이다. 일본 막부의 통치방법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하며, 맹자가 말한 마음으로부터 진심어린 복종 즉, '심복'을 얻지 못한 도쿠가와 막부는 흙이 무너지는 것 처럼 무너질 것을 예언한 원중거와 같은 조선의 선비들이, 주자 성리학의 미몽에서 조선을 깨우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다시는 그 미몽에 빠져들이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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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책을 명화와 같이 살펴본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림 쏙 세계사` 는 그림과 세계사라는 두마리 토끼를 잘잡은 책이다. 쉬운 문채라 청소년들도 쉽게이하할 수있다. 그렇다고 얕은 내용서술 만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다. 시중의 청소년 대상 세계사 책과는 달리 깊이 있는 설명도 이뤄졌다. 세계사를 가르쳐 본 교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쉬우면서도 재미 있는 서술은 이 책을 단숨에읽게 만들었다. 청소년들과 교양을 쌓고 싶어하는 일반인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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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3-14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척 흥미 갑니다!

얄라알라 2021-03-14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하고 갑니다
 
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反중국역사
양하이잉 지음, 우상규 옮김 / 살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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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이 우리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대두되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진형형이다. 동북공정을 처음 접했을때, 중국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보는 관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도,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수와 당나라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것이 중국 한족의 역사 이해방식이다. 우리의 세계사 교육은 한족이 세우지 않은 왕조 조치도 중국사에 편입시켜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놀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우리가 이제는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에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해야할 때가 되었다. 중국에 귀화한 내몽골 오르도스 출생의 양항이잉은 중화패권사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주장에 귀 기울여보자.

 

  책의 저자 양하이잉은 1964년 내몽골 오르도스 지역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중심부 문화의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라났다. 그는 인류학과 고고학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며 연구 활동을 했다. 1989년에 일본 유학을 가서, 2000년에는 일본에 귀화한다. 일본이라!! 일본은 한국인인 나에게는 제국주의 침략성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로 비춰진다. 일본을 추월해서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일본은 몹시 싫어한다. 반한 감정뿐만 아니라, 반중감정도 대단한다.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폭력을 경험한 양하이잉의 역사서술관점은 일본인의 반중감정과 쉽게 합일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내몽골 제노사이드를 고발한 '묘지없는 초원'이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한 것은 이를 증명해준다. 이책 곳곳에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인용되었으며, 자신을 도와준 일본인 학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표현되어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중국 한족 문화의 폭력성을 경험한 그에게 일본은 친구였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일본인들이 china를 '지나'라고 번역하여 부르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지나'라는 용어는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보다 중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해준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부르며 중화중심적 사고가 묻어나는 '중국'보다는 '지나'라는 용어가 중국을 객관화시켜준다. 양하이잉은 곳곳에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역사에 당당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중원에는 태국계 하인(夏人)이 있었으며, BC13세기경에는 만주 동북쪽 수렵민인 은인(殷人)이 들어왔으며, 서족에서 유목민인 주인(周人)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선듯 믿겨지지 않았다. 특히 은인(殷人)을 만주 동북쪽 수렵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여 신기하기도했다. 양하이잉은  "황허문명보다. 1000년이나 일찍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초원의 훙산 문명이 있었고, 훙산문명을 만든 사람들이 황허로 이주해 들어 왔다."라며 중국 문명에 훙산문명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훙산문명을 고조선 문명으로 보고, 고조선의 문명이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물론, 양하이잉은 훙산문명의 주인공을 유목민족으로 보고있고,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은 고조선으로 보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양하이잉은 이 책 곳곳에서 중국의 프로파간다를 공격한다. "위대한 한족에게는 수 당이 가장 번성환 왕조였다.", "원나라는 중국이 가장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던 시대", "티베트와 몽골은 청나라의 일부였기에 지금도 우리의 영토"라는 중국 한족중심의 주장에 대해서, 수 당은 선비족의 국가였으며,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이며,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중국 한족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송과 명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양하이잉의 주장을 듣는다면 무척 뼈아픈 지적일 것이다.

  양하이이은 단순히 중국 한족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중국을 설명한다.

  "두루 천하는 모두 왕의 땅이다."라는 관념을 가진 중국이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국토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현대 중국은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아프리카에 인프라 투자를 나서면서 중국의 저소득층을 대량으로 이주시키는 현실과 열결시킨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는 현상의 역사적 근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파룬궁을 비롯해서 종교에 대한 탄압을 하는 이유도 양하이잉은 중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 말기에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 반란은 종교와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다. 백련교도의 난, 의화단 운동, 태평천국운동 등등.... 이러한 역사의 트라우마는 중국 정부에게 종교를 통제하도록 했다. 단순히 종교를 아편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설명을 역사적으로 해내고 있다.

 

 

  외신을 통해서 이슬람 교도에 대한 중국정부의 탄압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종교에 대한 박해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위구르인의 강제 결혼을 시키며 그들을 중국인화 시키려는 노력을 가혹하게 펼치는 모습도 보인다. 한족 중심의 역사 문화 패권주의는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양하이잉이 일본으로 귀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중국의 역대왕조는 빠른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전성기를 지나면 빠른 노쇄기를 겪는다. 지금 전성기를 맞이한 중국이, 언제 빠른 노쇄기에 접어들지 궁금해진다. 그때, 억압받았던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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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심리학 -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알려주는 설득과 협상의 비밀
표창원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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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현장에서 교사는 교육자로서의 역할만 할 수 없다. 때로는 부모의 마음으로 다독이기도하고, 때로는 경찰이 되어 질서를 잡아야한다. 때로는 프로파일러가 되어 학생과 심리 싸움을 해야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학교 현장도 복잡해지고 있다. 한부모가정, 조손 가정,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교사는 가정에서 해주지 못하는 것을 해주어야만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내가 프로파일러가 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도, 교사에게 너무도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우리 학교현장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교사들 사이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교육이 되지 않는 학생에게 교육자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프로파일러의 지혜가 필요했다. 프로파일러 표차원 전 교수는 우리 교육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까?

 

 

  이 책에는 프로파일러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수사기법과 면담 기법들이 소개되어있다. 단순히 범죄자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기법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표창원 전교수는 이를 비즈니스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지를 아울러 제시했다. 나는 여기에 교육현장에 프로파일러 기법을 접목시킬 방법을 구상했다.

  요즘, 문제적 학생들은 자신이 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고서는 자신이 언제 했느냐며 오리발을 내민다. 눈물까지 흘리는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했다. 항상 휴대폰이나 휴대용 녹음기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차례했다. 이러한 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프로파일러 기법들이다. 심리학 서적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이 꾀있었으나,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첫째,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시간을 설득하라. 문제아들과 면담을 할때, 면담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금 복귀해보면, 학생을 설득하기 전에 학생보다 내가 조급해있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협상을 지배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놓치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 시기, 오바마에게 일본과 관계 개선 시기를 약속한 정부가 일본과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엉터리 합의를 한 것을 떠올린다면, 시간에 쫓기는 협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협상을 하기 전에, 설득을 하기 전에, 면담을 하기 전에 먼저 시간을 지배하자.

  둘째, 논리력을 치우자. 스스로 반대자, 공격자,비판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논리를 비판하고 다시 그에 대한 반박 자료를 보강하자. 이는 학생면담 뿐만 아니라,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 논리력을 갈고 닦자.

  셋째, 사이코패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숙지하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전해준 직장 내 사이코패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중에서 몇가지를 선별해 가슴에 새기자.

  1. 누구에게든 지나치게 의존하지 마라.

  2. 언제나 '유사시 대비책'을 갖추어라.

  3. 위기상황에서도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침착할.

  4. 긴박한 상황이 지난 후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

  5. 보복하려 하지말고, 대비하고 대처하라.

  6. 금전거래 요청, 무리한 부탁은 단호히 거절하라.

  7.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를 과감히 벌려라.

  8. 결코 흔즐리지 않을 '마음의 중심 기둥'에 의지하라.

  다른 유용한 프로파일러 기법들이 있지만, 지금 내가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위의 세가지이다. 그래, 대지에 깊게 뿌리 박은 나무처럼, 뿌리 뽑히지 말고 오늘을 살아내자.

 

 

  학교 현장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너무도 착해서 잘해주고 싶은 학생부터, 어찌 교복을 입은 학생이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학교를 뒤흔드는 학생이 있다. 교사는 이들 모두에게 교육자로 행동해야한다. 교사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감정적일 수도 있다. 교사가 감정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교사는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순식간에 약자로 전락하게 된다. 교사를 자극해서 분노하게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교사를 협박하는 사례들을 바라보며, 교사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자로서의 능력 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고, 상황을 직시하며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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