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反중국역사
양하이잉 지음, 우상규 옮김 / 살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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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이 우리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대두되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진형형이다. 동북공정을 처음 접했을때, 중국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보는 관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도,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수와 당나라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것이 중국 한족의 역사 이해방식이다. 우리의 세계사 교육은 한족이 세우지 않은 왕조 조치도 중국사에 편입시켜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놀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우리가 이제는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에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해야할 때가 되었다. 중국에 귀화한 내몽골 오르도스 출생의 양항이잉은 중화패권사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주장에 귀 기울여보자.

 

  책의 저자 양하이잉은 1964년 내몽골 오르도스 지역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중심부 문화의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라났다. 그는 인류학과 고고학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며 연구 활동을 했다. 1989년에 일본 유학을 가서, 2000년에는 일본에 귀화한다. 일본이라!! 일본은 한국인인 나에게는 제국주의 침략성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로 비춰진다. 일본을 추월해서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일본은 몹시 싫어한다. 반한 감정뿐만 아니라, 반중감정도 대단한다.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폭력을 경험한 양하이잉의 역사서술관점은 일본인의 반중감정과 쉽게 합일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내몽골 제노사이드를 고발한 '묘지없는 초원'이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한 것은 이를 증명해준다. 이책 곳곳에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인용되었으며, 자신을 도와준 일본인 학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표현되어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중국 한족 문화의 폭력성을 경험한 그에게 일본은 친구였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일본인들이 china를 '지나'라고 번역하여 부르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지나'라는 용어는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보다 중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해준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부르며 중화중심적 사고가 묻어나는 '중국'보다는 '지나'라는 용어가 중국을 객관화시켜준다. 양하이잉은 곳곳에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역사에 당당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중원에는 태국계 하인(夏人)이 있었으며, BC13세기경에는 만주 동북쪽 수렵민인 은인(殷人)이 들어왔으며, 서족에서 유목민인 주인(周人)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선듯 믿겨지지 않았다. 특히 은인(殷人)을 만주 동북쪽 수렵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여 신기하기도했다. 양하이잉은  "황허문명보다. 1000년이나 일찍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초원의 훙산 문명이 있었고, 훙산문명을 만든 사람들이 황허로 이주해 들어 왔다."라며 중국 문명에 훙산문명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훙산문명을 고조선 문명으로 보고, 고조선의 문명이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물론, 양하이잉은 훙산문명의 주인공을 유목민족으로 보고있고,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은 고조선으로 보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양하이잉은 이 책 곳곳에서 중국의 프로파간다를 공격한다. "위대한 한족에게는 수 당이 가장 번성환 왕조였다.", "원나라는 중국이 가장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던 시대", "티베트와 몽골은 청나라의 일부였기에 지금도 우리의 영토"라는 중국 한족중심의 주장에 대해서, 수 당은 선비족의 국가였으며,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이며,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중국 한족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송과 명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양하이잉의 주장을 듣는다면 무척 뼈아픈 지적일 것이다.

  양하이이은 단순히 중국 한족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중국을 설명한다.

  "두루 천하는 모두 왕의 땅이다."라는 관념을 가진 중국이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국토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현대 중국은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아프리카에 인프라 투자를 나서면서 중국의 저소득층을 대량으로 이주시키는 현실과 열결시킨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는 현상의 역사적 근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파룬궁을 비롯해서 종교에 대한 탄압을 하는 이유도 양하이잉은 중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 말기에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 반란은 종교와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다. 백련교도의 난, 의화단 운동, 태평천국운동 등등.... 이러한 역사의 트라우마는 중국 정부에게 종교를 통제하도록 했다. 단순히 종교를 아편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설명을 역사적으로 해내고 있다.

 

 

  외신을 통해서 이슬람 교도에 대한 중국정부의 탄압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종교에 대한 박해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위구르인의 강제 결혼을 시키며 그들을 중국인화 시키려는 노력을 가혹하게 펼치는 모습도 보인다. 한족 중심의 역사 문화 패권주의는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양하이잉이 일본으로 귀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중국의 역대왕조는 빠른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전성기를 지나면 빠른 노쇄기를 겪는다. 지금 전성기를 맞이한 중국이, 언제 빠른 노쇄기에 접어들지 궁금해진다. 그때, 억압받았던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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