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서평
황현필 지음
먼저 [이순신의 바다]를 출간한 역바연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황현필의 유튜버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상을 열번을 넘게 반복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책으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에 읽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워온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료는 너무나 일부분이었고, 외국 유명 유튜버가 이순신 장군에 관한 것을 만화로 만든것을 보고, 솔직히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더 앞당겼을 것이고, 일본과 명나라 사이에서 조선의 존패가 어찌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순신을 제대로 알고 싶었습니다. 이순신은 어린시절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전쟁 놀이를 하다가 진을 치고 있는데, 동네 어른이 그 진을 무시하고 걸어가자 이순신이 분노해서 활 시위를 조준한채 물었다고 한다.
"여기 진 쳐놓은 게 보이지 안나요? 어째서 함부로 들어오는 겁니까?" 이때부터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피해다녔다고 한다.
이순신은 32세에 식년 무과에 합격하였는데 임진왜란을 앞둔 16년 전입니다. 두만강 녹둔도 전투이후 곤경에 처해서 백의종군에 처해졌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가 되어 일본이 침략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해서 전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장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전략을 고심하고, 하급 병사들의 의견도 수렴하여서 열띤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관할지 5관 5포의 병력 충원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했다. 전투선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판옥선으로 개선하였고, 판옥선에 함포를 장착했다. 이때 신기전, 비격진천뢰, 장병겸의 무기를 만들었다.
노를 젓는 격군들을 훈련시키고 전라좌수영의 수군들에게 맹훈련을 시켰다. 백병전에 대비해서 일본군이 판옥선에 올라오지 못하게 궁리한 끝에 거북선을 만들게 되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밖으로 확대하고 싶어서 조선을 침략하는 계획을 짠다. 일본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가 부산에 상륙을 해서 경상도까지 침략을 했고, 옥포해전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구원 요청을 받은 이순신은 판옥선 24척으로 출정을 하여서 임진왜란 첫 승리를 얻었다. 이때, 원균은 판옥선을 수장시키고 도망을 갔다
이순신은 합포해전과 적진포 해전으로 3승을 연이어서 거두었다. 사천해전이 거북선의 첫 등장이었고, 위력이 확인된 첫 승리의 전투였다. 당포해전의 승리까지 조선 수군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에서 승리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순신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한산도 대첩에서 와키자카는 패전했고, 이후 일본군들에게 이순신은 염라대왕이었고, 판옥선은 저승사자였다. 안골포 해전, 장림포해전, 화준구미해전, 다대포해전, 서평포해전, 절영도해전, 그리고 이순신이 가장 큰 승리라고 생각했던 부산포해전에서 승리했다. 웅포해전을 끝으로 휴전이 이어졌다.
일본의 간계와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선조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고, 파직당하여 또다시 백의종군의 길에 올랐다. 새롭게 삼도수군통제사 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하고 배설의 판옥선 12척만 살아서 돌아가게 되었다. 최고 지휘관의 역량이 전투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대표적 사레로 남게 되었다.
칠천
량의 패전으로 이순신은 흐느껴 울었다. 몇년에 걸쳐만든 조선의 무적 함대가 사라지고 전투경험을 갖춘 정예병 수천명이 억울하게 수장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했다. 이순신은 배설의 판옥선 12척으로 다시 조선 수군을 재건하였다.
일본군은 슬금슬금 조선을 다시 침공하였고, 어란진해전을 승리로, 울돌목에서 왜군들을 유인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유명한 어록이 있다.
"죽으려고 하면 곧 살 것이요(必死則生 ), 살려고 하는 자는 곧 죽을 것이다(必生則死)" 1대 133의 전설적인 전투가 시작되었고, 이순신의 대장선이 홀로 고군분투를 하다가 뒤이어 구경하던 판옥선들이 합류해서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군은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이순신의 본가와 아산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렸고, 셋째 아들 이면도 전사했다. 절이도 전투에서 승리하고 조명연합군의 순천왜성전투의 공격은 실패했지만 노량해전은 역사상 최대의 해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삼국의 에이스들이 모인 전투였고,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총에 맞아서 전사했지만 승리한다.
이순신의 사망설과 은둔설은 그만큼 이순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살아있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순신이 없었다면 300년 더 일찍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을 것이고, 그 치욕스런 역사적인 수치를 이순신 개인이 막아 내은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해군의 다짐을 보면서 가슴 뭉클함이 솟아났다.
"해군의 다짐,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세계 전쟁사에 회자되고 감탄사를 연발케하는 이순신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있다. "나는 제2의 이순신을 기다리노라"는 신채호의 말을 다시한번 새겨본다
위 서평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yeokba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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