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러브의 인터뷰. 다시 읽어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겉으로만 보면 우린 생계부양자와 돌봄노동자로 엮인, 참으로 모범적인 관계였다. 우리가 이룬 유기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훌륭한 부품이었고, 빈틈없이 완벽해서 어떤 오류도 나지 않을 듯 보였다. 시곗바늘처럼 찰칵찰칵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나 하나 불만 없이 수긍하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평온했고, 모든 걸 헝클어버리고 싶은 짓궂은 충동에 휩싸일 때도 창틀을 벅벅 닦으며 떨쳐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말한 ‘우리 돈‘과 ‘내 돈‘이 그동안 눌러두었던 분노를 점화했다. 우리의 허술한 연대는 이렇게 박살났다. - P152

"그럼 네가 돈 벌어와!"
남편은 싸울 때마다 말했다. ‘내가 회사 그만두면 네가 어떻게 살 건데?‘라는 협박과 다름없었다. 남편이 밤늦도록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돈 버는 유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어쨌든 그가 벌어오는 돈에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건 사실이었고 언제나 돈 버는 일은 다른 일보다 중요했으니까. - P155

집안일과 육아도 그랬다. 돈 버는 사람은 퇴근 후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으므로 무조건 쉬어야 한단다. 돈을 얼마를 벌건 집안일과 육아는 공동의 일이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집에 있는 사람을 부릴 권력을 가질 순 없다. 그럼에도이 사회는 돈 버는 사람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방치해도 되는 면죄부를 부여한다. 그런데 과연 돈 때문일까. 그런 이유라면 돈 버는 여자들도 휴식을 누려야 할 텐데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 P156

신기하게도 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인분의 돈을 벌면서 남편과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일이 줄었다. 누가 아이를 보느냐, 왜 배수구를 닦지 않느냐, 분리수거할 때 플라스틱 병뚜껑을 왜 종이상자에 넣느냐며 아옹다옹하긴 해도 남편에 의해 나의 기쁨이 좌우되지 않았다. 확실한 벌이를 가짐으로써 화가 줄어든 것이다. 나의 자존감이 고작 이정도였나 쓴웃음이 배어나오면서도 가족 안의 역할에 매이지 않는 다른 정체성의 위력을 실감했다. - P162

드디어 발표날, 발표 직전까지 나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앞선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고 마이크를 전달받았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웠다. 일부러 가슴을 더 내밀어 굽어진몸을 펴지게 만들었다.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니 무슨 일인가 싶어 도우미에게 안겨 나를 보고 있었다. 제발 울지 않기를, 5분만 기다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발표를 마쳤다.
내 인생은 애를 낳았단 이유로 끝나지 않았다. - P176

모든 게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왜 남편은 이 일을 고민하지 않는 걸까? 왜 나만 열심히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걸까? 비록 남편이 나를 도와주지만 그가 주도적으로 육아를 맡지 않는 한, 나는 앞으로도 육아와 일 모두를 잡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만 했다. - P182

나는 ‘적당한‘ 관계보다 ‘건강한‘ 관계를 원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며느리‘가 아닌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서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 기분이 나쁜지, 어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무엇을 감당할 수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편 가족들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인연을 이어가면 좋을지를 물은 것이다. - P195

나는 친한 친구나 친정 가족들에게조차 안부전화를 자주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나 전화하고, ‘정말 가끔‘ 누군가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면 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니 시가에 전화하는 일이 ‘의무‘로 주어졌다. 전화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제때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하지 않으면마음이 영 찝찝해 깍듯하게 답하곤 했다. 안부전화를 안 하면 ‘도리‘를 다하지 못한 ‘나쁜 며느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 P196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여성과 남성의 삶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니,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또한 가부장사회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들, 온갖 차별과 폭력을 견디며 혹독한 시대를 지나온 어머니들, 그러면서도 딸보다 아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 어머니들,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구조를 스스로 굳건히 떠받친 어머니들….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이 안타깝고, 아프고, 또 존경스럽다. - P204

나와 시가는 ‘남편‘이라는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계속 뭔가를 시도 중이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반걸음씩 물러났다. 부담 없이 편안한 이 거리가 계속 평행선이 될지, 더 멀어질지, 조금씩 가까워지다 결국 만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다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예의를 지키자는 마음과 언제든 ‘며느리 사표‘를 던질 마음이 공존한다. 개선은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관계다. 한동안은 이 평행선을 유지하며 변화의 방향을 고민할 생각이다. - P206

스물여섯 출판사에 다닐 때도, 서른넷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여성단체에서 일할 때도,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때 나는고마워했던가. 도시락을 싸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노력이라도 해봤던가. 그때의 나는, 우리 엄마의 수고와 고마움도 모르고 밥을 받아먹는 지금 내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 P223

오랜만에 엄마가 오셨다. 빨간 장바구니 카트를 밀고 오리털 파카를 껴입은 오한옥 씨가 왔다.
"봄이야, 할머니 몸이 지금 차. 이따가 이리 와."
남편은 일을 나갔고, 나는 글 쓴다고 밤을 샜다.
"엄마, 봄이 좀 봐줘. 나 좀 잘게."
밤새 친정 엄마의 돌봄노동에 대한 글을 써놓고 또다시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찔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 P225

프리랜서인 내게는 단기 일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과로사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했고, 아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때마침‘ 정년퇴임한 친정 엄마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 P229

부끄럽게도 나는 대학에서 여성 운동을 하면서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결혼한 여자‘의 페미니즘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비혼주의자였고, 가부장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임신이나 출산이 내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신 중에도 내가 아들을 낳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임신 16주가 지나의사가 아이 성별을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잘못 보신 것 같다고, 다시 확인해달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 P2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인과 바다를 30년만에 다시 읽었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더 좋다.


30년 전에는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불요불굴의 의지와 인생의 허망함(뼈만 남은..) 위주로 보였다면, 다시 읽는 노인과 바다는 대치하고 있는 고기를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고기야"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이틀 동안 굶주리고 있는 고기를 불쌍히 여기며, 그러면서도 미안하지만 너를 잡고 죽여야만 하겠다는, 어부라는 직업의 숙명에 대해서 생각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그저 먹이사슬의 일부임을 말하는 생태주의 관점을 보게 된다.


그리고, 노인과 소년의 관계, 소년의 노인에 대한 마음 씀씀이, 존중하는 태도가 너무 좋다. 노인이 소년과 함께 배를 타고 있던 40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여 부모의 반대로 더 이상 함께 배를 타지 못하지만 아침마다 저녁마다 노인의 낚시도구를 함께 날라주고, 80일 넘는 기간 동안이나 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을 위해 커피와 맥주를 챙겨주고 먹을 음식을 챙겨준다. 어떻게 그 소년은 노인을 그렇게 살뜰하게 챙길 수 있을까?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면 나오기 힘든 태도일 것이다. 그건 아마도 노인과 함께 배를 탔던 동안 노인에게서 배운, 노인이 소년을 대한 마음과 태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거친 뱃사람처럼 욕설을 하지도 않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을 것이다. 또 노인의 바다와 고기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에서도 소년은 배웠을 것이다. 바다나 고기를 정복의 대상, 획득의 대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 감사의 대상으로 대하는 자세를 배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소년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인은 꼬박 이틀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기와 힘겹게 대치를 하고 있는 동안, '지금 소년이 함께 있었으며 얼마나 좋을까'를 몇 번이나 되뇐다. 함께 있다면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노인이 그야말로 망망대해 바다에서 거대한 고기와 있는 동안 계속 혼잣말을 하거나 혼자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도 너무 좋다. 지나가다 잠깐 들른 바다새에게도 말을 걸고, 허약한 바다갈매기를 불쌍히 여기고, 힘들어 하다 가도 다시 의지를 다시고, 가지고 오지 않은 장비들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다 가도 지금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자고 말한다. 인생에서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절망에 빠져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그 말들이, 그 태도가, 그 내면의 힘이 너무 좋다.


비록 상어 떼에게 고기를 다 뜯기고 뼈만 남은 채 힘겹게 돌아왔지만, 노인은 소년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사자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하드보일드 문체라고 하며 묘사가 생략되고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도 얇은 편이고 문장도 짧고 간결하여 고등학교 수준의 독해능력이면 영어원서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한다(나의 현재 독해 수준은 고등학교 때 수준보다 낮아졌을 것 같지만…).


영어원서도 언젠가 사둔 것 같은데, 원서로도 읽어봐야겠다.


중딩 첫째에게 "엄마 인생 책이야. 한번 읽어보렴" 했더니 "됐어. 재미없어 보여"라고 바로 반사;;;

초딩 둘째 왈 "재미없어. 읽지마.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계속 물고기랑 싸우다가 상어한테 다 뺏기고 뼈만 남기고 온 이야기야. 지루해."

"너는 축약본으로 읽은 거고 이건 원본이야 원본!"

"그러니깐 더 재미없지!!"

"그....그런가…" 어째 반박할 수 없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6-17 17: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명작이 명작인 이유는 이렇게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유때문이겠죠?
저도 고등학교 때 읽은 책인데 그 때도 좋았지만 아마 지금 다시 읽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2-06-17 20: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이 들수록 더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06-17 1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땐 재미없었어요. 뭐야 이게. 했는데 나이드니 그렇게 슬플수가 없어요 ㅎㅎ 저희 아인 모비딕 읽다말더니 며칠전에 전화와서 넘 재미있다고 ~ 기말고사기간이라 그런걸까요 ㅎㅎㅎ

Falstaff 2022-06-17 18:51   좋아요 2 | URL
중간고사 말고 중간고사 할아비라도 <모비딕>은 인류의 문화유산입니다!
아드님의 책 읽는 눈썰미가 모친 닮아 쌰프, 샤프 말고 쌰프 하네요.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6-17 20:40   좋아요 2 | URL
저도 시험기간에는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도서관 서가를 배회했네요 ㅎㅎ 모비딕 축약본으로 읽어서 저도 다시 읽어봐야하는데!

새파랑 2022-06-17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어린 학생이 읽기에는 조금 감동이 안와닿을거 같아요 ㅋ 저도 성인이 되어서 읽으니까 아하! 이랬던 기억이 납니다~!!

햇살과함께 2022-06-17 20:42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중학교 때 절반 쯤 읽다 한번 덮었어요 ㅎㅎ 나중에 다시 읽으니 좋더라고요

Falstaff 2022-06-17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마초 헤밍웨이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딱 하나, <노인과 바다>는 예외로 칩니다. ㅎㅎㅎㅎ
물론 헤밍웨이를 다 읽지는 않았고요, 대표 장편만 읽은 느낌이 그렇다는 말씀입죠. ^^;;;

햇살과함께 2022-06-17 20:51   좋아요 2 | URL
헤밍웨이의 마초 외모는 제 스타일 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6-17 1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간만에 읽었을때 새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제 읽는가에 따라 감상이 다르죠.

햇살과함께 2022-06-17 20:53   좋아요 2 | URL
학창시절에 읽은 책 다시 읽어보기 좋아요~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많은데 시간이 없네요.
 

2022년 6월 구매한 책

appletreeje님 글 보고 라키비움J 롤리팝 나왔다는 걸 알고 바로 구매. 1호 레드 말고 다 샀지만 안녕달 작가님 인터뷰도 있다니 안살 수 없지. 구매하고 나서 뒤늦게 온 전은주님의 문자^^
(appletreeje님께 땡투!)

앰 아이 블루?는 첫째가 도서관에서 빌려달랬는데 우리 구 도서관에는 한군데도 없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길래 구매. 청소년 퀴어 문학의 고전이라니 나도 읽어봐야지.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treeje 2022-06-16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지않아도 땡투가 들어왔는데 햇살과함께 님이 해주셨군요~~
고맙습니당! 읽고 계시겠지만 참 좋죠?^^
좋은 책을 햇살님과 함께 읽어 더욱 기쁘고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6-16 23:32   좋아요 3 | URL
네 접니다 ㅎㅎ
그림만 봐도 힐링되고 너무 좋죠!!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06-17 12:55   좋아요 2 | URL
appletreeje님과 햇살님의 훈훈한 떙스땡스 대화 넘
좋아요!! 훈훈~~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어요

햇살과함께 2022-06-17 17:04   좋아요 1 | URL
훈훈한 알라딘^^
얄라알라님도, appletreeje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appletreeje 2022-06-17 17: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님, 햇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독서괭 2022-06-17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그림책 잡지가 있었네요? 첨 알았어요! 저도 보고 싶어집니다^^

햇살과함께 2022-06-17 17:02   좋아요 1 | URL
그림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만든 독자 기반 비정기 그림책 잡지에요.
독서괭님도 좋아하실 좋은 그림책과 작가분들 소개가 많아요^^
 

성별이 우리의 역할을 정해줬다. 그동안은 나와 남편의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크게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출산 이후에는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이 우리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결혼했고, 똑같이 아이 둘을 원했고, 똑같이 부모가 되었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 같았지만, 삶은 달라져야만 했다. - P73

돈 버는 남자는 권위를 갖는다. 친정 엄마는 남편이 돈 버느라 고생하니까 맛있는 요리를 해주라고, 퇴근하면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말하지 말라고, 남편이 무언가를 잘하면 크게 칭찬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라고 수시로 당부했다. 내가 임금노동을 그만두고 돌봄노동을 선택한 이후, 내 성질은 죽이고 남편 기는 살려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 것이다. - P75

우리 사회에서 힘을 가진 ‘갑‘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고 ‘을’은 참고 듣기만 한다. 남편과 내가 ‘갑을’관계같았다. 남편과 내가 서로의 역할을 바라보는 자세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통장 잔액 부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기분이 상할까 자존심이 상할까 염려하며 하고싶은 말을 꾹꾹 참았지만, 남편은 내 감정이 상하거나 말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돈을 버는 남편에게는 주체가 되어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날 침묵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 P77

나는 스스로 나를 구해야 했다. 남편은 남자들이 하는 흔한말을 하고, 남자들이 받는 흔한 대우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는 현재의 결혼제도는 그 질서에 순응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차별을 만들어낸다. 남편은 날 무시하는지도 모른 채 상처를 주었고, 나는 자주 결혼을 후회했다. 스스로 자존감을 되찾지 않고서는 남편눈치나 보며 기죽어 살거나 부부관계가 악화될 위기였다. - P79

남편이 밖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자신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갖고 불편한 상황들을 참고 있는지 은근히 내비칠 때는 나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엄마라는 역할에 짓눌려 사는지 말했다. "당신의 책임감이 내 책임감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지마. 당신과 나는 종류가 다른 부담을 안고 살아갈 뿐이야. 그래도 당신 고생에 대해서는 월급이라는 보상과 사회적인 인정이라도 있지. 내 고생의 대가는 남편이 뼈 빠지게 벌어다 준 돈으로 커피나 마시는 맘충이 된 거잖아. 마음 편하게 커피 사 마실 돈을 벌어다 준 것도 아닌데." - P81

남편이 대단하다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남편이 대단하다니요?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성장할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주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데요! 남편은 스스로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수고를 지우지 마세요!" - P88

무언가가 변하면 그것을 따라 변화하는 것들이 있다. 서재에서 하는 일들이 새로운 일로 이어졌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일이 즐거웠다. 육아를 하며 관리하지 못하던 블로그에 다시 책 후기를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했다. 아이를 돌보며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했다가 깊은 밤 서재에 홀로 앉아 글을 썼다. 아이에 대한 글도 쓰고, 세상일에 대한 생각도 기록했다. - P101

집 안에 내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나는 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여자인 내가, 엄마인 내가, 아내인 내가 이런 걸 가져도 되는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던 의심이 사라졌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으로 공간을 채운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공간은 지금 내 삶과 내 모습 그 자체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현실이자, 내가 딛고 서서 머무는 곳이다. 나는 서재를 갖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내 삶을 직시하고 있다. - P104

갓 태어난 아기는 심각하게 무능하다. 신생아는 20시간 넘게 잔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 20시간을 충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양육자에게 찰싹 붙어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언제나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아이는 잠이 든 후에도 내게 붙어있었다. 잠시라도 소파나 침대에 걸터앉으면 바로 깨서 울어댔다. 덕분에 종아리가 퉁퉁 붓도록 아이를 안고 집 안을 배회했다. 종일 집에 있어도 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자꾸 안아달라 보채는 아이는 ‘손탔다‘며 욕을 먹었다. 열심히 안아준 엄마의 잘못이라고 했다. - P117

"그 시기에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엄마기‘잖아요."
누군가 ‘엄마기‘라는 말을 꺼냈다.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청소년이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엄마는 ‘엄마기‘를 겪는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며, 이때 불안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시기의 감정 변화를 대변하는 말은 내가 알기로 ‘산후우울증‘뿐이다. 출산 이후 85퍼센트의 여성이 우울감을 느낀다곤 하지만, 나의 복합적인 감정에 ‘산후우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니 납득도 치유도 되지 않았다. 상태만 악화될 뿐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엄마기‘라는 말은 ‘환자, 비정상‘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 P121

모성의 후광이 엄마를 가호해서 육아체질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육아는 단순노동이다. 그저 많이 하다 보면 어떻게든 잘하게 된다. 육아체질이란 없다. - P124

고정된 성역할을 가르치지 말자고 남편과 이야기했고 그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 와중에도 얄미운 말을 덧붙였다. "알겠어. 그래도 분홍색으로 된 거 말고!" 분홍색으로 된 간호사 놀이 세트를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이유는 ‘분홍색‘과 ‘간호사‘를 아들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자도 분홍색을 좋아할 수 있고, 간호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 P134

여자에게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만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면 충분할까? 남자아이도 자신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자기를 만지려고 할 때 원하지 않는 스킨십을 거부할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 젠더감수성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 P135

"엄마 고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아이에게 일격을 당했다. 남성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고추’는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아무렇지 않게 술술 말하면서, 여성의 생식기를 지칭하려니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고추‘가 있냐고 묻기에 ‘다른 것‘이 있다고만 답했다. ‘없다‘고 하면 여성을 무언가 부족한 존재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가르쳐줬는지 떠올랐다. ‘초초‘, 너무 귀여운(?) 단어였다.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말았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