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보면 우린 생계부양자와 돌봄노동자로 엮인, 참으로 모범적인 관계였다. 우리가 이룬 유기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훌륭한 부품이었고, 빈틈없이 완벽해서 어떤 오류도 나지 않을 듯 보였다. 시곗바늘처럼 찰칵찰칵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나 하나 불만 없이 수긍하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평온했고, 모든 걸 헝클어버리고 싶은 짓궂은 충동에 휩싸일 때도 창틀을 벅벅 닦으며 떨쳐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말한 ‘우리 돈‘과 ‘내 돈‘이 그동안 눌러두었던 분노를 점화했다. 우리의 허술한 연대는 이렇게 박살났다. - P152

"그럼 네가 돈 벌어와!"
남편은 싸울 때마다 말했다. ‘내가 회사 그만두면 네가 어떻게 살 건데?‘라는 협박과 다름없었다. 남편이 밤늦도록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집에서 그의 몫까지 아이를 돌봤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지만 ‘돈 버는 유세‘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어쨌든 그가 벌어오는 돈에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건 사실이었고 언제나 돈 버는 일은 다른 일보다 중요했으니까. - P155

집안일과 육아도 그랬다. 돈 버는 사람은 퇴근 후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으므로 무조건 쉬어야 한단다. 돈을 얼마를 벌건 집안일과 육아는 공동의 일이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집에 있는 사람을 부릴 권력을 가질 순 없다. 그럼에도이 사회는 돈 버는 사람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방치해도 되는 면죄부를 부여한다. 그런데 과연 돈 때문일까. 그런 이유라면 돈 버는 여자들도 휴식을 누려야 할 텐데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 P156

신기하게도 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인분의 돈을 벌면서 남편과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일이 줄었다. 누가 아이를 보느냐, 왜 배수구를 닦지 않느냐, 분리수거할 때 플라스틱 병뚜껑을 왜 종이상자에 넣느냐며 아옹다옹하긴 해도 남편에 의해 나의 기쁨이 좌우되지 않았다. 확실한 벌이를 가짐으로써 화가 줄어든 것이다. 나의 자존감이 고작 이정도였나 쓴웃음이 배어나오면서도 가족 안의 역할에 매이지 않는 다른 정체성의 위력을 실감했다. - P162

드디어 발표날, 발표 직전까지 나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앞선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고 마이크를 전달받았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웠다. 일부러 가슴을 더 내밀어 굽어진몸을 펴지게 만들었다.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니 무슨 일인가 싶어 도우미에게 안겨 나를 보고 있었다. 제발 울지 않기를, 5분만 기다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발표를 마쳤다.
내 인생은 애를 낳았단 이유로 끝나지 않았다. - P176

모든 게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왜 남편은 이 일을 고민하지 않는 걸까? 왜 나만 열심히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걸까? 비록 남편이 나를 도와주지만 그가 주도적으로 육아를 맡지 않는 한, 나는 앞으로도 육아와 일 모두를 잡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만 했다. - P182

나는 ‘적당한‘ 관계보다 ‘건강한‘ 관계를 원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며느리‘가 아닌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서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 기분이 나쁜지, 어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무엇을 감당할 수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편 가족들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인연을 이어가면 좋을지를 물은 것이다. - P195

나는 친한 친구나 친정 가족들에게조차 안부전화를 자주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나 전화하고, ‘정말 가끔‘ 누군가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면 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니 시가에 전화하는 일이 ‘의무‘로 주어졌다. 전화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제때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하지 않으면마음이 영 찝찝해 깍듯하게 답하곤 했다. 안부전화를 안 하면 ‘도리‘를 다하지 못한 ‘나쁜 며느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 P196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여성과 남성의 삶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니,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또한 가부장사회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들, 온갖 차별과 폭력을 견디며 혹독한 시대를 지나온 어머니들, 그러면서도 딸보다 아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 어머니들,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구조를 스스로 굳건히 떠받친 어머니들….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이 안타깝고, 아프고, 또 존경스럽다. - P204

나와 시가는 ‘남편‘이라는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계속 뭔가를 시도 중이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반걸음씩 물러났다. 부담 없이 편안한 이 거리가 계속 평행선이 될지, 더 멀어질지, 조금씩 가까워지다 결국 만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다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예의를 지키자는 마음과 언제든 ‘며느리 사표‘를 던질 마음이 공존한다. 개선은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관계다. 한동안은 이 평행선을 유지하며 변화의 방향을 고민할 생각이다. - P206

스물여섯 출판사에 다닐 때도, 서른넷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여성단체에서 일할 때도,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동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때 나는고마워했던가. 도시락을 싸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노력이라도 해봤던가. 그때의 나는, 우리 엄마의 수고와 고마움도 모르고 밥을 받아먹는 지금 내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 P223

오랜만에 엄마가 오셨다. 빨간 장바구니 카트를 밀고 오리털 파카를 껴입은 오한옥 씨가 왔다.
"봄이야, 할머니 몸이 지금 차. 이따가 이리 와."
남편은 일을 나갔고, 나는 글 쓴다고 밤을 샜다.
"엄마, 봄이 좀 봐줘. 나 좀 잘게."
밤새 친정 엄마의 돌봄노동에 대한 글을 써놓고 또다시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찔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 P225

프리랜서인 내게는 단기 일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과로사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했고, 아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때마침‘ 정년퇴임한 친정 엄마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 P229

부끄럽게도 나는 대학에서 여성 운동을 하면서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결혼한 여자‘의 페미니즘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비혼주의자였고, 가부장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임신이나 출산이 내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신 중에도 내가 아들을 낳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임신 16주가 지나의사가 아이 성별을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잘못 보신 것 같다고, 다시 확인해달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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