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유일한 방비는, 그 딱딱한 상태 속에 피신하여 자신의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그 매듭을 다시 한 번 단단히 졸라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계속 견뎌 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을많이 품지도 않았고, 또 피로 때문에 품고 있던 환상마저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 중에 자기가 맡은 역할이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보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다음에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 P251
피곤하기라도 한 것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만약 리유에게 더 힘이 있었다면, 도처에 퍼져 있는 그 죽음의 냄새는 그를 감상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을 네 시간밖에 못 잤을 때, 사람이 감상적이 될 수는 없다. 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즉 정의의 눈으로, 끔찍하고 바보 같은 정의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즉 선고를 받은 사람들도 역시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페스트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그는 구세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알약 세 개와 주사 한 대면 모든 것을 다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팔을 붙들고 복도까지 따라 나왔다. 그것은 흐뭇한 일이었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 P252
자리에서 일어서기만했던 코타르와 타루는, 당시 자기들의 삶 자체의 이미지인 그 광경들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저 외로이 서 있었다. 무대 위에는 전신의 관절들이 풀려 버린 광대의 모습으로 분장한 페스트, 그리고 관람석에는 붉은 의자 덮개 위에 잊어버린 채 놓고간 부채며 질질 늘어진 레이스 세공품들의 모습으로 지금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 사치. 그것이 바로 그들 삶의 이미지였다. - P262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 P272
"이 세상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거기서 돌아서 있죠."그는 쿠션에 다시 몸을 푹 기대었다."그것은 하나의 사실입니다. 그뿐이죠." 하고 그는 지친 듯말했다. "그것을 그대로 확인해 놓고, 거기서 결론을 끌어내 봅시다." - P273
"결국 죽는 거면서, 남보다 고통을 더 겪는 셈이지."리유가 갑자기 그에게로 몸을 돌려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다가 그만두었다. 자신을 억제하려고 애쓰는 빛이 역력히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어린애에게로 돌렸다. - P280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원대한 포부는 없습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이지요." - P285
2022년 9월 1빠아침 먹으며 한 컷! 영롱한 표지!이 책 저도 따라 읽기 하렵니다.우선 집에 있는 <맨스필드 파크> 먼저.
이러한 것들이 그 질병이 가져온 극단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질병이 그 후 더 기승을 부리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각 기관의 기발한 대응책이나 도청의 처리 능력이나 나아가서는 화장장의 소화 능력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국은 시체를 바다로 내던져 버리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해결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리유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푸른바닷물 위에 일어나는 시체들의 징그러운 거품을 쉽사리 상상했다. 또 만약 통계 숫자가 계속해서 상승한다면 어떠한 조직도, 그것이 제아무리 우수한 것이라 해도, 거기에 견딜 수는 없을 것이고, 도청이라는 것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첩첩이 죽어서 쌓일 것이고, 거리에서 썩을 것이고, 또 공공장소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당연한 증오심과 어리석은 희망이 뒤섞인 심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붙잡고 매달리는 꼴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P235
무시무시한 불행은 오래 끌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것이다. 그런 나날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페스트를 겪는 그 무시무시한 나날들이 끝없이 타오르는 잔혹하고 커다란 불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발바닥 밑에 놓이는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리는 끝날 줄 모르는 답보 상태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 P236
즉, 그 시기의 커다란 고통, 가장 심각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고통은 바로 생이별의 감정이었으며 페스트의 그 단계에 나타나는 생이별의 감정에 대해 새로운 기록을 남겨 놓는 것이 양심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있어서 - P236
고통 자체는 그것의 비장감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 P237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들은 빈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페스트의 지배 속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제는 아무도 거창한 감정을 품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은 단조로운 감정만 느끼고 있었던이다. "이젠 끝날 때도 되었는데." 하고 시민들은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재앙이 계속되는 기간 중에 집단적인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또 실제로 그들은 그것이 끝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초기에 있었던 열정이나 안타까운 감정은 찾아볼 수 없는 채, 다만 우리에게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는, 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성이 비쳐 보이는 말들이었다. 처음 몇 주일간의 그 사나운 충동이 사그라지자 낙담이 뒤따랐는데, 그 낙담을 체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역시 일종의 일시적인 동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 P238
다른 사람들로 말하면, 그들은 밤낮으로 자기네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 신문도 보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혹 누가 어떤 결과를 알려 줄라치면 거기에 흥미가 끌리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딴 데 정신이 팔린 채 무관심한 태도로 듣고 있었다. 그것은, 고역에 지칠 대로 지쳐서 그저 일상적인 자기 일에 과오나 없으면 그만으로 여기다 보니 결정적인작전도 휴전의 날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 대규모 전쟁의 전투원에게서나 상상할 수 있는 무관심이었다. - P248
어떻게 20대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아니 40대라도...
나에게 이해되는 시는 이런 거.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답답함을 욕 한마디로 발화하면서 해방감이 느껴진다. 그런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