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님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장애여성공감의 10여 명의 장애여성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살아내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장애여성공감의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라는 창립 20주년 슬로건을 들여다보며, 더 많은 당사자 이야기가 말하여지길. 더 많이 귀 기울이길. 더 보편화되길.



우리는 이상한(queer) 몸을 가지고 있다. ‘모든 몸은 아름답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때때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 채택하는 선언이지만 각자가 가진 차이들을 쉽게 지우거나 고유한 삶의 방식들을 질문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 뭉뚝하고 얄팍하다. 장애여성들은 정상성의 기준을 해체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한 사람들이며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고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퀴어함은 성소수자를 ‘이상하다‘며 비하하는 말이었지만, 사회와 불화하는 그 이상함이 사회가 추구하는 정상성의 폭력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정신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이나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불구의 정치가 피어난다. 불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불구의 정치를 통해서 단지 사회질서에 통합되기 위한 장애 극복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이상한 몸은 불구의 정치를 위한 우리의 힘이다. 이런 우리의 퀴어함이 자랑스럽고, 퀴어한 존재들과 동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 P20~21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인 홍은전 작가님의 <그냥, 사람>도 다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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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장애여성: ‘장애 여성‘이라고 띄어서 표기할 경우에 ‘장애‘가 ‘여성‘을 수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장애여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야기하고, ‘수식어 - 명사‘라는 구분 없이 하나로 연결된 언어로 이해될 수 있도록 붙여서 ‘장애여성‘으로 표기했다. 같은 맥락에서
‘발달장애여성‘도 붙여서 표기했다. - P4

3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이르는 장애여성들이 인권운동, 예술 공연, 영업, 양육, 미술, 정치 활동, 생산 활동, 일상의 노동,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기 등을 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며 사회와 제도를 바꾸며 살아온 몸의 감각이 젊은 장애여성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 경험을 잘 기록해두고 싶다고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대신 책에 담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갈 후배 세대가 간직할 소중한 자산이고, 인생의 참고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존재하는 모든 몸들이 존엄하다는 사실은 정상성과 기능, 쓸모에 따라 매겨지는 가치에 위배되고, 절대 남에게 폐 끼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공공연한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P6

정상성의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퍼트리면서, 선택적으로 어떤 의존들은 의존이 아닌 것처럼 은폐해왔다. 그 속에서 장애여성들은 독립은 의존 없이 불가능하다고, 의존하는 삶이 시설 수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외친다. 또 어떻게 사회가 장애인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당당하게 드러낸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축적해온 지식 없이는 인식이 확장되고 해방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 P7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혼자 알아서 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폐 끼침이 두려워 정상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의존하는 기술과 과정을 알려주고 있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 P9

젠더와 장애가 교차되는 ‘장애여성‘이라는 언어는 장애여성공감의 운동적 지향을 압축하고 있다. - P13

우리는 이상한(queer) 몸을 가지고 있다. ‘모든 몸은 아름답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때때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 채택하는 선언이지만 각자가 가진 차이들을 쉽게 지우거나 고유한 삶의 방식들을 질문하지 않게만든다는 점에서 너무 뭉뚝하고 얄팍하다. 장애여성들은 정상성의 기준을 해체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한 사람들이며 각기 다른 몸을 가지고 고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퀴어함은 성소수자를 ‘이상하다‘며 비하하는 말이었지만, 사회와 불화하는 그 이상함이 사회가 추구하는 정상성의 폭력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정신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이나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 P20

불구의 정치가 피어난다. 불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불구의 정치를 통해서 단지 사회질서에 통합되기 위한 장애 극복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이상한 몸은 불구의 정치를 위한 우리의 힘이다. 이런 우리의 퀴어함이 자랑스럽고, 퀴어한 존재들과 동료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 P21

장애는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의 경험과 관계들, 더불어 장애와 함께 동반되는 통증은 매 순간 나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애를 떼놓고 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애와 나의 몸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난 여전히 나의 장애와 ‘좌충우돌 적응 중‘에 있으며, 이 적응에는 마침표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 P28

그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몸에 대한 정상성의 기준이 또 하나 깨져나가는 희열을 느꼈다.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살아가는 데 더 어려움이 있다면 ‘골절된 상태로 지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의사의 메시지는 좀 더 쿨하게 나를 나의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날 밤 나는 바로 짐을 싸들고 퇴원했다. - P32

그러나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무시당한 채, 오로지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것에 솔직히 억울함을 넘어 매우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나도 여성으로서 이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다‘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그것이 노동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또 누군가는 장애를 가진 나처럼,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규정되고 이들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 불편한 것이다. - P39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사회에서는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비정상적인 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환상은 의학과 자본이 만나 실제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넘쳐나는 의학 정보와 건강을 매개로 하는 수많은 상품들은 건강한 몸, 즉 정상적인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 P41

소통하는 몸은 자신의 우연성을 삶의 근본적인 우연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몸은, 그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취약하다. 고장은 몸에 내재되어 있다. 몸의 예측 가능성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우연성은 정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 P42

영희는 장애인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당이 굴러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책임이 버거웠다. 장애인을 대표하는 한 명이 상징적으로 정당에 진입하는 방식을 넘어서 장애인의 진정한 정치 세력화를 이루려면 무엇을해야 할까? 영희는 이런 고민을 계속하다가 정당 활동을 정리했다. 6개월 정도 조용히 치유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사무국장을 맡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영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사무국장을맡아 적응 시기를 보내고 지금은 대표로서 장추련에서 계속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P58

장애를 가진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은 여전히 몇가지 주제로 한정되어 있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다. 장애 극복 서사를 보여주거나 의료적 도움을 주는 일이나 경제적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의 주제는 다 같다. 그건 흔히 동기부여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영감 포르노다. 영감 포르노는 호주의 코미디언으로 활약한 장애여성 스텔라 영(1982~2014)을 통해 알려진 말이다. - P67

레드는 상대가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레드에게는 글이 말보다 훨씬 예민하고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서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에 감정이 통하는 사람을 잘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지속해나가면서 자신에 대해서 미리 충분히 알리고, 사진도 교환하고, 만나기전에 통화를 하면 대부분 판가름이 난다고 했다. 호감이 생기면장애가 벽이 되지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호감이 생기면 그가 피상적으로 알던장애가 만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호감이 생긴상태에서 만난 사람도 있고, 단지 만나서 섹스를 하자는 데합의가 이뤄져서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레드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나누었고, 그에 대한 욕망을 서로 이해하고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 P72

그리고 정말 좋은 섹스를 하려면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이 시간만큼은 날 정말 사랑하라고 한다. 서로의 몸에 충실하는것. 부부관계, 연인관계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그순간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만족을 위해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좋은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자신감이 있어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고, 나와 상대방에게 질문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레드가 원하는 것을 가로막고 자신감을 갉아먹는 요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섹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자신이 원하는것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만 임했을 때 그것은 ‘당하는 섹스‘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들은 초반에 레드의 적극성에 다들 놀랐다고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 P75

사실 자신감은 섹스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왔을 때 자신을 원숭이 보듯 하는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그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즐기기 시작했을 때 외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삶에 자신감이 없는데 섹스할 때만 자신감이 생길 리 없다. 섹스에만 자신감을 보이는 남자들은 상대방의 만족을 전혀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감은 이기거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만족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 P76

장애여성공감이 출발하면서 지금까지 내내 놓지 않는 화두가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이다.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진행되고 있는 질문들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다른 몸과 경험을 가진 장애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넘어서 자신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어떻게 추구해나갈 수 있을까. 섹스가 매개된 관계가 폭력 피해만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제나 성공을보장할 수 없지만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고, 섹스의 실패가 꼭 관계의 실패는 아닌, 그리고 관계의 실패가 꼭 삶의 실패는 아닌 그런 안전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P77

차이에 기반을 둔 다양성이 존중된다면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정의 대상, 복지의 대상, 혐오의 대상으로만 분류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남성 중심/비장애인 중심/이성애 중심/선주민 중심/성인 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되는 개인이 스스로 노력하고 극복하는 것보다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애여성운동을 통해 만나왔던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나는 세상을 보는 다른 렌즈를 장착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 내 몸의 기억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시도가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 P83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장애남성들은 ‘먼저 사고 치면 된다‘는 말도 많이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여성의 부모는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느냐‘며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순결하지 못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그래도 남자가 장애가 있으니 바람은 안 피우고 너한테 잘해줄 거다‘라고 말한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장애남성의 연애와 결혼 전략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장애 차별적인 인식을 묘하게 잘 활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92

전형화는 소수자의 삶을 차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치료, 극복, 불행, 불편 등의 부정적 서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 구성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관계의 역동, 실패와 성공, 변화들을겪어내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그 보편성과 장애라는 고유성 사이에 일어나는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설명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경순은 쉽지 않았다. 세상을 비판하는 장애인운동은 경순에겐 먼 일이었고, 접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당당하게 키워내야 했다. 더 고집 있게 양육에 전념했던 이유다. - P117

딸들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지만 활동지원사와 관계 맺는 것을 볼 때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자존심과 주도권을 지키는 것, 남의 손을 빌려 사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게 경순의 원칙이다. 떳떳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어떤 활동지원사는 세 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가르치려 들기도 했다. 자기새끼나 잘 가르치지 감 놔라배놔라 했던 일은 더욱 큰 무시의 기억으로 남는다. - P118

나는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지 13년이 되어가는 베테랑 활동보조 이용자이다. 사실 이 말은 남들이 내게 하는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베테랑 활동보조 이용자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활동지원사가 교체되는 순간 베테랑은 없다. 새로운 활동지원사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활동보조를 처음 받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마다 적응하는 속도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므로 활동지원사가 새로 오는 날이면 베테랑 이용자라 불리는 나도 긴장하게 된다. - P137

활동보조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조금 더 대안적인 방법은 없을까. 인간의 삶이 각자 다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삶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를가진 한 사람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원하는 방식대로살았으면 한다. 사실 활동보조를 받는 이용자 중에 관계의중심을 잃고 모든 권한을 활동지원사에게 넘기는 이들도 종종 본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됨에 따라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지원사에게 점점 종속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활동지원사 교육보다 이용자 교육을 조금 더 촘촘히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활동보조 제도를 비롯해서 IL 운동의 중요한 기반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지만 한 번도 주체 - P142

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그저 선언에 불과할 뿐이다. - P143

지난 몇 년 동안 ‘춤추는허리‘에서 리더 역할을 하면서 장애여성의 삶 그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 연습을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겨야 하고, 가족과 늘 타협해야하며, 활보와 소통을 해야 하고, 보조기구를 장착하고 나오기까지의 과정들,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장애인들 나오기 다 힘들지, 다른 장애인 극단도 그래, 뭐그렇게 유난스럽게 그래." 그러나 ‘춤추는허리‘는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연기를 위해 연기를 하는 곳은 아니다, 장애여성의 삶 그 자체가 연기인 것이다." - P163

지체장애를 가진 부원들의 활동보조는 조화영이 연극부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하나였다. 조화영은 누군가에게도움이 필요한 사정을, 도와달라고 말 못하는 속사정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는 장애인이 눈치를 보고 부끄러워하도록 만든다. 조화영 또한 익히 겪어온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조화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부원들이 짜장면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한된 선택지를 넘어 조화영이 발견한 ‘내 일‘이었다. - P171

"뭐지?" "왜 웃지?"라고 반문해왔듯 조화영은 경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들이 쓴 모자를 가리켜 "그 모자 내가 만든 거다!"라고 외쳤던 조화영의 말 한마디는 활동가들사이에서 어떤 구호보다도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것은 일하는 발달장애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갈이었다. 아무리 지워도 나는 존재한다고, 내가 하는 일에 기대어 당신도 존재한다고 내질렀던 것이다. 조화영은 자신이 존재하는 일상의 자리를 인식하고 사회와 만나는 접점을 포착했다. 이를 해내기까지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되어준 것은 장애여성공감 회원 활동이었다. 조화영은 장애여성학교 인권반 수업에 참여하면서 "장애인도 대한민국 사람으로 보일권리가 있다는 걸 알고 인권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권을 사랑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조화영은 교회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 P178

한국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 상황이다. 발달장애인 지원법 제정을 비롯해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은 지난 몇 년간 장애인운동 진영의 중요한 이슈였다. 발달장애인 이슈는 주로 장애인 부모들의 투쟁으로 사회에 알려졌지만, 이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발언을 하고, 집회를 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화영도 동료들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투쟁‘해서 지키고 싶은 것은 ‘나‘였다. "활동가님이랑 함께하는 꿈"이 있다는 조화영은 이미 자신을 지키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다. 엄연한 일상의 자리에서. - P181

"남자냐 여자냐 차이지, 똑같아요. 나한테는 똑같이 비장애인일 뿐이에요.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는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일하는 게 편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이 못 견뎌요. 내가 비장애인으로 여기서 버티고 있었으면 그들을 이끌어주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30퍼센트는 한계가있어요. 그들도 나에게 한계고, 나도 그들에게 한계예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30퍼센트예요. 그걸 서로 감안하고 가는거지. 한번은 아는 애가 ‘언니는 직장 동료들한테 안 미안해요? 그러더라고요. 걔는 내가 직장 동료들에게 도움받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마 다들 내가 직장에서 굉장히많은 지지와 격려와 이해를 받는 줄 알겠죠. 하지만 안 그래요, 직장 생활은, 삶은, 비장애인과 일하면서 일일이 표현할수도 없고, 도움받을 수도 없어요. 도움이라는 게 주고받는건데 내가 그들을 돕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한계를 30퍼센트는 항상 안고 가는 것 같아요. 그걸 안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맞춰서 살아가기가 우리나라 구조로는 너무 힘들어요."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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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휠체어 위의 유튜-바, 구르님의 유쾌하고 뾰족한 말 걸기
김지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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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님의 당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그래도 울진 않았다고 밝힙니다. 더 많은 ‘관종력’을 장착하여 다양한 활동과 영상에서 ‘뾰족한‘ 구르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개그 시도도 재미있었으니 안심하고 자꾸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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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특수교육 담당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애학생들과 실습을 나갔다 돌아오던 때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을 집에 내려다주고 난 휠체어를 반납하려고 가 - P92

지고 돌아가는데, 다리가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잠깐 휠체어에 앉아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 시선이 너무 많이 느껴지는 거야. 모든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은 날 쳐다봤던것 같아.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5분도 못 가서 다시 일어났어." - P93

‘정상성‘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때 그것은 당신의 오해이며, 나는 정당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옳은 일을 했다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삶이다. 그 ‘오해‘라는 것이 타인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저 힐난일지라도 흥분하지 않고 점잖게 ‘설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피해망상‘이라든가 ‘예민‘이라는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경험과 감정은 자꾸 공적인 논의에는 포함될 수 없는 주관적이고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 P107

나는 어릴 때 어른이 되면 내 ‘병‘이 나을 줄 알았다. 장애가 있는 어른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커가면서 내 ‘장애‘가 낫지 않는다는 것, 장애와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마흔 살이 되면 스스로 죽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 P112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주변에 장애인이 전혀 없었다. 나는 늘 비장애인 사회 속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이는 없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와 같은 몸,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를 처음 알았다. 장애인콜택시를 타면 허리가 울려서 아픈 것,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수학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등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감각. 여태살아오면서, 나는 비슷한 ‘몸‘에 대한 공감을 처음 느껴본 것이다. 짜릿했다. - P114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 영상을 만드는 것도 맞지만, 이 문장의 어느 한켠에도 장애인의 자리는 없다. ‘사람 - P115

들‘이라는 말, 그러니까 예상 시청자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으니까. ‘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라는 말은 이상하다. 나는 여태 예상 시청자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이들을 위한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 P116

‘모두에게 따뜻한 세상‘을 외치는 ‘감동‘ 카메라 영상들은 정말 모두를 위한 영상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영상들이 전체하는 시청자의 자리에 장애인은 없다. 장애인이 피부로감각하는 수치와 불안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앞과 뒤의 일은 모두 편집해버리고, 단지 ‘영웅 비장애인‘의 모습만을 보여주니까. 정말로 그 상황 속에서 장애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자 한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원인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구조를 바꿔야 비슷한 일이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로의 평온한 일상이 뭔가 잘못되었으며 영상을 지켜보는 자신역시 그에 일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불편한 장면은 없다.그것은 ‘보고 싶은’ 슬픔이 아니니까. - P121

또한 어떤 영상들은 장애인이 ‘나 자체‘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장애는 고난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이라고생각한다는 말. 그 역경을 이겨내면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깨달음을 얻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것은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보다 언젠가 장애를 벗어던지고 일어날 허구의 인물이다. 댓글창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제 앞 스크린에 비치는 인간이 ‘정상‘의 인간으로 회귀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쏟아진다. 꼭 노래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보게 되시면 좋겠어요, 건강해지세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선량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 P123

"다음에 나랑 거기 가보자. 며칠 전에 갔는데 길도 넓고 차도 많이 안 다녀서 네 생각났어."
친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앞만 보고 걷던 주영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길의 울퉁불퉁한 정도, 가게의 턱, 인도의 마감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떠올렸다. 한 사람을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을 배워가는 것이다. 생애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과 감각을 알아가고 서로에게 번져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가 확장된다. - P129

‘장벽이 없는 극이란 무엇일까?‘ ‘이 모든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는 망설임이 우리 사이에도 있었다. 충분한 정보를모두에게 전달하겠다는 목표는 실패한 것일 수도, 애초에 허상 - P137

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판타지 안에서는 다양한몸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길 바랐다. 내가 느낀 안전함의 감각을 또 다른 타지의 몸들이 느끼길 바라면서. - P138

<소극장판-타지>는 막을 내렸다. 후련하다면 후련하고 아쉽다면 아쉬운 작품이었다. <소극장판-타지>는 국립극단의 첫장애연극, 나는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최초의 장애인 배우가 되었다. ‘첫‘이라는 타이틀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이는 자꾸만 ‘최초‘ 혹은 ‘첫걸음‘이라는 메달을 목에 걸곤 하니까. 꾸준히 해도 자꾸 첫걸음만을 내딛게 된다고, 보름 연출은 말했다. - P138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전동 키트를 장착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혼자 이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태도, 하고 싶은 일, 눈높이와 세상에 맞서는 마음가짐이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휠체어를 움직이게 된 순간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 P147

내가 몸을 생경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장애가 아니라 ‘여성‘의 몸에 관심을 가진 순간부터다. 어린이책 베스트셀러Why 시리즈는 《똥》 그리고 《사춘기와 성》 편만 유난히 닳아있다는 유머가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호기심 어린 발달 과점을 착실히 겪어온 어린이였다. 똥 이야기에 까르르 웃는 시기를 거쳐 가슴이나 생리 같은 것에 관심이 생긴 나는 <사춘기와 성》 편을 아주 (좀 많이) 정독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여성의몸이 내 신체를 들여다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 P161

그러다 《어쩌면 이상한 몸》이라는 책을 만났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20년 전 장애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장애가 있는 여성의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의 ‘언니‘들 이야기였다. 이 책의 맨 앞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애여성: ‘장애 여성’이라고 띄어서 표기할 경우에 ‘장애’가 ‘여성‘을 수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장애여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야기하고, ‘수식어-명사‘라는 구분이 하나로 연결된 언어로 이해될 수 있도록 붙여서 ‘장애여성‘으로 표기했다. - P171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의 오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기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야 했던 ‘치료‘가 어떤 목적이었든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은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음 치료 자세로 넘어갈 때마다 "지우야, 선생님이 잠시 여기에 손을 올릴게"라고 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전달한 이후 동작을 이어가는 치료사들을 만난 뒤 나의해석을 좀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수혜자와 피수혜자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치료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맺음이란 그런 것이다. - P180

혼자만의 질문으로 간직하기엔 물음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나는 이 경험과 문제의식을 담아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 속 나는 화재 대피 훈련으로 불 꺼진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다. 이 영상이 업로드된 이후 우리 학교는엘리베이터가 비상시에도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사과의 말씀을 전해주셨고, 나는 12년만에 처음으로 다음 비상 대피 훈련부터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다. 소방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대피 매뉴얼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나 말고도 모든 이가 ‘상식‘에 포함되는 대피 방법을 숙지할 수 있기를. - P206

"야, 뭘봐!"
소리를 친 것은 주영이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주영을 바라보았다. 주영은 나를 오랫동안 응시하던 사람에게 정확히 시선을 두고 화를 내고 있었다. 붐비는 곳이었고 서로를 지나치는 상황이었기에, 날 쳐다보던 이는 이내 시선을 피하고갈 길을 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균열을 느꼈다. 화를 내도 된다는 것, 불쾌한 시선의 원인은 내 몸에 있지않고 허락 없이 쳐다보는 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마음에 단단히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야 뭐해, 싸움 나면 어떡해. 그 애를 말리는 척했지만 그 호통에 누구보다 신난 사람은 나였다. - P217

나의 소중한 공동체, 사회학과 ‘악반‘에서 ‘당연한 내자리‘를 찾는 경험도 했다.
"행사 진행 시 고려해야 할 신체적 특성이나 식이 지향 등의 사항이 있을까요?"
새내기 안내 전화를 받았을 때 내게 닿은 질문이었다. 이것이 나와 이상한 공동체, 악반의 첫 만남이었다. 장애를 언제 밝혀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나는 "네,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요. 행사 장소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 P244

너무나 당연한 일.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지 않을 때가지 않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내게도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함께하려면 뭔가 ‘더‘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많은 것이, ‘더‘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 이제까지 ‘덜‘ 준비해왔던 일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덜‘들을 찾아 모두가 당연한 자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충하는 일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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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장애인 대표로서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나?"라고. 나는 그 질문에 늘 당황하고 만다. 대표 자리에 올라가본 적도, 그럴 마음도 없는데 자꾸만 누군가는 나를 그 자리에 앉혀버리곤 한다. ‘대표‘의 자리에 쉽게 올려지는 것은 대단한 권리인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에겐 그 자체로 소수자성을 재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평범한 이야기를 했을 뿐임에도 사회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라는 이유로(그것은 대부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는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뿐이다) 대단한 용기를 가진 대표의 말하기가 되는 것이다. - P8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순간 운이 좋아서 어떻게든 우당탕탕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글을 읽다가 자꾸만 울고 싶거나 성찰하고 싶다면 책을 덮고 잠깐 산책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개그를 해본답시고 쓴 건데 재미가 없거나(그렇다면 사과한다) 아니면 이제까지 ‘대표‘의 글을 소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사회적인 관념이 자꾸만 당신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일 테니까. 누군가를 일깨우거나 반성하게 만드는 역할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 많은 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지 않고 책갈피 사이로 들어오길 희망한다. - P9

현미는 어떤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어디라도 찾아 나섰다.

**장애는 완치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나아진다‘는 말은, 종종 ‘비장애인과 비슷해진다‘는 욕망을 함축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서 ‘나아짐‘이라 함은 ‘걷게 됨‘이었다. 내가 받은 여러치료의 목적이 ‘조금 더 예쁘게 걷기, 오래 서 있기’에 맞춰져 있던 것처럼. 그때 현미와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한 발자국 더 걸으면, 조금 더 예쁘게 서 있을 수 있게 되면 그것보다 기쁜게 없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고, 내 몸을 좀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치료를 받는다. 걷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한다. - P18

그렇게 현미는 서른의 시작부터 마흔을 훌쩍 넘어서까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그런 현미에게 언젠가 나는 ‘좋아지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더는 걷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오랜 시간 내 몸과 마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걸음을 연습하는 것보다, 걷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라고 느꼈다. 이미 60대의 그것이 된 관절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하고 몸을 바꿔가며 혼자 걷게 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현미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다.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조금 화를 냈다. - P19

하지만 난 정말 더는 걷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 해낼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장애인 되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며 운동하고 싶었다. - P20

나 때문에 거부를 경험한 비장애인은 전 애인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 거부의 시초에 현미가 있었다. 나는 순진하고 어렸을 20년 전의 현미를 떠올린다. 갑자기 삶에 떨어진 ‘장애‘를 가진 나로 인해, 이전까진 경험해보지 못한 거부를 온몸으로 감내했을 그를 상상해본다. - P22

때로는 창피하고 무서워서 내가 엉엉 울며 말리더라도 현미는 일단 싸우고봤다. 나를 키우는 건 싸움의 연속이었다. 현미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활동가가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 P23

그때 현미가 말했다.
"어우 씨, 진짜 한 대 칠 뻔했네."
그렇게 그 문장은 내 마음속에 남아 부당함을 마주할 때 튀어나오곤 한다. 현미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장애를 숨기거나 집 안에 있게 한 것이 아니라, ‘한 대 때릴‘ 기백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 말은 내게 숨을 필요 없다고, 여차하면 그냥 ‘한 대 때리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잘못은 내 존재에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 P25

현미 허락받고 가지 않았나? 몰라, 몰라. 기억이 안 나. 이런 거 쓰면 안 된다. (잠시 정적) 술도 몰래몰래 닭발이랑 시켜가지고 받아서 먹기도 하고. 엄마 술 걸려서 뺏기기도 하고 그랬어. (함께 웃음) 근데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그런 간호사들도 있었지. 왜냐하면 엄마들이 정말 애들한테 거의 매여 있으니까, 하루 종일 그러니까 "안 걸리게 잘하세요" 뭐 이런 간호사 선생님도 있고…… 하여튼 이런 거 쓰면 안 될 텐데. 보바스(병원이름)에서는 골뱅이 요리 잘하는 애가 있어서 골뱅이 무치고 쫄면 해서 나눠 먹고. 저녁 시간에 같이 둘러앉아가지고. - P35

카카오 웹툰 <열무와 알타리>와 네이버 베스트도전 <제제와 함께>처럼, 장애아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안에 납작한 인물은 없다. 또 확실한 비극이나 희극도 없다. 그저 살아남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분명 누군가는 그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읽고 또 살아갈 것이다. - P37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그 ‘관계‘로만 삶이 설명될 때가 많다. 장애인의 엄마, 장애인의 형제, 장애인의 친구처럼. 물론 관계로서의 인간도 아주 중요하지만, 종종 그것에 너무나 매몰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곤 한다. 나 역시 이번 인터뷰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현미의 용기와 사람을 살리는 살림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현미는 나를 빼고도 충분히 다른 존재들을 살릴 수 있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다. - P39

나 역시, 연구소에서 제품을 개발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그 낯익은 단어가
귀를 울리고 가슴을 찢어놓는 거 같았다.
ABNORMAL, Abnormal, abnormal
어쩌란 말인가,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abnormal한 삶 속으로
빠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 abnormal한 case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건지…….….
난 정말 알수가 없었다.

abnormal, abnormal, abnormal 작성자 태균 2005.04.25 - P45

태균은 같은 맥락에서 언젠가 내가 몸에 대해 절망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아쉽게도(?) 태균이 내게 사과하는 날은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몸에 대해 절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태균이 모르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만약‘이라는 단어에 갇혀 원망할 대상을 찾아다녔던 순간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단어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평화를. - P50

어쩌면 장애인들은 ‘만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갈등에 빠지는 것을, 자신의 장애에 대해 절망하는 행위를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갈등과 절망을 경험하는 게 장애인의 삶에서 마치 일생일대의 분기점이라도 되는 것마냥 미디어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만약‘이라는 말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만 빛을 본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극대화되는 환상 같은 단어다. 나는 장애에 대해 절망할 시간에 구겨진 책을 다시 소중히 펴고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 P54

어쩌면 걸음은 내게 그저 두 발이 교차하며 지면을 밀어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정상‘으로써의 갈망일 수도 있겠다. 여전히 ‘비장애인처럼 보일‘ 수록 좋다는 가치 평가가 만연하기에,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졸업하고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고, 혹은 걸음을 보조하는 로봇을 차고 걷길 권유받는다. 그것이 자신의 생활과 몸에 잘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휠체어를 탐‘과 ‘걷는 것을 포기함‘이 대응하는 것처럼 여겨져 휠체어를 타지 않거나 그러길 강요받는 이들도 있다. - P58

"그래서 항상 나를 인식할 때, 그리고 유튜버로서의 나를 생각할 때 힘들어질 때가 많아요. 어쩌면 ‘보기 좋은 장애인‘이 아닌가 하고요"라고 내가 말했다. 이 고민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부터 날 괴롭혔다. ‘보기 좋은 장애인‘, ‘잘 팔리는 장애인‘으로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듣기 좋을 정도의 말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평생을 비장애인 사회 속에서 살아온, 적당히 학력도 좋고 적당히 상냥해 보이는 착한 장애인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일을 할수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답답함이 늘 마음속에 존재했다. - P59

태균은 대답했다. "아빠는 그래서 지우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구분 짓는게 아니라 그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 P59

글을 슬프게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지원은 나의 결심을 쉽게 망가뜨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비극의 끝도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현미는 엉엉 우는 나를 안아주고, 전화기를 다시 바꿔 "지원아, 엄마랑 언니 네 밤만 더 자고 갈게.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어"라고 달랬다. 완벽한 대사다. 고전소설에 등장해도 될 것만 같은 이야기다. - P64

지원을 떠올리다 보면 자꾸만 어릴 적 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애는 격하게 부정하지만 나는 꽤 좋은 언니였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동생의 눈높이에 맞춰 그 애를 돌봤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멋지게 써두었는데, 그냥 같이 기어 다녔다는 말이다. 지원이가 막 뒤집기에 성공하고 ‘네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의 이동 방식 역시 네발 기기였다. 덕분에 우리 집 바닥에는 기어 다니는 6개월과 일곱 살이 있었다. - P67

그리고 이런 건 절대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또 어떻게든 환승을 하고,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뒤 리프트를 타거나 휠체어로 한 정거장을 굴러 다음 역에서 타든 하면서 대충 살아간다. 그래서 도통 계획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나도 1분 1초를 귀하게 쓰고 싶은데, 이 세상이 자꾸만 나를 리듬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든다. - P83

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대중이라는 말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까먹는 모양이다(버스는 아예 모르는 게 확실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혜화역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불법시위‘(역사 안내문의 말을 빌리면 휠체어 승하차)를 막는답시고 역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렸다. 만약 내가 오늘 혜화역에 갈 일이 있었다면, 나는 혜화역에 내렸다가 영문도 모르고 다시 전 역으로 돌아가 한 정거장을 휠체어로 건너고, 지각을 사과하느라 연신 굽신거려야 했을 것이다. - P85

그런데 승강장에 도착해서야 휠체어 리프트를 연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휠체어 리프트는 탑승 30분 전까지 요청해야 하며, 그마저도 연결되는 칸은 휠체어석이 있는 칸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KTX를 개통한 지 20년이 넘었다는데, 어느 칸에나 휠체어 리프트를 연결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걸까?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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