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정체성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연구 참여자들은 또래집단 내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교사의 혐오 발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별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문제시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가시성은 높아져도 낙인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성소수자에 대해 학생들과 어떻게 이야기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교사가 수업시간에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에 기반한 발언을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다. - P68
조금 있으면 성인인데, 성인 되면 좀 병원을 알아봐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치료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요, 여지가요. 솔직히 그걸 어떤 희망 삼아서 살고 있는데. 진짜 지금은 뭔가 바라볼 데가 있으니까 삶의 끈을 놓지 않는데. 진짜 성인이 되어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돈 쓰고 하다 보면, 제가 이걸 진짜 놔 버릴지 놓지 않을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깜깜해요. 지금은 막연한 목표가 있으니까 살고 있는데 그때가 되면 되게 진짜 가끔 이런 거 생각을 해 보면 막막해요. 적은 돈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호적정정을 제가 혼자서 진행하면 적어도 20대 중반은 지날 텐데, 호적정정에만 매달리기에 제청춘이 아깝지 않아요? - 트랜스남성 H - P69
저희 부모님은 조금 보수적이지만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개방적이에요, 또 네 인생이고, 부모가 뭐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로서 그냥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하신 거죠. 엄마도 "물론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정말 생물학적인 거고 바꿀 수 없는 거라면 네가 행복하게 살아야지. 죽는 것보단 낫잖아"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 20대 트랜스남성 M - P77
제가 많이 봤던 케이스는 어릴 때부터 티가 나서 학업을 포기하고, 그냥 이래저래 지내다가 거기서 2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첫 번째는 편의점이나 PC방 그런 데를 전전하면서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20대 중반이나 후반에 여성이 되었지만 학력도 낮고 구체적인 능력도 없는 그런 경우요. 두 번째는 업소를 가거나 아니면 조건 만남 같은 걸 하면서 그걸로 번 돈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생활하는 그런 경우요. 이 2가지 경우가 한국에서는가장 많은 거 같아요. - 30대 트랜스여성 D - P82
전형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 패싱은 어려운 일이다. 이분법적인 성별 규범으로 인해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이 아닌 그 이외의 성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이들은 또다른 성별로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스스로를 "중간자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 P96
트랜스젠더 중 사회활동을 하며 한 번의 예외 없이 원하는 성별로 인정받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트랜스젠더가 사회 속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본인의 성별정체성으로 인지되는 패싱의 과정은 이들의 외모나 옷차림, 행동과 습관이 성별정체성과 적절히 부합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인지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의연함으로, 때로는 ‘나‘를 찾아가는 연극으로 접근하고 있었지만, 패싱 과정에서 이들이 느끼는 긴장과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었다. - P95
이 보고서에서 의료적 트랜지션과 더불어 중요하게 살펴볼 또 다른 결과는 법적 성별정정과 관련한 내용이다.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고자 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 수술 여부는 아직까지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데, 총 233명중 124명(53.2%)이 "외부 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점" 때문에 성별정정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보고했다. 뿐만 아니라,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점"(28.3%) 역시 많은 응답자들이 부담으로 느끼는 지점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해당 보고서에서는 모든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려고 할 때 외부 성기 수술 같은 성전환 수술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게 사실상 국가가 수술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P117
덴마크에서 진행된 코호트 연구는 104명의 트랜스젠더(트랜스여성 56명, 트랜스남성 48명)를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0여 년 동안 추적 관찰해,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후의 건강 상태를 비교했다. 연구 결과,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과 후 참여자들의 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등 신체 질환의 유병률과 사망률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후 정신 질환의 유병율은 이전보다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스웨덴의 코호트 연구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를 30년 동안 추적관찰하여 이들의 사망률 및 정신 질환 발병율을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했다. 연구 결과, 트랜스젠더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자살할 가능성이 19.1배, 정신 질환으로 입원할 가능성이 2.8배 더 높은 것을 확인했다. - P122
넷째, 국내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서 다루는 주제가 매우 제한적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임상적 연구에서 다루는 주제는 주로 성전환 수술, 호르몬 관리 및 검사 등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국외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건강에 대한 다양한 임상적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가령,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HIV/AIDS와 자궁경부암 검진, 부인과 관련 연구 등이 수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과 낙인 등 부정적인 사회 경험이 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러한 주제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부족하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건강은 앞서 이야기한 차별이나 사회적 지지와 같은 사회적 인자로부터 주요한 영향을 받을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향후 이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 P123
성소수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where)‘가 말해 주듯이, 트랜스젠더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트랜스젠더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며, 이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P125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신과 진단, 호르몬 요법 및 성전환 수술을 건강보험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118개국 중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해 총 45개국에서 국가 건강보험이나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한 가지 이상의 의료적 트랜지션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 중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호르몬 요법만을 보장하는 나라는 6개국, 성전환 수술만을 보장하는나라는 7개국이며, 두 의료적 조치 모두를 보장하는 나라는 총 32개국이다. 한국은 트랜스젠더의 정신과 진단, 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 이 중 어떤 비용도 공공보건의료시스템에서 보장하지 않는다. 기존에 진행된 국내 연구에서는 성소수자가 정부에 바라는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로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글에서 살펴본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비용 부담이 의료적 트랜지션의 가장 큰 장벽으로 드러났다. - P145
한국의 정신과 진단은 국제 표준인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사인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따른다. 트랜스젠더가 받는 정신과 진단인 성주체성장애 역시 이와 같은 표준분류에 의거한다. 성주체성장애 진단은 과거 개인의 성별정체성을 정신장애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ICD-11에서는 기존에 정신 및 행동 장애로 분류되었던 성주체성장애를 성적 건강과 관련 있는 상태(Conditions related to sexual health)로 분류하고, 진단명을성별부조화(Gender incongruence)로 수정할 것이 제안되었다. 2018년6월 18일, 세계보건기구는 그 제안을 수용해 ICD-11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 항목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 P149
의학 전문가들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나 실험적 시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장이 필요한 의료적 조치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 트랜스젠더 보건의료 전문가 협회는 트랜스젠더 의료표준을 발간하여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임상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호르몬 요법과 성전환 수술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위화감 해결에 필수적인 의료적 조치다. 미국의학협회 또한 2008년도 결의안을 통해 의료적 트랜지션의 효과를 인정하며, 이를 공공 및 민간의료보험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 P159
2016년 기준으로, 국내 병원 및 의원 수는 64,999개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의료인 수는 606,182명에 달한다. 현재 정규 의학 교육에 트랜스젠더와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트랜스젠더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기관이 부족하다. - P164
"병원에서 우리를 환자로 보는 게 아니라 돈으로 보더라도, 서비스를잘하면 상관없는데, ‘너희는 우리 병원 아니면 갈 데 없잖아. 우리가 너희한테 해 주는 거야‘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뭔가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병역 문제 관련해서 호르몬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증명서를 받아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안 떼 주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도 찔려서 뭔가 문제가 생길까봐 그런 것 같아요." (20대 트랜스여성 A) - P169
"누군가는 트랜스젠더 진료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료하는 곳은 안전했으면 좋겠고, 진료를 하는 의사도 믿을 만하면 좋겠다. 트랜스젠더인 자신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이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당시 나는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치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해 의과대학에서 배운 적도 없고,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을 때도 배운 적이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어차피 다른 의사들도 다 몰라, 어차피 다 모르는 거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공부해서 진료해 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살림의원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 P183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면, 사실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것과 동일하다. 호르몬 치료는 젊었을 때 잠깐 하는 게 아니라 50대가 되어서도 계속 필요한 치료다. 이 과정에서 많은 만성 질환이 발생할 수있고, 호르몬 치료가 흔히 성인병이라고 하는 고혈압, 당뇨, 간질환같은 만성 질환들의 발병률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호르몬 치료에만 관심을 가지고, 호르몬 치료에 동반되는 다른 건강위험요인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기도 한다. 결국 교육과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맨날 술 줄이고 담배 끊고 운동하고 물 많이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이런 잔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의사를 만나는 건 꼭 필요하다. - P187
이렇게 화장실을 만들고 보니, 트랜스젠더만이 아닌 다른 환자들도 편하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살림의원에는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 등 소아환자와 보호자의 성별이 다른 내원객이 많은데, 만약 아이가 뒤처리를 혼자 할 수 없는 경우라면 보호자가 동행해야 된다. 그렇다면 아빠가 딸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되어 있으면, 어느 화장실로 가야할지 고민이 될 수 있다. 살림의원에 오는 분들은 아이를 데리고 가족 화장실로 가면 된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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