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논리는 여성과 남성이 태어날 때부터 명확히 구분되고,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며 성차에 따르는 것이사회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소수자는타고난 이분법적 성별과 그에 기반을 둔 성역할 분리가 당연하지 않음을자신의 존재로써 입증한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성소수자는 낯설고기이하고 불편한 존재다. 성소수자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 부적응자이자 조직생활에 부적합한 노동자, 질서의 교란자로 평가되어 차별과 괴롭힘이 정당화된다. 무급 돌봄노동자 여성과 생계부양자 남성의 결합에 바탕을 둔 이성애적 혼인제도에 편입되지 못하는 성소수자는 공고한 가족제도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노동시장에서 저 멀리 밀려나고, 이상적 노동자상에 가닿을 수도 없다. - P84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차별을 "사회적 소수자 개인을 그가 속한 집단과 동일시하여 그 개인 역시 그 집단의 속성을 가졌다는 전제 아래 그 개인을 불리하게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정의에서는 차별이 ‘그 집단의 속성‘을 전제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고있다. 특정 집단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사회적 소수자개인‘도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집단과 동일시하여 그 사람을 불리하게 구분하고 배제한다는 것이다. - P94

성소수자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성수소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우리 애가 저거 보고 동성애자가 되면 어떡해요?"나 "댁의 자식이 동성애자가 돼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성소수자가 많아지는 것이 성소수자가 주는 피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성소수자가 되면 어떤가? 성소수자가 늘어나는 데 우려를 보이는 사람은 성소수자가 문제라는 생각을 먼저 가지고 있다. 논리학에서는 이것을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라고 말한다. 자신이 증명하려고 하는 명제(‘성소수자가 문제다’)를 아직 증명하지 않은 채 새로운 주장( ‘성소수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의 근거로 쓰는 잘못이다. 그리고 성소수자는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닌데, 성소수자가 늘어난다거나 바뀐다고 오해하고 있다. - P100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그 거부감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집단을 향한 혐오로 이어지면 사회적 문제가 따른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다가 성소수자의 존재가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 혐오 분위기가 퍼져가고 특정 종교가 거기에 가세하여 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의 ‘익숙하지 않음‘ 또는 ‘자연스럽지 않음‘은 그들을 특이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성소수자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거나 아이를 낳지 못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부자연스럽다는 논리다. 철학에서는 자연스러움에서 어떤 규범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자연주의의 오류라고 부른다. 자연스러움은 자연스러움으로 끝나는 것이지 거기서 어떤 옳고 그름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풍, 가뭄, 전염병 따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거꾸로 태풍, 가뭄, 전염병따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자연의 일에 역행하므로 옳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성소수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서 옳고 그름의 규범을 도출할 수는 없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해서 옳지 않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불임 부부들은 모두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혐오를 보내는 것이 마땅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 P110

이들은 100여년 전, 미국 사회와 교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개신교 주류집단이 "인종차별철폐는 동 시대와 사회의 시각일 뿐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질서는 인종차별이다"라고 했던 주장을 ‘여성 혐오와 차별‘로 변주하고 있었다. - P122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신은 우리가 낯설게 만든 이들의 얼굴과 삶,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신다. 신은 우리에게 그 낯섦으로 질문하신다.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우리는 신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의 신은 ‘너머의 하느님‘ 이다. 신은 항상 우리가 ‘안다‘라고 생각하는 그 너머에 계신다. 그 너머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신의 초대가 ‘사랑과 연대, 다양성과 교차성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뿐이다. - P130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능하다면 자신을 고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다운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한 후 사이가 나빠졌다. 엄마는 다운을 "치료" 하려고 교회 수련회에 보내기도 했다. 다운은 이런 불행한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자신도 행복해지고 부모님도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 거의 2년 동안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까지 모든 예배를 다 나가보았다. 다른 사람이 모두 떠날때까지 교회에 앉아서 혼자 기도하고 울며 고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 걸 보고 다운은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고치려는 사람들이 잘못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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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염색체를 중시한 법원의 판단은 10년이 지나 뒤집힌다. 200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적 성별을 정정할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서 대법원은 "인간의 성은 염색체, 생식기 등 생물학적 요소만이 아닌 정신적·사회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2009년 대법원은 위와 유사하게 법적 성별은 남성인 트랜스젠더 여성이 강간 피해를 입은 사건에서 1995년의 경우와는 달리, ‘피해자는 여성이며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법적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고정되거나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P19

법 앞에 자신을 인정받기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을 법 앞에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이것이 공적인서류에 반영되는 것은 단지 개인의 불편을 더는 수준의 사안이 아니다.
이는 근본적인 인격권에 관련된 문제다. 작년 10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며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격에 관한 권리는 개인의 인격의 구성 요소인 성별정체성 역시 보호한다. 한 개인이 어떤 성에 속하는가는 그의 정체성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여길지에 출발점이 된다. 여기서, 남성에도 속하지 않고,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성별정체성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 P25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 과연 그것이 누구의 안전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에서트랜스젠더의 다수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언어폭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 윌리엄스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가 물리적으로 폭력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별분리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등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면 정말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화장실‘이 아닐까?
결국 화장실, 성별분리 자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두가 안전하고 쾌적한 화장실은 어떠해야 하고, 그곳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 P31

존재에 대한 처벌은 타당한가

구금시설 수용자는 죄를 지었지만 사람이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책임과는 별도로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성별이분법을벗어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성별에 맞지 않는 수용시설에 강제로 수감되고,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처벌‘ 하는 것이다. 존재를 위법하다고 보고 처벌하는 것, 이것이 현재 한국의 구금시설이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해온 방식이다. 이제는 이를 바꾸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 P34

다만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논쟁과 별도로, 성적 지향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소아과학회에서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은 선택에 의해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

성적 지향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아동기초기에 형성된다는 설명으로,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인지하게 되는 10대가 되면 이미 개인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 P41

그런 측면에서 ‘HIV 보균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감염인은 제거해야 할 병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병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HIV 환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면 전국에 수배령이 내리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 HIV 감염인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살아가는 존엄한 인간이다. 영어로 감염인을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people living with HIV/AIDS 이라고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당뇨 환자를 ‘당뇨를 가진 사람‘이라고, 조현병 환자를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동의를 얻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P52

혐오는 쉽다. 가장 약하고 아픈 사람을 욕하면 되니까. 어떤 이들은 HIV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한다. 이러한 혐오는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태도일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한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부추기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한국사회의 HIV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혐오와 사회적 낙인을 거두고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HIV감염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류가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P5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받는 호르몬요법이나 성전환수술이 개인의 ‘성적 기호‘에 따라 본인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받는 ‘미용성형‘쯤으로 여겨 굳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곤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성적 기호가 아닌 트랜스젠더 개인이 겪는 성별위화감 정도에 따라 의료적 트랜지션이 시술된다는 것이다. 최근 의학 전문가들은 의료적 트랜지션이 트랜스젠더가 겪는 성별위화감을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 합의하고 있다. - P60

‘차별은 나쁘다. 하지만 내게 가까이 오지는 마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면서 실제로는 도덕성이나 취향의 문제로 우회하여 배척하는 태도, 성소수자가 직면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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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 소개로 강렬한 표지의 이 책을 접하고, 어느 퀴어 작가가 에세이를 썼나 보다 했고, “이반지하”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나, “퀴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느 여행지의 서점에서 보이면 픽하기로.

그 이후 책읽아웃 삼천포책방에서 김하나 작가의 책 소개로 드디어 “이반지하”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김하나 작가의 추천에 따라 책을 읽기 전, 영혼의 노숙자 117화와 이후 정규 코너인 월간 이반지하 5호를 통해 말 그대로 “영접”하게 되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반지하”라는 예술하는 퀴어 생존 여성 노동자이자 유머리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현대미술가로, 음반을 낸 가수로, 퍼포먼스 활동가로, 애니매이션 감독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나, 그 예술활동을 하며 생존하기 위하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그럼에도 천재적인 농담을 구사하는 유머리스트. 그러므로 단순히 “퀴어”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서도 그랬듯 “퀴어”만을 위한 얘기가 아니지만 여기를 살고 있는 “퀴어”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우울증의 원인인 트라우마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그 사건 또는 그 당시를 쉽게 말하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맴돌며, 나아갔다 후퇴하고 다시 주변을 맴돌고,, 그러므로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뭐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인 “이반지하”의 매력은 팟캐스트나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길. 알라딘티비에서 김하나 작가가 진행한 “저자만남”코너 영상도 추천!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쓴 퀴어 가족 시트콤 “으랏파파”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나에겐 엄청난 장문(?)의 리뷰가, “이반지하”님이 말하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구독료의 하나로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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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0-05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궁금했어요. 저도 삼천포책방에서 소개 들었습니다^^ 김하나작가님이 북토크도 하셨더라구요.

햇살과함께 2021-10-05 15:13   좋아요 2 | URL
네~ 두분 케미가 좋더라구요

붕붕툐툐 2021-10-05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삼천포책방 저도 들어봐야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1-10-05 19:11   좋아요 1 | URL
얼마전에 슬프게도 김하나 작가님이 그만두셨어요;; 그치만 3년치 방송 있으니 들어보세요~

독서괭 2021-10-05 19:11   좋아요 2 | URL
햇살님도 팬이셨군요. 저 3년 동안 열심히 들었는데 너무 슬펐어요 ㅜㅜ
 

하지만 평생에 걸친 젠더 추격전의 실상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이기도 하다. 생리 같은 것도 잘 알고 보면 다 이것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런 육체적이고 1차원적인 혈 그 자체를 떠나서, 젠더는 사람을 퍽 진절머리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젠더에 너무 갇혀서 또는 갇히지 않아서 돌아버리곤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돌아버림 자체가 나의 젠더임을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젠더가 지독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살짝 정신과도 소풍처럼 들러준다. 약도 고명처럼 곁들여본다. 스스로의 존재를, 젠더를 견디는 것은 이토록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고행인 것이다. - P180

우울증, 평생의 싸움이죠. 기억해둘 것은 우울증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거예요. 삶의 일부죠.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죠. 하지만 코로나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생각이 들 때는, 주변에 폐를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진짜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엔 내가 쓸모없는 존재 같고, 민폐 그 자체인 것 같으니까요. 누구한테 전화하고 치대고, 이러기가 진짜 힘든 상태일 거거든요.. 그래도 주변에 얘길 해놓는 게 좋습니다. 당분간 내가 많이 힘들 거야, 심할 때 전화할게. 아니면 이럴 때는 병원에라도 가야해요. 응급상황이거든요. 우리가 갑자기 살찢어지면 응급실 가잖아요. 똑같습니다. 이럴때는 정기적으로 가는 상담 시간이 아니어도 응급이라 생각하고 가셔야 해요.

_<월간 이반지하> 4호 - P206

어쨌든 나는 진짜 그렇게 살고 있었다. 힘든 순간이 올 때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 전화하거나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 맛있는 음식, 확 떨치고 일어나는 요령, 좀더 객관적인 지표로 상황을 체크해보는 것 등등, 공짜로 얻어진 것 하나 없는 그 하나하나의 비법들을 나는 가지고 있더란 말이다. 하지만 모든 비법의 맹점은 비법을 행할 에너지가 남아 있을 거라는 전제 자체에 있다. 레시피가 소금을 한 꼬집 넣으라고 가르쳐는 줘도, 소금을 꼬집을 힘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는 레시피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것이다. - P208

‘저는 언제쯤 마음이 편해질 수있을까요?’

그런 때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전 인류가 불편한 마음으로 평생을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마음이 편한 상태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 짧은 행복들을 누리는것뿐입니다.
_<월간 이반지하> 8호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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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윤이고자 하지 않는 이유, 그 이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수많은 닉네임을 거치고 거치는 이유, 그렇게 나를 분절시키고 이름을 바꿔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나 자신과 남들을 이해시켜줄 설명 말이다. 나는 그 누구도 원해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다는 얘기를 속으로 주워섬겼다. - P21

그리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커밍아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더 두려웠다. 그것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상태인데, 더욱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보일까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정말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 드러나는 것이었을까. - P23

그래서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이 절대 섞지 말라고 당부하던 일과 생활은, 갈라진 적이 있기는 했냐는 듯 한 번 경계가 흐려지자 곧장 하나의 거대한 슬라임이 되어 엎치락뒤치락 제멋대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 P33

검열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것은 대단히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인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속의 장기와 세포 하나하나까지를 양말 까뒤집듯이 의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검열은 잔인하다. 검열하는 쪽은 간편하되 당하는 쪽에서는 정말로 내가 당당한 피해자인지를, 내 쪽에 정말로 한 점의 원인 제공도 없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잔인함의 핵심이다. 검열은 저쪽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걸 지속하는 것은 이쪽,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 P47

나는 그런 면에서 퀴어와 헤테로를 대립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다 ‘퀴어‘라고, 실상은 헤테로가 퀴어의 하위범주라고 인지한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이상한 변태들일 뿐이고, 그것은 헤테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변태 헤테로들이 많은가. - P53

더불어 또 중요한 것, 자신이 좋아하는 특별한 광대를 계속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응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나는 더 보여주고 싶고, 더 웃기고 싶고, 더 말하고 싶고, 더 생존하려 한다. 당신은 당당히 문화혜택비를 내고 그 모든 걸 정당하게 즐길 수 있다. - P59

얇고 길게 하면 됩니다. 저는 남들한테는 이반지하지만 여러 가지 직업을 거쳐왔고요. 학원 선생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고, 영어 번역도 하고, 모 복권사 홍보 제안도 쓰고 있고요.. 동사무소에서도 근무를 했었고…….…사회 전반의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남들 잘되는 건 단순하고 심플하게 한결같이 잘되는 것 같고, 나는복잡하게 안 되는 것 같잖아요. 실은 그게 아닌데.

_<월간 이반지하> 2호 - P81

특히 한국 사회에서 퀴어 퍼포먼스를 하면서. 지금까지도 공간 하나만 빌리려 해도 거절 많이 받거든요. 많이 받았다고 해서 거절당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누구나 그럴 것이고 나중에도 항상 어려울 것 같아요. - P98

뭐, 그렇게 대단해서 패배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거절이란 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이유로 행해지는 게 아니라 되게 흔하고 평범한 경험이니, 그걸 너무 한계라고 견고하게 느끼지 않길 바라요. 그리고 그 거절과 패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결정타가 될지 모른다는 거?

어쨌든 지금 이 순간도 님한테는 중요한 삶이니까, 그 안에서 꼭 뭔가 맨날 먹는 커피든 디저트든, 조금이라도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사소하고 별거 아니어도.

취업할 곳을 찾고 있는 이 기간도, 그냥 준비 기간만이 아니라 ‘삶’이 잖아요. 삶의 일부로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나한테 조금이라도 기쁨을 주면서 이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어디론가는 가고 있을 거예요.

_<월간 이반지하> 10호 - P99

왜 자꾸 그 기억을 그리는 줄 아나요? 왜냐고 묻자 그는, 다룰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예요, 라고 말했다. - P133

저는 동네 커피숍을 아주 중시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가정의 갈등으로 인해서 제겐 커피숍이 항상 중요한 기관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집에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스타벅스 가면 된장녀라고 생각하겠죠?

전혀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

_<월간 이반지하> 4호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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