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은 우산의 투명 비닐 밖에 펼쳐진 축축한 회색 풍경을 바라봤다. 모자가 필요한 날씨다. 검정 야구모자와 헤어 젤. 로빈은 둘 다 쓰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뭘 해도 소용이 없다.
"바보같이 외모 걱정을 왜 해? 생각만 바꾸면 비의 생명력이 내 것이 되는데!"
로빈의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로빈이 궂은 날씨를 싫어하는 마음과 거의 비슷하게 엄마는 폭풍우를 좋아했다. - P65

누군가 걱정을 하면, 로빈의 아빠는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도 50퍼센트지"라고 말하곤 했다. 로빈의 엄마는 그 말을 정말 좋아했다. 요즘 아빠는 그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머지 50퍼센트의 불행이 닥쳤을 때도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 믿기는 힘들다. 그래도 시벨을 자기 의지로 거부한 건 잘한 일이었다. 경험을 쌓고 싶지만 아무한테나 목매달고 싶진 않았다. - P84

위니는 토미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내가 네 아빠라면 좋겠다."
"우리 서로 아빠가 되어 주면 되지."
둘은 서로에게 엄마이기도 했다. 늘 서로 밥은 먹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 챙겨 주었다. 한번은 토미가 위니에게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가르쳐 주다가 말했다.
"넌 내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아들이야."
위니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좋았다. - P9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인종도 성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 P99

"우리 엄마가 그 사람들 편을 드는 건 그 사람들도 권리가 있어서래. 너도 들었잖아. 우리 아빠랑 결혼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 편을 드는 거야."
"네 아빠랑 결혼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번에는 내가 짜증이 났어.
"우리 아빠 흑인인 거 까먹었냐?"
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마리아를 바라보고는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렸어. 작은 파도들이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 쪽으로 살며시 다가오고 있었어. 마리아가 말했어.
"아, 그런 거였구나."
"우리 엄만 상관 안 할 거야." - P124

로이스 라우리 Lois Lowry
나는 1937년에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살았고, 중학교는 도쿄, 고등학교는 뉴욕, 대학교는 로드아일랜드에서 다녔습니다. 결혼하면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코네티컷, 사우스캐롤라이나, 매사추세츠, 메인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가 1979년에 이혼하고 난 뒤로는 보스턴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은 아주 평온합니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살고, 주말은 시골에서 보냅니다. 나는 책과 꽃, 개,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같이 사는 남자는 유머 감각이 넘치며 해리 트루먼을 영웅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내게는 아들과 딸이 둘씩 있는데, 이제는 모두 다 컸습니다. 넷 다 눈이 파랗고 혈액형이 Rh 음성입니다. 그리고 모두 유머 감각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닮은 점은 그게 전부입니다. 둘은 곱슬머리이고, 둘은 아닙니다(한 아이는 한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셋은 기혼인데 그중 하나는 두 번째 결혼입니다. 한 아이는 아직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하나는 공화당원이고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둘은 아이가 있고, 하나는 앞으로 부모가 되고 싶어 하며, 하나는 절대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는 장애인이고, 둘은 운동을 좋아하며, 하나는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입니다.
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차이를 존중합니다. 1994년 뉴베리상 수상작인 <주는 사람 The Giver>에도 이러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 P144

모든 시선이 애브너에게 꽂혔다. 그러고는 바로 록시와 나한테로 옮겨 왔다. 선생님이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우리가 늘 강조하는 거 잊지 않았지? 누구도 억지로 커밍아웃할 필요 없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할 필요도 없다는 거." - P165

"캐런, 그날 일……… 미안해."
"나도, 엄마한테 화내서 미안해. 그래도 에이즈에 대해선 엄마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그건 나한테 중요한 문제야. 그렇지만 뭐, 엄마에게도 엄마 생각을 말할 권리는 있는 거니까."
"아냐, 내 생각이 잘못된 거라면 고집해선 안 되지. 요 며칠 책을 찾아봤는데,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워지더라. 내가……… 애초에 내가 왜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잊어버리고 산 것 같아. 그동안 난 동성애라는 것이 좀 거북했어. 그런데 이제는…………." - P175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형이 나한테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내가 볼 때 넌 참 매력이 많은 애인데 지금은 아주 혼란스러운 것 같아."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동안 널 지켜봤으니까. 시작은 늘 그래, 마이클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먼저 알게 되더라고."
"뭘 알게 된다는 거야?"
월트는 그저 웃기만 하더니 마이클을 보면서 자기 옆자리를 두드렸다. 마이클은 가슴속에서 비상벨이 울리는 걸 느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월트 옆으로 갔다. - P199

나도 그래. 나도 다른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거 좋아해 보려고 했거든. 그러면 애들이 날 좋아해 줄 것 같아서. 근데 아무리 해봐도 유치한 파티에 가는 거랑 쇼 프로그램 보는 건 너무 싫어."
베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랑 나는 남들하고 다른가 봐."
마이클은 눈물이 가득 고여 앞을 가렸지만 가까이 다가가 베키를 와락 끌어안았다.
"베키야, 사랑해."
마이클은 한없이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벅찼다. 베키를 지켜주는 건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순간은 베키가 마이클을 지켜 주고 있었다. - P203

실라가 내 팔에 손을 얹자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다시 실라의 손길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저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라가 불쑥 자신이 아니라 나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테리야, 너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거야."
이 말이 매기 없이 농구 캠프에 가는 걸 말하는 게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실라는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밖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용기만 낸다면 얼마든지 따라 들어갈 수 있게. - P227

앨런 하워드
나는 거의 평생을 오리건주에서 살다가 1990년에 남편 척과 함께 미시간주의 캘러머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딸이 넷 있는데, 지금은 다 자랐습니다. 그중 셰일리라는 딸이 레즈비언입니다.
부모 노릇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셰일리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달리기>의 주인공처럼, 난 딸아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서 도망치려고만 했습니다. 딸이 레즈비언인 게 창피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려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딸은 자신을 찾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비겁한 엄마를 두었는데도 말입니다. - P228

오솔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하던 데이비드는 이상하게 날아갈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앨런과 헤어지면 허전함이 밀려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떤 충만감과 깊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데이비드는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앨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 P265

대화는 사실 추한 거짓말들뿐이었다. 여자 몇 명을 꼬셨고, 몇 명이 넘어왔는지 등등. 피트와 리 둘 다 거짓말에 능숙한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둘을 부추긴다. 사실 이 대화는 남자든 여자든, 스트레이트든 게이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빈칸은 알아서 채워 넣으시길. 운이 좋은 애들은 곧 성숙해져서 이따위 거짓말이 필요 없어진다. 강인한 애들은 애당초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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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라고 한 건 널 끼워 넣는다는 말이 아니야. 게이들은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하려는 거였어. 보통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을 하면 최악의 결과라고 해 봤자 여자한테 비웃음을 사는 거지. 그런데 남자가 남자한테 데이트하자고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거든."
지난 1년 동안 내성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꼭 데이트 상대를 찾고 싶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 P23

"만약 게이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숨기고 살지 않아도 됐다면, 그리고 서슴없이 게이임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네가 아는 사람 중에도 네 고민을 들어 줄 사람이 많았을 거야. 게이를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단지 모른다고 착각할 뿐이지." - P24

"그럼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건너뛰어야겠네. 미성년자 관람불가거든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얘기해 주려고 했던 건 세 번째였으니까. 우리 게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게이가 딱 하루만이라도 다 파란색으로 보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왜요?"
"그럼 이성애자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는 게이가 없다고 착각하지 않을 거 아냐. 그동안 쭉 게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세상에 게이 경찰, 게이 농부, 게이 교사, 게이 군인, 게이 부모, 게이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하지 못하게 될 거야. 우리도 드디어 숨어 살 필요가 없게 되고." - P26

수녀님이 다그쳤다. 바로 그때, 신디가 허리를 펴고 턱을 치켜들더니 심문을 끝내 버렸다.
"우린 바싹 붙어서 잠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한 말투였다. 우리 행동에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실제로 우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숟가락을 포개어 놓은 것처럼요."
방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사랑스러운 나의 신디! 겁쟁이인 줄만 알았던 나의 신디! 그 순간만큼 신디가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신디는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우리가 성 마리아 여학교에서 보낸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다. - P47

게다가 그 순간 나는 어떤 깨달음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심지어 부모님이 고른 사립 대학교에 합격하려면 꼭 필요했던 성 마리아 여학교 졸업장까지도 뒷전으로 밀려날 만큼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지금 신디와 나는 우리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짓을 했다고 비난을 받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까지 우리 둘 다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본적 없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열린 가능성,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가능성에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현실적인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랑이 수녀님과 부모님에게서 인정받는 것이나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간절히 수도 있음을, 심지어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을 만큼 절실할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놀라움과 두려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 P49

그랬더니 빳빳하게 다림질한 하얀 옷에 까만 앞치마를 두른그 비쩍 마른 하녀가 그러더라.
‘저 시중 못 들겠어요.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그러면서 갑자기 날 쳐다보더니 이러는 거야.
‘유대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것들한테는 두 번 다시 시중 못 들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우린 모두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가서 직접 음식을 덜어 먹었지. 카를 삼촌만 빼고 말이야. 그분은 그때까지 조카가 데려온 학교 친구가 유대인이라는 걸 모르셨다고 하더구나."
"독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할머니가 거기 계셨단 얘기는 처음 들어요." - P56

"내가 독일에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그러니까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안단다. 편견이 어떤 건지도 말이야. 앨리슨, 너 자신에 관해서 이 할미한테 말해 줘서 고맙다. 나한테 맨 먼저 얘기해 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구나."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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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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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퀴어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조선시대 아니고 일제강점기이고(하긴 조선시대 퀴어에 대한 기록이 있긴 할까), 내가 아는 그 퀴어가 아니고 정말 Queer, '조선의 엽기'나 '조선의 변태'가 더 어울릴 법한 에로 그로한 이야기가 많다. 서양인과 일본인의 근대적인 사고와 제국주의적 관점을 흡수한 조선인의 미성숙한 시각, 야만적이고, 때로 엽기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을 그 당시 신문 지면을 통해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다. 신문의 자극적인 낚시질은 그때도 성행했다네. 그래도 책 후반에는 퀴어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최초의 단발낭으로 알려진 기생 출신 강향란이라는 멋진 신여성도 알게 되고. 생각해보면, 구시대와 신시대의 교차점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혼돈의 시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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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자의 생사여탈권에 기초한 전통적 권력이 생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권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양적인 증감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출생률, 이병률, 수명, 생식력, 건강 상태와 같은 고유한 변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주목한 바 있다. - P171

총독부 관리들이나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인 절대 다수가 계몽되지 못해 미신과 관습에 사로잡힌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성숙한 근대인인 일본인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시스난디는 피식민지인을 아동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이 근대 식민지 체제들 안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해야 하는 ‘아동’의 존재와 이들을 돕는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의 ‘성인‘으로 상징되는 성장과 발전의 테마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 손쉽게 유비되었다. 식민지인의 차이는 야만의 상징인 동시에 아동의 미성숙함에 대한 대응물로 간주되곤 했다. - P182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모종의 인식론적 전환, 즉 성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접근에서 의학적·생리적 접근으로의 전환과 같은 이분법을 통해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도 여전히 비의료인 지식인들은 ‘성교육‘에 대해 발언권을 가졌으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의학적 전거를 동원했다. ‘불순혈설‘을 둘러싼 논쟁은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의 담론의 혼재를 잘 보여준다. ‘불순혈설‘은 여성이 한 명 이상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 혈액 중에 이미 성관계를 한 남성의 혈액이 남아 ‘순혈한 혈통‘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론으로 1920년대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 P185

여성성과 남성성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신체적으로 양성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의 발전에 있어 1920~30년대 내분비학의 발전은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것을 모든 여성들이 남성의 요소를 가지며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성전환수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양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내분비학 학자 오이겐 슈타이나흐를 비롯해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전환 실험/수술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창조‘라고 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수술은 호르몬을 사용해 지배적인 성별의 신체적 특징과 성행동을 억제하고 잠재된 반대 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있는 존재이며,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한 방향이나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성별이란 내분비물의 추가나 감량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양적인 차이로 이해되었다. - P214

식민지 당국은 조선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특유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본국‘ 일본에 비해 더욱 가부장적으로 조선인의 성을 통제했다. 이것은 공공의 의제로서 성담론이 논의되는 지형을 매우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성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상업화와 의료화를 매개로 사적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 주제가 되었다. 성이 개인화되고 내밀화되는 경향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자기관리‘의 주체이자, 끊임없이 자신의 성생활과 남성/여성 정체성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잠재적 환자로서 이러한 담론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 P218

20세기 초는 세계 각지에서 근대적 여성 고등교육기관과 기숙학교가 등장한 시기로, 동시대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유사한 형태의 로맨틱한 관계들이 출현했다. 선배와 후배 여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여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었던 이 로맨틱한 열정은 미국에서는 스매싱smashing 혹은 크러쉬crash(현대의 ‘걸크러쉬‘의 어원)로, 영국에서는 레이브raves로,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는 마미 momm와 베이비baby로, 그리고 일본과 조선에서는 ‘S‘로 불렸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는 기사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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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24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재밌게 읽었는데...

햇살과함께 2022-03-25 20:01   좋아요 0 | URL
이상하고 엽기적인 나라를 보는 듯요 ㅎㅎ 신문은 그때도 참 낚시질을 많이 했구나 생각도 ㅎㅎ
 

박람회 안내원들은 키스를 판매하는 "키스껄"이라는 소문에 시달리는가 하면, 여자 운전수들은 키스를 하려 달려드는 승객을 피하려다 충돌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흥 공간이나 공적인 노동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행위들은 ‘변태성욕’이나 폭력으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변태성욕’과 폭력의 경계가 특정한 성적 행위의 유무나 행위를 둘러싼 강제성의 여부가 아니라, 피해 대상이 ‘어떤 여성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이른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입술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카페 여급이나 여자 운전수처럼 노동하는 여성들은 이러한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여성들에 대한 성적 접근은 정상적인 남성성의 범위 안에 있는 일상적인 ‘히야까시(괴롭힘)’의 형태로 사회적으로 승인되었다. - P98

하층계급 남성들의 ‘변태성욕’은 거의 서사나 맥락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원래 변태성욕자‘로 단정적으로 가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많은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성과학은 ‘문명화된 서구‘라는 가정 뿐만 아니라 중산계급이 특별한 성적 도덕성과 고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의사와 학자들이 백인 중산계급 출신으로, 자기가 속한 계급의 가치와 이해를 연구와 학설들에 반영했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비유럽인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계급 역시 전형적으로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당대의 의사들은 성적인 허용성과 관능이야말로 빈민과 노동계급의 특징이며, 중산층과 상류층만이 고결한 성도덕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04

서구 성과학의 도착 범주들은 ‘변태성욕’이 식민지 조선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이식되지 않았다. 성적 정상/변태의 기준은 근대적 법을 통해 구축된 불법/합법의 경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선의 관습과 식민지라는 독특한 조건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조정되었다. 연령과 폭력을 둘러싼 모호한 기준들이 보여주듯이 이 경계는 매우 불투명했으며 대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태성욕‘을 저지르는 범죄자의 전형은 보다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 ‘선천적인 범죄자들’은 흔히 하층계급 남성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1930년대에 비등하는 ‘변태성욕‘ 성범죄에 대한 공포 속에서 식민지 최하층 남성들은 식민지 경제 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위험한 성적 타자로서 재규정되었다. - P110

크로스드레싱 실천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집단은 바로 ‘신여성‘이었다. 조선 최초의 "단발낭"으로 알려진 기생 출신의 신여성 강향란은 1922년 "남자양복에 캡 모자"를 쓴 차림으로 정측강습소에 등교해 남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음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한복에 갓을 쓰고 다니는 남성이 조선인, 화복和服을 입은 남성이 일본인으로 식별될 수 있다면, 양복, 그것도 남성용 양복을 입은 채 거리에 나타난 이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에게 적합한 정체성은 바로 근대적 개인일 것이다.
강향란은 자신이 "단발"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실연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남자에게 의지를 하거나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긴 머리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긴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단지와 함께 굳센 사랑의 맹세를 의미했다. 강향란은 이제 그 머리를 연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자름으로써 경제적·정서적으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기를 표현했던 것이다. 강향란의 단발은 자신 역시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이며 "남자와 같이 살아 보겠다"는 일종의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자기선언이었던 셈이다. - P122

오히려 이 경계 자체를 심문하고 이에 깊은 불안을 드리우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성이 과거 시험에 비견되곤 했던 당시의 치열한 입학시험에서 남성과 나란히 경쟁할 뿐 아니라, ‘남자양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를 공부할 수 있다면 여성과 남성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P128

물론 현실에서 대부분의 인터섹스의 삶은 여전히 수술과는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경제적 자원을 가지지 못한 하층계급인터섹스들에게 있어 수술처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적 개입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규범적인 여성/남성 몸 모델을 통해 분류될 수 없는 신체가 일종의 ‘불구자‘일 뿐만 아니라 치료할 수 있고 치료되어야만 한다는 사고는 분명 당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인터섹스 당사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두 개의 성별 정체성과 이에 상응하는 두 개의 신체, 그리고 두 개의 배타적인 삶의 방식만을 자연적이고 유일한 질서로서 새겨 넣는 과정이기도 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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