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
성주체성장애는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1980년에 발간한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편람》 3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III)에 아동기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of childhood)와 트랜스섹슈얼리즘(Transsexualism)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재되었다. 트랜스섹슈얼리즘은 이후 청소년과 성인의 성주체성장애에 대한 진단명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성주체성장애라는 진단명은 ‘장애’라는 표현으로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병리화하고, 트랜스젠더에게 정신장애라는 낙인을 추가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 P10

이에 따라, 2013년 개정된 DSM-5에서 성주체성장애는 성별위화감으로 바뀌었다. 성별위화감은 출생 시의 법적 성별과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이 불일치함에 따라 생기는 불쾌감 또는 위화감을 가리킨다. 성별위화감이라는 진단명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는 장애가 아니며,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것은 성별위화감으로 인해 트랜스젠더 본인이 느끼는 고통임을 강조한다. - P11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 줘."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중 - P18

연구를 하며 가장 자주 떠올린 단어는 ‘무지‘였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는 과정은 모든 게 새로웠다.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단어에 익숙해지고 그 뜻을 배워야 했던 면도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그 고정관념을 나는 오랫동안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쓴수많은 논문에서 성별이라는 변수는 남과 여로 고정된 것이었으니까.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에는, 내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어떤 것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었다. 은행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일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나는 짐작조차 못했다. - P19

연구실 학생들과 연구를 기획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할 때, 충분한 사전 검토와 고민이 없으면 그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동안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나 전공의 근무 환경조사 같은 여러 연구를 진행하면서 애초 의도했던 계획이 실패한 적은 많지만, 한 번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학생들이 막연히 궁금한 내용을 설문 문항에 포함시키도록 허용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해서는 아직 설문조사를 진행할 만큼 당시 우리의 고민과 공부가 충분히 쌓여 있지 않았다. - P23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교수님, 이 글을 논문으로 받아 줄 학술지가 있을까요?" 학생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이 한국 사회에 학술적으로 필요한 내용이라는 점은 확신하지? 그러면 믿고 가자. 그런 글은 학술지가 분명 알아볼 거야." - P26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길은 둘 중 하나였다. 좀 더 준비를 하며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이 부족함을 감수하며 현재 가능한 수준에서 최선의 연구를 할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후자였다. 만약 우리 연구가 세계의 구성원리를 파악하는 물리학 연구였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건학은 인구 집단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응용학문이다. 한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집단은 그 공동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현재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좀 더 방법론적으로 엄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 P29

준비해 간 연구팀 소개글과 연재글을 보여 줬을 때 매니저분은 "대학에서 연구하시는 분들이시죠?"라고 말하고는 우리의 눈을 피했다. 이혜민 선생님과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희 글이 그 정도로 이상한가요?" 매니저분은 글이 나쁜 건 아닌데 많은 분들이 핸드폰으로 보실 텐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고 했다. 나름 부드럽게 대중적으로 글을 쓴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연구자스러운 글이었던 것이다. - P31

2017년 3월 23일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우리가 진행한 크라우드펀딩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대안적인 연구 형태로 소개한 기사가 실렸다. 한국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지 못하고 시민들의 후원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던 우리의 여정이 오히려 외국에서 인정받은 것 같았다. - P33

2016년 12월 <청소년 건강 학술지(Journal of Adolescent Health)》에 실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와 하버드대의 공동연구였다. 10대 트랜스젠더 73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기 전에, 난자·정자 보관(Fertilitypreservation)을 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것이었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삶의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는데,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고 나면 자신의 난자와 정자로 아이를 갖기 어려우니 그 전에 난자와 정자를 추출해서 보관해 놓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조사한 연구였다. 연구에 참여한 73명 중 72명이 난자·정자 보관 상담을 했고, 2명은 실제로 난자·정자 보관을 했으며, 45%는 나중에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논문을 읽고 나서야 나는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 P36

몇몇 분들이 "그냥 브로슈어를 보내시지, 부담스럽게 교수님이 직접 오셨어요?"라고 내게 물었다. "부담드리려고요. 도와주세요. 정말 잘해 보고 싶어요." 데이터 수집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병원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반쪽짜리 설문조사가 될 뻔했다. - P38

그러나 한국 사회는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체성을 두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성적 기호‘라는 잘못된 단어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른 의료적 조치를 ‘미용성형‘이라는 말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한국의 의과대학 교육 과정과 레지던트 수련 과정에는 트랜스젠더 환자 진료에 대한 내용이 없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실력이 좋은 의사에게 수술받기 위해 태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태국에서 수술받고 한국에 돌아온 뒤 후유증이나 합병증이 생기면 대책이 마땅치 않았다. - P44

의료적 트랜지션을 건강보험 보장 항목에 포함시키는 결정은, 드러내 말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역사를 감당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그들에게 한국 사회가 보내는 작은 전언이 될 것이다. 당신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에 무지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겠다고. 늦었지만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우리가 함께 감당하겠다고. 그러니 당신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 P46

"저도 사실 법적 성별정정 때문에 수술을 한 거라서. 수술 없이도 가능했다면 저도 수술을 안 하고 정정하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어차피 생식기를 뭐 보여 주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옷으로 가리고 다니는 거고." (20대 젠더퀴어 K) - P51

"한국에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있어요?" 2013년, 청소년 트랜스젠더 생애사 연구를 할 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낯설게 느끼고, ‘청소년기에도 성전환 수술을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어느 날 갑자기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사회적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긴 고민과 협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다수 트랜스젠더는 아동기나 청소년기 - P54

에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깨닫고 형성하며 성장한다. 또한 자신의 성별정체성으로 인해 가족이나 또래 관계에서 갈등과 불화, 때론 폭력을 경험하며, 의료적 트랜지션과 법적 성별정정을 비롯해 미래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 P55

연구 참여자들은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2차 성징으로 몸의 변화가 시작되면서 혹은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나 개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린 시절 막연하게 갖고 있던 다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자기인식과 충돌하며, 불안과 불편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어린 시절 "자고 일어나면"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트랜스여성F는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씨의 데뷔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이 실제 존재하며 이것이 현실임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 P59

처음 생리가 왔을 땐 어땠어요? 아, 키는 망했구나 했죠. - 트랜스남성 D - P60

연구 참여자들에게 청소년기에 찾아온 2차 성징은 다른 이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본인이 깨달았던,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을 현저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이들은 이미 어딘가 ‘달랐지만’, 몸의 2차 성징으로 인해 더욱 ‘달라졌고’, 따라서 이 차이를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한 채 현실로 소환되었다. ‘나는 누구‘라는 말을 찾기 위해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도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쉽지 않았다. 이처럼 자신의 성별을 둘 - P61

러싼 경합과 불협화음을 조율하고, ‘무엇이 아닌‘ 나를 넘어 ‘나는 누구다‘라는 감정을 형성하고 스스로 명명하는 행위는, 연구 참여자들이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62

주로 방과 후까지 화장실 가는 걸 다 참고 학교에서 나간 다음에 해결을 한다거나, 아니면 수업시간이라든지 아니면 체육시간 같을 때에 자유시간을 준다 그러거나 하면 그때 화장실을 이용했어요. (다른 학생들이) 화장실 안 가니까. 그런 식으로 다들 안 들어가는 시간에 해결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 트랜스여성 A - P62

중학교 때 조용히 지냈던 편인데, 그때도 상담 선생님과 말을 해 본 적이 있었어요. "제가 남자로 태어났지만, 저는 여자예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나중에 어떻게 할 거다라고 설명을 드리면서……, 제 입장에서는 설명을 잘 드린 거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딱 한마디를 했어요. "이 개새끼……" 따졌죠. 제가……… 왜 개새끼냐고요. 그러니까 "니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내 종교는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 종교인데, 내가 어떻게너를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 이러시더라고요. - 트랜스여성 E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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