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에서 ‘베트남의 한국병사‘에 관한 저 에피소드는 심히 뼈아픈이야기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인이 다른 아시아 민족의 반 - P308

식민주의 투쟁을 저지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용병 노릇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그 민족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자기망각, 자기배반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과거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파병문제에 관련해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반응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는 거친 항변, 혹은
"그게 역사적인 과오였다고 할지라도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만큼 골치 아픈 이야기는 묻어두자"라는 매우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과오 없는 역사가 있을수 없다. 그리고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슬기로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파병문제와 같은 것을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이 나라를 윤리적황무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 P309

어쨌든 검찰을 비롯하여 언론, 국회, 법원, 경찰 등등, 국가기구들이종래의 억압적 혹은 권위주의적 태도와 자세를 다소간 누그러뜨리고 국민 대다수의 요구에 보다 순응적으로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의 위력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촛불이 겨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하나를 바꾸는 수준, 혹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촛불은 모름지기 권력과 민중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좋은 사회‘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근본적으로 묻고 거기에 대답하고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한 싸움, 즉 4·19와 5·18 그리고 6월항쟁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민혁명을 수행하는과정 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 P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개표 직전까지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는 힐러리의 낙승을 장담하거나 점쳤다. 이것은 미국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이 미국사회의 ‘밑바닥 심리‘를읽어내는 데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그것은 미국의 기득권층과 민중사회 사이의 괴리가 매우 심각하다는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지표가 된다고 할 수도 있다. - P320

실제로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2016)의 저자 볼프강 슈트렉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경제학자, 지식인들이 이미 자본주의의 종언을 단언하기 시작했고, 그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의 종식에 따른 대안 체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포함해서 자본주의와 성장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지식인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더 필요한 것은 보다 질 높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성장‘ 시대의 ‘좋은 삶’은 ‘공유경제‘, 즉 공동체 전체의 부를 구성원들이 고르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얼마나 발휘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부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확립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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