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주목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다. "남북이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지난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행한 발언이라고 보도되었는데, 우리는이 말에서 너무나 닳고 닳은 직업정치인들의 상투적인 말을 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이 말은 어떠한 가식적인 꾸밈도, 거창한 개념적인 어휘도 없이 매우 알아듣기 쉬운 소박한 일상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쉬운 표현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 실감에 매우 충실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여기서 우리는 남북연합이니 연방제니 1국가 2체제니 하는 남북 간의 관계설정에 관련해서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공식적인 어휘들을 접할 때와는 전혀 다른 ‘진정성‘과 ‘절실한 마음‘을 확연히 느낄 수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의 수구언론의 눈에는 대통령의 이 - P349

말이 ‘반헌법적‘ 발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 말이 "대통령은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적혀 있는 헌법66조 3항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실로 기발한 주장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온라인판, 2018년 3월 21일).) - P350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에게는 아무런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상, 신조도 없다는 점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경박함과 무례함, 퇴영적인 언행으로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그가 여전히 상당한 대중적 지지 속에서 대통령직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과 그 자신이 기성의 엘리트층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결코 우연적으로 등장한 인물이 아니 - P350

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의 민주주의-정확히 말하면 선거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상징하는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 다수는 그동안 상류층 엘리트들이 온갖 논리로미화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실은 대중을 배제한 엘리트들만의 민주주의임을 온몸으로 체득해왔고, 그 과정에서 쌓인 분노를 어느 모로 보나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트럼프라는 인물에게 표를 던지는 것으로써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전체 유권자들 중 절반 이상이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든 독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결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패퇴를 표상하는 인물이라면, 그에게서 민주주의의 재생도, 좋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트럼프는 지금 해묵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미국의 엘리트정치가, 외교관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북핵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351

아마도 그런 까닭에 최근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 전역에서 곤충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일반 보도기사가 아니라 사설社說)로다루었는지도 모른다. <가디언>(2018년 10월 19일)에 의하면, 자연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인 푸에르토리코의우림(雨林)에서 지난 40년 동안 곤충의 수효가 약 60분의 1로 줄어들었 - P357

고, 그 결과 곤충을 먹고 사는 새와 도마뱀 등도 3분의 1 내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심히 불길한 느낌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독일에서도 같은 기간에 무려 75퍼센트나 곤충의 수효가 줄어들고, 영국에서도 나비와 벌을 비롯하여 수많은 곤충들이 사라졌다.
더욱이 이런 현상을 확인한 조사·연구의 대상 지역이 도시나 도시 근처의 오염 지역이 아니라 ‘인간의 간섭 범위‘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보호 지역들이라는 점은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살충제나 대기와 물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은 지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렇게 곤충이 사라지는 데는 기후변화라는 요인도 크게 가세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P358

지난 10월 초 인천에서 열린 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 참석한 과학자 전문가들은 세계를 향하여 또다시 다급한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지는 산업혁명 직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1.5도를 더 초과한다면 지구사회가 대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적어도 203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보다 40~50퍼센트까지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의 이 회의의 결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내지 2.0도 이내로 억제할 것을 목표로 했던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장차 닥칠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새로운 과학적 평가에 따라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 P359

위에서 언급한 <가디언>의 사설은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라는 엄중한사태에 직면하여 우리가 개인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일로서 <캉디드>의 작가 볼테르의 권유대로 우리가 각기 나름대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연 설명이 생략된 갑작스러운 결론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제안도 없을 듯하다. - P362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근한 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떤 경작방식에 의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식탁에 도달했는지 등등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최대한 육류와 낙농제품을 줄이고 가까운 논밭에서 수확한 유기농산물 중심의 식단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난화 가스의 주된 원천으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화석연료에 기댄 전력생산 시스템, 개인자동차 중심의 교통수송체계,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하게 적용되어온 대규모 산업농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 시스템을 최대한 신속히 확대하는 것과 석유 의존 수송수단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혁명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긴급한 과제이지만, 산업농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농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화된 대규모 단작농사를 의미하지만,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생태계 파괴의 원흉이자 동물학대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대규모 축산산업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도 실제로 엄청난 것이다. - P363

지금은 낡은 방식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물론 이것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겨냥하는 방향전환이어야 한다는 것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든 국가정책도 이 기준에 따르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한심한 뉴스는 12월 18일 세계적 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가 작성한 <농민 및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유엔총회에서 결의·선포될 때 한국이 ‘기권‘ 표를 던졌다는 소식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농민과 농촌, 농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이다. 한심한 것은 정부뿐만 아니다. 국회에서 통과된새해 국가예산 편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평균 9.7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 농업 관계 예산 증액은 겨우 1.1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 P367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은 경제성장 시대가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객관적인 세계경제 정세에한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는 여러 논자들이 이미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30여년 동안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온 일본의 경우는 특기할만하다. 오늘날 일본의 지식사회에서는 ‘축소균형의 시대‘라는 개념이 별로 낯선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꽤 여러 해 전부터 재야의 지식인은물론, 공직자들 중에도 성장시대는 더이상 재현되지 않는다는 생각에동의하는 사람들이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용어의 창시자는 시모무라 오사무(下村治)라는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원래 1960년대에는 고위직 관료로서 소득배증론(所得倍增論)을 제창했던 성장론자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고 난 뒤에는‘축소균형‘이 다가오는 시대의 불가피한 추세가 될 것임을 누구보다 앞서서 내다보았던 선지자였다. - P372

그러나 특출한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는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란 원래 ‘인민의 자기통치‘를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예외적인 인간이아니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와 생각이라는 것을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상호-주체적으로 행사하면서 공생공존의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정기적으로 습관처럼 치르는 선거가 과연 이에 합당한 제도냐 하는 것이다.
확실히 선거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의 문제는 그 점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실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 P388

‘엘리트들’이다. 그 엘리트들끼리의 경쟁을 우리가 선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이,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하여 그에게 표를 준다. 즉,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하등 다를 게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현대의 선거민주주의인 것이다. - P389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 P389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당시 중국 쪽에서 시작된 페스트균이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이동·확산함으로써 유럽 인구의 태반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대규모 인명소실로 유럽 중세 질서가 결정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농노와 하층민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자 중세 질서의 하부구조, 즉 농노제의 지속적인 유지는 크나큰 난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불같은 열정으로 신대륙을 탐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지만, 이는기본적으로 꽉 막힌 폐색상황을 타개하려는 유럽인들의 필사적인 기도에서 비롯된 기획들이었다. - P398

역병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적 재난이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를 상대로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 2년째, 아테네는 돌연히 전염병의 창궐에 휩싸였고, 그때문에 결국 전인구의 거의 3분의 1일이 희생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정체불명의 괴질 앞에서는 건강한 젊은 병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영웅적인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그 아들들도 괴질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 중에 지도자를 잃고, 대규모의 병력을 잃은 아테네 군대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단지 대규모의 병력 손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괴질이 창궐하여 가족, 친지,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느닷없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아테네인들의 인생관과 윤리관에 큰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절제의 기율을 팽개쳐버리고, 법을 우습게 여기고, 더이상 신을 섬기지도 않고, 찰나적인 향락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ㅡ라고, 그 자신 역병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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