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해온 것은, 평생 원전 반대운동에 치열하게 헌신했던 세계적인 탈핵사상가 고(故) 다카기 진자부로(三郞) 선생이 간명하게 말했듯이, 원전이란 한마디로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다른 문제는 접어두고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원전은 만물의 지속적 생존의 토대인 생태계 내에서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되는 ‘괴물‘이라는 것을, 사심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긍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 P330

성급한 판단일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장벽은 역시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중심주의적 사고의 끈질긴 영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탈원전을 원하면서도, 당면 현안인 두 기의 원전 건설의 중단은 원치 - P330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일견 모순적인 결론 때문이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 중 일부의 사후 소감을 들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역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경제논리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 경제논리의 안쪽에 있는 심리, 즉 원전을 포기하면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암암리에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경제논리와 안논리의 경쟁에서 경제논리가 승리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수 시민참여단에게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를 보고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 P331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세계의 논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도 출신 작가 판가지 미슈라가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분노‘라는 현상이다. 미슈라에 의하면, 오늘날의 이 광범한 대중적 분노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것으로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최신저서 《분노의 시대》(2017)의 집필 동기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예컨대동의 테러조직 IS(이슬람국가)나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결정한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일견 무관계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현상들의배후에 공통한 ‘감정적‘ 뿌리가 있다는 관찰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의하면, 이 감정적 뿌리는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을 통해서 이른바‘근대문명‘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점만 말하자면,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된 근대문명은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적 제도의 구축, 그리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진보’를 계속해 나감으로써 그 혜택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라는 약속하에서 전개되었으나 실상은 수백 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실제로 혜택을 받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다수 대중은 언제 어디서나 근 - P339

중들이 이러한 희생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끼자 지금 보는 것과 같대화 혹은 진보를 위한 ‘제물‘이 되어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이 지배층 엘리트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과 분노가 폭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337

예를 들어, 그동안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온 근대적 ‘선거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보자.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확인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본시 민주주의는 ‘선거‘와는 결코 양립할 수없는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아마도 민주주의는 바로선거를 뜻한다고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반드시 돌아봐야 할 원점, 즉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통치의 시스템이었지,
특별히 뛰어난 인물에게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시스템 - P337

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라고부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모든 시민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참석하여토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 그들은 민회 이외에 평의회와 민중법정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거기서 시민들의 대표자들이 국사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관장하고 재판을 하게 하였다. 그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 대의제에서 특기할 것은 시민대표의 선정 방법이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였다는 점이다. 즉, 아테네인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선거란 필연적으로 명망가, 재산가특권층에게 권력을 내주는 방법이라는 것, 따라서 그 방법으로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이 제비뽑기였던 것이다. - P338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난 150년간 한반도를 비롯해서 동아시아가 겪어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메이지유신은 또한 이 지역에서의 엄청난 ‘비극‘과 ‘재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대 일
‘본‘의 침략주의와 식민주의로 인해 참혹한 삶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입장에서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일본에서는 오히려 메이지유신이후 적어도 1931년 중일전쟁 개시까지를 ‘영광의 시대‘로 보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메이지유신은 물론,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도 일본인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는 획기적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키나와, 대만, 조선, 만주를 침략하고 식민화한 것은일본 자신이 서양의 식민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전개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 일본의동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지배는 이 지역이 ‘전근대‘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지식사회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던 미국인 방송저널리스트가 느닷없이 "한국인들은 오늘의 발전에 대해서 일본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 발언을 한 것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널리, 그리고 깊게 퍼져 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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