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년의 골목

여행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는 좀처럼 맘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 오월은 어디서나 눈이 부셔 더욱 내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집앞에 제주도에서 본 철쭉꽃이 활짝도 벌어졌다.
저들이 지고나면 이제 언제라도 여름이 처들어오겠지. 

내 나이 마흔하고도 이년 째다. 생각할수록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어제 우연히 나보다 여섯살 많은 프랑스 여배우의 영화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사랑을 카피하다. Copie Conforme, Certified Copy > 

빨래가 널려있는 고풍스런 골목이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이다. 그래, 빨래는 저렇게 시골 뒷골목에 청승맞게 매달아야 제 맛이다. 기억해보지만 영화에서 저 두사람은 절대 옷을 바꿔입지 않았다. 하루동안 벌어진 만남이니 당연할 터이다. 저들이 하루만에 영화를 촬영하진 않았을테니 저들도 지겹지 않았을까. 글쎄, 저들의 옷차림이 영화 끝무렵에 마치 내 옷처럼 편안하게 느껴진 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저들이 만난 사연은 우리 같은 책벌레로선 꽤 자극적이다. 남자는 영국의 작가인데 ‘공인된 복제품(Certified Copy)' 이라는 책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강연차 이태리에 들른 것이고 여자는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며 시니컬한 남자아이를 혼자 기르는 싱글맘이었단다. 그러니까 저들은 강연회에서 작가와 독자로 첫만남을 가진 것이다. 작가는 '질좋은 복제품도 원본처럼 가치있는 것'이라고 진짜만을 취급하는 여자의 신경을 건드린다. 영화초반부터 원본의 가치와 복제품의 가치를 진지하게 질문하는 이런 설정. 당연히 의미심장한 프랑스 영화인줄 알았으나 감독은 이란감독이었다. (거장이란다) 허긴, 이 영화로 줄리엣 비노쉬는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으니.  

저들이 이태리 시골골목을 돌고 돌며 거리자체가 박물관이라는 이태리에서 '오리지널'과 '카피'작품을 스쳐가며 나누는 대화는 뭐랄까, 영화같지 않고 한편의 근사한 단편소설을 읽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 작가라는 남자가 로마시대 오리지널도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카피한 것 아니냐는 자기작품의 변호성 질문은 우리에게 진짜와 짝퉁의 차이와 더불어 진짜가 짝퉁보다 더 가치있다는 상식을 다시금 생각케 하였다.  

이들이 어쩌다가 15년된 부부행세를 하게되고 또 그러다가 진짜부부처럼 칼날을 드러내고 감정의 싸움에 휘말릴땐 도대체 저들이 원래 부부였나 하는 생각도 하게했다. 가짜도 성격이 부여되면 가치가 생긴다는 말 아닌가. 대충 카피로서의 오리지널리티? 의 정당성? 어쩌면 남자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가짜부부의 시간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난, 영화가 던지는 이런 진지한 질문들보다는 그저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쥴리엣 비노쉬의 자연스런 매력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저 여자의 영화 '퐁네프의 다리'와 '블루'에 끄덕이던게 그러니까 십오년도 더 되었는데 그 사이 저 여자는 더욱더 근사하게 늙어가고 있었던 것.

6년 뒤에 내가 저런 모습일 수 있을까. 내 중년의 골목길이 이태리 어느 시골지방은 되지 못할지언정,
저렇게 우아하고 당당한 발걸음일 수는 있을까.

꽃이여, 좀 더 오월을 견디시게.  
오월이여, 꽃을 좀 더 기다려 주시게.

  

#2.   그때 그 음악

시사회때부터 재밌다고 소문이 난 영화 '써니'를 보고 왔다.  


 

  

 

 

 

 

 

 

 

 

 

 

 

 

 <써니, 감독 강영철, 유호정, 진희경, 홍진희> 

딸아이와 같이 보느라 창피해서 울지는 못했지만 아....
저것은, 저들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우리 학교, 그녀석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홍진희만빼고 저들은 모두 내 또래였다...) 

지난 달에 '젊음의 행진'이라는 뮤지컬을 보고는 완전 때아닌 80년대 노래를 다운받느라 딸아이와 
법석을 떨었건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종로 난투극 현장의 배경음악,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스펠링 생략ㅋ)는
아하의 테이크 온 미(이하생략)  와 더불어 하도 들어서 (테잎이 늘어진 관계로)제대로 된 테잎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었던 그때 그 음악이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파서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얼마나들 늙었을까. 저들처럼 누구누구는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튼실한 중견기업)에 시집가서 사모님 소리 들을 터이고,
또 누구는 연극한다고, 미스코리아 한다고 했었는데...(아, 이름대고 싶다. TV에 나오는 내 모든 동창들이여)
나도 한때는 카리스마 죽이는 투사형 반장이기도 했었는데.... 

하필, 젠장 

내일은 스승의 날이란다. 

담탱이여, 부디 오래 사시길.
언젠가 성공(?)하면 내 한번 꼭 찾아갈께요 ....  

 

#3.  돌아오는 길에

서점가서 들쳐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을 사들고 왔다. 아...얼마전 러셀의 베스트만 모아놓은 책을 원없이 비판해 대었건만 이 책도 달라보일 건 없는 명언집인데 나는 그만 몇 페이지 읽다가 다리가 아파 그냥 앉아서 맘 편하게 보려고 지갑을 열고 말았다.  

그런데 썩, 인용문으로 유용하다. 이제부터 서평쓸 때 본전뽑기 위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고 꼭 쓰고 말테다. (이 무슨.... ) 

내 발걸음을 좌석에 앉혀버린 문장을 옮겨본다.

"당신은 어떠한 일에 책임을 지려 하는가. 무엇보다 자신의 꿈의 실현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떠한가. 꿈에 책임질수 없을만큼 당신은 유약한가? 아니면 용기가 부족한 것인가? 당신의 꿈이상으로 당신 자신인 것도 없다. 꿈의 실현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혼 힘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 시인의 근황이 궁금해서 이 책도 샀다.

정말로 시집이 놓여진 매대에 골라들 책이 없어 유감이었다. 
시집은 출판계의 트로트? 대략 십년은 베스트 셀러란다.

 

영어로 된시는 감이 잘 와닿지를 않는데  

이 시인의 해석에 귀기울이고 싶다. 

봄이 다 가기전에 한권은 시집을 사리라 마음먹었는데 결국 나는  
신간을 고르지 못하고 또 옛날로 달려간다.
 

 

 

여행 다녀온 후로 내 감성이 말랑말랑 해진 느낌이다.

아..드뎌 내일은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왜 그들의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것인지,  

 

 

중년의 봄이 가고있다. 

비노쉬, 써니, 최영미....그리고 니체를 가득안고 주말을 견뎌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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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1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줄리엣 비노쉬가 48살인가요?
저게 최근작인가요?
저는 어제 늙다리 중년 약국 아저씨한테 어머니란 말 들었어요.
마땅한 호칭이 없었으니 그랬겠지만 약간은 황당하더군요.
그래도 내 나이 감안하면 심한 것도 아니니 뭐라할 수도 없구...OTL

전 요즘, 심은하가 나왔던 <인터뷰>를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자꾸 보다 자거든요.ㅜ
저때 심은하 볼 살이 통통한게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아니다 싶었겠죠?
그래도 그 영화 개봉 당시 하나도 안 어색했는데.
오히려 그녀의 안정감있는 연기만 몰입해 볼 수 있었는데.
지금도 현역으로 있었으면 턱 깎는다고 난리쳤겠죠.ㅋ

저기 맨 왼쪽 여자는 이름이 뭐드라...
암튼 한사람님 보다 어린 줄 알고 있습니다. 75년생인가? 그런 것 같던데...

저도 낼 '나가수' 기대하고 있어요. 버라이어티에 목 매는 스타일이 아닌데.ㅜ

한사람 2011-05-14 19: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이제 오십을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황신혜도 그쯤 아닌가..
심은하는 정말 사라지고 나니 더 아쉬운 배우라는 생각이 ㅋ

찾아보니 맨 왼쪽배우가 고수희氏라고 '친절한 금자씨'에 나왔던 배우네요
같이 묻어갈라고 했드만 ㅋㅋㅋ 들켰다

그래서 다들 찾아보았는데 이연경(70)빼고는 모두 선배들이더라구요
홍진희-62/ 유호정-69/ 진희경-68 / 김선경-68

저도 딸아이와 런닝맨 보다가 나가수로 턴했어요^^
등수나 탈락같은거 보다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노래를 들려주는 프로가 없잖아요

스텔라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2011-05-14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4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5-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도 나가수 열혈 시청자이시군요, 저도 왠만한 주말 버라이어티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일요일의 나가수가 항상 기대 되고 기다려져요, 매주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감동의 전율을 느낄 때가
좋아요, 물론 나가수도 경쟁 체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신입사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들은 오랫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중들에게 어필했으니까요

인용문집은 읽을 때 깊이감은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한사람님 말씀대로 글 쓸 때 인용 삼을 때 유용해서
좋은 점도 있는거 같아요. ^^

한사람 2011-05-15 09:40   좋아요 0 | URL

예, 제 이웃님들도 저와 비슷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요^^
'나가수'를 본방으로 본 건 두번 밖에 안되지만 오늘부터는 본방으로 사수하려구요 ㅋㅋ
작년까지 아이돌 노래들이 대세일때 도대체 이 판도가 언제 바뀔까...싶었는데
'나가수'는 쎄시봉의 트렌드를 이어가는 MBC의 전략적 승부수에 주효했다고 봐요
아무래도 SBS 보다는 추억의 컨텐츠가 많으니까요

<니체의 말>이 생각보다 괜찮아요~
어제 어영부영 페이지를 넘기면서 부담없이 반이나 읽었습니다 ㅋㅋ
좋은 글귀에 밑줄도 치구요
저는 어제 니체 덕에 행복했습니다 ㅋ

gimssim 2011-05-16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갓 구운 빵처럼 향기나는 님의 글입니다.
아름다운 중년...모든 중년의 희망사항일 듯 합니다.
그렇게 나이들어갈 수 있다면...생각하면 가슴 먹먹합니다.
어젠 저녁 산책 가느라 '나가수'놓쳤답니다.
삶도...그들이 부르는 한 곡의 노래처럼 혼신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좀 고전하고 있는데 '나가수'를 보며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가수도 줄세우기냐,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실력이 없으면 탈락하느냐,
잘못된 트렌드가 아니냐...비평이 무성하더니만 요즘엔 제게 묻어 은근슬쩍 잘 봅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한사람 2011-05-16 08:37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 '나가수' 안보고 산책하시길 정말 잘하셨습니다.
감질나는 늘리기 방송이었거든요 ㅋ

저도 덧글을 고리타분하게 작성하는 편이라 늘 온라인에서는 중년남자로 인식되는데
중전님의 글에서는 오래된 그리움이 묻어 나네요..

이제, '나가수'에서는 꼴찌도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게 회자되었으므로
그래도 그들중에서 꼴찌는 자존심상하는 일만은 아닐듯해요

그나저나 담주 임재범의 여러분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게 생겼네요
아마, TV앞에서 또 청승을 떨 시간이겠지만요 ㅋㅋ

보물선 2011-05-1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당신이랑 나랑은 참 취향이 공통점이 많구나... 하면서 허걱! 놀랐네.
써니는 내가 봤다고 했지? 여행다녀와서 하루 더 낸 휴가날 혼자본 영화가 <사랑을 카피하다>였는데^^

물론 어제 간만에 본방사수 하겠다고 TV시간 맞춰 알람해놓고 나가수도 봤다네!

이정도면 거의 싱크로율 98%는 되지 않아?? ㅎㅎㅎ

한사람 2011-05-16 10:47   좋아요 0 | URL

이른바 중년의 취향?? ㅋㅋ
중년이란 말이 몸서리 치게 싫었는데 슬슬 사랑스러워 지려해 ..
그래도 슬.프.다.

나가수 임재범의 10초 예고편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
그 남자 왜 그렇게 사연이 많았던 것일까..

허긴, 사연없는 중년은 없지..
ㅠ.ㅠ

네오 2011-05-1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년이 주말을 견디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심금을 울리는 군요 흑흑 ㅜㅠ
철쭉이라는 단어를 보고나니 어는 봄날 도로 양옆으로 아름다리 피웠있던 보라색의 꽃들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사랑을 카피하다>는 봤고, <써니>는 보지 못했네요~ <써니>시절이 참 아려한 향수의 공간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죠
니체의 철학과 최영미의 시의 조합. 메마른 감성의 한줄기 빛처럼 다가오겠네요^^

한사람 2011-05-16 15:49   좋아요 0 | URL

예..저는 주말을 아주 잘 견뎠습니다.
<써니>는 네오님 맘에 들지는 몰겠어요, 여자들 영화라서 ㅋ
네오님이 대략 저보다 십여년 후배임을 감안하면(아닌가??) 크게 와닿지 않을수도 있구요~

그런데, 니체는 의외로 좋은데요?
그래서 리뷰도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네오 2011-05-16 20:42   좋아요 0 | URL
ㅋㅋ <써니> 그러면 보지않을래요~ 여자들의 영화 포스터 그대로였군요~ 그냥 메인만 그런줄 알았는데 속을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르쳐 주셔서요^^
(여자들의 세계면 은근 더 알아가는 재미가있지 않을까요;;)

오홋~ 니체리뷰 기대만빵하겠습니다~ 니체라 니체라 니체 좋죠 그렇죠?
(모르면서 그냥 아는 '척'했습니다^^)

한사람 2011-05-17 02:03   좋아요 0 | URL

저는 니체를 리뷰하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용할 뿐입니다 ㅋ
절대 기대를 하시면 안되어요~

정리차원에서 끄적이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써니> 재미있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기회되면 보시와요^^

보물선 2011-05-18 10:22   좋아요 0 | URL
저는 마흔넷 우리신랑이랑 열한살 우리 꼬마랑 봤는데 다 재밌어 하드라구요~
그냥 참고하세요^^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지음, 이수정 옮김 / 알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자책을 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잘 돌보지 못한 책임을 실감하며 병의 원인을 알고난 후엔 무엇이든 후회를 하게 되어있다. 아이가 아플 땐 대부분 아이탓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맞벌이 엄마의 경우 아이가 아픈 것은 두 배로 속상하다. 병원을 데리고 갈 시간도 여의치 않고 아픈 아이를 두고 회사를 향하는 발길도 미어지기 마련이니까. 내 아이는 공교롭게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하자 아토피가 사라지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열두 살이고 면역체계가 정상아이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모두가 한창 아이의 아토피로 잠 못 이루던 유치원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임신기간 동안 입덧이 심해 매콤한 면류를 거의 매일 입에 달고 살았기에 (인스턴트를 먹은)나 때문에 아이가 아토피 체질이 된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 아빠가 폐기능이 안좋을 때 임신한 것이어서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가 천식 및 아토피 체질이 된 것에 자격지심을 갖고 살았다. 시집에선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의 아토피 치료에 전념하라며 볼 때마다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셨고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엄마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아이의 식단과 청결에 목숨을 거실 정도였다. 맞벌이를 하다보면 돈을 두 배로 벌 것 같아도 힘들고 귀찮아 대부분 돈으로 해결하려는 심리 때문에 지출하는 항목이 늘어나게 된다.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이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가 내가 가장 바쁜 시기였기에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피부에 좋다는 ‘바르는 약’, ‘먹는 약’을 사들였고 한약을 비롯해 외국이나 지방에서 공수되어온 물(탄산수)이나 진흙, 소금, 약초같은 약재도 일단은 집에 들여놓고 보았다. 그야말로 아이는 실험대상이었고 우리는 연구원인 그때 그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의 아토피가 완치되어가는 과정을 몇 년 겪으면서 돌이켜보니 세상에 널린 정보는 수많은 정답들 중 하나일뿐 그것이 꼭 내 아이에게 맞거나 혹은 틀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아토피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생선, 고기 및 유제품류의 단백질이 내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토피 체질의 아이들은 열이 많고 비염이나 중이염이 걸릴 확률이 높으며 천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수영장에 다녀오면 꼭 이비인후과 신세를 져야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도 많이 좌우된다. 내 아이는 빵에 함유된 버터나 계란, 밀가루음식보다는 탄산음료나 특정한(기름으로 튀긴) 과자에 특히 반응하는 경우였다. 또 치킨이나 튀김, 전에 사용하는 기름의 종류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랐다.(그러니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기름으로 전을 부쳐 먹어 보았다) 도너츠만해도 D사의 도너츠는 못먹는데 C사의 도넛은 오리지널에 한해 잘 먹고 있다. 새우나 홍합등의 해물류도 요리방법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틀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 모든 걸 먹여보고 징후를 (여러번)관찰해 보아야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또 어떤 날은 그전에 가려움증을 유발하던 음식을 먹고 왔어도 아무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반대로 아무 이상없었던 음식을 먹고도 토하거나 머리가 아프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아이는 (아토피가 심할 땐)스트레스를 받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두통을 느끼며 구토를 한 후 마지막으로 코피를 흘린다. 이 일련의 순서는 (내가 직장에 묶여있는 동안)수년간 반복되며 아이를 괴롭혔고 어떤 의사도 시원한 해결책을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결국은 음식보다는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더 악영향을 끼친 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은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고 몸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먹이는 방법은 그만두게 되었다.

  피부에 직접 바르는 연고도 그 많고 많던 아토피 치료제를 다 사용해보고 난 후 거의 포기에 이르렀을 때 답을 찾게 되었다. 그동안 탄산수나 온천목욕, 진흙목욕을 비롯해 연수기, 공기청정기등의 기계적 도움은 물론 고가의 이불 및 의류, 세제 및 보습제등 아이를 거쳐가지 않은 시술(?)과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내 화장대에 방치된 ‘달팽이크림’을 보고 아이는 크림의 끈적끈적한 점성이 신기했는지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았다. 나는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사은품쯤 되었던 것같다) 내가 바르던 화장품도 아니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팔이 접히는 부분에 남아있던 아토피 상처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팽이 크림에 함유된 재생성분이 아이의 피부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아이는 1학년 때까지 여름에도 긴팔을 입지 못했다. 그날 이후 달팽이크림의 효과는 무섭도록 빠르고도 깊숙했다. 며칠 사용해보니 흉터가 남아있던 피부가 아기처럼 깨끗해졌고 흥분한 아이는 같은 반에 아토피친구에게도 소개를 해주고 친구의 효과를 자신의 일처럼 기쁘게 전해주기도 했다. 유명하다던 각종 크림을 얼마나 발라왔는데 거들떠도 보지 않던 달팽이 크림이 한방에 아토피를 해결해주다니! 그 이후 나는 아토피로 걱정하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달팽이크림’을 말해주었고 효과는 거의 백프로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토피 환자 부모는 몇이나 될까.(홈쇼핑 광고에서도 아토피에 좋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엄마들이 아토피 치료하려고 달팽이 크림을 사지는 않을테니까) 물론 내 아이에게 발랐던 크림이 모든 아이에게도 똑같이 효과를 보장한다 확신할 순 없지만 나는 수많은 정답들중 그 하나의 우연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고 수백 번,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필연적으로 발견된 효과가 아니었을까. 달팽이 이후 하루종일 어이없고 신기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은 내 아이보다 몇 백배 더 고통스러운 병, 자폐증을 가진 아이와 부모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해낸 의미있는 효과들을 감동스런 사연으로 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모르는 것이, 몰랐던 사실이 이렇게도 많았구나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엄마들에 비하면 내 경운 정말 운좋은 케이스였다. 이 책이야말로 그동안 몰랐던 자폐증의 달팽이크림이 아닐까.  

 




 

 

 

 

 

 

 

  


<짐 캐리와 제니 매카시,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에번, 짐 캐리의 딸>

  이 책의 저자는 제니 매카시(Jennifer Ann McCarthy)라는 헐리우드 유명 배우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이 무척 낯익다. 책에도 등장하지만 ‘마스크’의 짐 캐리와 연인사이로 알려진 공식커플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짐이 자폐증 아들을 둔 제니곁에서 에번을 자신의 소중한 아들로 삼으며 험난한 치료과정에 숭고히 동참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친부도 아닌)한 남자가 자신이 느낀 소중한 사랑을 서술하는 글, 아픔속에서도 행복한 시간들에 대한 감사글은 뭉클할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2011. 4)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결별사실을 발표했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역시 에번의 치료과정에서 일어난 힘겨운 고행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니도 언급했지만 자폐아를 둔 부모들은 이혼율(약 80%)이 높고 따라서 여성이 혼자서 아이를 감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니가 소개한 어떤 여성은 아이가 자폐증에 걸린 후 바로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연도 있었다. 아이가 아팠을 때 엄마의 심정을 똑같이 공감하는 나로선 제니와 짐의 결별이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그동안 짐이 ‘자폐증 여행의 동반자’로서 꿋꿋이 세상에 맞서온 그녀를 든든히 지원해 왔고 그녀 역시 짐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은 여성으로서)또 혼자서 모든 시련을 헤쳐 가야하는 그녀의 앞길에 조용히 박수를 쳐주는 것만으로는 내 안타까움이, 격려가 미치지 못할 듯 느껴진다. 그녀의 아들은 꼭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였다. 세상에 분명히 주어진 역할이 있어 이곳에 왔을텐데 아이는 병치례를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엄마역시 이 책의 제목(원제: 전사엄마들, Mother Warriors)처럼 전사로서의 투쟁을 이제는 고독하게도 수행해야겠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진다.

  이 책의 내용은 제니의 글로 전하는 자폐증 아이를 둔 부모들의 사연과 제니의 감회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아들이 두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후 그 치료과정을 담았다는 베스트셀러『라우더 댄 워즈 LOUDER THAN WORDS』가 자신의 목소리였다면 『Mother Warriors: A Nation of Parents Healing Autism Against All Odds 』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부모들의 생생한 체험기(모든 역경에 맞서는 자폐증 치료 부모들의 세계)를 엮어내 전작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2008)로서 이제 그녀는 자폐증에 관한한 어엿한 유명인사가 된 듯하다. 책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 쇼’, ‘바바라 월터쇼’, ‘래리킹 쇼’같은 미국내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과 자신들이 효과를 본 치료법들을 전파해 시종일관 복지부동하고 있는 기존의 학계와 의료계, 제약업계를 향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화려한 모델에서 헐리우드 코미디 배우로 살다가 이제는 투쟁적 이미지의 자폐증엄마의 아이콘이 되버린 듯하다. 유명인이고 토크쇼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퍼뜩 얼마 전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고백을 한 바 있는 부활의 김태원 리더가 생각났다. 아내와 아이가 캐나다를 거쳐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고 한국은 자폐아들을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지만 외국은 ‘특별한 아이’로 배려한다는 그의 기사도 기억이 났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한번이라도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그의 눈물어린 고백이 새삼 실감나게 느껴졌다. 가능만하다면 그에게 이 책을 전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아이의 자폐증을 고백하는 김태원>

  마침 엊그제 신문에서는 미국 예일대 소아정신과팀이 고양시 초등학생을 조사해보니 40명중 1명꼴로 ‘자폐스펙트럼 장애’(자폐증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질환을 통칭하는 용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조선일보. 5.10) 우리나라에 매년 신생아가 40만명 이상 태어나고 자폐증세가 만 두 살부터 나타난다고 보았을 때 산술적으로 중학교 이전 자폐아는 전국에 약 11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뜻이었다. 이는 미국의 통계치에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고 알려진 것보다 우리나라도 자폐증 어린이가 많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또 하나 의미있는 기사는 질병관리본부가 얼마 전 지난 15년간(1995-2010) 어린이와 청소년 아토피가 세배 증가했으며 아토피 어린이는 5명중 한명이라는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2011. 5.3)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토피와 자폐증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니 한 번도 같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혀 무관한 주제에 해당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내 아이가 아토피 환자였다는 경험적인 단순한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 중에는 자폐증을 앓기 전에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아이였거나 자폐증을 앓고 난후 아토피가 생겨난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마구 긁어대는 피부병인 아토피와 말을 더듬고 지적장애를 가져오는 자폐증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 비밀스런 관계를 알게된 것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깨우친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여지껏 아토피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자폐증도 마찬가지다) 유전과 스트레스를 제외한 환경문제, 색소나 항생제, 농약등의 식품문제가 면역체계에 이상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자폐증이 (선천적)유전병이 아니라 (후천적)자가면역 체계 이상으로 생긴 뇌신경 면역질환으로 주장한다. 나는 그동안 자폐증을 신이 내린 ‘정신질환’이나 간질같은 불치의 ‘뇌질환’쯤으로 생각해왔다. 거의 정신분열의 한 종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는 엄마의 강박적인 성격이나 부모의 애정결핍이 아이의 자폐증을 초래한다는 근거없는 편견을 가진 적도 있었다. 책에서 사연을 말하는 부모들은 한결같이 풍진, MMR,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을 예방하는 혼합백신), 뇌수막염등의 예방주사를 접종한후 언어 및 지적, 감각장애, 소화장애를 거쳐 자폐증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수은과 같은 독소를 품고 있는 예방백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기들, 유전적으로 면역이 약한 아기들은 생후 맞게 되는 서른 여섯 번의 무자비한 예방접종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더 창의적인 질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도 예방백신에 수은이 들어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감기나 몸이 아프면 주사약을 견디기 힘드니까 다른 날을 택하시오, 정도만 상식으로 알고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그 치명적인 독소를 견뎌낼만큼 면역력이 우수한 어쩌다가 운좋은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면역이 약한 운나쁜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맞았을 때 주사에 함유된 중금속과 같은 독소가 뇌에 영향을 주어 자폐증이 생긴다는 제니 매카시의 주장이 정설로 인정된다면 사실상 아토피 어린이들은 거의 자폐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잠재환자에 다름없다고 본다. 물론 제니는 자폐증 자체에만 몰두하였기에 이 결론은 내가 이 책을 통해 내린 새로운 가설이자 개인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엄마들을 만나보면 요즘은 심하진 않아도 경미한 수준의 아토피 체질인 아이들이 알레르기와 비염같은 연관질환에 대다수 노출되어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엔)어린 시절을 다 보내고도 청소년, 성인이 된 후에도 대상포진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자폐증 진단을 받은 환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자폐증은 뇌신경학적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이차적 ‘감염원’과 더 다양한 ‘독소’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독소’는 예방백신과 살충제, 음식, 방염물질, 그 외 특정한 환경에 노출됨으로써 아이들의 체내에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면역체계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아토피와 그 면역이상으로 발생하는 뇌신경질환이 자폐증이라는 것은 마치 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책을 덮고 우리네 자폐증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자폐증 치료자에 대한 ‘인증과 통합정보시스템’ 같은 막연한 수준의 대책마련에만 정보가 노출되어 있을 뿐 그 원인과 치료과정 및 효과에 대해선 전무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반드시 습득해야할 꽤 유용한 지식 참고서였던 것이다.

  제니는 면역체계와 자폐증의 상관관계를 다른 부모들의 수기로 신빙성을 확보한 후 우리들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투쟁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서도 피력하고 있었다. 의료계와 제약회사간의 오래된 유착관계, 유전병으로 간주된 자폐증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자폐증 치료 후원단체마저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 부모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연구주제만 반복하려한다는 매너리즘에 대해 따끔한 질타를 잊지 않았다. 예방백신에서 독소를 제거하고(그전에 독소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예방접종의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창했다. 자폐증이 유전병이라는 것은 의사들의 고정관념이며 얼마든지 환경적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 천벌과 같은 불치병이 아니라 반드시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더 많은 부모와 의사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책을 덮고 그녀가 가르쳐준 ‘탄광속의 카나리아’ 한 마리가 유독 잊혀지지 않았다. ‘탄광속의 카나리아’는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들었다. 탄광에 가스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스에 유독 민감한 카나리아를 실험용으로 집어 넣어 보고 카나리아의 생사여부에 따라 탄광작업여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이 세상에 걸음한 것이라는 그녀의 깨달음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아무 죄도 없이 카나리아처럼 지저귀는 아이들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시점에 우리 어른들은 운좋게 살아남는 카나리아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며칠 전 정체불명의 폐질환(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임산부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임산부 뿐만 아니라 영유아 집단에서도 사망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늘은 부랴부랴 전염성은 없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성급한 기사를 확인했다. 최근엔 이렇듯 원인을 알 수 있는 바이러스보다는 절대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대세인 듯하다. 주요 공격대상인 임산부나 영유아, 노약자들은 일반인보다 면역력이 급격히 낮은 대상들인 것도 확실하다. 사람들의 면역은 갈수록 약해지고 신종바이러스는 자꾸 등장하고. 무언가를 사실대로 알지못 할때 전염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공포였다. 어쩐지 이 책에 등장하는 ‘전사엄마-아이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탄하는 대신 벽을 깨부수고 장애물을 넘고 나아가는 엄마’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책에서 제시한 문제는 인류의 면역체계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 즉, 인류가 고안한 시스템과 인류가 창궐한 환경, 인류가 제조한 제품들로부터 역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단지 자폐증 아이를 둔 피끓는 모정을 빌려서라도.  



   

 

 

 

 

 

 
<폐질환 사망자다 더 있다는 SBS 뉴스 보도 (2011.5.12)>

  다시금 인류는 언제 어떻게 생성된 독소에 노출될지 모르는 삶을 바보처럼 아니 똑똑한 사람처럼 철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식이요법이나 제독요법의 방법적 문제보다는 일단 자라나서 유포되는 독소자체를 시인하고 그것을 문제시하려는 정직한 태도가 절실할 때이다. 아토피나 자폐증은 문제를 문제시 하지 않은데서 파생된 형벌일 것이다. 그들이 병적으로 연인관계가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불행히도 우리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세상의 불합리가 주는 교훈은 깨닫지 않아도 될 가르침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에세이로서 차별화되는 점은 특이하게도 번역자의 목소리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전혀 번역된 어색함이나 용어에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고 감정적 호소에는 저자의 목소리가 유독 진하고 강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옮긴이의 글을 보니 번역하신 분도 자폐증 아이가 있어 완전한 공감이 가능했던 것 같다. 원작자와 번역자,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부모님, 그리고 자폐증 아이를 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제니가 끈질기게 호소하는 ‘믿음의 힘’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 아니 우리들은 이들이 전하는 ‘믿음의 힘’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어여쁜 카나리아를 탄광속에 보내는 무정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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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모님이 생각날까봐 도망갔습니다.   

경쟁에 너그러워지려 고개를 돌렸습니다.  

 

 

 

 

 

 

 

 

 

 

 

 

 

 

 

 

 

 

길이 좋았습니다.  

빛은 눈부셨습니다. 

 

 

 

 

 

 

 

 

 

 

 

옅은 파도가 두려웠습니다.  

절벽까지 떠밀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들은 끄덕없어 보였고 사람들은 목적지가 뚜렷해 보였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멈추면 바보같이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하늘아래 오른쪽엔 비가 흩날리고 왼쪽엔 말들이 평화를 머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조금이라도 미움을 버리고 촉촉한 것들만 채워졌다고 믿고 싶습니다. 

 

 

어머닌 봄을 나지 못해 그렇게도 떠나곤 했습니다.  
오월은 가정이나 가족, 부모님이 중요한 달이겠죠.
남들이 중요한 것이 내게는 그렇지 않아질 때
세상은 얼마나 낯설던가요
지난 일년동안 책만 읽고 글만 쓰던 머리를 박치기 하고 왔어요
바닷물에 정신차리고
기암절벽에 눈을 질끔 감았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빗물어린 꽃내음, 그 싱싱한 초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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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1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안 보이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정말 잘된 일이고, 복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차게 시작하십시오.^^

한사람 2011-05-11 10:08   좋아요 0 | URL

많은 걸 버리고 돌아왔어요~
머리가 한층 가벼워졌고 마음은 다른 무엇으로 채워졌습니다^^

보물선 2011-05-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왔어?
나두!
난 그저 가족들과, 가서 만난 분들과 둥실둥실 여기저기 정신없이 돌아댕기다 왔지비~

오늘 하루 집에서 쉬고 있어.
당신이 쓴 <빈집> 추천글 찾고 있는데, 잘 안보이네 그려~
예전에 <한낮에 우울>이랑 여러권 추천했었던거 있잖아...
있으면 메일로 좀 보내주라~

한사람 2011-05-11 16:46   좋아요 0 | URL

정신없이 돌아다니는게 결국 정신차리는 일이더군 ㅋ
돌아와보니 잘 다녀왔다는 생각도 들고

추천도서 페이퍼가 꼭꼭 숨어 있어서 나도 헤맸어 ㅋ
네이버 쪽으로 보냈다는^^

달사르 2011-05-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오월이네요. 자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군요. 간만에 왔는데, 그래서 더 반가워요. 한사람님. ^^

한사람 2011-05-11 21:46   좋아요 0 | URL

여행을 다녀왔더니 오월이 후다닥 달려가는 느낌이어요
오늘에서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리스트 선정의 함정 

모르면서 함부로 책을 추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웃긴건 모르니까 추천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도 한다.  
알았다면 도저히 추천은 할 수 없었을테니까

그래서 섣불리 제목이나 목차, 신문기사만 보고 선정리스트에 올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제 막 출간된 책들은 그럼 무엇을 근거로 읽고 싶다 말해야 하는가.
어짜피 예고편보고 영화선택했다가 막상 두시간 견뎌보니 아니었다는 교훈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신중을 기하되 아니올씨다의 리스크를 안고가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은 없다. 

2. 인문/사회/과학의 광범위성 

평가단이 원하는 책을 미리 리스트하면 그 결과를 취합해 알라딘측에서 두권을 최종선정하는 방식.
8기의 소설분야에서는 리스트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가 않았다.  
평가단 분들이 우연히 비슷한 취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읽고 싶다고 생각되는 책의 범위는
다른 분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아무래도 소설이 더 대중적이어서 그런것일까)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소설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일단 여성분들이 적은 듯하다 ㅠ.ㅠ)
선정들 해주시는 책들을 보면 깊이와 범위의 편차가 크다고 생각된다.  
(소설만 읽어온)내 수준에서는 이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결과적으로 평가단을 지원한 근원적인 이유에서 이 차이는 발생한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위의 두가지 이유로 나는 백퍼센트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선택되어질 만한'책들 중에서
무책임하게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롭지가 못하다. 될 성 싶은 사람 찍어주는 유권자 기분이다.
어떤 운영방침이 새롭게 도입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시행착오는 운영자와 운영집단에게
공평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이번엔 처음으로 리스트 선정하는 것에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남성분들이 잘 선택하지 않을 성 싶은 책을 올려보기로 한다.

 

 

"이 책은 아버지의 역할과 영향부터 남성에게 있어서 양육과 삶의 조화, 남성에게 '아버지 되기'의 의미, 아버지 위상의 미래까지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라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이 아니면서도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며칠전 '5월에 읽을만한 책'을 소개하신 로쟈님의 서재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버지를 잊고 살게된지 십년이 다 되가는 마당에 교과서적인 아버지의 질문을 여러번 읽어보았다. 답을 모르겠다는  것 보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속한 문장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져 그 참뜻을 바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고 나는 틀림없이 어버이날에 눈물을 흘릴터이다. 아버지의 존재를 좀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그리움도 얼마간 해소되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좋은 시민 13명이 들려주는 이야기. 2011년 한국 사회의 화두와 쟁점을 살피고, 2012년 국가의 희망과 대안을 말하는 9가지 이야기" 라는 것이 출판사의 헤드카피이다.

이런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부채감에서 선정해본다. 이 사회가 불량사회라는 생각, 그 사회에 살고 있는 내가 불량시민이라는 생각을 되도록이면 기피하고 살았다.  ‘불량 사회’의 적을 자처하는 ‘좋은’ 시민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포기한지 오래이다. 좋은 시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량시민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밀도가 촘촘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울증적 문화의 한국인'이라는 말에 흠칫 발이 멈춘다.
미술작품과 연계된 심리분석이 아주 새로울 것 같지는 않지만
알고나면 많은 공감을 하게 될 것 같다. 

특히나 80여 점의 한국미술품을 신경과학과 뇌과학에 입각해 설명하는  방식은
디자인과 심리학을 병행했다는 저자의 이력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부분이다. 

 

 

지난번 평가단과 틀린 점이 있다면 이상하게도 이번엔 내가 지목한 책이 선정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많아진 것 같다는 것이다. 소설은 솔직히 어떤 책이 되어도 부담이 크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지목하는 책들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책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책이 선정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4월의 평가단 수행을 마치면서 이런마음은 싹 가시게 되었달까. 

함부로 지원할 인문분야가 아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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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0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왜 그러세요. 잘 하고 계시는구마.
서평단에선 여자, 남자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글만 잘 쓰면 됐지.ㅋㅋ

한사람 2011-05-03 16:05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인문쪽 선정하시는 책들 죄다 '국가'이거나 '정치'쪽이던걸요 ㅠ.ㅠ
마구 후회하고 있어요
지난번 소설때는 외려 다른 평가단 분들 신경안쓰고 그냥 제멋대로 썼었는데..
완전 이번엔 수준차가 심해요..(언뜻보니 모두 사설수준이세요)
(저는 완전 그저 열심히 썼다는 이유로 뽑아 주신듯...)

stella.K 2011-05-03 17:04   좋아요 0 | URL
그게 문제라니까요. 사설수준쯤 되야 폼 나는 거.
메인에도 뜨고.
아유, 맘에 안들어.ㅜ
글이라는 게 정답이 있겠어요?
내가 느낀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면 되지.^^

교고쿠 2011-05-0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실은 저도 7,8,9기 인문사회분야 평가단을 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9기때는 소설분야를 지원해볼까 하다가 엄청난 경쟁률에 기겁을 했었지요.
저랑 생각하는 것이 꽤 비슷하신듯 하여 너무 공감이 갑니다. 아후.
게다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분야인것 같고, 때로는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요...이번에는 잘 되어야 할텐데...^^
(저같이 글 더럽게 못쓰는 놈도 뻔뻔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뭐. ^^)

한사람 2011-05-04 09:21   좋아요 0 | URL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봐요 ㅋ

제 경운 소설서평 쓸 때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았는데
이쪽은 무식이 탄로나는 것 같아서 영 가시방석이어요^^
(이미 인문분야를 오래 해오셨으니 존경합니다^^)



네오 2011-05-0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하지 마세요~ 저는 한사람님이 애로사항으로 언급하신부분에서 저도 깊이 동감하지만 도전의식같고 해볼려고요ㅎㅎ
서경식의<언어의 감옥에서>과 버트런트 러셀의<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벌써 읽으시고 리뷰까지 내놓으셨네요~
부럽부럽^^

한사람 2011-05-04 08:48   좋아요 0 | URL

네오님은 바쁜 직장인이고 저는 안바쁜 주부라는 ㅋㅋ

저도 도전의식을 가지고 지원했지만
그래도 수준차이는 어쩔수 없어보여요..
책 몇권 읽고 따라갈 차이가 아니었어요 ㅠ.ㅠ

네오님과 같은 책의 리뷰를 6개월이나 써야 한다는게 너무 싫어요 ㅋㅋ

cyrus 2011-05-0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모르면서 선뜻 제목에 혹해서 추천했는데 막상 읽어보고나니 어려우면 곤란하죠 ^^;;
저는 <아버지의 탄생>이라는 책이 더 관심이 가네요. 전에 <어머니의 탄생>이라는 두꺼운 분량의 책도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로써 읽어보면 좋을 책인거 같아요 ^^

한사람 2011-05-04 17:04   좋아요 0 | URL

저는 왜 <어머니의 탄생>이 궁금하지 않죠? ㅋㅋ

책 선정에 성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리스트에 소외감을 느껴요 ㅠ.ㅠ


반딧불이 2011-05-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고민을 했던 저는 선정될만한 책을 밀어주기보다, 우연에 기대보자는 심정으로 늘 제가 읽고싶은 책만 추천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선정된 책을 받았을 때는 나름 기뻤답니다.

한사람 2011-05-04 17:09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은 소신쟁이^^ 세요

지난번 소설평가단 할때
마지막날 다른 분들이 리스트 써주신거를 쭈욱 컨닝한후 ㅋ
그중에서 될성싶은 책들중, 그래도 제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아예 이번에 그렇게 골랐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골라주시는 안목을 믿었고,,그분들이 선택한 책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안들었거든요

그런데 인문평가단은 우선 소설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을 제가 간과했어요
그래서 처음인지라 다른분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싶었어요..
그런데..ㅠ.ㅠ

저와는 너무나 취향도 다르고...수준도...차이나고...
(뭐, 어떤 책을 골랐다고 그 책을 읽고 싶다고 하는 것이 그분의 교양수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라면 고르지 않았을거라는 놀라움이 컸습니다)

저같은 분이 없는거 같아서요..

가연 2011-05-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번에 리스트를 고를때 다른 분들의 추천 도서를 쭉 보다가 '아 이 책과 이 책이 되겠어' 하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결국 한 권은 제가 생각했던 책이 되더라구요.. 이번에도 한 권이 .. 될 것 같은 느낌이 ... 드는데 ㅠ 제가 그 한 권이 뽑히길 바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지목한 책이 되면 이 책이 안좋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부터 들고, 지목한 책이 안되면 아.. 잘 아는 분야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고, 고민만 늘어가네요.

한사람 2011-05-05 20: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이번에도 '언어의 감옥에서' 처럼 될성 싶은 책이 있네요 ㅋㅋ
불행히도 제가 선택한 책중에는 한권도 해당사항이 없을 듯하다는 ㅠ.ㅠ.
어떤 책이 되어도 잘 아는 분야가 아니기에 그냥 포기하고 있습니다 ㅋ

달사르 2011-05-1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평가단이 뭐에요? 알라딘에서 하는 특별리뷰 같은 건가요?
특정 책의 리뷰를 신청해서, 책을 받고 리뷰를 쓰는 예스24와는 조금 달라보이네요. 물론 저는 예스에서도 그런 걸 하진 않아서 잘 모르지만, 평가단의 느낌은 좀더 전문적인 느낌이 드는 거 같애요.

한사람 2011-05-11 21:45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연휴는 잘 보내셨죠?
평가단의 느낌이 좀 더 전문적으로 다가온다는 말씀이 반가워요~
알라딘은 일년에 두번 평가단을 분야별로 선정하고 있어요.
운영측은 평가단으로부터 읽고픈 책을 추천받아 취합하여 한달에 두 권을 선정하고
평가단은 마감일 안에 리뷰를 쓰는 방식이어요

책 읽고 리뷰쓰는 것은 다른 온라인서점의 서평단과 다를 건 없어보이구요
평가단을 선정할때 공지한 일정에 따라 분야별, 신청을 받아요. (소설/인문/경영/예술/유아등의)
신청할때 접수한 리뷰심사를 통해 분야별로 20명씩 뽑더라구요
소설분야가 제일 치열하다고 들었어요.

저도 예스와 연계된 출판사에 덧글로 신청한후 해당책을 받아 리뷰를 쓰는 것을 몇번 해보았어요.
거의 신청하시는 분이 정해져 있었던 거 같고, 또 당첨되는 분들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았어요 ㅋ

저는 7기와 8기에는 소설평가단이었고 이번 9기는 인문쪽을 하게되었어요
이런 비교는 조심스럽지만, 알라딘에는 어느곳보다 글빨과 이빨이 센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평가단 하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더군요^^

한달에 두권이니 부담도 안되고, 또 선정과정을 거쳐서 뽑혔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평가단분들이 추천한 책중에서 두권이 선정되는 방식으로 바뀐 뒤부터는
평가하게 되는 책들도 대부분 양질의 책이 많아서 저는 좋더라구요,
달사르님도 10기에 신청해보시면 어떨까요..

http://blog.aladin.co.kr/proposeBook/4616398


달사르 2011-05-21 13:01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알라딘 평가단, 링크 걸어주신 곳으로 가보니 참 알차게 꾸려져있네요.
종종 가서 다른 사람들 리뷰 구경도 하고 그래야겠어요.
한사람님, 자상하십니다요!! 10기에는 저도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꾸벅.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평가단 ?

이 책을 덮고 자꾸 떠나지 않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평가단이다’, 라는 자각이었다. 의미가 있었다면 이 책은 나로 하여금 ‘평가단’으로서 서평을 작성해야 한다는 책임과 역할을 환기시켜 주었달까. 즉, 나는 이 책을 러셀을 만나보기 위해 집어든 것이 아니라 평가단 임무수행을 위해 펼쳐든 것이었고 그것은 러셀을 만나고 싶었느냐와 그리하여 만났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러셀을 만났는지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의무감 때문에 나는 며칠 이 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7기와 8기의 소설평가단을 하면서 해당책의 서평에 부정적인 평가를 한 책은 딱 두 권이다. 한 권은 출판사의 마케팅 방향과 책 내용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고 한 권은 홍보와 달리 세간의 화려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단점때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번 모두 나름의 내 논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평가단으로서 부정적인 평가는 주로 책에 대한 반론으로 귀결된다. 논리의 이면에는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여 비록 주관속에서라도 객관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근거나 자료가 없다면 결론을 유추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기라도 해야 한다. 내 맘에 들면 좋은 책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책이라 말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후자를 말할 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보다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설득력이 생길 터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평가라는 오류에 빠질 수 있는, 평가가 함정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평가만 하지 않는다면 글로써 서평이라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미소지으며 책꽂이 한 켠에 꽂아 두어도 좋을 책이었다.

나는 ‘평가단’과 일반 ‘서평자’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지난 두 번의 평가단을 수행하면서 지금에서야 얻은 결론이다. 우선 평가단은 (평가를 하고 싶다는)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평가의 자격을 얻어)선정된 사람들이다. 선정의 기준은 평가단을 선정하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대개 이들은 텍스트의 분석 및 이해력, 문장력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책좀 읽고 글좀 쓰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아마도 그렇게 책좀 읽고 글좀 써왔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이기에 신간의 평가를 맡기는 것일 터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수행단을 ‘평가단’에서 그냥 ‘서평단’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 ‘서평단’으로 칭해준다면 나는 평가를 하고서도 평가한 것에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와 굳이 평가라는 미션에 예민한 이유는 두말없이 내가 ‘평가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7기와 8기 때는 평가단이라는 미션보다는 성실한(?) 서평자로서 한 권의 책을 통한 서평 한 편에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글을 써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서평이 작품화(?) 되면서 작위적인 문장이 늘고 책을 말하기 보다는 서평자체, 문장과 논리의 완성에만 치중하게 되었고 과다필력의 부작용으로 ‘평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찌보면 나 자신과 내 글만을 위한 서평여행이었다. 솔직히 글은 얼마든지 써도 정작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내가 무어라고’ 하는 생각도 있었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 여기서 평가라고 했다고 모두 부정적인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누군가 반론을 한다고 치자. 평가에는 물론 호평도 포함되지만 평가를 하고 그것의 결과를 적을 때는 반드시 호평인지 혹평인지, 아님 모르겠다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평가하고 싶지 않다던지 하는 위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요한 임무를 방기한 채 한 권의 책을 내 입장에서 다시 적어보려만 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평가를 한다고 자각한 채 평가를 내려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내겐 이 사실이 땅을 칠만큼 중요했다. 러셀이 이 책을 통해 가르쳐 준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 것이었다. 평가의 오류를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 책을 말할 때 나는 좋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내가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면 이 책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만 싶었지 말하거나 그 결과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읽는 것까지는 긍정할 수 있으나 어떻게 읽었는지 적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처음으로 깨우쳤다. 이것은 중요하다. 내가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이 책을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의 좋은 점만 말해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내 맘에 안들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몇가지 이 책의 좋은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내 서평을 우연히 읽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평가는 누군가의 우연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니까,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 책은 어쩌다가 평가단에게 평가 받아야 할 불운을 안고 가는 경우인 듯하다. 이 책은 스페셜하게도 러셀의 책에서 베스트만 발췌한 명언집이다. 가만보면 콜렉션의 소장 유무는 평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미 확실하고도 훌륭한 평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행해지는 작업이고 콜렉션 자체가 마케팅을 소구하는 작품이니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허술하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일지 모른다.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러셀의 책을 단 한권이라도 독파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인데 (이렇듯 평가자격이 없는데도 불구)그렇더라도 나는 이 책에 딴지를 걸 수 있는 자격을 이미 얻었다. (조용필 베스트, 조수미 베스트를 받았는데 조용필, 조수미를 모른다고 베스트에 딴지를 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나에게 이 책이 안좋았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오로지 평가의무에만 귀속되는 일일뿐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영 기분좋지가 않은 책인 것이다. 한마디로 심사위원 자격도 안되면서 (심사위원이니까)점수 매기는 부끄럽고 속터지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이번 책에 대한 서평은 평가를 위한 평가임을 먼저 밝혀둔다.

이 책은 러셀의 책?

먼저, 나는 이 책을 통해 러셀을 만나지는 못했다. 스쳐 지나갔다고 해야 맞을 듯 하다. 가장 큰 원인은 러셀을 알기에 이 책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알았다고 여기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어떤 이는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어떤 부분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질문한다면 무어라 답할지 궁금하다. 이 책의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러셀을 더 알고 싶다’ 정도의 대답이 나온다면 다행이지 싶다.

중요한건 <버트런드 러셀의 베스트>가 러셀이 죽고 나서 편집자의 임의에 의해 모아진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스트를 택하는데 있어 러셀은 검수를 했다. 최종원고를 검토하고 몇주 뒤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말이다. 7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자신의 책중에(이 책에서 발췌한 책은 40여 권이라지만)특정한 문장을 발췌하여 여섯 개의 하부 주제(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아래 위치시키는 일(의 교정)을 98세에 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과 베스트 선정으로 새로운 책이 탄생하는 것을 그가 원하였는지, 구성과 방향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편집자의 작업에 최종동의를 한 것이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러셀은 더 이상 원고를 수정한 적이 없다. 가수로 치면 칠십 주년 기념 골든 베스트 앨범작업(의 프로듀싱)을 막 마치고 얼마 후 사망한 것과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가치가 있으며 유작으로서 러셀의 일생과 학자로서의 업적을 정리하는데 의미있는 시간을 제공할 터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이 의도한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는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그 베스트로 선정된 본문의 무책임함이었다.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어보니 한 개의 세부주제 하에 최소 서른 개에서 오십여 개의 발췌문이 나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윤리’의 장에는 가장 많은 육십 여개의 문단이 구성되었다. 나는 한 개의 장에서 약 열 번 이상은 독서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된 문장이 구성상 서론인지 결론인지, 어떤 주장의 반론인지 동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략 다섯 줄에서 열줄 정도 되는 한 개의 문단을 뚫어져라 정독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더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 문단이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 속한 것인지 철학책에 있는 것인지 그게 다였다. (제목옆에 출간연도라도 표기했다면 시대를 가늠해보기라도 했을텐데, 이건 인용문의 기본적 태도가 아니다. 러셀이 평생동안 한말일까? 살면서 한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일까? 현역으로 활동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어느 시기, 어떤 시국에 출간된 책인지 정도는 인지하면서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닐까? 맨 뒷편에 참고문헌처럼 연도를 표시해 준 것은 확인하고 싶으면 앞뒤 넘겨가면서 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 그런데 나중엔 책의 제목도 큰 의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문체의 톤이 풍자의 뉘앙스를 가진 사설조였기에 러셀이 논리를 주장하는 방식, 결론을 맺는 습관정도에만 익숙해졌을 뿐이다. 선정된 글의 순서에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특별히 그 부분을 싹뚝 잘라내어 이곳에 같다 붙인 이유도 와닿지 않았고 나중엔 크게 구분된 상위주제가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마지막 장 ‘윤리’에 해당되는 발췌문은 내용상 ‘종교’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것은 완성본 없는 싯구절의 향연이 아니다. 무차별하게 배치되어 있던 이 랜덤의 규칙안에서 나는 꼼짝없이 숨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전체적으로 사색을 방해하는 구조, 생각의 확산을 저지하는 구성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발췌문의 앞뒤를 장식하던 ‘편집자의 여는 글’과 ‘해설자의 닫는 글’도 내용상 열고 닫는 의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하나로 합쳐도 더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열고 닫는 글을 이 책의 가이드라고 보고 발췌된 문단을 다시 소주제로 나누어 편집자가 중간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일관된 사유를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한편의 시를 조각조각 분해해 해석하며 평을 덧붙이는 방식의 평론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다듬은 것처럼 보이도록 앞뒤에 프레임을 배치시켜놓고 완전 발췌문은 산발적인 자유 랜덤플레이로 방치한 것이 아닐지. 비편집자인 출판의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 책은 아직 원고단계였다는 생각,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기왕에 러셀이 말하려 했던 모든 것을 친절하게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전달하려 했다면 좀 더 독자를 배려해야 하지 않았을까.(나처럼 러셀의 책을 한권도 제대로 안 읽어본 사람에게도) 아주 최상의 재료들을 일렬로 나열해 놓고 아직 요리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느낌을 받은 건 나만의 결론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끝내 러셀을 만나보지 못하고 볼듯 말듯 잠시 스쳐지나간 쪽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스침의 느낌이 좋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 책은 러셀과 그의 다른 책을 말하지 않고서는 독립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든 책이다. 아쉽게도 단일본으로서는 책의 의미를 가치있게 백프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이번 러셀 베스트가 책으로서 가치에 부합하여야 하는가는 이미 이 책의 원고가 러셀의 본문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러셀은 이미 충분히 가치있는 저자이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러셀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러셀의 책으로서 가치를 전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러셀을 말하는 방법적인 문제이니 결국 책이 구성되는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러셀을 말하려다 말 못하거나 안하느니 못한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러니 이 책은 러셀이 집필한 내용만으로 책을 만들었으나 러셀의 책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쉽다. 나는 러셀의 모든 작품이 이런 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 한 권만을 본다면 러셀의 논리는 심오하다기 보다는 퍽이나 유머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구성하는 발췌문들은 러셀이 말하는 ‘상당히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여성노동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만 선정된 듯하다. 나는 원래 어려우라고 하면 누구보다 어렵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진지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을 위해 쉽게 쓰는 것이다, 라는 러셀의 지적우월감은 이글로만 러셀을 만나는 입장에선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기껏 대중적인 글을 발췌하여 대중을 설득하려했던 그의 노력을 알리고자 했건만 정작 대중인 내가 잘난척 하는 태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같은 사람이 이 책의 주요타겟군이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기왕이면 (편집자의 판단에)어렵다고 생각되는 글도 발췌하여 비교해볼 수 있었으면 어떨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문제이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현격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러셀을 더 존경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교육’을 말하는 러셀은 세익스피어를 조각조각 암기하게 하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현학적이고 따분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학교교육이 세익스피어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한다는 따끔한 질타를 하고 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러셀의 조각조각을 확인했더니 우리네 지식인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무지막지한 착각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같이 단 오분이라도 러셀과 만나서 눈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그리하여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더 깊은 성찰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다. 대체 어느 문장을 보고 러셀의 이전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러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만남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미 러셀을 독파하고 그의 뜻을 충분히 학습한 사람들은 과연 이 책이 필요할까? (필요보다는 기념이 가깝지 않을런지)

그래도 러셀처럼 !

하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성과 필요성에 대한 치명적인 단점을 제외하면(?) 그 스쳐가는 느낌속에서도 공감과 끄덕임이 없지는 않았다. 가장 공감한 글은 ‘종교’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을 경우 어떠한 것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러셀은 열다섯 살 이후로 기독교를 믿지 않아왔고 ‘무엇 때문에 기독교를 믿지 않는지를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내 보기에 러셀은 평생을 자신의 이유를 말하는데 소진했다는 생각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게 된 이유는 곧 종교에 대한 신랄한 반론을 뜻했다. 나 역시 종교는 ‘절대성’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성’의 문제라는 생각을 가진지 오래다. 종교가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하면 된다는 주의다. (그러므로 종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종교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종교가 가진 아이러니다. 종교마저 절대적이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 삶에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러셀은 종교의 절대성을 냉철하게 해체시키고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서구세계에서의 교회가 가지는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가 개념을 정의한 문장중에 가장 반가웠던 건 ‘신념’을 말할 때였다. 러셀은 ‘신념’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어느 누구도 증거가 있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지 않으므로 신념이 해롭다는 것. 너무나 맞는 말이라 흠칫하면서도 짜릿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신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을 때 사람들은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중거가 없으니 믿게된다는 논리가 신선했고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꿰뚫고 직시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러셀은 종교적 신앙에의 열망을 ‘두려움’이라는 인간본성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관적인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두려움에 호소하여 두려움을 인간운용의 방편으로 삼은 종교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러셀은 신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루는 것은 바로 ‘과학적 진실성’이었고 사고의 기초를 관찰과 추론에 두는 습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가 이성의 힘을 신뢰한 철학자였다는 것은 이 책을 이루는 수많은 발췌문의 반복되는 논리형식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는 있었다. 이성理性은 ‘reason’이다. ‘reason’은 ‘이유’나 ‘근거’를 의미하기도 한다. 러셀은 이성적인 사람이므로 ‘이유와 근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발췌문은 독특한 주장을 한 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고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문제를 매듭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리함에 추가된 것이 있다면 어른된 이성을 꼬집는 아이의 감수성이다.

우리의 도덕 체계는 금기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존엄한 사항들과 관련해서도 갖가지 금기가 있다. 오늘날 죄악으로 분명히 인정되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범하지 않은 죄가 있다. 성서에 이르기를 “네 이웃의 소를 탐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웃의 소를 탐낸 적이 없다. 241p

나는 이 문장의 마지막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웃다가 결국은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셀에 의하면 법률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을 보면 꼭 나는 도둑질 하지 않았으니 죄인이 아니라는 사기꾼이 생각난다. 그리고 남의 것을 욕심내어 본 적이 없다는 자신의 철학을 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들어 재치있게 비유한 그의 감수성이 순진한 남자아이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한 글이고 그로써 이 책에 가졌던 반감이 누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많은 걸 감안해야 하는 책이다. 가장 아쉬운 건 러셀의 ‘논리적 사유’를 만나는데 이해가 아닌 감상의 차원에 그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러셀이 이런 말도 했다는 자료나 증거, 인용의 문장으로서는 충분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그나마 전체 내용이 궁금해진건  <버트런드 러셀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다. 1960>정도 였다. 발췌문은 에세이와 인문서적이 섞여있었지만 대부분 에세이로 느껴졌던 영향이 컸다. 마지막으로 러셀이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피력하는 글이 아닌, 세상을 향해 떠오르는 생각을 편안하게 읊조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글을 옮겨 적어본다. 일백년 가까이 살았던 한 철학자가 노년에 말하는 행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고요한 울림을 전해준다. 그 치열했던 인생속에서 탄생한 마지막 통찰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다는 점이 숙연해진다. 어쩐지 ‘나는 이웃의 소를 탐한 적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고 느껴진다. 나도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있게 이웃의 소를 탐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러셀의 모두를 혹은 일부라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말한 행복만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가 행복을 말하는 방법, 그리고 행복의 본질 그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결국 그 역시 모두가 행복하고 똑똑하게 살아보자고 그 많던 고민을 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따금 나는 환상 속에서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 원기왕성하고 똑똑하며 억압하는 자도 억압받는 자도 없는 세상을 본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이 서로 경쟁하는 개별적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지력과 상상력을 통해 실현가능한 위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 인류는 한 가족이기에 모두가 행복을 맞거나 모두가 불행을 맞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다수 대중의 고통에 기생해서 소수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 시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시대를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의 행복을 시샘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다. 1960>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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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0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과 평가단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님에게서 처음으로 자각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평가단이 되보기는 알라딘에선 두번짼데, 다른데서는 많이 해봤죠.
하면서 느낀 건 확실히 서평에 대해 쓰는 건 좀 족쇄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육감과 호기심에 웬만한 걸 걸러내더라도 실망스러운 책은 있기마련이죠.
아님 적어도 내 취향엔 맞지 않는. 그럴 때도 쓰는 게 젤 난감해요.
속편하게 내돈 내고 내가 사서 보는 게 젤 좋긴한데, 아시겠지만 책값이 장난이 아니잖아요.
그럴 때 평가단은 정말 좋은 빌미가 되기도하죠.

좋은 책인데 내 취향이 아니라면 모를까 이런 책은 좀 문제가 있어 보여요.
그래도 문제가 있는 책은 평가단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얘기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알라딘인데, 좀 성의있게 책을 들이댔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읽고 싶은 책 올려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이 이책 원했다고 선정 이유 밝히는 거 좀 거시기해요.
마치 모든 평가단이 원하는 것처럼.
첫 도서 기대치에 못 미쳤는데, 다음 도서는 또 어떨지, 걱정반 기대반입니다.
제발 알라딘이 한사람님 말을 잘 들어줬으면 하는데...에효~

감은빛 2011-05-04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나서 보니,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군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됩니다.
'평가단'이란 역할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네요.

네오 2011-05-0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번의 러셀책이 그렇군요~ 리뷰작성시 참고하겠습니다~

穀雨(곡우) 2011-05-0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시원하게 긁어 주신 글이네요. 누군가의 모음은 때론 명분에 급급하다는 생각이 강해
흐름을 방해하고 얄궂은 공허만 모락모락 자라더군요.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이 반드시 나쁘다는 부정의 시선보다 확실한 독자층을 휘어 잡는
안전판을 거머쥔, 쉽게 갈 길을 골라 잡은 왜곡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쉬워요. 무엇인가를 잔뜩 기대하고 열었건만 텅빈바람만 잔뜩 훅하고 불어
오는 느낌처럼 말이지요..ㅎㅎㅎ
여튼 평소 한사람님의 문체와는 다름음 행간에서 엿보고 갑니다.

cyrus 2011-05-0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러셀의 신간인줄 알고 바로 동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저 역시 이 책이 러셀의 글을 발췌한 책이라서 약간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발췌한 내용중에도 참 좋은 글들도
있었지만,, 발췌한 문장으로 인해서 읽는 독자들마다 서로 다른 해석과 공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기도 했어요, 간혹 어떤 문장은 앞뒤 내용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구요,, 역시 텍스트는
전체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거 같아요. ^^

가연 2011-05-0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책이 십자포화를 맞고 침몰해가는구먼요ㅜㅠ 음... 왠지 출판사에서도 이런 리뷰를 볼 것 같아서.. 다음엔 이 부분을 좀 고쳐주세요, 라고 일부러 페이지까지 콕 집어 언급까지 한 제가 할 말은 아닐 것 같지만 쓰신 분들이 대개 부정적 평들이 많아서 묘한 미소가 자꾸만 입가에 걸리네요. 뭐랄까, 나라도 좋게 써줄걸 하는 죄책감?ㅠㅠㅠ그러나 죄책감은 죄책감이고 확실히 평가단으로서 서평자와는 달라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뭐, 아직 남은 분들이 많으실테니.. 그 분들의 생각이 어떨지도 궁금하네요. 하지만.. 평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